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에서 토크쇼는 무엇으로 사는가? SBS 과 KBS 은 특별한 사건 없이 토크 위주로 진행된다. 이들은 돌발 상황이 난무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비해 다소 정적이고 고전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분명 에서 로 이어진 1990년대식 토크쇼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한 명의 게스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지도, 1인 MC가 대화를 주도하지도 않는다. MC는 게스트들이 풀어놓는 중구난방 에피소드를 갈무리해 끌고 가고, 게스트들은 다음 날 기사에 오를만한 이야기 거리들을 준비해온다. 외려 MT나 술자리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분위기는 의 ‘토크박스’로 대표되는 집단 토크쇼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면 심야시간대의 두 예능 프로그램은 그 옛날 ‘토크박스’처럼 시청자들을 눈물 나게 웃기고 있는 걸까. 김은영, 김교석 TV평론가는 웃고 있을까. /편집자주

토크쇼는 다른 어느 방송 프로그램보다 대화의 비중이 높은 장르다. 드라마의 대사도 대부분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고 리얼 버라이어티 출연자들도 수많은 대화를 주고받긴 하지만, 드라마나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대사 못지않게 중요한 건 인물의 움직임이나 배경 같은 비언어적 요소들이다. 반면 모든 출연자가 오직 대화를 목적으로 모여앉아 진행하는 토크쇼는, 비록 사전 인터뷰를 토대로 한 각본의 산물이라고는 해도 출연자의 입심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숨 쉴 틈 없는 토크의 경연SBS 은 바로 그 ‘입’들의 경연이었다. 자타공인 톱 MC 강호동과 검증된 ‘예능선수’들은 패널과 게스트를 막론하고 ‘예능선수촌 vs 태릉선수촌’, ‘신비주의 vs 노출주의’ 등으로 양분되었고, ‘올킬’로 상대편을 제압하거나 수시로 ‘예능 감’을 과시하도록 요구받았다. 하지만 뛰어난 선수들만 골라 영입하고도 우승컵을 놓치고만 팀처럼, 화려한 엔트리에 ‘큰 웃음’도 가득했던 은 정작 시청률 리그에서 2% 내외의 꾸준한 열세를 기록했다. 그 까닭은 토크쇼의 주재료인 대화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대화의 재료는 말이다. 당연히 말 잘하는 사람이 대화에도 강하다. 그런데 사람들의 실제 대화를 지켜보면, 말끝을 흐리거나, 목소리를 낮추거나, 숨을 고르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말없이 분위기를 음미하는 행위들이 의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대화의 여백이라 할 만한 이러한 요소들은 중요한 내용을 더 돋보이게 하며 대화를 지치지 않고 이어지게 한다. 그러나 방송시간의 대부분이 킬(kill)에 할애되고 별다른 중간정리(이를테면 감동 모드의 슬로우 편집영상 같은) 단계 없이 숨 가쁘게 편집된 은 종종 여백 없는 그림, 하프타임 없는 경기를 연상시켰다. 공격만 있고 숨고르기는 없는 토크 경연은,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바람에 피로감을 주곤 했다.

MC, 게스트, 편집의 역할 분담‘예능선수단’의 해산 직후 등장한 는 보다는 쉼표 내지 여백의 형식을 많이 도입하고 있다. 물론 코믹함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새로 채택한 소재인 ‘시’와 ‘노래’는 그 자체가 쉼표의 예술 아닌가. 토크가 과열될 즈음 ‘스타 자작시’로 완급을 조절한 뒤 ‘너는 내 노래’로 후반전을 여는 구성은 70분 내외의 방송시간에 ‘강 약 중강 약’의 리듬감을, 출연자석을 ㄷ자로 꺾어 배치한 세트는 MC-게스트-패널 사이에 물리적 여백을 부여한다. 의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의뭉스러운 듯 속사포처럼 터뜨리는 ‘DJ 락’의 개그는 역시 재미있고, 패널과 게스트가 주고받는 토크는 경쾌하다.

예능선수촌의 마지막 스타 최양락은 ‘너는 내 노래’를 시작하며 “길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지만, 새로 단장한 에는 아직 ‘큰웃음 빅재미’로 시청자를 사로잡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살짝 엿보인다. 하기야 리모컨의 주인들에게 자비와 인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겠지만, 그렇더라도 가 길게 가는 토크쇼로 남고 싶다면 대화의 원리를 한 번 더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지금은 ‘토크쇼의 레전드’가 된 강호동의 ‘무릎 팍 도사’도 그랬다. ‘큰웃음 빅재미’는 언제나 의뢰인의 입에서 나왔지만, 그들의 입담을 ‘빵 터지게’ 한 것은 의뢰인에게 푹 빠진 MC의 얼굴이나 “둥둥 두구두구… 액션!” 같은 쉼표 또는 말줄임표의 장치들이었다. 강약과 고저를 넘나드는 리드미컬한 연출 속에 오버하지 않아도 빛나는 게스트, 말하기와 듣기가 맛깔스럽게 어우러진 토크를 에서도 보고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 김은영

