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영화 ‘마약왕’에서 ‘전설의 마약왕’ 이두삼을 연기하 배우 송강호./ 사진제공=쇼박스

배우 송강호가 12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택시운전사’ 이후 1년 4개월 만에 돌아왔다. 청불 영화 ‘내부자들’로 900만 관객을 모은 우민호 감독의 신작 ‘마약왕’을 통해서다. 송강호는 1972년부터 1980년까지 부산의 하급 밀수업자에서 ‘전설의 마약왕’이 된 이두삼의 굴곡진 삶을 변화무쌍한 연기로 그려냈다. 특히 후반부에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모습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명불허전의 ‘연기왕’ 송강호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0. 이두삼은 변화무쌍하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나?
송강호: 일관된 감정을 가지고 가는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8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인물의 변천사를 담고 있는데, 진폭이 있다고 해야 하나? 극단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부분이 있어서 다채롭게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10. 어디에 초점을 맞춰서 연기했나?
송강호: 마약이라는 것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기보다 이두삼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본질과 욕망, 집착, 파멸로 이어지는 굴곡진 인생에 초점을 맞췄다. 어느 선에서 무너지고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버리는, 알면서도 권력과 쾌락을 놓지 못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다.

10. 오랫동안 작품에서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줬다. 새로운 모습을 위해 선택한 건가?
송강호: ‘이런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라며 기다리진 않았다. 다만 적절한 시기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반가웠다. 초중반까지는 오래 전에 출연했던 ‘초록물고기’ ‘넘버3’ ‘살인의 추억’ 등에서처럼 유쾌한 분위기를 볼 수 있고, 후반부에는 지금까지 보여드리지 않았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0. 후반부는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마약에 취해가다 중독되는 모습을 연기했다. 준비는 어떻게 했나?
송강호: 제작진이 책으로 된 자료를 줬는데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 (웃음) 머리에는 들어왔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러 이유로 영상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또 이두삼이 처한 한국적인 상황이 있어서 관련 외국 영화 같은 것들은 참고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다. 생생한 장면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습했다.10. 결국, 어떻게 연기했나?
송강호: 전혀 경험이 없어서 마약에 취한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머리부터 발가락 끝까지 오감을 작동시켜야 했다. 흔히 세포가 살아난다고 하지 않나. 그런 느낌으로 연기하려고 했다. 모니터도 안 했고, 묻지도 않았다. 일단 내 생각대로 밀어붙였다.

10. 스스로 만족하나?
송강호: 촬영 날에는 비교적 만족스럽게 했다. 하지만 맞게 한 건지,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많았다.

10. 마약에 취한 연기도 좋았지만, 마지막 30분가량은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흔치 않은 설정이다.
송강호: 실제 촬영 때는 영화보다 조금 더 길었다. 대사도 한 줄 정도 더 있었다. 감독이 최대한 압축한 것 같았다. 상업영화에서는 굉장한 도전이다. 찍을 때도 연극 무대 같은 느낌이 강했다. 위험한 요소이기도 하지만 비장의 카드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관객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싶다.
배우 송강호는 영화 ‘마약왕’의 후반부 30분이 ‘비장의 카드’가 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 사진제공=쇼박스

10. ‘마약왕’을 찍을 때 외로웠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송강호: 특히 후반부와 같은 연기를 할 때 결국은 혼자서 모든 걸 다 해야 한다. 누군가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책임도 배우가 져야 한다. 칭찬을 받든, 받지 않든 과정 자체가 달달하지만은 않다. 그래서 배우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직업이라고 했다. 좋은 작품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걸 다 만들어 냈을 때의 희열, 성취감이 극복할 수 있는 힘이다.

