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오락 프로그램은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전성시대다. MBC , KBS 의 ‘1박 2일’, SBS 의 ‘패밀리가 떴다’ 등 공중파 3사의 주요 오락 프로그램은 모두 리얼 버라이어티 쇼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어느새 리얼이나 캐릭터 같은 단어들이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그러나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애초에 리얼과 버라이어티 쇼를 결합한 이 단어는 늘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를 의심 받았고, 동시에 장르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뒤따랐다. 특히 최근 ‘패밀리가 떴다’의 대본이 에 공개되면서 생긴 논란은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 대한 의문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시청자들은 대본에 너무나 자세하게 방송의 내용이 적혀 있다는 이유로 ‘패떴’의 진실성을 문제 삼지만, 스스로 대본을 공개한 ‘패밀리가 떴다’의 제작진들은 그 정도의 대본이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왜 그들은 같은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상반된 입장을 보이는가. 한국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현재에 대해,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언제나 리얼을 외치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 안에 들어있는 법칙들과 제작진 인터뷰, 그리고 대본만으로 가능한 어느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 대한 픽션까지, 리얼 버라이어티의 모든 것을 가 준비했다.
“‘패밀리가 떴다’는 정말 자연산이다.” 지난 13일 SBS 박정훈 예능 국장은 SBS 의 ‘패밀리가 떴다’(이하 ‘패떴’)의 대본 공개에 따른 조작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에 따르면 ‘패떴’은 “한 번 촬영할 때 마다 400개의 테이프”를 쓰기 때문에 조작이 불가능하고, 공개된 대본은 “내용을 요약한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중요한 건 누구도 이 말의 진위를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다. MBC 의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에서 한결같이 “상황은 설정이지만 마음은 진심”이라고 말하는 출연자들의 진심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KBS 의 ‘1박 2일’의 이승기가 정말 ‘허당’인지 아는 것 역시 그들 자신뿐이다. ‘1박 2일’의 MC몽이 종종 “리얼이야 리얼, 완전 소름 돋았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국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리얼을 강조한다. 시청자들도 ‘패떴’의 대본 공개 후 “몰입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일 만큼 쇼의 리얼리티에 신경 쓴다. 그러나 ‘우결’에서 강인-이윤지 커플이 서로가 마음에 들어 커플이 되기로 한 것인지, 출연 계약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들 자신뿐이다.
리얼, 캐릭터 그리고 대본리얼 버라이어티의 리얼은 아무도 증명할 수 없다. ‘패떴’의 대본 공개 후 벌어진 논란들은 현재 한국 오락 프로그램의 주류인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문제가 공개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모두 리얼을 쫓지만, 누구도 리얼을 증명할 수 없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서 리얼은 사실상 ‘리얼리티’가 아니라 시청자가 연예인의 ‘리얼한 모습’을 보고 있다고 믿게 하는 것에 가깝다. MBC 이 리얼 버라이어티 쇼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도 실제로 ‘어색한 사이’라는 정형돈과 하하의 관계를 TV 안에서 드러낸 뒤부터다. 연예인의 실제 모습을 TV 안으로 끌어들여 프로그램의 캐릭터와 실제 연예인의 경계를 지운 의 전략은 현재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보여준다. 모든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는 ‘돌+아이’, ‘은초딩’, ‘엉성천희’, ‘개똥이’ 같은 캐릭터들이 있다. 또한 모든 연예인들은 논두렁을 구르는 게임까지 하며 망가진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스타들의 ‘리얼리티’를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그들을 코믹한 모습을 보여주기 쉬운 상황으로 밀어 넣은 뒤, 거기서 연예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반응이 리얼이든 아니든,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리얼리티 쇼보다는 오히려 시트콤에 가깝다. 쉽게 웃을 수 있는 캐릭터가 있고, 그들이 코미디를 펼칠 에피소드가 마련된다. 다만 ‘자세한’ 대본이 없을 뿐이다. 대부분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게임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박 2일’의 나영석 PD는 “요즘 시청자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게임은 이런 상황을 끌어낼 수 있는 좋은 ‘대본’이다.
