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고인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암 세포를 쫓아내고 반드시 극복하겠다”며 꿋꿋한 투병 의지를 보였고, 최근에는 전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다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전남대 병원으로 이송됐다. 지난달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 모습을 드러냈고, 최근 방송된 TV조선 ‘마이웨이’에서도 특유의 활달한 모습으로 출연했다. 갑작스런 별세 소식에 지인들은 물론 영화계와 방송계, 팬들 모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빈소는 4일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이날 오후 1시부터 조문을 받기 시작했다. 빈소 앞은 취재진으로 붐볐지만,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한 가운데 각계 인사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최불암, 김수미, 박상원, 임하룡, 투투 출신 방송인 황혜영, 조인성 등 후배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은 “고인은 부산영화제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1회때부터 올해까지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 내년 부산영화제에 내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떠나서 아쉽고 안타깝다”고 했다.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은 “신성일은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지난 9월 17일 병 문안을 갔을 때는 병세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의욕을 가지고 영화 제작을 준비 중이셨는데, 갑자기 이렇게 돼 유감”이라고 아쉬워했다.
엄앵란은 “남편은 뼛속까지 영화인이었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영화를 이렇게 찍고 저렇게 찍자고 했다. 정말 가슴이 아팠다”며 “이렇게 영화를 사랑하는구나, 이런 사람이 버텨서 오늘날 좋은 작품들이 나오는구나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이어 엄앵란은 고인을 ‘동지’라고 강조하며 “그는 가정의 남자가 아니었다. 사회의 남자, 대문 밖의 남자였다. 일에 미쳐서 모든 집안일은 나에게 맡기고 영화만 하고 다녔다”고 했다. 또 “일 말고는 신경을 안썼다. 늦게 들어와서 자고 아침 일찍 나갔다. 스케줄이 바빴다. 이제야 재밌게 사려나 했더니 돌아가셨다. 내 팔자가 이렇다”고 한탄했다.
엄앵란은 “저승에 가서는 못살게 구는 여자 만나지 말고 순두부 같은 여자를 만나길 바란다. 거기서는 돈도 필요없다. 재미있게 손잡고 구름 타고 하늘 타고 전 세계로 놀러 다녀라”라고 기원했다.
고인의 영정사진 옆에는 조카인 강석호 자유한국당 의원과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이 보낸 조화가 놓였다. 전도연, 송혜교, 김한길-최명길 부부, 강제규 감독, 강우석 감독, 가수 문주란 등 수많은 스타들도 화환으로 고인을 애도했다.
고인은 다수의 작품에 함께 출연하며 인연을 맺은 배우 엄앵란과 1964년 11월에 결혼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확연히 다른 생활 습관 탓에 1975년부터 별거했다. 신성일은 2011년 자서전을 통해 외도 사실을 털어놨지만 엄앵란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이혼을 하지 않았다. 평생의 반려자이자 동지로서 고인과 함께했다.
장례는 영화인장(3일장)으로 치러진다. 지 회장과 배우 안성기가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고, 신영균 김동호 김지미 윤일봉 김수용 남궁원 임권택 정진우 이두용 오석근 문희 고은아가 고문을 맡는다. 이덕화, 거룡, 장미희, 송강호, 강수연, 최민식이 부위원장을 맡았다.