10. 한 남자의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담다 보니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도 다르다.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송강호: 우 감독의 전작 ‘내부자들’은 기승전결이 있었다. 하지만 ‘마약왕’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구조다. 나중에는 주인공의 내면으로 들어가 버린다. 옮고 그른 것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익숙한 구조에서 오는 배반감이 있을 것 같다. 다양하게 배치했기 때문에 더 좋아할 수도 있다. 만장일치의 반응보다 논란도 있을 수 있고, 이야깃거리가 많은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10. ‘송강호’라는 이름만으로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들이 많은데 부담스럽지 없나?
송강호: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렇다고 작품 활동을 좌지우지하는 건 아니다. 자극을 주는 부담감이다. 결과를 떠나서 새로운 도전으로 인식되고, 평가됐으면 좋겠다. 결과는 그 뒤에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10. ‘괴물’ ‘변호인’ ‘택시운전사’ 등 세 작품이나 1000만 관객을 동원했다. 흥행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고른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송강호: 하하. 그럴 수도 있나? 흥행 여부는 알 수가 없다. 나로서는 작품이 요구하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내년에 개봉하는 ‘기생충’ ‘나랏말싸미’는 ‘마약왕’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다른 작품들이다. 다양한 작품을 보여드리는 것이 목표이고, 그 결과는 내 선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0. 출연한 영화 대부분이 흥행했다. 아쉬움이 컸던 작품이 있다면?
송강호: 1000만이 넘었다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어떤 작품이든 다 있다. 관객들에게 저평가를 받은 것은 작품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내 능력이 부족했고,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 인생사가 좋은 길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시행착오는 겪기 마련이다.10. 최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극 중 부부로 호흡을 맞춘 배우 김소진이 촬영 비화를 전하다가 눈물을 쏟았다. 놀라지 않았나?
송강호: 오래 전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특강을 나간 적이 있다. 나는 몰랐는데 그때 학생이었단다. 기념사진도 찍었다고 하더라. 연극 무대에서는 유명했지만 영화를 처음 시작하는 친구라 늘 긴장을 했다. 항상 조심스럽게 임했다. 촬영 때를 생각하니 감정이 복받쳤나 보다. 그렇게 울 줄 몰랐다.

10. 우 감독과 처음 작업했는데 어땠나?
송강호: 우 감독이 특별한 건 ‘간결함’이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방식이나 편집이 굉장히 간결하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서도 캐릭터와 대사는 힘이 넘친다. 섬세하기도 하지만 시원시원한 면도 있는 사람이다.

배우 송강호가 관객의 높아진 기대에 대해 “자극을 주는 부담감”이라고 했다./ 사진제공=쇼박스

10. 모든 관객이 인정하는 최고의 배우다. 자신이 생각할 때 좋은 연기란 무엇인가?
송강호: 관객들은 저마다 다른 기준이 있고, 다른 생각을 한다. 배우는 자신이 얼마나 솔직하고, 맡은 배역에 그 느낌이 얼마나 투영됐는가가 중요하다. 진심이 확인될 때 좋은 연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10. 다양한 인물을 연기했지만,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
송강호: 배우가 선택할 수는 없다. 선택을 받는 처지다. ‘이번에 1970년대를 해봤으니, 다음에는 미래 사회의 내 비전에 관해 얘기해볼까’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웃음)

10. ‘마약왕’에서 이두삼은 마약에 자극을 받았다. 일상에서 무언가에 자극을 받은 적이 있나?
송강호: 작품에서 자극을 받는다. 새로운 작품을 만났을 때 감독이 요구하는 인물, 분위기가 과연 내 생각과 얼마나 괴리감이 있을까,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한다. 그렇게 접근할 때 자극을 받는다.

10. 연기를 안 할 땐 주로 뭘 하나?
송강호: 가만히 있는다. 운동도 전문적으로 관리를 받거나 그러진 않는다. 열정적으로 하지 않고 적당히 한다. 가만히 있을 때가 많다. 하하.

10. 배우 이외에 다른 꿈을 꾼 적이 있나?
송강호: 아주 어렸을 때는 꿈이 많았다. 권투선수나 경찰관이 되고 싶었다. 배우의 삶을 시작하면서부터 다른 꿈은 꾸지 않았다.

10. 지금까지 인생에서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면?
송강호: 위기라면 위기일 수도 있겠다. 연극을 할 때 배우의 길을 계속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두어 번 했다.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다른 길을 가야 하나 고민했다.

10. ‘마약왕’의 엔딩이 인상적이다. 이두삼의 표정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건가?
송강호: 표면적으로는 마약이 사회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마약이라는 세계가 독버섯처럼 없어졌다가 살아난다는 것을 엔딩에 녹였다.

10. 연말 극장가 대전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윙키즈’ ‘아쿠아맨’ 등의 작품들도 만만치 않다.
송강호: 연말 대진표를 보니 다양해서 좋았다. 관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다. 여러 영화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웃음)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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