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손예지 기자]
슬럼프를 극복하고 새 앨범으로 돌아온 가수 윤하 / 사진제공=C9엔터테이먼트

10년을 넘게 해온 음악에서 재미를 잃었다. 자신이 만든 음악이 더 이상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나 비슷비슷한 음악을 듣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누적된 피로가 목을 망가뜨려 노래를 부르는 것도 힘겨워졌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 같았다. 음악이, 꼴도 보기 싫어졌다.

가수 윤하의 이야기다. “3년 전, 암흑기에 빠져 있었다”며 이 같이 고백한 윤하는 정규 5집 ‘RescuE’를 작업하면서 슬럼프를 극복했다고 했다. 자신과는 다른 색깔의 음악인들을 만나 틀에서 벗어났고 타인의 반응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전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찾고자 했다.그렇게 만들어진 앨범에는 타이틀곡 ‘Parade’를 비롯해 윤하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담은 열한 곡이 실렸다. “다른 이유를 찾느라 내 목표를 잃었다(I lost my aim to find another reason, ‘RescuE’ 中)”는 고백부터 “이토록 약한 내가 무슨 쓸모일까 답을 찾지 못한 날(‘답을 찾지 못한 날’ 中)”들에 대한 회상, 마침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Parade’ 中)”처럼 희망을 되찾은 순간들을 음악으로 소상히 풀었다.

“유리처럼 약했던 나도 결국은 극복했어요. 이 앨범을 듣는 여러분도 분명히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10. 지난해 12월 ‘RescuE’가 발매되기까지 5년 5개월이 걸렸는데.
윤하: 다섯 번이나 엎어진 끝에 만들어진 앨범이다.(웃음)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앨범이기도 하다. 곡과 가사는 물론 앨범에 들어가 있는 사진, 사진 속 오브제, 앨범 패키징 등 모든 것들에 의미를 담았다. ‘나’를 표현하는 앨범이다. 이 시대에는 좀 무거운 앨범이 아닐까 싶은데 만족스럽다.10. ‘나’를 표현하는 데 5년여가 걸렸나?
윤하: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이야기를 해야 사람들이 좋아할지를 고민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생각도 많아졌다. 그런 가운데 이번 앨범을 함께 작업한 뮤지션들을 만나게 됐고, 그들을 통해 구조됐다.

10. 이전과는 음악 색깔이 달라졌다는 반응이 많은데.
윤하: 내 취향이 바뀐 것인지, 소화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웃음) 앨범을 작업하면서 ‘내가 이런 색깔의 음악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생겼다. 동시에 다음 행보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원래의 음악으로 회귀할지, ‘RescuE’ 앨범의 색깔을 이어갈지.

10. 변화의 계기는?
윤하: 음악이 너무 재미가 없다고 느낀 시기가 있었다. 내가 만든 음악도 좋지 않았다. ‘그만 둬야 하나?’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즐겨듣는 음악이 뭔지 되돌아봤다. 맨날 듣는 음악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가운데 그루비룸을 만나게 됐다. 작업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고 오랜만에 만나서 대화를 나눴다. 그때 그루비룸이 이런 저런 음악들을 들려줬다. 나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친구들의 작업 방식도 재밌었다. 자연스럽게 그루비룸에게 앨범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겼다.10. 그루비룸과는 어떻게 알고 지내는 사이인가?
윤하: 인연이 깊다. 이전에 속했던 레이블 리얼라이브에서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그래서 서로를 특별하게 생각한다. 이 친구들만의 대화 방식이 있다. 힘든 것을 이야기하면 위로해주거나 공감해주는 게 아니라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예상할 수 없는 주제로 대화를 바꾸면서 고민에 갇혀 있는 나를 빼내주고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줬다.