그런데 에서 우발적으로 등장한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1박 2일’과 ‘패떴’, ‘우결’등이 등장하며 캐릭터들이 게임이나 미션을 수행하는 형식으로 굳어진 진짜 장르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그램의 변별력은 캐릭터와 리얼의 순도로 결정된다. 뒤에 등장한 ‘1박 2일’은 출연자들을 혹한의 자연으로 내몰면서 ‘진짜 리얼’을 강조하며 출연자들에게 ‘은초딩’, ‘허당’ 등의 별명을 붙였다. 그 후발주자인 ‘패떴’은 시작부터 이천희를 ‘천데렐라’로 만들고, 이효리의 ‘쌩얼’을 보여줬다. “초반에 캐릭터를 잡기 위해” 지금보다 자세하게 대본을 작성했다는 ‘패떴’의 장혁재 PD의 말은 ‘패떴’의 조작 논란의 원인을 보여준다. 후발 주자가 빨리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빠른 시간 내에 인기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제작진들은 프로그램에 더 많이 개입한다. ‘가상’으로 결혼한 상태에서 연예인들의 ‘진심’을 보는 ‘우결’의 설정은 시트콤 같은 코믹한 캐릭터에 연예인의 실제 모습이라는 리얼을 끌어들이며 나온 결과물이다.
리얼리티 쇼와 시트콤, 그 중간의 어디쯤프로그램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리얼리티 쇼의 기법으로 찍은 시트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한국 오락 프로그램의 주류로 성장한 그 순간 매너리즘을 걱정한다. 시트콤과 리얼리티 쇼의 장점을 동시에 가진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시트콤보다 몰입할 수 있고, 리얼리티 쇼보다는 더욱 오락적인 재미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제작진이 정해놓은 설정 안에서 캐릭터가 움직이는 특징상 캐릭터가 자리를 잡으면서 프로그램의 내용이 반복되기 시작한다. 이승기와 은지원이 갑자기 ‘허당’과 ‘은초딩’ 캐릭터를 버릴 수는 없다. ‘우결’은 실제 부부생활과 흡사한 상황 속에서 ‘알신 커플’과 ‘개미 커플’등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가상 결혼’이면서 출연자들이 ”나는 진심“임을 강조하는 ‘우결’의 딜레마는 출연자들이 ‘실제 활동’을 이유로 하차하면서 리얼리티가 무너졌다.
최근 ‘우결’과 ‘1박 2일’의 변화는 이런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다. 실제 교제설까지 있었던 앤디-솔비 커플이 보여줬듯, 과거의 ‘우결’은 가상 결혼을 하는 연예인들이 서로 조심스럽게 마음을 여느냐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새로운 커플들은 아예 가상이라는 것을 정해놓고 가상의 연인처럼 활동한다. ‘우결’은 강인-이윤지를 ‘대학생 부부’ 콘셉트로 설정했다. 손담비와 마르코는 자연스럽게 포옹을 하는 등 실제 신혼 부부의 느낌을 낸다. ‘우결’은 리얼보다는 캐릭터를 빛낼 시트콤적인 구성을 선택한 셈이다. 반면 ‘1박 2일’은 보다 리얼리티를 강조한다. 애초에 6명의 여행으로만 시작했던 ‘1박 2일’은 ‘게릴라 콘서트’ 식의 이벤트를 통해 제작진의 통제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4박 5일 동안 백두산에 다녀오며 리얼리티를 극대화시켰다. 출연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건, 그들이 고생 끝에 백두산에 다녀온 것은 리얼이다. 또한 ‘패떴’처럼 박찬호 같은 게스트는 고정된 형식에 변화를 일으킨다. 애초에 리얼과 버라이어티 쇼라는 정반대에 가까운 개념을 결합한 이 기묘한 장르는 정착 단계에 이르러 또다시 변화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새로운 단계 변화
하지만 이런 변화가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캐릭터의 재미를 강조하든, 리얼리티를 강조하든 이 장르의 핵심에는 연예인의 ‘진심’과 이에 대한 시청자의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서 리얼을 외칠수록 그것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누구도 증명할 수 없는 진심을 믿음만으로 지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의 변화는 흥미롭다. 은 최근 전국체전 에어로빅 대회나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발대회 같은 ‘리얼리티 쇼’를 찍는다. 출연진들의 진심이 어떠하든, 그들은 제작진이 통제할 수 없는 실제 상황에 부딪쳐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짜’ 결과물을 보여준다. 은 리얼리티 쇼를 통해 캐릭터의 진심과 상관없는 또다른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오락 프로그램이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지나,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한국 오락 프로그램의 제작 시스템의 변화와 직결되는 문제다. 리얼리티 쇼가 성공하려면 보다 여유 있는 제작 환경이 필수다. 김태호 PD가 의 빡빡한 촬영 스케줄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며 사전제작제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처럼, 리얼리티 쇼는 사전제작제 같은 제작 시스템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이는 오락 프로그램의 정체와 발전을 결정지을 문제일 수도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정착하면서 한국 오락 프로그램들은 과거와 달리 2-3주 동안 제작을 준비하고, 1박 2일 내내 촬영해 2-3주치의 방영분량을 만드는 것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리얼버라이어티 쇼가 조금씩 한계를 보이는 지금, 오락 프로그램 제작진들은 프로그램에 더 많은 공을 들일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이 필요하다. 