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신과함께-인과 연’에서 염라대왕 역으로 열연한 배우 이정재./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이정재는 최근 특별출연의 가장 좋은 사례로 꼽힌다. 그는 ‘신과함께’에서 주연보다 빛나는 염라대왕 역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극 전체의 핵심 키를 쥐고 있다. 특별출연인데도 제작발표회, 인터뷰 등 각종 홍보 활동에도 빠지지 않아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영화 ‘신과함께-인과 연’ 개봉을 앞두고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이정재를 만났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기 전 김용화 감독의 전화 한 통에 흔쾌히 염라대왕 역을 수락했다. 하지만 김 감독이 1편과 2편의 시나리오를 모두 보낸 것이 의아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보니 걱정이 앞섰다. 김 감독에게 “꽤 중요한 역할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할 만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이야기를 통으로 꿰차고 있어야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출연을 결정한 것은 “리스크가 있을 수 있는 기획인데도 모든 스태프들이 과감하게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분량만 놓고 보면 명백한 조연이다. 김 감독이 저한테 조연이라고 하기 싫으니 특별출연이라고 하는 거다. 저에 대한 애틋함과 배려”라며 김 감독과의 의리를 자랑했다.이정재와 김용화 감독의 인연은 2003년 개봉한 영화 ‘오! 브라더스’ 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김 감독에 대해 “그때나 지금이나 유쾌하다”고 칭찬했다. 이어 “영화를 만드는 장비나 기술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더라. 당시 신인감독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카메라 렌즈나 사운드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직접 확인하는 모습이 대단했다. 그런 관심이 오늘의 김용화 감독을 만들었고 덱스터스튜디오를 탄생시킨 기반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에서 이정재는 염라대왕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적당한 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1편 개봉을 앞두고는 긴장한 모습의 김 감독이 안쓰러워 고기를 구워 먹다가 눈물을 펑펑 쏟은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김 감독이 ‘자기는 할 만큼 다 했다’고 하더라. 당시 김 감독은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밥도 못 먹을 만큼 초조하고 긴장한 상태였다”며 “마음이 짠했다. 김 감독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니까 무언가 가슴에 확 와닿았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는데 둘 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흥행하곤 상관없이 하고 싶은 거 했으니 그걸로 만족하자고 서로 응원했다. 그 와중에 하정우 씨는 ‘웃기다’고 사진을 찍었다”며 이제는 웃으며 말했다.‘신과함께’ 1편에서는 모성애에 의한 감동이 컸고 2편에서는 여러 인물들의 감정선이 골고루 드러난다. 이에 대해 이정재는 “어느 것이 더 좋다고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2편에서는 인물 간에 갈등과 감동 코드를 놓치지 않는다”며 2편만의 강점을 귀띔했다. 그는 2편 마지막까지 염라대왕의 비밀을 가져가기 위해서 “염라대왕의 감정을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적당하게 감정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염라대왕 역으로 참고할 만한 캐릭터 견본이 없었기에 오히려 좀 더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 염라대왕의 외적인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맨 처음 12가지 모습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했고 네 가지는 직접 분장해서 테스트했다. 관모를 쓴 모습과 머리를 늘어뜨린 모습으로 두 가지가 최종 후보로 정해졌는데 결국 두 가지를 다 쓰기로 결정됐다. 염라대왕 자신이 관장하는 재판에서는 관모를 쓰고 관장하지 않는 재판에서는 머리를 늘어뜨렸다. 덕분에 평소 진중한 이미지가 강했던 그에게 ‘염라 언니’라는 귀여운 별명도 생겼다. 그는 “여성 분들이 머리에 하는 빨간색 큰 집게핀을 머리에 꽂고 나타났더니 그 모습을 보고 하정우 씨가 ‘염라 언니 나왔다’고 해서 그런 별명이 생겼다”며 “마음에 든다”고 유쾌하게 웃었다.

이정재는 출연 분량보다 영화에서 얼마나 필요한 역할이고 얼마나 새로운 역할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그는 아직까지 배우 말고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 일이 꽤 재미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아직까지 시도하지 못했지만 다른 배우들이 영화 연출이나 각본 등 연기 외에 다른 방법으로 영화에 참여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그런 모습에서 그들이 배우를 뛰어넘는 ‘영화인’이라고 느끼고 있다.

“‘도둑들’ 촬영 차 홍콩에 갔을 때 임달화 선배가 친구 영화 프로듀서도 해주고 틈틈이 자기 시나리오도 쓴다고 하더라고요. 연기자면서 연출가이기도 한 거죠. 영화인으로서 다양하게 활동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어요. 톰 크루즈도 본인이 제작하는 영화를 계속 만들고 있잖아요. ‘영화인’인 거죠. 예전에는 연출자가 연기하면 ‘감독이 연기?’, 연기자가 연출하면 ‘연기나 잘하지 무슨 연출까지 하냐?’는 편견이 있었죠. 그런데 이제는 한정된 테두리 안에서 일 하는 세상은 아닌 것 같아요.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율성이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연출도 하는) 하정우 씨가 참 보기 좋아요.”

그는 이제 연기를 조금 즐길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태양은 없다’를 촬영할 때는 영화를 만드는 일이 이렇게 재밌을 수 있구나를 처음 느꼈어요. 언제나 열심히 하긴 했지만 ‘하녀’ ‘도둑들’을 했던 시기부터는 말로 표현하긴 애매하지만 뭔가 다른 기분이었어요. 그때부터 아마 배우가 제 천직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저는 출연 분량에 대해 따지는 사람은 아니에요. 얼마큼 새로운 역할이고 얼마큼 영화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느냐, 그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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