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사진=tvN ‘나의 아저씨’ 방송화면 캡처

몰라보게 변한 아이유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이선균이 서로를 등지고 걷는데, 전처럼 아프지 않고 오히려 유쾌하다. 지켜보는 이들도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지난 17일 막을 내린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극본 박해영, 연출 김원석)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지안(아이유)은 이를 지(至)에 편안할 안(安), 이름의 뜻처럼 편안함에 이르렀다. 박동훈(이선균)도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며 살아갔다.

‘나의 아저씨’의 끝은 산뜻했다. 모든 이들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마음의 찌꺼기를 씻어냈다. 지안은 삼안 E&C 장 회장(신구)의 도움으로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긴 머리카락과 구두, 가벼운 발걸음, 하늘거리는 블라우스 등 “다른 사람처럼 살아보고 싶다”던 그의 바람이 이뤄졌다.무엇보다 우연히 마주친 동훈을 향해 처음 치아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웃는 방법조차 낯설었던 지안은 ‘좋은 어른’ 동훈을 만나 누군가를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동훈은 삼안 E&C의 상무 자리를 내려놓고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건축회사를 차렸다. 한동안 아들이 있는 미국에서 지내기로 한 아내 강윤희(이지아)와 떨어져 지내며 자신의 상처를 돌봤다. 좀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던 그가 빈집에서 혼자 펑펑 우는 모습은 안타까우면서도 속 시원했다.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돌보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동훈의 큰 형 박상훈(박호산)은 아내 조애련(정영주)과 같이 살기로 했고, 막내 박기훈(송새벽)은 최유라(나라)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혼자서 유라가 나온 영화를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은 그는 집으로 돌아와 시나리오의 첫 장면을 써 내려갔다. 영화감독으로서 다시 일어설 날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첫 회부터 시청자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던 주인공들의 삶은 환하게 빛났다. 살면서 언젠가는 또 좌절하고 상처받으며 울겠지만, 자신의 행복을 바라는 이들이 곁에 있다는 걸 확인했기에 버틸 수 있다.

사진=tvN ‘나의 아저씨’ 방송화면 캡처
◆ 힘든 세상, ‘사람’이라는 기적

지난 3월 21일 첫 발을 뗀 ‘나의 아저씨’는 2016년 방송된 tvN 드라마 ‘또 오해영’을 집필한 박해영 작가의 차기작으로 주목받았다. 여기에 2014년 tvN 드라마 ‘미생’과 2016년 ‘시그널’ 등 사람 냄새 나는 작품으로 사랑받은 김원석 PD가 가세해 단숨에 ‘기대작’으로 떠올랐다.

관심이 커지자, 동시에 우려도 불거졌다. 작품과 등장인물 소개 등이 문제였다.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아저씨 삼 형제와 거칠게 살아온 한 여성이 서로를 통해 삶을 치유하는 이야기’에 남자주인공 동훈의 나이는 45세, 지안은 21세였다. 드라마의 뚜껑이 열리지 않은 시점이어서 네티즌들은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의 로맨스를 예상했다. 일부는 진작부터 불쾌함을 토로했다.베일을 벗은 이후에는 극 초반 지안의 처절한 삶을 보여주기 위해 넣은 사채업자 이광일(장기용)의 폭행 장면으로 지적받았다. 광일은 가녀린 지안을 모질게 때렸다. 게다가 맞아서 피투성이가 된 지안은 “나 좋아하냐?”고 물었다. 등장인물의 얽힌 관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첫 회에 나온 장면이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지적은 당연했다. 당시 제작진은 “회를 거듭하며 풀어나갈 예정이다. 긴 호흡으로 지켜봐 달라”고 요청했다.

광일과 지안의 이야기는 마지막이 돼서야 풀렸다. 어린 시절부터 광일의 아버지에게 맞은 지안을 도운 건 광일이었다. 지안은 동훈에게 “광일의 눈빛이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원래 착한 아이였다”고 털어놨다. 광일 역시 사채업자인 아버지가 미웠지만 그렇다고 아버지를 죽인 지안을 용서하기는 힘들었다. 원망과 증오가 쌓여서 광일은 ‘괴물’이 됐다. 하지만 마지막엔 도청 녹음 파일을 빼돌리며 지안을 도왔다. 서늘한 그의 눈빛도 서서히 풀어졌다.

