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기자]
영화 ‘콜레트’ 워너비 포스터.

1892년 프랑스 시골 마을 생 소뵈르. 콜레트(키이라 나이틀리)는 치기만만한 또래의 청년보다 파리의, 즉 예술의 기운이 풍기는, 나이 차가 나는 윌리(도미닉 웨스트)에게 더 마음이 끌린다. 결국 그들은 부부가 되고, 콜레트 역시 파리에 입성한다. 화려한 살롱 파티도 윌리의 바람기도 따분한 콜레트는 살롱에서 장식처럼 놓여진 거북이를 발견하고 말을 건넨다. “흙과 풀이 그립겠구나.” 그날 밤, 윌리가 파티가 어떠했냐고 묻자 콜레트는 거북이가 좋았노라고 답한다. 지루해 하는 게 자신과 같았다고. 윌리는 콜레트에게 핀잔을 준다. “당신은 주눅이 든 거야.”

윌리는 ‘글 공장’을 운영한다. 아이디어는 넘치지만 글 솜씨는 턱없이 부족한 그는 무명작가들을 고용해 글을 쓰게 한 후,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해서 명성을 유지한다. 낭비벽이 심한 윌리는 경제적으로 힘겨워지자 언젠가 콜레트가 들려준 그녀의 매력적인 소녀 시절을 떠올리며 글쓰기를 권한다. 역시나 윌리의 이름으로 출판된, 콜레트의 첫 소설 ‘학교에서의 클로딘’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아이에서 여자가 되어가는 소녀 클로딘에게 열광하는 독자들은 헤어스타일과 패션을 따라하고, 클로딘의 로고가 붙여진 비누, 향수, 부채까지 사들인다. 콜레트 부부는 파리 최고의 셀러브리티 커플로도 주목받게 된다.윌리는 콜레트에게 깜짝 선물로 시골집을 선물한다. 콜레트에게 이곳에서 파리의 스트레스를 풀라고 하지만 실상은 ‘클로딘’ 시리즈를 집필할 공간으로 몰이한 것이다. 콜레트는 연인이자 친구인 미시(데니스 고프)를 통해 내면의 순수한 민낯에 더 가까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콜레트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담은, 마치 분신과도 같은 ‘클로딘’ 시리즈 판권을 윌리가 출판사에 넘긴 것을 알고 분개한다.

영화 ‘콜레트’ 스틸컷.

지난 27일 개봉한 ‘콜레트’는 ‘스틸 앨리스’(2014)의 공동 각본, 연출을 맡았던 리처드 글랫저,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감독이 오랜 기간 만들고자 준비했던 작품이다.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감독은 사랑과 일 모두 파트너였던 리처드 글랫저를 루게릭병으로 떠나보낸 슬픔을 감내하며, 두 사람에게는 각별한 의미였던 ‘콜레트’를 완성했다. 문학적으로 세계의 중심이었던 19세기 말~20세기 초 프랑스 벨 에포크(Belle Epoque) 시대, 그 시대의 중심에 위치한 작가 콜레트의 삶을 들여다본 것이다.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1873~1954)는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시대를 주도한 아이콘이다. 프랑스에서 예술가로서의 성취를 인정받은 최초의 여성이다. 그녀는 작가 외에도 뮤지컬 배우, 안무가, 댄서, 연극 연출가, 심지어는 제1차 세계대전에는 보도기자로도 활약할 만큼 스펙트럼이 느껴지는 삶을 살았다. 콜레트는 그녀만큼이나 시대를 대표할만한 존재인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과 작가 조앤 K. 롤링에게도 영감을 주는 롤모델이었다.

시대극에 놀라우리만치 자연스레 스며드는 키이라 나이틀리는 이번에도 특유의 매력을 발산한다. 그녀의 강한 턱선은 콜레트라는 인물에 음영을 주면서 더 집중하게끔 만든다. 콜레트의 뜻 모를 미소와 번뜩이는 총명함도 명쾌하게 그려낸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잉크에 만년필을 폭 담그고 종이 위에 사각사각 글을 쓰는 순간에는 마치 관객이 그 문장 속 하나의 단어라도 된 양 몰입하게 된다. 영화 ‘콜레트’를 대표할 문체를 꼽자면, 바로 그녀가 스크린에 써내려간 연기가 아닌가 싶다.

“누구도 네 본연의 모습을 뺏을 순 없어.” 극 중에서 어머니 시도(피오나 쇼)가 콜레트에게 한 말이다. 남편의 유령 작가로 출발했지만, 콜레트의 펜끝은 시대에도 남성에도 주눅 들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녀의 감각적이고 섬세한 문체를 뺏을 수도, 숨길 수도 없었다.

15세 관람가.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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