발인은 6일 오전 11시로 예정돼 있다. 화장 후 유해는 고인이 직접 건축해 살던 집이 있는 경북 영천 성일각으로 이송된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4일 오전 폐암으로 별세한 배우 신성일의 빈소가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폐암으로 투병해온 한국 영화계의 큰 별 신성일(81)이 4일 새벽 2시 30분즘 별세했다. 소식을 들은 각계 인사들이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고인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암 세포를 쫓아내고 반드시 극복하겠다”며 꿋꿋한 투병 의지를 보였고, 최근에는 전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다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전남대 병원으로 이송됐다. 지난달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 모습을 드러냈고, 최근 방송된 TV조선 ‘마이웨이’에서도 특유의 활달한 모습으로 출연했다. 갑작스런 별세 소식에 지인들은 물론 영화계와 방송계, 팬들 모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빈소는 4일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이날 오후 1시부터 조문을 받기 시작했다. 빈소 앞은 취재진으로 붐볐지만,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한 가운데 각계 인사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최불암, 김수미, 박상원, 임하룡, 투투 출신 방송인 황혜영, 조인성 등 후배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배우 최불암이 4일 오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신성일의 빈소에서 슬픔에 잠겨 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조문이 시작되자마자 빈소를 찾은 최불암은 “반짝이는 별이 사라졌다”며 “우리 또래의 연기자다. 조금 더 계셨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고 밝혔다.이어 “고인은 굉장히 로맨틱한 존재였다. 멜로 연기를 계속 했기에 우리 같은 배우들과는 달랐다. 자기 관리를 잘 했다. 아프다고 했을 때 후배들이 놀랄 정도였다”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의 업적이 오랫동안 빛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은 “고인은 부산영화제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1회때부터 올해까지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 내년 부산영화제에 내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떠나서 아쉽고 안타깝다”고 했다.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은 “신성일은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지난 9월 17일 병 문안을 갔을 때는 병세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의욕을 가지고 영화 제작을 준비 중이셨는데, 갑자기 이렇게 돼 유감”이라고 아쉬워했다.
배우 엄앵란이 4일 오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신성일의 빈소에서 취재진에게 심경을 밝히고 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빈소를 지키던 아내 엄앵란은 수척해진 모습으로 취재진 앞에 서서 고인을 떠나 보낸 심경을 털어놨다.엄앵란은 “남편은 뼛속까지 영화인이었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영화를 이렇게 찍고 저렇게 찍자고 했다. 정말 가슴이 아팠다”며 “이렇게 영화를 사랑하는구나, 이런 사람이 버텨서 오늘날 좋은 작품들이 나오는구나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이어 엄앵란은 고인을 ‘동지’라고 강조하며 “그는 가정의 남자가 아니었다. 사회의 남자, 대문 밖의 남자였다. 일에 미쳐서 모든 집안일은 나에게 맡기고 영화만 하고 다녔다”고 했다. 또 “일 말고는 신경을 안썼다. 늦게 들어와서 자고 아침 일찍 나갔다. 스케줄이 바빴다. 이제야 재밌게 사려나 했더니 돌아가셨다. 내 팔자가 이렇다”고 한탄했다.
엄앵란은 “저승에 가서는 못살게 구는 여자 만나지 말고 순두부 같은 여자를 만나길 바란다. 거기서는 돈도 필요없다. 재미있게 손잡고 구름 타고 하늘 타고 전 세계로 놀러 다녀라”라고 기원했다.
고인의 영정사진 옆에는 조카인 강석호 자유한국당 의원과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이 보낸 조화가 놓였다. 전도연, 송혜교, 김한길-최명길 부부, 강제규 감독, 강우석 감독, 가수 문주란 등 수많은 스타들도 화환으로 고인을 애도했다.
사진=MBC ‘휴먼다큐-사랑’ 방송화면 캡처
신성일은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다.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1962)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고,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1964)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고인은 다수의 작품에 함께 출연하며 인연을 맺은 배우 엄앵란과 1964년 11월에 결혼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확연히 다른 생활 습관 탓에 1975년부터 별거했다. 신성일은 2011년 자서전을 통해 외도 사실을 털어놨지만 엄앵란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이혼을 하지 않았다. 평생의 반려자이자 동지로서 고인과 함께했다.
장례는 영화인장(3일장)으로 치러진다. 지 회장과 배우 안성기가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고, 신영균 김동호 김지미 윤일봉 김수용 남궁원 임권택 정진우 이두용 오석근 문희 고은아가 고문을 맡는다. 이덕화, 거룡, 장미희, 송강호, 강수연, 최민식이 부위원장을 맡았다.
발인은 6일 오전 11시로 예정돼 있다. 화장 후 유해는 고인이 직접 건축해 살던 집이 있는 경북 영천 성일각으로 이송된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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