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에는 반가운 이름들이 여럿 보인다. 드라마 팬들은 황인뢰 감독의 2년만의 복귀작이라는 데 눈길이 갈 것이고, 만화 팬에게는 故 고우영 화백의 아우라에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의 록 팬들은 이 작품의 타이틀 곡 ‘나는 일지매’를 통해 그들의 복귀를 확인할 것이다. 1990년대, 교포 뮤지션이었던 김준원과 국내의 실력파 연주인들로 구성됐던 그룹 H2O. 당시 한국에서 가장 세련된 록 음악을 선사했다는 찬사를 받았던 그들이 OST로 돌아왔다. 그들은 조만간 5년만의 새 앨범도 발표할 예정이다. H2O의 멤버 중 김준원(보컬), 김영진(베이스), 박현준(기타)을 만나 그들과 록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2004년에 낸 앨범 이후 어떻게 지냈나.
김준원 : 각자 하는 일들이 있어서 밴드를 계속 유지할 수 없었다. 4집도 앨범내고 공연 한 번 하고 끝났고. 우리가 돈을 대면서 계속 활동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나는 생계 때문에 아르바이트 삼아 바나 카페를 운영했는데, 이제는 그게 생계가 되다 보니까 내 정체성에 대한 혼돈이 왔었다. 내가 아티스트인가 장사꾼인가. 그 문제를 정리하는데 10년쯤 걸렸다.
김영진 : 아르바이트로 가수들 프로듀싱에 참여하고, 다시 H2O 하고 그렇게 살았다. (웃음)
박현준 : 인디 음악하는 친구들의 모임이 있다. 성기완 씨가 주축이 된 모임인데, 그 사람들하고 여러 프로젝트를 했었다. 그룹 비행선도 그런 프로젝트였었고. 처음엔 한 번의 프로젝트가 될 줄 알았는데 계속 하게 됐다. (웃음)

“락 밴드라고 명함을 내민 이상 음악적으로 나이를 따라가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각자 살다 다시 H2O를 하게 된 계기는.
김준원 : 어떤 계기가 있는 건 아니다. 나는 H2O가 삶의 터전이다. 워낙 시장 상황이 안 좋아서 계속 할 수 없었을 뿐이다. 지난 15년 동안 수시로 같이 할 수 있는 기회를 노렸는데, 기껏해야 2004년에 한 번밖에 같이 내지 못했다.

OST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김준원 : 옛날에 현준이가 황인뢰 감독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지금까지 아는 사이다. 전에는 같이 음악 작업도 했었는데, 요즘에는 사업 때문에 못하다 이번에 같이하게 됐다.

‘자장가’에는 한대수도 참여했다.
김영진 : 그게 걸치(이계인)를 위한 노랜데, 예전에 대수 형 앨범에 참여한 인연이 있어서 추천했다.
김준원 : 이계인 씨가 캐스팅되기 전부터 그 노래는 대수형이 어울리겠다 싶었다. 만화 를 좋아했었나.
김준원 : 우리 어릴 때는 고우영 선생님의 만화는 좋아한다, 아니다가 아니라 무조건 봐야 하는 거였다. 거기다 처럼 잘 생긴 남자가 무술 잘하면서 여자까지 반하게 하는 이야기는 어린이들의 꿈이었으니까. (웃음)

그런데 H2O가 연주한 ‘나는 일지매’는 예전 H2O 음악과 다르다. 스케일도 크고, 오케스트라도 동원했다. 약간 국악적인 느낌도 있고.
김준원 : 처음부터 그런 편곡을 염두에 두진 않았다. 약간 국악 느낌을 넣자는 정도였는데, 하다 보니 욕심이 났다. 여기에 영진 씨가 오케스트라를 넣으면 더 웅장하지 않냐는 의견을 냈고.