KBS 은 지층과 같은 프로그램이다. 지층이 퇴적될 당시의 환경적 상황을 설명해주는 것처럼 을 보다 보면 지난 몇 년간 우리가 만나온 여러 프로그램이 화석처럼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독특한 콘셉트와 새로운 코너를 도입했다고는 하지만, 결론은 10여 년 전 의 ‘토크박스’처럼 패널들의 토크 대결. 각개전투냐 팀을 나누느냐 정도가 차이라면 차이다. MC가 물로써 벌칙 받는 코너 ‘샤워 토크’는 ‘위험한 초대’를 연상시켰고, 최근에는 신동엽이 진행했던 ‘쟁반 노래방’의 벌칙기구와 유사한 냄비도 등장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식상한데, 10퍼센트 초중반의 시청률을 찍어낸다. 이 정도로 우려내도 문정성시를 이루는 사골집이면 ‘원조’내지는 ‘TV에도 방영된 집’이라는 간판을 달아줄 만하다. 신동엽의 키워드 집합

신동엽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을 말 할 수가 없다. 애주가인 그는 매일을 축제처럼 젖어들게 만드는 샴페인을 즐긴다고 한다. 그토록 좋아하는 술을 프로그램명으로 내걸을 만큼 포부가 대단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선호하는 시간 때인 밤 11시에 처럼 패널들의 입담을 펼치는 경연장을 마련하고 앙상블 파트너로는 최고의 유망주이자 실력파 개그우먼 신봉선을 초대했다. 은 콩트를 제외하고 신동엽이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모든 것을 수집한 전당포였다.

부부 코미디 버라이어티라는 수식어답게 ‘샴페인 토크’ 코너는 샴페인 잔을 앞에 놓고 펼치는 어른들의 대화였다. 표인봉이 여자 친구와 오붓한 시간을 보낼 방을 찾기 위해 연신내에서 신촌까지를 걸었다는 이야기에 이승신은 “여자친구분이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다”는 추임새와 그래서 그날 밤의 결론을 집요하게 묻고, “잠자리에서만큼은 남편이 잘하든 못하든 최고로 생각하게끔 한다”는 박해미의 솔직한 이야기에 독고영재는 시뻘건 얼굴로 연신 샴페인 잔을 들이켰다. 그러나 가끔 선수인 조형기도 어쩔 줄 모르는 19금 토크를 제대로 선보이기에 아직 공중파 방송은 점잖았고, 그 수위나 민망함은 19세 위아래 모두를 크게 만족시키지 못했다.결국은 토크, 한 시간의 웃음 후에

10시로 시간대를 옮기며 샴페인 잔을 내려놓고, 토크 배틀 코너인 ‘샤워 토크’의 거추장스러운 샤워기도 치웠다. 새로운 코너 ‘야식 토크’의 출발과 함께 시청률도 상승했다. 그런데 긍정적이지가 않다. 새 코너도 결국 패널들의 토크 배틀이었고, 그 나머지 공간에는 ‘미남특집’ ‘아나운서 특집’ 같은 전혀 특색 없는 게스트 맞춤형 특집으로 대신 자리를 채웠다. 점점 패널들의 토크대결 붙이기에 빠져들면서 신동엽, 신봉선의 앙상블은 좀처럼 발전하지 못했다. 신봉선이 못해서가 아니라, 그녀는 김원희, 현영처럼 남들의 토크를 센스 있게 받쳐주기보다 자신이 타석에 들어서서 점수를 내는 홈런 타자이기 때문이다.

은 볼 때는 웃음이 절로 나지만 다 보고나면 전자파에 무방비로 노출된 멍한 느낌을 받는다. 아쉽게도 에는 안주하기보다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신동엽만의 투지와 재기가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신동엽은 너드(nerd)끼를 보이는 유재석이나 위압감을 주는 강호동이 모두 오버하는 캐릭터임에 비해 잘 치고 받으면서도 세련된 진행을 할 줄 아는 진행자다. 그런 그가 케케묵은 일본식 토크 버라이어티를 고집하기보다 재능과 도전의식을 살려 ‘라이브 토크쇼’를 진행하는 것이 차라리 더 전향적이지 않을까. 기획이 어그러졌다고 더 자극적이고 쉬운 방향을 찾는 지금과 같은 태도가 아쉽다. 앞으로 ‘이상형 토너먼트 32강 게임’ 등의 어떤 장치가 나온다고 한들, 그것만으로 또 몇 달을 넘기기는 힘들 것이다.
글 김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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