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윤희에게’ 포스터. /사진제공=리틀빅피쳐스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사랑, 그리고 비밀이 있다면…. 영화 ‘윤희에게’는 오래된 슬픔을 다독이며 위로를 건네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이야기다. 노련한 김희애와 어여쁜 김소혜의 모습이 아름답다.

이혼 후 딸 새봄(김소혜 분)과 함께 살고 있는 윤희(김희애 분)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잘 지내니?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싶었어. 벌써 20년이나 지났으니까. … 오랫동안 네 꿈을 꾸지 않았는데, 이상하지. 어제 네 꿈을 꿨어.”

새봄은 엄마에게 온 편지를 몰래 읽어보곤 편지 발신지로의 여행을 엄마에게 제안한다. 갑자기 무슨 여행이냐는 반응을 보이는 윤희에게 대입을 앞둔 새봄은 졸업 전에 다들 엄마와 여행 한 번씩 간다고 설득한다. 두 사람은 그렇게 새하얗게 눈이 내려앉은 일본의 한 작은 마을로 여행을 떠난다.

영화 ‘윤희에게’ 스틸. /사진제공=리틀빅피쳐스
영화 ‘윤희에게’는 윤희의 오래 전 첫사랑을 찾아 떠난 두 모녀의 여정을 통해 여성의 삶, 성소수자의 삶을 살펴본다. 이 작품은 지난달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됐다.

윤희의 삶은 고단하고 답답하다. 그러나 윤희도 이 고요한 일상을 깨뜨리고자 하는 의욕은 없다.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사는 것뿐이다. 고졸 학력, 이혼 여성이라는 조건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것은 윤희에게 녹록치 않다. 김희애는 자신이 연기한 윤희에 대해 “세상에는 그런 ‘윤희’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랬던 윤희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는 존재는 딸 새봄이다. 새봄과 윤희는 서로에게 살갑지는 않다. 무뚝뚝하게 대하고 퉁명스럽게 말하지만 마음으로는 서로를 깊이 생각하고 있다. 새봄이 윤희 몰래 ‘엄마 첫사랑 찾아가기’ 여행 계획을 세우고, 새봄은 숨긴다고 숨겼던 비밀을 다 알고 있는 엄마 윤희의 모습이 그러한 대목이다. 엉뚱한 새봄과 장난기가 다분하면서도 의젓한 새봄의 남자친구 경수(성유빈 분)의 모습은 잔잔한 분위기에 톡톡 활력을 넣는다.이 영화에는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나온다. 첫사랑을 잊지 못한 윤희, 윤희에게 미련이 남은 전 남편, 표현하진 않아도 딸을 생각하는 엄마, 알콩달콩 귀여운 고등학생 커플, 오랫동안 조카를 키워온 고모. 참 소소하고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오래도록 유지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랑이다.

자신을 속박하다 스스로를 답답한 삶에 가뒀던 윤희는 여행을 통해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의욕을 찾고 새로운 출발의 용기를 얻는다. 윤희는 여행에서 오래 전 친구를 만나는데 두 사람은 서로에게 별다른 말도 하지 않고 걷기만 한다. 어떤 위로보다 따뜻한 장면이다.

윤희는 이력서를 쓰며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새봄은 대학에 입학하며 또 다른 삶의 길에 나선다. 하얀 눈이 내린 겨울은 가고 따뜻한 봄이 다가온다. 윤희는 첫사랑에게 그렇게 편지를 썼다.

“용기를 내고 싶어.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을 거야.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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