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펑펑 쏟아지는 눈을 모아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 몇몇 친구들에게 보내주었어요. 물론 아침이 되니 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엔 팔을 만들었던 작은 나뭇가지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핸드폰 바탕화면엔 여전히 그 눈사람이 살아서 미소 짓고 있습니다.

12월 4일 극장 개봉한 김종관 감독의 중 한 편인 ‘메모리즈’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다… 영화는 잊혀질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이다.’ 검은 밤의 스크린, 어제처럼 흩날리던 눈 위에 떠오르는 이 자막을 읽으면서 어쩌면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들 자체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억과 기록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일요일 밤 방영된 MBC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의 첫 회는 지구 온난화가 북극의 생명들에게 무엇을 앗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그 눈부신 얼음의 땅이 영원히 사라지게 될 어느 날을 향한 첫 번째 경고사격이었습니다. 이누이트 족 사냥꾼들의 저 늠름한 기개도 북극곰의 여유로운 몸짓도 곧 심해 저 편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작은 노력이 빙하가 녹아가는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언젠가 다가올 그 재앙의 날을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무기력한 결론 앞에서 인간이 선택한 것은 지금 카메라를 들고 북극으로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무모하고 무모합니다. 하지만 그 무모한 기록들이 기억의 퇴장시간을 유예시킬 수도, 아니면 영원히 잡아 놓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 하고 있는 이 행위들도 어쩌면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기록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이 순간 배우들의 표정들을, 분명히 존재했던 수많은 프로그램들의 제작 과정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콘들을, 변화무쌍한 당신의 취향과 그들의 유행어와 나의 관심을. 우리는 지금 그 기록들을 보고, 그 기록들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우리는 이 행동들을 멈출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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