‘나는 일지매’에는 뉴웨이브와 하드락, 국악까지 굉장히 다양한 음악이 섞였더라.
김영진 : 그렇다. 사실 코드는 세 개만 썼는데, 건반과 오케스트라가 들어가면서 보통의 록 음악과는 다르게 풀렸다. 우리의 경륜이 어느 정도 쌓여서 오케스트라 구성에 락 사운드가 안 밀리게 된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가 쌓은 것들이 하나로 집약됐다고도 할 수 있다.
김준원 : 이번 작업 전까지 공백기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이 먹으면서 무슨 음악을 해야 할까. 대중적으로 멜로디를 강조한 음악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가면 그건 우리 음악이 아니다. 락 밴드라고 명함을 내민 이상 음악적으로 나이를 따라가고 싶지는 않다. 영진 씨와 얘기할 때도 달릴 땐 달리자, 음악가지고 협상하지 말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일지매’에서 만큼은 처지는 음악을 하고 싶지 않았다.“아직도 밴드로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앞으로 나올 H2O의 음악도 ‘나는 일지매’의 연장선상에 있는 건가.
김준원 : 예나 지금이나 심플하고 남성적인 음악을 할 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나하고 영진 씨하고 나이도 거의 같고, 듣는 음악도 비슷해서 70년대 하드락이나 80년대 뉴웨이브 얘기를 많이 한다. 그래서 비트는 하드락으로 가면서 뉴웨이브의 사운드를 많이 넣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는 기타가 현준이하고 오늘 못 온 타미 킴 두 사람이 됐는데, 타미 킴의 기타는 독일군 장교 같고, 현준이는 프랑스 사람이 치는 것 같다. (웃음) 그런 게 섞이면 재밌어질 것 같다. 각자 세월이 있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쌓였다. 세월의 결과물이다.

그렇게 음악이 변할 동안 어떻게든 H2O를 유지한 게 신기하다. 정말 흔치 않은 일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영진 : 그 부분은 준원 씨의 힘이 크다. 김종서나 임재범 같은 친구들은 다 솔로로 나섰는데, 혼자 솔로를 안 하고 그룹을 지켰다. 딴 걸 하면서도 우리하고 계속 왕래가 있었고. 그게 구심점이 돼서 언젠가 밴드를 같이 하자는 마음을 갖게 된 것 같다.
김준원 : 사람인데 왜 갈등이 없었겠나. 정확하게는 나한테 솔로 앨범을 제시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웃음) 일종의 오기일 수도 있다. 나는 작년에 영주권을 포기해서 더 이상 재미교포도 아니지만, 스물 몇 살 때 미국에서 이곳으로 올 때 마음 먹은 게 있었다. LA에서 비디오로 보던 한국 가수들보다 더 멋진 음악을 하면서 돈도 벌자고. (웃음) 하지만 나와 보니 밴드를 유지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건지 알게 됐다. 그렇다고 미국에 돌아가기는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그런 오기로 한국에 있다 보니까 지금까지 왔고, 그러다 보니까 영진 씨하고도 같이 작업하고, 현준이도 돌아왔다. 나는 아직도 밴드로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H2O는 ‘걱정하지마’ 같은 인기 싱글을 내기도 했다. 다른 밴드들도 히트곡이 한두 개는 있었고. 그런데 왜 락 밴드는 결국 대부분 제도권에 진입하지 못했을까.
김준원 : 초창기에는 일단 음향 문제가 컸다. 공연장에 가면 들국화나 부활까지는 모르겠지만 백두산이나 시나위처럼 좀 거친 음악이 나오면 현장에서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를 정도였다. 그러면 마니아들만 남고 공연에 더 이상 오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 음악시장은 여성들이 좌우하는데, 여성들의 호감을 얻을 수 없었다. 그 여파로 그 밴드들이 1~2년 안에 전부 해체됐다. 거기다 언더에서 더 과격한 트래쉬 메틀 붐이 일어나서 더욱 더 대중하고 멀어졌고, 그 다음에는 기획사에서 예쁘장한 얼굴 가진 애들 모아서 앨범 녹음은 다른 세션한테 연주 시키는 기획 밴드들이 몰려 나왔으니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었다. 대중성과 락 밴드의 색깔을 함께 유지하는데 모두 실패했다. 결국 솔로로 나선 몇 명의 보컬리스트들만 살아남았다.

