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가 운동을 멈춘 세계에서 한동안 고현정은 박제된 아이콘이었다. 유원지로 전략한 정동진의 소나무처럼, 4천만이 기억하지만 더 이상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 ‘뜨거운 감자’의 노래 ‘고현정’ 가사에서처럼 “완벽하다는 말을 해도 되는지,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 절대적인 꿈의 여인이요, 새 세기의 도래와 함께 사라진 아스라한 한 시대의 뮤즈였다. 그리고 10년 후, 그 환영은 실체가 되어 대중 앞에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여전히 고현정은 그 “이미지와의 싸움 중”이다. 그녀를 형용하는 이미지의 꼭짓점을 연결한 희미한 형상만이 고현정을 추측 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인 셈이다. 그렇게 모두가 알지만, 누구도 잘은 모르는 여자. 여기 고현정이 나지막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쩌면 자신도 잘 모를 자신에 대해, 그러나 세상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아는 한 여자의 입을 통해.
개인적으로 SBS 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혜린이 쌀을 사가지고 오다가 길에 그걸 흘리고 다시 주워 담고, 결국 우석의 자취방에서 이런 저런 주정을 하다 잠드는 시퀀스에요. “난 소주 아니라 맥주 먹고 싶은 게 너무 창피해, 데이트하고 싶은 것도 창피해”하며 주절거리던 혜린이가 결국 “나 돌아오는 길에 쌀 샀다. 걔들은 목숨 걸고 단식하는데, 나 돈 내구 쌀 샀어”라고 울먹이던 그 장면.
고현정: 아, 저도 너무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그게 딱 저였던 것 같아요. 그 얘기 하면 다시 또 뭉클해져요. 그런 창피함을, 그런 부채를 극복하지 못하는 세대이니까. 극복할 수 없는 세대인 것도 같고. 그래서 극도로 피하려고 하는 것도 있고, 부러 까불고 심각한 척 안 하려고 하는 것도 있고.
“결혼을 통해 내 안의 속물근성이나 본 모습을 인정하게 됐어요” 작품과 배우의 삶을 연결하는 것만큼 억지스러운 건 없지만, 어쩐지 고현정의 삶이 혜린의 그것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현정: 혜린 역할을 하면서 부자연스럽게 연기한 장면은 거의 없었어요. 상황이 똑같지는 않지만 감정적으로는 뭔지 너무 다 알 것 같은 거죠. 얘가 화낼 때 왜 화가 나는지, 부끄러울 때 왜 부끄러운지.
그랬던 고현정이 돌연 재벌가에 시집을 갔단 말이죠. 거기서 대중과 고현정의 오해라면 오해가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결혼이야 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속물처럼 보이기 충분한 선택이었으니까.
고현정: 전적으로 동의해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고, 엄마나 가족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립할 수 있는 그럴듯하고 좋은 핑계가 생긴 거죠.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정해놓는 목표에 부합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빨리빨리, 너 지금 부족해, 라고 만 생각했지 내가 왜 그걸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을 전혀 안하고 컸어요.
그런 삶에 대한 회의가 어느 순간 느껴지던 가요.
고현정: 결혼에 대해 어떤 면에선 후회가 없고 감사한 게, 만약 연기를 계속 했으면 나란 사람은, 소위 말하는 상식적인 선에서, 위험수위를 넘지 않고 계속 그렇게 살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결혼생활을 하면서 속된 말로 많이 깨졌어요.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내 안의 속물근성이나 추한 부분, 본 모습을 인정하게 되었어요. 어떤 부분에서는 30점짜리. 이 부분은 90점짜리, 그리고 저 부분은 빵점짜리 인간 이란 걸 말이죠. 만약 결혼생활이 없었으면, 그걸 좀처럼 인정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 정도로 혹독한 시간이었나 봐요.
고현정: 아니, 그 정도의 강한 압력이 아니면 못 깰 정도로 제가 좀 단단한 껍질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 전까지 인생엔 별로 큰 실패가 없었잖아요. 특별한 기복이 없는 가정환경이었고, 예쁘다는 소리도 듣고, 잘한다는 소리도 듣고, 미스코리아도 되고, 연기 좀 한다는 소리도 듣고, 딱히 실패의 맛을 못 본 거 같아요. 그리고 사실 누가 대놓고 약이 되는 소리 해주나요. 다 그때그때 만난 사람들, 서로 이해관계에 따라서 좋게 갔던 거죠. 그런데 결혼 후엔 내 실체를 명확하게 본거죠.
제일 많이 깨진 부분은 뭐였나요.