10. 음악이 재미없다고 느낀 이유는?
윤하: 3년 전쯤이었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웃음) 지쳤던 것 같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음에도 ‘이게 맞나?’ 의문이 들었다. 목 건강도 좋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는 것도 힘들었다. 음악이, 아무리 두드려도 잘 열리지 않는 문 같았다. 그렇게 2년 정도를 암흑기로 보냈다. 다 재미없었다. 음악이 꼴도 보기 싫었을 정도다. 그래서 음악을 듣지 않고 글을 읽었다. 전환이 필요한 시기였던 것 같다.

10. 어떻게 극복했나?
윤하: 주위의 도움이 컸다. 그래서 이번 앨범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 좋은 에너지들이 모여서 한 사람을 살렸다. 나도 좋은 기운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예전에는 아무도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야속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 몫이 있고 주위의 몫이 있다. 주위에서 나를 아껴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나의 몫이라는 결론을 내렸다.10. 힘들었던 시간을 지나오며 얻은 것은?
윤하: 이전까지의 나는 앨범을 낼 때마다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신선할 수 있지만 나 자신에게는 힘든 방식이었다. 뚝심 있게 하나의 것을 밀고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윤종신 선배가 신곡을 발표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은 편이다. 나도 선배처럼 그때그때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용기를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후회하지 않을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든 것을 쏟아 붇는 것은 너무 무거운 방식이다. 앞으로는 좀 더 가벼워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음악을 쉽게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다. 실시간의 나를 보여주는 게 실력 향상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다. 많이 부딪히고 그래서 욕도 먹고, 음악을 재미있게 해 보려고 한다.

3년 전 “음악이 재미없었다”는 가수 윤하 / 사진=C9엔터테인먼트

10. 타이틀곡 ‘Parade’는 이번 앨범에서 가장 밝은 분위기의 곡인데.
윤하: 만들 때부터 타이틀곡으로 정해 놨다. 내가 음원 성적이 좋은 가수는 아니라 기대를 안 했는데 생각보다 성적이 나쁘지 않아 놀랐다.(웃음) 이제는 이렇게 밝은 곡을 못 부를 줄 알았다. 너무 귀여운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걱정도 했다. 얼추 괜찮게 나왔다. 앞으로, 물론 데뷔 초 10대 소녀의 에너지를 따라가지는 못하겠지만, 나름의 밝은 기운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10. 특히 애착이 가는 곡은?
윤하: 예상치 못한 수확이 있다. 수록곡 ‘답을 찾지 못한 날’이다. 이전에 내 자작곡들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스스로 염증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는 거의 공동 작업을 했다. ‘답을 찾지 못한 날’만 내가 첫 스케치부터 완성까지 도맡은 곡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다시 자신감을 가져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10. 1번 트랙 ‘RescuE’는 가사가 전부 영어인데 이유가 있나?
윤하: 한국어로 말하기 쑥스러운 내용이라 영어로 지었다. 그런데 영어로 하니까 재생수가 많이 안 나오는 것도 같고…(웃음) 이 곡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 ‘신데렐라’에 나오는 말인데 ‘용기를 갖고, 친절해져라(Have courage, be kind).’ 굳이 스스로 빛나는 해가 되지 않아도, 해의 빛을 받아서 비추는 달로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힘들 때 내 과거 노래나 인터뷰를 다시 보면, 그게 도움이 된다. ‘이때의 나도 지금처럼 걱정하고 힘들었을 텐데 밝게 이야기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래서 이 노래는 지금 힘들어하는 또 다른 이들, 그리고 미래의 나를 위해 썼다. 그런데 한국어로 쓰려다 보니 어려움이 많아서 영어로 쓴 것이다. 밴드 칵스의 이현송, 박선빈과 함께 작사했다. 원래 영어 가사를 자주 쓰는 친구들이라 도움을 많이 받았다.

10. 이번 앨범 ‘RescuE’가 어떤 사람을 구조할 수 있을까?
윤하: 지금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들. 앨범 수록곡들이 대부분 부정적이고 우울한 가사를 갖고 있다. 내 외로움과 우울함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위로받기를 바랐다. 듣는 사람들이 ‘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구나. 그런데 윤하도 이겨냈으니까 나도 할 수 있겠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나는 확실히 이번 앨범으로 내면의 우울함을 해소했고, 그 덕분에 다음 걸음을 뗄 수 있게 됐다.

