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으른 어린이었다. 학원가기가 귀찮아 공부도 못하는 주제에 부모님께 방문교재를 요구하고, 그마저도 방 한구석에서 먼지가 새하얗게 쌓일 정도였다. 그런 내가 열의를 가지고 유일하게 했던 일은 만화영화 시청. 제때 시간 맞춰 TV 앞에 앉기만 하면 되니 게으른 어린이에게는 최상의 유희였다. 취향도 까다롭지 않아 거의 모든 만화를 섭렵했으나 유일하게 끝까지 보지 못한 것이 있으니 였다. 기괴한 분위기의 타이틀은 김국환 아저씨의 힘찬 주제가마저 음산하게 만들었고, 예쁘지만 어딘지 모르게 처녀귀신 같았던 메텔은 오싹했다. 거기다 은하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하나같이 비극이었다. 미래세계는 우주를 여행하는 기차가 있을 만큼 발전했지만 사람들은 불행했다. 기계인간이 되어버린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을 제 손으로 죽인 사람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 철이가 만나는 이들의 인생은 처참했고, 그런 세상은 세계소년소녀전집을 읽는 어린이에게는 무섭고 무거웠다.

얼마 전 채널을 돌리다 메텔과 철이와 마주쳤다.(월요일-금요일 7시25분, EBS) 우연히 만난 는 여전히 음산했다. 그러나 예전처럼 무섭진 않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도 철이가 살고 있는 곳만큼 불행한 이야기들이 넘쳐나고, 더 무서운 일들도 일어나니까. 그래도 메텔처럼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과 차장 아저씨처럼 길을 안내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오늘도 철이처럼 씩씩하게 서울도시철도를 타고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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