고현정: 면피하기 위한, 입으로만 하는 죄송합니다, 가 아니라 진짜 마음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거요. 물론 그 과정의 폐단도 있지만 저는 좋게 생각해요. 자기 주위에서 일어난 일에는 웬만해선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대부분 그렇더라고요. 정말 내 책임이거나 공범이거나 방관했거나 조장했거나 아니면 마음으로 바랬거나. 그걸 인정하기 힘들었어요.
“내가 원하는 것을 할 때 따르는 불편함은 세금 내듯 받아들여야 해요” 에 이어 을 다시 봤는데 두 작품이 상당한 시간차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어쩌면 고현정은 변함없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현정: 찍고 들통 나기 전에 결혼을 빨리 잘 한 거죠 (웃음). 더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고 나에게 뭔가 더 이상 보여줄게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그냥 내 속에 있는 나는, 이미 혜린이를 연기하면서 다 빠져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에서의 연기가 완벽했다는 말이 아니라, 뭔가 아쉽다거나 모자란 부분이 안 보였던 건 사실이에요. 배우가 자기 스스로를 너무 잘 알고 있는 느낌이 랄까. 결국 그런 배우들은 누군가가 자신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주기를 강렬히 바라지 않을까, 생각했죠.
고현정: 앞으로 발견도 해 주셨으면 좋겠고, 좋은 옷도 입혀주시면 좋겠고, 그런 바람이 있죠. 사실 그 바람으로 배우 생활을 계속 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이건 너무 방어적인 말일 수도 있는데, 결국 배우는 누가 비단옷을 입혀도 자기의 상태, 그 그릇만큼만 연기하는 거 같아요. 결국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하는 거죠. 척 할 수도 없고, 척 해 봤자, 다 들통 나요.
그렇게 라는 대작을 마치고 사라진 여자, 재벌가에 시집간 여자, 그리고 거길 또 박차고 나온 여자, 그 드라마틱한 전개 때문인지 고현정 이미지의 무게감은 상당해요. 함께 나오는 남자배우들에게 부담이 되고, 모든 일이 고현정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느낌도 받고요. 그런 상황이 부담스럽거나 외롭지는 않아요?
고현정: 업고 잡고 메고 뛰어야죠. (웃음) 사실 외로울 게 없는 게, 그저 혼자서 모든 걸 다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라는 거예요. 사기를 잘 치는 거죠. 오히려 전 주변사람들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해요. 영화작업 같이한 태우(김태우)도, 인성이(조인성)도, 정명이(천정명)에게도 늘 도움을 받는 걸요. 사실 인간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애도 혼자서는 못 낳는데. 결혼이나 이혼 후에 쏟아진 지나친 언론의 관심에 때론 지치진 않나요.
고현정: 그런 게 다 내가 초래한 거예요. 아니, 유명세를 얻는데 그 정도 고립도 못 참겠어요? 그럼 혼나야 돼요. 아무도 봐주지 않는데 자가용 비행기 타고 싶어요? 그걸 자랑할 수 있는 대상들이 있으니까 하는 거죠. 자신을 철저하게 원하는 대중이 있는데 잠시 거기서 격리되는 그 순간이 즐거운 거지, 진짜 완전히 격리돼 봐, 그게 행복 한지. 파파라치들이 따라다녀 줘야 숨는 맛이 있는 거고, 아무도 안 찾는데 왜 숨겠어요. 내가 어떤 걸 원하고 어떤 순간을 즐기는지 정확히 알고, 거기에 따르는 불편함은 세금 내듯 받아들여야 해요. 그런 불편함에 불평하고 엄살 부리는 건 좀 아니다 싶어요. 물론 사람이니까, 가까운 사람들에게 너무 억울하다 너무 놀랐다 말 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왜 대중 앞에 나와요. 가만히 집에 있는게 낫지.
“어렸을 때부터 일상에서 저도 모르게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 고현정이란 사람은 왜 대중 앞에 나왔을까요.
고현정: 그러니까요. 얌전하게 살면 되는데 수영복 입고 문화회관에 띠 두르고 섰으니. (웃음) 저도 멍하니 집에서 생각을 해 봐요, 난 왜 그런 거지? 효도하려고 나온 사람도 있을 테고, 사랑 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 커서 나오는 사람도 있을 테고, 진짜 연기를 하고 싶고, 배우가 되고 싶어서 뛰쳐나온 사람도 있을 테고, 아직 모르겠어요. 굳이 말하자면 앞에 두 가지 이유에 더 가깝겠죠. 어렸을 때부터 일상에서도 저도 모르게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싸우거나 집에 좀 걱정거리가 있거나 하면 어떻게든 풀어드리고 싶었던 거죠. 시험 기간이면 공부를 진짜 열심히 했고, 엄마가 오늘 기분이 안 좋으실 것 같으면 집안을 싹 치워놓는다던가. 적어도 저나 남동생 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한동안은 부모님이 전부고 제 인생이 별로 없었어요. ‘부모님이 생각하는 나’가 되기 위해 열심히 한 우물만 팠죠. 그렇게 나를 감추고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내가 되는 연기를 아주 어릴 때부터 해온 셈 인 거죠.