한국 오락 프로그램은 이제 자신들의 리얼을 증명하는 것을 넘어, 제작 시스템의 변화라는 리얼한 상황에 부딪친 것이다. 그들이 이 미션에 성공할 수 있을까.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진짜 리얼의 길로 가는 것은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패밀리가 떴다’는 정말 자연산이다.” 지난 13일 SBS 박정훈 예능 국장은 SBS 의 ‘패밀리가 떴다’(이하 ‘패떴’)의 대본 공개에 따른 조작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에 따르면 ‘패떴’은 “한 번 촬영할 때 마다 400개의 테이프”를 쓰기 때문에 조작이 불가능하고, 공개된 대본은 “내용을 요약한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중요한 건 누구도 이 말의 진위를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다. MBC 의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에서 한결같이 “상황은 설정이지만 마음은 진심”이라고 말하는 출연자들의 진심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KBS 의 ‘1박 2일’의 이승기가 정말 ‘허당’인지 아는 것 역시 그들 자신뿐이다. ‘1박 2일’의 MC몽이 종종 “리얼이야 리얼, 완전 소름 돋았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국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리얼을 강조한다. 시청자들도 ‘패떴’의 대본 공개 후 “몰입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일 만큼 쇼의 리얼리티에 신경 쓴다. 그러나 ‘우결’에서 강인-이윤지 커플이 서로가 마음에 들어 커플이 되기로 한 것인지, 출연 계약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들 자신뿐이다.
리얼, 캐릭터 그리고 대본리얼 버라이어티의 리얼은 아무도 증명할 수 없다. ‘패떴’의 대본 공개 후 벌어진 논란들은 현재 한국 오락 프로그램의 주류인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문제가 공개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모두 리얼을 쫓지만, 누구도 리얼을 증명할 수 없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서 리얼은 사실상 ‘리얼리티’가 아니라 시청자가 연예인의 ‘리얼한 모습’을 보고 있다고 믿게 하는 것에 가깝다. MBC 이 리얼 버라이어티 쇼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도 실제로 ‘어색한 사이’라는 정형돈과 하하의 관계를 TV 안에서 드러낸 뒤부터다. 연예인의 실제 모습을 TV 안으로 끌어들여 프로그램의 캐릭터와 실제 연예인의 경계를 지운 의 전략은 현재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보여준다. 모든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는 ‘돌+아이’, ‘은초딩’, ‘엉성천희’, ‘개똥이’ 같은 캐릭터들이 있다. 또한 모든 연예인들은 논두렁을 구르는 게임까지 하며 망가진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스타들의 ‘리얼리티’를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그들을 코믹한 모습을 보여주기 쉬운 상황으로 밀어 넣은 뒤, 거기서 연예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반응이 리얼이든 아니든,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리얼리티 쇼보다는 오히려 시트콤에 가깝다. 쉽게 웃을 수 있는 캐릭터가 있고, 그들이 코미디를 펼칠 에피소드가 마련된다. 다만 ‘자세한’ 대본이 없을 뿐이다. 대부분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게임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박 2일’의 나영석 PD는 “요즘 시청자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게임은 이런 상황을 끌어낼 수 있는 좋은 ‘대본’이다.
그런데 에서 우발적으로 등장한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1박 2일’과 ‘패떴’, ‘우결’등이 등장하며 캐릭터들이 게임이나 미션을 수행하는 형식으로 굳어진 진짜 장르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그램의 변별력은 캐릭터와 리얼의 순도로 결정된다. 뒤에 등장한 ‘1박 2일’은 출연자들을 혹한의 자연으로 내몰면서 ‘진짜 리얼’을 강조하며 출연자들에게 ‘은초딩’, ‘허당’ 등의 별명을 붙였다. 그 후발주자인 ‘패떴’은 시작부터 이천희를 ‘천데렐라’로 만들고, 이효리의 ‘쌩얼’을 보여줬다. “초반에 캐릭터를 잡기 위해” 지금보다 자세하게 대본을 작성했다는 ‘패떴’의 장혁재 PD의 말은 ‘패떴’의 조작 논란의 원인을 보여준다. 후발 주자가 빨리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빠른 시간 내에 인기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제작진들은 프로그램에 더 많이 개입한다. ‘가상’으로 결혼한 상태에서 연예인들의 ‘진심’을 보는 ‘우결’의 설정은 시트콤 같은 코믹한 캐릭터에 연예인의 실제 모습이라는 리얼을 끌어들이며 나온 결과물이다.
