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유청희 기자]
MBC 월화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서 악질 재벌 양태수를 연기한 배우 이상이./조준원 기자 wizard333@

“양태수 캐릭터는 왠지 정이 안 갔으면 했어요. 최대한 나쁘게 보였으면 했는데, 욕도 많이 먹어서 만족스럽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서 재미있었어요.”

지난 28일 종영한 MBC 월화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하 ‘조장풍’)에서 악역 양태수를 연기한 배우 이상이의 말이다. 배우로서 멋있어 보이고 싶지 않았느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었다.‘조장풍’은 체육교사 출신 근로감독관 조진갑(김동욱 분)이 천덕구(김경남 분)를 비롯한 옛 제자 겸 동료들과 함께 부조리한 세상을 바꿔나가는 이야기다. 조진갑을 필두로 노동자들 편에 선 이들이 한 축을 이뤘고, 조진갑의 과거 제자이자 재벌가 외아들인 양태수와 그의 엄마인 명성 회장 최서라(송옥숙 분), 국회의원이자 부실 공장 실소유주인 아버지 양인태(전국환 분)로 이어지는 비리의 계보가 또 한 축을 형성했다.

이상이는 “내 캐릭터는 마약, 클럽, 재벌 비리까지 우리가 아침마다 보는 뉴스의 사건을 덧붙여 만든 캐릭터”라며 “악이 악답게 그려져야 조진갑 선생님의 활약이 부각될 거라 믿었다”고 털어놨다.

이상이는 “내 캐릭터는 현실의 여러 사건을 붙여 만든 캐릭터”라며 “애매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제대로 하자 싶었다”고 말했다./조준원 기자 wizard333@
“’나쁜 재벌은 어떤 걸까’를 생각하면서 여러 시도를 해봤어요. 징이 박힌 구두를 신고 빨주노초파남보 화려한 정장을 가져다 입었어요. 머리도 이것저것 해봤는데 5 대 5 가르마를 한 순간 ‘이거다’ ‘너, 정말 재수 없다’ 싶었습니다. 눈빛 연기도 많이 했어요. 눈에 힘을 빼는 연기요. 어딘가 제 정신이 아니고 뿅 간 느낌을 주고 싶어서요. 그런데 제가 평소에도 눈에 힘이 없는 편이라 그렇게 어렵진 않았습니다. (웃음) 물론 배우로서 멋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긴 있었죠. 하지만 태수가 현실적인 뉴스를 반영한 이상, 애매하게 표현하기보다 제대로 표현해야겠다 싶었어요.”

이상이가 연기한 양태수는 극 초반 조진갑과 날 선 대립각을 세우며 긴장감을 조성했다. 하지만 이상이는 김동욱을 말할 때는 꼭 ‘귀여운 조진갑 선생님’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뭐가 그렇게 귀여웠냐고 묻자 그는 김동욱을 포함한 류덕환(우도하 역), 김경남(천덕구 역), 김민규(김선우 역)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다들 장난이 너무 많아요. (김)동욱이 형은 아재개그도 참 많이 해요. ‘이상이는 이상해’ 같은…. 동욱이 형은 학교 선배인 데다 군대도 같이 나왔고, 원래 알던 사이라서 편했어요. 무엇보다 동욱 형은 진짜 선생님인 것처럼 저를 멀리서 관찰하면서 제가 하는 대로 (연기를) 다 맞춰주셨어요. (류)덕환이 형님은 너무 똑똑하고 언어유희의 대마왕이죠.우도하처럼 늘 뒤에서 ‘그래, 네가 움직이고 싶은 대로 다 움직여’라는 식으로 연기를 도와줬어요. 요즘 덕환이 형 다음으로 연락을 많이 하는 사람은 김민규 형이에요. 뭘 해도 저한테는 재미있어요. 하하. 참, 박세영 누나는 저에게 빵을 사줬어요.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연기도 더 오래 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양태수가 처단 당한 것엔 만족합니다.”이상이는 캐스팅 당시 양태수 외에도 변호사 우도하, 버스 운전 노동자 김선우 역으로 오디션을 봤다. ‘조장풍’의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기회가 다시 온다면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을까. 그는 진지하게 고민한 뒤 “양태수”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아무래도 형들의 매력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며 “내 목소리가 제일 크다. 그래서 양태수”라고 설명했다.

김동욱, 류덕환, 차정원과의 호흡을 맞추는 것이 즐거웠다는 이상이./조준원 기자 wizard333@

2014년 뮤지컬 ‘그리스’로 데뷔한 이상이는 ‘베어 더 뮤지컬’ ‘무한동력’ ‘쓰릴 미’ ‘인 더 하이츠’ 등 다양한 무대에 올랐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는 ‘국민 시인’이자 마음 여린 백석이 되기도 했다. 2017년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를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투제니’ ‘슈츠’ ‘제3의 매력’ 등에 출연하며 안방극장에서도 점점 지분을 늘려갔다. 주연으로 활약했던 무대에서와 달리 TV에는 짧게 등장하거나 주로 악역으로 출연하는 데서 오는 혼란은 없었을까. 이상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다고 생각해요. 주목 받는 것도 좋지만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도 생각하고요. 물론 제가 TV에서는 주로 악역으로 등장하니까 거기에 대해 고민을 해보긴 했어요. 뮤지컬을 할 때는 주로 상처받는 연기를 했는데 TV에선 상처를 주는 연기만 한 것 같거든요. 백석이 되었을 땐 ‘아, 내 얼굴이 이렇게 은은하고 선한 면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제 얼굴이 그것만은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게 다양한 저의 얼굴을 봐주신다는 건 배우로서 좋은 일이죠.”

악역 양태수와 달리 현실의 이상이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고집도 있지만 온순하며, 집에서는 음악 들으면서 어항에 열대어를 키우고, 물고기를 바라보면서 하루를 보내는 유순한 사람”이라고 했다. 어항을 자신이 출연했던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무대 구조로 꾸미기 위해 8개월 동안 분투했단다.

이상이는 뮤지컬로 쌓아온 가창력 외에 남다른 기타 실력도 갖고 있다. 지난해엔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인 배우 김성철에게 기타를 가르쳐주다 우연히 KBS 뮤직드라마 ‘투제니’에 캐스팅되기도 했다.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 욕망이 있다는 그는 “30대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들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가끔 연기를 계속해도되는지 불안감이 들 때도 있다는 이상이는 “그럼에도 뻔뻔하게 내 길을 가려고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조준원 기자 wizard333@

“30대가 되면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불안함이 커지는 것 같아요. 뮤지컬 ‘그리스’로 데뷔해서 앙상블을 할 때는 그냥 주어진 것을 하면서 행복했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주어진 걸 하곤 있지만 흔들리기도 하고, ‘내가 배우를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머리가 커져서 따지고 재는 것 같아요. 하나를 선택하려고 하면 갑자기 여러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요즘은 좀 더 단순하게 살아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불안하더라도, 뻔뻔하고 확신있게 제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30대를 앞둔 이상이에게 다채로운 캐릭터들과 앙상블을 펼친 ‘조장풍’은 어떻게 남을까. 잠시 고민하던 이상이는 이렇게 말했다.

“한 단어로, 아주 좋은 단어를 찾고 싶어서 뜸을 들였어요. 아주 느낌 있는 단어로 말하고 싶었는데 잘 표현이 안 돼요. 선생님의 좋은 가르침 같은 작품? 이것보다 더 좋은 표현을 찾고 싶은데 어렵네요. 드라마를 통해 많은 걸 배웠습니다. 앞으로 제가 어떤 배우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할 수만 있다면, 되도록 유연한 배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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