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사진=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방송 화면 캡처

“너무나 작고 사소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들이 우리를 향해 열려있는 또 다른 행복의 문일지도 모른다. 열리는지조차 몰라 늘 닫혀 있던 내 방 안의 천장 창을 그녀가 여는 법을 가르쳐주고 내게 또 다른 행복의 문이 되어준 것처럼. 닫힌 문 앞에 계속 주저앉아 있지 않는다면, 더 늦기 전에 활짝 열려 있는 행복의 문을 돌아봐 준다면, 그 문을 향해 한 번 더 용기 내 뚜벅뚜벅 걸어간다면, 어쩌면 또 한 번,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짱짱한 행복들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18일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이하 ‘서른이지만’)가 우진(양세종 분)을 통해 전한 메시지다. 사소한 것들이 주는 행복을 알고 있었음에도 또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 그 작은 행복의 소중함을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서른이지만’은 17살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인해 13년 간 코마 상태로 누워있던 서리(신혜선 분)가 30살에 깨어나면서 벌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17살 우진은 짝사랑하던 서리가 자신으로 인해 사고를 당해 죽었다고 오해했다. 이에 우진은 스스로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 30살에 서리를 만나게 된 우진은 점점 마음을 열었다.

사진=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방송 화면 캡처

이날 방송된 마지막 2회분에서 서리는 독일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이 연주를 기술적으로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또한 소식이 끊겼던 외숙모를 다시 만났고, 외삼촌은 회사 부도를 막기 위해 분투하면서도 자신을 정성껏 간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과정에서 외삼촌이 급성 간암으로 갑자기 죽게 된 것을 알고 서리는 오열했다.유찬(안효섭 분)은 서리에 대한 마음을 정리했지만 가족으로서 여전히 그녀를 아꼈다. 또한 프로팀이 아니라 체대에 진학하며 천천히 목표를 이루겠다고 말했다. 제니퍼(예지원 분)는 13년 전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슬픔을 이겨내리라 마음 먹었다. 그는 제니퍼가 아니라 ‘황미정’으로서 작은 가게를 내며 새롭게 시작했다. 결혼한 우진과 서리는 함께 행복한 아침을 맞았다.

‘서른이지만’에는 악인이 없었다. 특별히 어려울 것이 없는 이야기였지만 허술하지 않았다. 탄탄했다. 서리, 우진, 찬, 제니퍼가 각자 13년 전 교통사고로 인해 갖게 된 아픔과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 두 가지의 인과는 분명하고 논리적이었다.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한 지붕 아래 모여 살며, 상처를 함께 치유하고 공유하는 과정은 ‘힐링’을 선사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의학물이나 법정물, 수사물, 판타지가 가미된 이야기가 넘치는 요즘, 있을 법한 현실적인 설정이 더욱 공감을 끌어냈다.

긴박감 넘치지 않아도 다음 회에 대한 궁금증은 계속됐다. 서리와 우진, 두 사람이 과거 인연을 언제 알아차릴지에 대한 시청자와의 ‘밀당’으로 관심을 유도한 것. 또한 우진뿐만 아니라 서리 역시 13년 전 우진을 짝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은 더욱 짙어졌다.
사진=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방송 화면 캡처

서리와 우진 역을 맡은 신혜선과 양세종도 캐릭터에 제대로 녹아들었다. 신혜선은 전작 ‘황금빛 내 인생’과 달리 발랄하고 코믹한 모습으로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신혜선은 17살 소녀로 사는 30살 서리를 천진난만하게, 그러나 우스꽝스럽지 않게 표현했다.

양세종이 연기한 우진은 무슨 일이든 감흥 없는 표정으로 타인과 관계 맺기를 거부했지만, 점차 감정을 숨기지 않고 본래의 따뜻한 면모를 되찾게 되는 기분 좋은 변화를 나타냈다. 양세종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다정한 눈빛으로 캐릭터에 더욱 빠져들게 만들었다.극 중 우진의 조카이자 서리를 짝사랑하는 유찬 역 안효섭의 다정다감한 매력도 시청자를 사로잡은 요소였다. 조정부 에이스인 만큼 운동하는 장면도 자주 보여줬다. 조정하는 모습이나 전보다 호리호리해진 몸집은 화면 밖에서 그의 노력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제니퍼 역의 예지원은 마지막회에서 높낮이 없는 말투가 아니라 평범한 말투로, 무채색의 옷이 아니라 화려한 무늬가 있는 원피스로 캐릭터 내면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전달했다.

‘서른이지만’은 무더웠던 여름 끝에 찾아온 가을 바람처럼 숨을 트게 했고, 미세먼지가 걷힌 가을 하늘처럼 맑았다. 마지막회에서도 서리와 우진의 애틋한 사랑을 코믹한 요소로 풀어내는 위트도 잊지 않았다. 서리가 독일행 비행기를 탄 줄로만 알았던 우진은 종일 우울해했다. 그러다 뒤늦게 서리의 편지를 발견하고 그녀가 한국에 남기로 결심한 것을 알아차렸다. 육교 위로 헐레벌떡 달려온 우진에게 서리는 머쓱해하며 “50살에 음악치료사가 되면 어떠냐. 너무 먼 목표 같아서 겁이 났는데, 나이에 등 떠밀려 가긴 싫다. 오래 걸리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 옆에서 천천히 하겠다”고 말했다. 무거운 감동보다 절로 미소를 자아내는 따뜻함이 ‘서른이지만’다웠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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