리얼리티 쇼와 시트콤, 그 중간의 어디쯤프로그램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리얼리티 쇼의 기법으로 찍은 시트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한국 오락 프로그램의 주류로 성장한 그 순간 매너리즘을 걱정한다. 시트콤과 리얼리티 쇼의 장점을 동시에 가진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시트콤보다 몰입할 수 있고, 리얼리티 쇼보다는 더욱 오락적인 재미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제작진이 정해놓은 설정 안에서 캐릭터가 움직이는 특징상 캐릭터가 자리를 잡으면서 프로그램의 내용이 반복되기 시작한다. 이승기와 은지원이 갑자기 ‘허당’과 ‘은초딩’ 캐릭터를 버릴 수는 없다. ‘우결’은 실제 부부생활과 흡사한 상황 속에서 ‘알신 커플’과 ‘개미 커플’등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가상 결혼’이면서 출연자들이 ”나는 진심“임을 강조하는 ‘우결’의 딜레마는 출연자들이 ‘실제 활동’을 이유로 하차하면서 리얼리티가 무너졌다.
최근 ‘우결’과 ‘1박 2일’의 변화는 이런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다. 실제 교제설까지 있었던 앤디-솔비 커플이 보여줬듯, 과거의 ‘우결’은 가상 결혼을 하는 연예인들이 서로 조심스럽게 마음을 여느냐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새로운 커플들은 아예 가상이라는 것을 정해놓고 가상의 연인처럼 활동한다. ‘우결’은 강인-이윤지를 ‘대학생 부부’ 콘셉트로 설정했다. 손담비와 마르코는 자연스럽게 포옹을 하는 등 실제 신혼 부부의 느낌을 낸다. ‘우결’은 리얼보다는 캐릭터를 빛낼 시트콤적인 구성을 선택한 셈이다. 반면 ‘1박 2일’은 보다 리얼리티를 강조한다. 애초에 6명의 여행으로만 시작했던 ‘1박 2일’은 ‘게릴라 콘서트’ 식의 이벤트를 통해 제작진의 통제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4박 5일 동안 백두산에 다녀오며 리얼리티를 극대화시켰다. 출연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건, 그들이 고생 끝에 백두산에 다녀온 것은 리얼이다. 또한 ‘패떴’처럼 박찬호 같은 게스트는 고정된 형식에 변화를 일으킨다. 애초에 리얼과 버라이어티 쇼라는 정반대에 가까운 개념을 결합한 이 기묘한 장르는 정착 단계에 이르러 또다시 변화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새로운 단계 변화
하지만 이런 변화가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캐릭터의 재미를 강조하든, 리얼리티를 강조하든 이 장르의 핵심에는 연예인의 ‘진심’과 이에 대한 시청자의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서 리얼을 외칠수록 그것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누구도 증명할 수 없는 진심을 믿음만으로 지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의 변화는 흥미롭다. 은 최근 전국체전 에어로빅 대회나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발대회 같은 ‘리얼리티 쇼’를 찍는다. 출연진들의 진심이 어떠하든, 그들은 제작진이 통제할 수 없는 실제 상황에 부딪쳐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짜’ 결과물을 보여준다. 은 리얼리티 쇼를 통해 캐릭터의 진심과 상관없는 또다른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오락 프로그램이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지나,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한국 오락 프로그램의 제작 시스템의 변화와 직결되는 문제다. 리얼리티 쇼가 성공하려면 보다 여유 있는 제작 환경이 필수다. 김태호 PD가 의 빡빡한 촬영 스케줄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며 사전제작제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처럼, 리얼리티 쇼는 사전제작제 같은 제작 시스템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이는 오락 프로그램의 정체와 발전을 결정지을 문제일 수도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정착하면서 한국 오락 프로그램들은 과거와 달리 2-3주 동안 제작을 준비하고, 1박 2일 내내 촬영해 2-3주치의 방영분량을 만드는 것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리얼버라이어티 쇼가 조금씩 한계를 보이는 지금, 오락 프로그램 제작진들은 프로그램에 더 많은 공을 들일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이 필요하다. 한국 오락 프로그램은 이제 자신들의 리얼을 증명하는 것을 넘어, 제작 시스템의 변화라는 리얼한 상황에 부딪친 것이다. 그들이 이 미션에 성공할 수 있을까.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진짜 리얼의 길로 가는 것은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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