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을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글. 백은하 (one@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개인적으로 SBS 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혜린이 쌀을 사가지고 오다가 길에 그걸 흘리고 다시 주워 담고, 결국 우석의 자취방에서 이런 저런 주정을 하다 잠드는 시퀀스에요. “난 소주 아니라 맥주 먹고 싶은 게 너무 창피해, 데이트하고 싶은 것도 창피해”하며 주절거리던 혜린이가 결국 “나 돌아오는 길에 쌀 샀다. 걔들은 목숨 걸고 단식하는데, 나 돈 내구 쌀 샀어”라고 울먹이던 그 장면.
고현정: 아, 저도 너무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그게 딱 저였던 것 같아요. 그 얘기 하면 다시 또 뭉클해져요. 그런 창피함을, 그런 부채를 극복하지 못하는 세대이니까. 극복할 수 없는 세대인 것도 같고. 그래서 극도로 피하려고 하는 것도 있고, 부러 까불고 심각한 척 안 하려고 하는 것도 있고.
“결혼을 통해 내 안의 속물근성이나 본 모습을 인정하게 됐어요” 작품과 배우의 삶을 연결하는 것만큼 억지스러운 건 없지만, 어쩐지 고현정의 삶이 혜린의 그것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현정: 혜린 역할을 하면서 부자연스럽게 연기한 장면은 거의 없었어요. 상황이 똑같지는 않지만 감정적으로는 뭔지 너무 다 알 것 같은 거죠. 얘가 화낼 때 왜 화가 나는지, 부끄러울 때 왜 부끄러운지.
그랬던 고현정이 돌연 재벌가에 시집을 갔단 말이죠. 거기서 대중과 고현정의 오해라면 오해가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결혼이야 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속물처럼 보이기 충분한 선택이었으니까.
고현정: 전적으로 동의해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고, 엄마나 가족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립할 수 있는 그럴듯하고 좋은 핑계가 생긴 거죠.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정해놓는 목표에 부합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빨리빨리, 너 지금 부족해, 라고 만 생각했지 내가 왜 그걸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을 전혀 안하고 컸어요.
그런 삶에 대한 회의가 어느 순간 느껴지던 가요.
고현정: 결혼에 대해 어떤 면에선 후회가 없고 감사한 게, 만약 연기를 계속 했으면 나란 사람은, 소위 말하는 상식적인 선에서, 위험수위를 넘지 않고 계속 그렇게 살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결혼생활을 하면서 속된 말로 많이 깨졌어요.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내 안의 속물근성이나 추한 부분, 본 모습을 인정하게 되었어요. 어떤 부분에서는 30점짜리. 이 부분은 90점짜리, 그리고 저 부분은 빵점짜리 인간 이란 걸 말이죠. 만약 결혼생활이 없었으면, 그걸 좀처럼 인정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 정도로 혹독한 시간이었나 봐요.
고현정: 아니, 그 정도의 강한 압력이 아니면 못 깰 정도로 제가 좀 단단한 껍질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 전까지 인생엔 별로 큰 실패가 없었잖아요. 특별한 기복이 없는 가정환경이었고, 예쁘다는 소리도 듣고, 잘한다는 소리도 듣고, 미스코리아도 되고, 연기 좀 한다는 소리도 듣고, 딱히 실패의 맛을 못 본 거 같아요. 그리고 사실 누가 대놓고 약이 되는 소리 해주나요. 다 그때그때 만난 사람들, 서로 이해관계에 따라서 좋게 갔던 거죠. 그런데 결혼 후엔 내 실체를 명확하게 본거죠.
제일 많이 깨진 부분은 뭐였나요.
고현정: 면피하기 위한, 입으로만 하는 죄송합니다, 가 아니라 진짜 마음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거요. 물론 그 과정의 폐단도 있지만 저는 좋게 생각해요. 자기 주위에서 일어난 일에는 웬만해선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대부분 그렇더라고요. 정말 내 책임이거나 공범이거나 방관했거나 조장했거나 아니면 마음으로 바랬거나. 그걸 인정하기 힘들었어요.
