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지난 2일 서울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단독 콘서트 ‘셰이프 오브 워터’를 연 가수 윤종신 / 사진제공=미스틱엔터테인먼트

지난 2일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윤종신 단독 콘서트 ‘셰이프 오브 워터(Shape Of Water)’에서였다. 마지막 앙코르 곡까지 마치고 난 뒤에도 윤종신은 한참이나 무대를 떠나지 못했다. 공연장에는 ‘배웅’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윤종신은 “예정에 없었는데…. 사상 최초로 (관객들을) 보내드리는 노래에요.”라며 느릿하게 ‘배웅’을 부르기 시작했다. “사상 최초로 (관객들을) 보내드리는 노래”라거나 “저쪽에서 차례차례 줄 서시고요”라는 윤종신의 설명은 관객들이 공연장을 나가지 않자 무용지물이 됐다. “가시라니까요. 왜 이렇게 본전을 뽑으려고 그래.” 윤종신이 익살을 떨자 객석에선 웃음꽃이 피어나왔다.

중·소극장에서 주로 공연하던 윤종신에게 7000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연세대 노천극장은 다소 무리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공연 직전까지 객석이 비어 있을까봐 걱정했다는 그는 공연장을 빈틈없이 채운 관객들을 보며 감격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그늘’ ‘모처럼’ ‘휴일’ ‘기억해줘’ ‘비코즈 아이 러브 유(Because I Love You)’를 연달아 부르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는 입을 열었다. “보통 오프닝에서 (분위기를) 다 뒤집어놓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내 공연은 그렇지 않다. 여러분에게 살며시 손 내미는 노래, 히트하지 않은 노래로 시작해봤다”며 관객들을 웃겼다.
윤종신은 공연 제목에 맞춰 무대 위와 객석에 물을 뿌렸다. / 사진제공=미스틱엔터테인먼트

윤종신은 2시간 30여분 동안 게스트 없이 혼자 무대를 채웠다. “오래된 팬들은 좋아할 만한 노래”라고 한 ‘이층집 소녀’부터 지난달 발표한 ‘프레임(Frame)’까지 다양한 노래를 아울렀다. ‘웰컴 섬머(Welcome Summer)’를 부를 때엔 무대 위에 물줄기가 쏟아져 장막을 이뤘다. 그 안에서 윤종신은 ‘팥빙수’ ‘시원한 걸’ ‘고속도로 로망스’ 등 자신의 대표적인 여름 노래들을 쏟아냈다. ‘고속도로 로망스’가 끝난 뒤에는 객석에도 시원한 물줄기가 뿌려졌다. 윤종신은 “이쪽은 집중 폭격을 맞은 것 같다”며 걱정스러워했지만 관객들은 즐거운 환성을 내질렀다.

윤종신의 공연에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열광하는 관객은 많지 않지만 저마다 노래에 깊이 집중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번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사진을 찍고 수다를 떨며 윤종신을 기다리던 관객들은 공연이 시작하자마자 자신만의 우주로 빠져들었다. 윤종신은 객석의 부위기에 몹시 만족스러워했다. “윤종신 콘서트 관객들이 집중력이 좋으세요. 제 공연장 처음 와보신 분들은 도서관 분위기 같았대요. 옆 사람이 소리 지르면 째려보고…. 하하하.”
윤종신은 마지막 앙코르 곡이 끝난 뒤에도 한참동안 무대에 남아 ‘배웅’을 불러줬다. / 사진제공=미스틱엔터테인먼트

윤종신은 노래와 연출을 동력 삼아 관객들을 밤하늘로, 수목원으로, 바다로 데려갔다. 히트곡에 기대는 대신 음반 안에 숨어 있던 노래들을 캐내 관객들에게 들려줬다. ‘수목원에서’ ‘1월에서 6월까지’ ‘야경’ 등 골수팬들에게 특히 많은 사랑을 받는 노래들이 이어졌다. 윤종신이 “공연 제목을 ‘셰이프 오브 워터’로 지은 이유”라는 말과 함께 ‘말꼬리’ ‘이별택시’ ‘바다이야기’를 부르자 수천 명의 관객들이 숨을 죽이며 그와 교감했다. 지난해 히트한 ‘좋니’나 가수 정인이 지난 4월 평양 공연에서 불러 화제가 됐던 ‘오르막길’의 첫 마디가 시작됐을 땐 뜨거운 함성이 쏟아져나왔다.

이번 공연의 제목은 제90회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작품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쓴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따왔다. 언어장애를 지닌 청소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와 해양 괴생명체의 사랑을 그린다. 같은 제목을 가진 영화와 공연이 교집합을 갖게 된 건 ‘오르막길’에 이르러서였다. ‘셰이프 오브 워터’가 보여준 비주류의 연대는 ‘오르막길’의 가사를 통해 되살아났다.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 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오른다면.” 윤종신이 보여준 ‘사랑의 모양’이다.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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