김원석 PD는 “‘나의 아저씨’는 같이 사는 삶,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인생이 바뀌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박해영 작가가 ‘또 오해영’보다 앞서 4년 전에 완성한 작품이며,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만나 교감하고 소중한 사람이 되는 과정을 담아냈다고 했다.극 초반의 우려는 회를 거듭할수록 말끔히 사라졌다. ‘나의 아저씨’는 살면서 처음으로 네 번 이상 잘해준 어른을 만난 지안과 자신의 보잘것 없는 인생을 다 듣고도 “파이팅”이라며 응원하는 사람을 만난 동훈을 비추면서 ‘사람’이라는 기적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따뜻하게 보여줬다. 극의 분위기는 시종 어두웠지만, 시청자들이 “위로 받았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진=tvN ‘나의 아저씨’ 방송화면 캡처

◆ “진짜 가족, 친구 같았다”…재발견 혹은 확신“함께한 배우들이 진짜 어머니와 친형제,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죽마고우 같았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편안하게 촬영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배우 박호산이 밝힌 ‘나의 아저씨’의 종영 소감이다. 사실 그는 성추행 의혹으로 하차한 배우 오달수를 대신해 급하게 이 작품에 합류했다. 드라마 분석이나 역할을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을 텐데, 열악한 환경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순수하고 포근한 상훈 역을 매끄럽게 완성했다. 약간은 부족해 보이지만 두 동생을 지키는 형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상훈. 마지막 회에서 할머니 봉애(손숙)의 장례식장을 홀로 지키는 지안을 보고 자신의 비상금을 털어 빈 공간을 가득 채운 것도 그였다. 박호산이란 배우는 ‘나의 아저씨’의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1998년 연극 ‘피고지고피고지고’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한 송새벽은 ‘나의 아저씨’로 데뷔 후 처음 드라마에 출연했다. 안방극장에서 보는 그의 매력은 어마어마했다. 눈물이 많은 맏형과 무슨 일이 있어도 참는 둘째 형을 보고 자란 막내 기훈 역을 맡은 송새벽은 무심한 듯 툭툭 내뱉지만 그 안에 흘러넘치는 온기를 목소리, 말투, 표정으로 확실하게 표현했다. 극이 중반을 넘어선 뒤부터는 나라와의 연애로 웃음기 없는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시청자들은 송새벽의 말투와 작은 행동 하나에도 웃었다. 영화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송새벽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믿고 보는 배우’임을 증명했다.

웃어도 쓸쓸해 보이고 발걸음조차 고단해 보이는 동훈의 옷을 입은 이선균은 작품의 중심을 잡으며 ‘나의 아저씨’를 이끌었다. 감정을 과하게 표현하지 않아서 동훈이 지닌 고독이 더 잘 표현됐고, 지안과의 관계도 사람과 사람 사이로 보였다.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았다. 마지막 회,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가수 활동을 하면서도 꾸준히 드라마를 해온 아이유는 이번 작품으로 배우로서도 인정받았다. 어두운 단어는 다 갖다 붙여도 좋을 만큼 거친 지안을 초점과 생기 없는 눈빛, 낮은 음색으로 살렸다. 나무랄 데 없는 연기력으로 사람을 향한 냉소와 불신이 가득 찬 지안이 동훈과 그 주변 사람들을 통해 위로받고 성장하는 모습을 빈틈없이 채웠다.

동훈을 회사에서 쫓아내고 윤희와 불륜 관계를 유지한 도준영 역의 김영민은 마지막까지 극에서 유일한 악역으로 긴장감을 더했다. 처음에는 늘 무언가 숨기는 듯 딱딱하고 어색한 모습이었다가, 끝으로 향하면서 화를 참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얼굴로 변했다. 미움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을 불안한 시선과 몸짓으로 표현해 마지막 회에서는 애처롭기까지 했다.

이외에도 세 형제를 돌보며 울고 웃는 변요순 역의 고두심, 동훈 곁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윤희를 연기한 이지아, 차가운 표정으로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만든 이광일 역의 장기용, 큰 상처를 품고 지안을 진심으로 보듬어준 정희 역 오나라까지 ‘나의 아저씨’는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낸 배우들이 완성한 걸작이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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