10. ‘비밀번호 486’ ‘기다리다’와 같은 히트곡을 넘어서야 한다는 부담감은 떨쳤나?
윤하: 부담은 늘 크다. 과거의 곡들이 아직까지도 사랑받고 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 노래를 들으면 과거를 추억할 수 있어서 좋아하는 건지, 단순히 그 음악 자체가 좋은 건지 헷갈린다. 이 인터뷰가 기사로 나오면 댓글에 달아주셨으면 좋겠다.(일동 웃음)

10. 대중의 반응을 크게 의식하는 편인가?
윤하: 원래 남 눈치를 많이 본다. 가수로 데뷔하고 더 심해졌다. 어릴 때 일을 시작해서 어른들의 눈치를 봤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들 눈치를 보고 산다. 지금도 여러 반응들을 찾아보긴 한다. 근데 그건 그거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대신 대중이 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잘 조율해서 서로 즐거운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10. SNS를 활발히 사용하는 이유도 그 반응을 직접 찾아보기 위해서인가?
윤하: 나는 애정에 대한 불안감이 큰 사람이다. 애착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크다. 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것 같다.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이런 마음을 티내지 않으면서, 팬들을 재미있게도 해주고 내 욕구도 충족할까… 그러다 보니 SNS를 활발히 사용하게 됐다. 요즘은 그냥 모든 걸 내려놓고 SNS에 내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 놓는다. 그럼 팬들도 진심으로 반응해준다. 덕분에 가수와 팬이 아니라 진짜 친구 사이가 된 것 같다.

윤하는 신곡 ‘Parada’로 “밝은 기운을 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 사진=C9엔터테인먼트

10. 2011년부터 2014년까지 MBC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했다. 청취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던 경험이 영향을 끼친 것일 수도 있겠다.
윤하: 맞다. 알렉스 오빠가 ‘푸른밤’ DJ를 그만두고 나서 밤마다 전화가 왔다. 온 동네 동료들에게 전화를 돌리면서 “DJ를 그만두니 어디다 이야기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웃음) 하루에 두 시간씩 이야기를 하면서 청취자들과 관계를 쌓아간다는 게 생각보다 참 큰일이었고 재밌었다.

10. 자신에게 음악이란?
윤하: 일기? 메신저? 내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대화의 창구 같은 느낌이다.

10.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윤하: 좋은 짝을 만나고 싶다.(웃음) 그거 하나만 해도 성공한 인생인 것 같다.

10.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윤하: 요새 잘하는 가수, 떠오르는 아티스트가 너무 많다. 내가 이야기하면 빼앗길까봐 걱정스러운데…(일동 웃음) 오프온오프의 보컬 콜드 씨와 꼭 작업해보고 싶다. 또 나얼 씨에게 ‘아니야’라는 곡을 받아 부른 적이 있는데 듀엣을 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혼자 갖고 있다.(웃음)

10. 활동 계획은?
윤하: 다방면으로 문을 두드리려고 한다.(웃음) 그동안 취미가 따로 없어서 일만 했다. 일이라도 좀 다양하게 해야 할 것 같다. DJ나 연기를 다시 해보려고 한다. 무엇이 됐든지 간에 내가 잘 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해보려고 한다.

10. 암흑기에서 벗어난 요즘 하는 생각은?
윤하: 할 만하다?(웃음) 물론 짜증나는 일도 있고 화나는 일, 억울한 것도 있지만 그 사이에 꼭 좋은 일들이 생긴다.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을 때도 있지만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 좋은 사람이 더 많다. 감사한 마음으로 매일을 보내고 있다.

10. 3년 전, 힘들었던 자신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
윤하: 음… 시끄럽고, 술이나 먹으러 나와.(웃음)

손예지 기자 yejie@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