“내가 원하는 것을 할 때 따르는 불편함은 세금 내듯 받아들여야 해요” 에 이어 을 다시 봤는데 두 작품이 상당한 시간차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어쩌면 고현정은 변함없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현정: 찍고 들통 나기 전에 결혼을 빨리 잘 한 거죠 (웃음). 더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고 나에게 뭔가 더 이상 보여줄게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그냥 내 속에 있는 나는, 이미 혜린이를 연기하면서 다 빠져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에서의 연기가 완벽했다는 말이 아니라, 뭔가 아쉽다거나 모자란 부분이 안 보였던 건 사실이에요. 배우가 자기 스스로를 너무 잘 알고 있는 느낌이 랄까. 결국 그런 배우들은 누군가가 자신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주기를 강렬히 바라지 않을까, 생각했죠.
고현정: 앞으로 발견도 해 주셨으면 좋겠고, 좋은 옷도 입혀주시면 좋겠고, 그런 바람이 있죠. 사실 그 바람으로 배우 생활을 계속 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이건 너무 방어적인 말일 수도 있는데, 결국 배우는 누가 비단옷을 입혀도 자기의 상태, 그 그릇만큼만 연기하는 거 같아요. 결국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하는 거죠. 척 할 수도 없고, 척 해 봤자, 다 들통 나요.
그렇게 라는 대작을 마치고 사라진 여자, 재벌가에 시집간 여자, 그리고 거길 또 박차고 나온 여자, 그 드라마틱한 전개 때문인지 고현정 이미지의 무게감은 상당해요. 함께 나오는 남자배우들에게 부담이 되고, 모든 일이 고현정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느낌도 받고요. 그런 상황이 부담스럽거나 외롭지는 않아요?
고현정: 업고 잡고 메고 뛰어야죠. (웃음) 사실 외로울 게 없는 게, 그저 혼자서 모든 걸 다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라는 거예요. 사기를 잘 치는 거죠. 오히려 전 주변사람들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해요. 영화작업 같이한 태우(김태우)도, 인성이(조인성)도, 정명이(천정명)에게도 늘 도움을 받는 걸요. 사실 인간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애도 혼자서는 못 낳는데. 결혼이나 이혼 후에 쏟아진 지나친 언론의 관심에 때론 지치진 않나요.
고현정: 그런 게 다 내가 초래한 거예요. 아니, 유명세를 얻는데 그 정도 고립도 못 참겠어요? 그럼 혼나야 돼요. 아무도 봐주지 않는데 자가용 비행기 타고 싶어요? 그걸 자랑할 수 있는 대상들이 있으니까 하는 거죠. 자신을 철저하게 원하는 대중이 있는데 잠시 거기서 격리되는 그 순간이 즐거운 거지, 진짜 완전히 격리돼 봐, 그게 행복 한지. 파파라치들이 따라다녀 줘야 숨는 맛이 있는 거고, 아무도 안 찾는데 왜 숨겠어요. 내가 어떤 걸 원하고 어떤 순간을 즐기는지 정확히 알고, 거기에 따르는 불편함은 세금 내듯 받아들여야 해요. 그런 불편함에 불평하고 엄살 부리는 건 좀 아니다 싶어요. 물론 사람이니까, 가까운 사람들에게 너무 억울하다 너무 놀랐다 말 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왜 대중 앞에 나와요. 가만히 집에 있는게 낫지.
“어렸을 때부터 일상에서 저도 모르게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 고현정이란 사람은 왜 대중 앞에 나왔을까요.
고현정: 그러니까요. 얌전하게 살면 되는데 수영복 입고 문화회관에 띠 두르고 섰으니. (웃음) 저도 멍하니 집에서 생각을 해 봐요, 난 왜 그런 거지? 효도하려고 나온 사람도 있을 테고, 사랑 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 커서 나오는 사람도 있을 테고, 진짜 연기를 하고 싶고, 배우가 되고 싶어서 뛰쳐나온 사람도 있을 테고, 아직 모르겠어요. 굳이 말하자면 앞에 두 가지 이유에 더 가깝겠죠. 어렸을 때부터 일상에서도 저도 모르게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싸우거나 집에 좀 걱정거리가 있거나 하면 어떻게든 풀어드리고 싶었던 거죠. 시험 기간이면 공부를 진짜 열심히 했고, 엄마가 오늘 기분이 안 좋으실 것 같으면 집안을 싹 치워놓는다던가. 적어도 저나 남동생 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한동안은 부모님이 전부고 제 인생이 별로 없었어요. ‘부모님이 생각하는 나’가 되기 위해 열심히 한 우물만 팠죠. 그렇게 나를 감추고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내가 되는 연기를 아주 어릴 때부터 해온 셈 인 거죠.
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을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글. 백은하 (one@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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