작년 11월 27일, 헌법 재판소는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 이하 코바코)의 광고판매 독점체제에 대해 “방송의 공공성과 다양성을 보장할 다른 방법이 있음에도 코바코에 방송광고를 독점하도록 한 것은 민간 광고대행업체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와 함께 민영 미디어렙 도입에 대한 요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10일 목동 방송회관에서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과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주최로 ‘민영 미디어렙 도입방안 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방송광고판매대행제도 헌법 불합치 판결에 따른 개선방안’이라는 부제 그대로 이번 토론회는 현재 코바코의 광고판매 독점체제의 존폐 문제가 아닌, 폐지를 전제한 이후의 미디어렙 도입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중파 3사 및 EBS, 지역 민방과 지방 MBC, 종교방송, 라디오, 지상파 DMB의 광고는 코바코가 판매를 대행한다. 일반 케이블 방송사가 직접 광고주와 직접적으로 거래하는 것과 달리, 코바코는 독점적으로 광고주에게 광고를 판매한다. 그래서 논의되는 것이 민영 미디어렙의 도입이다. 미디어렙은 특정 매체사와 전속계약을 채결해 그 매체의 시간 혹은 지면을 광고주나 광고회사에 판매하고 그 대금을 회수해 매체사에 지불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회사를 말한다. 즉 광고주가 광고대행사를 통해 광고를 구매하는 것처럼, 방송사는 미디어렙을 통해 광고를 판매한다. 하는 일은 코바코와 비슷하지만 민영 미디어렙은 당연히 독점적 지위를 얻을 수 없다.

공정한 판매루트로서의 미디어렙의 가능성이번 토론회에서 첫 발제를 맡은 단국대학교 언론홍보학과 박현수 교수는 유럽과 미국의 미디어렙 도입 현황을 보여준 뒤 “원칙적으로는 미디어렙끼리의 완전 경쟁이 맞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광고 물량, 특히 민영 미디어렙의 우선순위 대상이 될 민영방송사 SBS의 물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제한적 경쟁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디어렙끼리의 완전 경쟁 때문에 광고 수주를 위한 방송의 질적 저하가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며 “미디어렙 도입은 광고를 판매하는 것의 문제인데 여기에 방송 공공성을 걸 따지는 건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그런 건 방송법으로 편성 기준을 강화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이수범 교수는 KBS와 MBC, EBS와 종교방송 을 담당하는 1개 공영 미디어렙과 1개 민영 미디어렙의 제한적 경쟁체제를 3년 정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가장 현실적인 안으로 꼽으면서 1개 공영 미디어렙과 다수 민영 미디어렙의 부분 경쟁체제, 방송사가 출자한 방송사 자회사 미디어렙의 완전 경쟁체제, 공영과 민영 구분 없는 다수의 미디어렙 완전 경쟁체제의 세 가지 모델도 가능한 경우의 수로 제시했다.

하지만 현재 민영 미디어렙 도입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지역 민방, 혹은 종교방송처럼 시청률이 낮아 광고 수주가 어려운 취약 매체에 대한 보장 문제다. 현재 코바코는 어떤 프로그램의 광고를 팔 때 지역 민방이나 종교방송의 광고까지 파는 연계판매, 소위 ‘끼워팔기’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예전부터 광고주와 광고대행사에서는 자신들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하지만 민영 미디어렙이 방송사와 계약을 맺고 광고를 수주한다면 지상파 3사 정도를 제외한 다른 취약 매체들은 미디어렙과의 계약 자체가 어려운 지경에 이를 수 있다. 미디어렙으로서도 수지가 남는 장사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코바코는 정말 자유와 평등권의 사회악일까

이에 대해 박현수 교수는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피해가 예상되는 방송사에 대해 관계자들은 시장 퇴출을 가장 당연하게 여긴다”고 전제하면서 방송발전기금에서 소폭의 추가조성으로 지원하거나 지금과 같은 강제적 연계판매와는 조금 다르게 인기 프로그램과 묶어 할인해서 파는 패키지 판매로 취약 매체 지원 방법을 제시했다. 이수범 교수는 자신이 제시한 1개 공영 미디어렙과 1개 민영 미디어렙의 제한적 경쟁체제의 장점이 공영 미디어렙이 취약매체를 지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전파료와 시청료 인상을 통한 재정지원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민영 미디어렙의 경쟁 방식과 방송사의 소유 지분 문제 및 개인의 최대 소유 지분 범위, 그리고 시장 진입방식에 대한 여러 방법론이 제시되며 정부와 여당의 찬성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모호했던 민영 미디어렙 시대의 청사진이 비교적 명료하게 제시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앞서 말했듯 현재 코바코 체제의 폐지와 민영 미디어렙 도입을 전제한 토론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헌법 재판소는 현재의 방송광고시장체제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렸고, 그 근거인 직업선택의 자유와 평등권은 보장되어야 하는 가치다. 하지만 코바코의 독점을 통해 EBS와 종교방송 등의 방송사들이 시청률은 낮아도 방송의 공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다는 것 역시 충분히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다. 때문에 현재의 체제가 유지되든 미디어렙이 도입되든 좀 더 많은 목소리들이 좀 더 다양한 가치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공론장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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