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유청희 기자]
MBC ‘붉은 달 푸른 해’ 방송 화면

MBC ‘붉은 달 푸른 해’에서 차우경(김선아)이 모든 진실과 마주한 뒤 ‘심판’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살아있음의 기회’를 주는 것을 선택했다. 아동학대 가해자만을 벌하는 ‘붉은 울음’은 공권력에 붙잡히고, 진옥(나영희)은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을 받아 남은 생을 살게됐다.

지난 16일 종영한 ‘붉은 달 푸른 해’는 아동 심리상담가 차우경이 의문의 시를 단서로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가는 미스터리 스릴러다.이날 방송에서 차우경은 기억을 되찾았다. 그는 아버지가 접근을 금기시했던 벽난로로 향했고 그 속에서 동생의 유골을 발견했다. 이에 새 엄마 진옥에게 진실을 추궁하자 진옥은 “그 애가 그렇게 죽을 줄 몰랐다”며 “그 애는 그냥 재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변명했다. 분노한 차우경은 절규하며 흉기를 손에 쥐었지만 그때 동생 차세경의 환영이 나타나 언니의 손을 잡았다.

MBC ‘붉은 달 푸른 해’ 방송 화면

붉은 울음은 형사 강지헌(이이경)의 예상대로 이은호(차학연)의 친형이자 차우경의 상담사인 윤태주(주석태)였다. 윤태주는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자신이 ‘붉은 울음’인 것을 부인했다. 차우경은 강지헌과 함께 ‘진옥을 심판하겠다’는 함정을 놔 붉은 울음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가 윤태주임을 확인한 차우경. “마음이 바뀐 거냐”고 묻는 그에게 우경은 “내 마음은 항상 같았다. 살아 있음은 기회이고 가능성이다. 난 그걸 택하겠다”고 했다. “(엄마에게) 화가 나지 않냐”는 윤태주의 말에는 “화가 난다. 죽이고 싶고 밉다. 그런데 누군에게 종말을 고하기에는 내가 지은 죄가 많다. 내가 결백하지 않은데 누구를 심판하느냐”고 말했다.

경찰 조사에서 윤태주는 어릴 적 헤어진 뒤 다시 만난 친동생 은호와의 관계를 모두 밝혔다. 10년 동안 불면증을 앓던 은호를 위해 치료를 시작한 윤태주. 그는 최면 치료에서 동생 은호가 한울 센터 큰원장에게 성폭력을 비롯한 갖은 학대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분노했다. “치료를 하면서 은호가 겪은 지옥을 보게 됐다”는 윤태주는 “그때부터 그 분노를 안고 폭주하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자신은 정보를 수집하고 동생은 살인을 실행했다고 인정했다.

MBC ‘붉은 달 푸른 해’ 방송 화면
“정보만 수집하다가 직접 심판(살인)에 나서게 된 계기가 뭐냐”는 강지헌의 물음에 윤태주는 “시완이(김강훈), 우경이. 둘 만큼은 내가 직접 해결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동생 은호의 피해 사실을 알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이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였다고 말했다. 이는 모두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로 동생을 잃었던 시완과 우경이 동생에게 갖는 죄책감을 고백할 때 사용한 문장과 동일했다.

붉은 울음의 조사를 끝낸 강지헌은 동료와의 대화에서 “(연쇄살인 가해자를) 붙잡았는데 자랑스럽지가 않다”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차우경은 은호가 죽게 된 장소인 등대를 찾았다. 이곳은 은호가 형 윤태주와 함께 어머니에게 버려진 곳이기도 했다. 우경은 등대 앞에 꽃을 놓으며 그를 추모했다. 그런 그를 강지헌이 바라보고 있었다.“어머니랑은 괜찮냐”는 강지헌의 물음에 우경은 “아직 용서 못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은서가 할머니를 많이 좋아한다”며 “이런 게 바로 태주 선배가 분노했던 살아있음의 기회, 가능성”이라며 길을 걸어갔다. 이후 집으로 돌아온 우경. 동화 ‘붉은 달 푸른 해’를 읽는 김선아의 내레이션과 함께 우경이 동생 세경과 서로를 안아주는 모습으로 방송은 막을 내렸다.

MBC ‘붉은 달 푸른 해’ 방송 화면

지난해 11월 방송을 시작한 ‘붉은 달 푸른 해’는 아동학대 피해자인 ‘붉은 울음’이 가해자를 응징하는 큰 줄거리를 바탕으로 남아있는 자들의 죄책감을 다뤄왔다.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1~4회에 모든 스펙터클과 문제의식을 투자하는 데 반해 ‘붉은 달 푸른 해’는 회를 거듭할 수록 사건의 윤곽과 등장인물의 사연이 드러나며 큰 울림을 만들어냈다. ‘황후의 품격’ ‘남자친구’ 등 인기작에 밀려 시청률은 4~5%대에 그치고, 화제성은 같은 방송사인 MBC ‘나쁜형사’에도 밀렸지만 꾸준히 호평받았다.가장 훌륭한 성취는 ‘아동학대, 가정폭력’을 말하면서 이를 적나라하게 재현하지 않는 작품의 태도였다. 많은 작품들이 사회 문제를 비판하겠다는 사명 아래, 본목적을 잃고 폭력의 과정을 지나치게 묘사하면서 극적 재미에 도취되곤 했다. 하지만 ‘붉은 달 푸른 해’는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 아래서도 피해자를 향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극적인’ 묘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정주, 천상병, 최승자 등 기존에 드라마에서 볼 수 없던 다양한 시의 문장을 인용하며 가해자를 응징하는 ‘붉은 울음’의 살인현장이 그렇다. 예컨대 이은호가 자신을 지속적으로 착취한 큰원장에게 복수할 때, 그는 자신이 강제로 읽었던 시집을 모두 뜯어내고 일부를 그에 입에 넣으며 분노를 드러냈다. 아동학대 가해자의 죽음 현장마다 곳곳에 적혀있던 마치 피로 쓴 듯한 시의 문구도 섬뜩한 인상과 메시지를 남겼다.

MBC ‘붉은 달 푸른 해’ 방송 화면

‘붉은 달 푸른 해’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명확히 아는 작품이었다. 가해자를 향한 복수만을 전시할 뿐, 아동학대와 성폭력 등의 장면은 암시와 은유를 통해 최소한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부각된 것은 피해자의 얼굴이었다. 사회 최약자로 수년 동안 원장에게 폭력을 당했던 이은호, 한울 센터의 은폐된 공간에 방치된 채 침묵 속에 살던 하나, 집 안에서 폭력을 일삼던 남편이 죽은 뒤 딸에게 “아빠가 죽었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하던 동숙(김여진) 등의 모습이 큰 울림을 자아냈다.

뚝심 있게 극을 이끌면서도 절규하고 흔들리는 차우경의 입체적인 모습을 펼쳐낸 김선아, 전작이었던 MBC ‘검법남녀’와는 전혀 다른 형사 연기를 보이며 긴 대화를 소화한 이이경. 그 자신도 폭력의 피해자였던 형사 전수영을 연기한 남규리와, 섬세하고 절실한 연기를 펼친 이은호역의 차학연 등 모두의 연기가 맞물려 극을 지탱했다. 여기에 피해 아동을 연기하는 아역들의 연기가 극의 중요한 감정선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도현정 작가와 연출의 힘이 컸다. 자극적인 장면이 필요 이상으로 만들어지곤 하는 게 스릴러 장르다. 낮은 시청률로 종영했지만 ‘붉은 달 푸른 해’를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이유다.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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