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살인의 추억’ 포스터. /사진제공=싸이더스
국내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특정되면서 영화 ‘살인의 추억’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통해 추측한 범인에 대한 단서가 실제와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2003년 개봉한 ‘살인의 추억’은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일어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봉 감독은 ‘살인의 추억’ 개봉 10주년을 기념해 2013년 10월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범인에 대해 “혈액형은 B형이고, 1986년 1차 사건으로 보았을 때 범행 가능 연령은 1971년 이전에 태어난 남성”이라고 추정했다. 실제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특정된 A씨는 현재 56세로, 봉 감독의 추측과 일치한다. 봉 감독의 예리한 추리력과 통찰력이 경이로울 정도다.
봉준호 감독./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봉 감독은 당시 “영화에도 나온 9차 사건 희생자 여중생의 치마에서 정액이 나왔다. 경찰이 유전자 정보를 아직 가지고 있다. 만일 여기에 오셨다면 모발과 대조해서 범인을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범인은 과시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자기가 한 행동이나 어떤 디테일한 부분들이 매체를 통해 드러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며 “10년 만에 하는 이런 행사에 충분히 올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현재 다른 범죄로 수감 중인 A씨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할 단서를 확보하고 지난 7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과거 피해자의 증거물에서 채취한 DNA와 A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A씨와 일치하는 DNA가 처음으로 나온 증거물은 모두 10차례의 화성사건 가운데 한 차례 사건의 피해여성의 속옷이다. 이 속옷 외에도 다른 두 사건 피해자의 유류품 중에서도 A씨와 일치하는 DNA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봉준호 감독은 이 사건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모든 일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게 안타깝다”며 “기억하는 것 자체가 범인에 대한 응징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사건이 발생한지 33년만에 범인이 특정된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대해 ‘살인의 추억’은 이 사건을 잊지 않게 하고 관심을 불러모으는 데 큰 역할은 했다.이후 tvN ‘시그널’ ‘터널’ 등에서도 해당 사건이 에피소드의 일부로 사용되면서 장기미제사건에 대한 관심이 이어졌다. 이 작품들은 강력범죄사건을 작품의 오락적 요소로만 사용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관심을 환기시키며 사회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33년이 지난 지금까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잊지 않게 한 ‘살인의 추억’은 사회문제를 비틀고 깊이 파고드는 시선이 대중문화에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를 새삼 일깨우는 사례다.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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