그러면 요즘 락 밴드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김영진 : 음악이 저변 확대가 되려면 일본처럼 1억의 인구는 가져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일단 거기서 한계다. 그리고 너무 대중에 편승하는 게 오히려 문제다. 원래 밴드는 바닥부터 시작해서 팀웍도 다져지고, 자기 색깔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인디에서도 대형 기획사 가수처럼 일단 기획사에 소속돼서 인기만 쫓는 경우가 많다. 자기 정체성을 가졌으면 좋겠다.

“20년쯤 음악을 하니까 이제야 감이 잡히는 것 같다” 요즘 락 음악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영진 : 실력부터 갖춰야할 것 같다. 음악만 잘하면 대학생처럼 다녀도 좋은데 일단 유행하는 패션부터 따라가려고 한다. 그리고 유행하는 사운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가져다 쓰는 건 위험하다. 최대한 신중했으면 좋겠다. 요즘은 인디 뮤지션도 빨리 음반을 내서 사람들한테 알려지는 데 급급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리더가 없다. 예를 들어 팝계에서도 저스틴 팀버레이크 하나가 나오면 신이 바뀌는데, 우리는 그렇게 신을 이끌기 보다는 지금 유행하는 걸로 그대로 간다고 생각하는 거다. 오히려 아이돌 그룹이지만 빅뱅 같은 팀이 자기 포지션에서 좋은 음악을 하는 것 같다.
박현준 : 인디 신에서는 재밌는 콘셉트의 밴드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것 자체는 좋지만 실력이 더 탄탄해지면 더 좋을 것 같다. 좀 더 진지해져도 좋을 것 같고.
김준원 : 너도 나이를 먹은 거야. 너도 그 나이였으면 그런 말 안할 거라고. (웃음)

박현준 씨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인디 신에서 어떤 작업을 할지 궁금해 한다.
박현준 : 그런가? 인디 쪽 음반은 내기 쉬우니까. 내가 손익 분기를 따져서 하는 것도 아니고. 모임에서 함께 해보자고 하면 같이 한다.
김준원 : 옛날부터 현준이가 먼저 뭘 하겠다고 제안한 적은 없다. 항상 누군가 이거 같이 하자 그러면 거절도 안하는 거 같고. (웃음)
박현준 : 하지만 사람이 별로면 안 한다. (웃음)

활동 계획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김준원 : 4년 전처럼 공연 한 번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다. 상황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니지만, 열심히 해서 더 이상 휴식 기간이 없었으면 한다. 일단 드라마가 끝나는 시점에서 OST 공연 한 번 하고 싶고. 기회가 되면 해외 진출도 해보고 싶다. 젊은 뮤지션들도 해외에 좀 나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시장이 없다면 만들어야 되지 않겠나. 어쨌든 방법은 있을 것 같다.

돌아온 H2O는 음악으로 무엇을 전달하고 싶나.
김준원 :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서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다. 우리가 나왔다고 해서 뭐가 변할 것 같지도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의 음악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을 음반과 공연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거다. 20년 동안 공연을 했는데, 적어도 공연에 온 사람들에게 만족은 준 것 같다. 그거 밖에 답이 없다.
김영진 : 20년쯤 음악을 하니까 이제야 감이 잡히는 것 같다. 어떤 주제가 주어지면 그 핵심을 보는 눈이 생긴 거 같다. 물론 시스템이 마련됐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더 좋은 걸 보여줄 수는 있을 것 같다.
박현준 : 돌아온 H2O 아닌가. (웃음) 마지막 힘까지 내서 열심히 해 보겠다.

강명석 two@10asia.co.kr
이원우 four@10asia.co.kr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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