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현지민 기자]
영화 ‘박열’ 포스터 / 사진=메가박스 플러스엠

“이거 실화냐?”라고 물을지 모른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제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조선 청년과 그의 연인이라니. 최소한의 제작비, 절제된 볼거리. 그럼에도 ‘박열’을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90년 전 실존인물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존재가 그것을 증명한다. 이거 실화다.

영화 ‘박열’은 1923년 도쿄, 6000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 청년 박열(이제훈)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의 믿기 힘든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사도’·‘동주’ 등을 통해 실존인물을 탐구했던 이준익 감독의 열두 번째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일제강점기는 잊지 말아야 할 과거인 만큼, 수많은 영화의 소재로 사용됐다. 보통 독립운동가의 용기 있고 처절한 삶을 조명하며 진중하고 다소 무거운 톤을 유지한다는 인식이 있다. 그런 점에서 ‘박열’은 색다른 길을 걷는다. 철저한 고증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박열과 후미코의 삶이 놀라울 정도로 독특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국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박열은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과도 같은 도쿄로 향한다. 일본 정부는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민심을 잡기 위해 관동대학살을 벌인다. 그 과정에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6천여 명이 사살된다. 이후 세계의 비난이 두려워진 그들은 조선인들에겐 영웅이고 일본인들에겐 원수로 적당한 박열을 지목, 법정에 세워 모든 문제의 시발점으로 만들고자 한다.

박열은 일본의 의도를 파악하고 스스로 법정에 선다.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고국의 조선인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한 것. 개인적인 원망을 표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일본 정부를 조롱하는 박열의 여유로움은 울림과 웃음을 동시에 선사한다.박열과의 첫 만남에 동거를 제안하는 후미코는 어떤가. 일본 여성이지만 제국주의와 천황제를 반대하며 항일운동을 하는 아나키스트다. 박열과 함께 투쟁하기 위해 스스로 수감을 자처하는 것은 물론, 시종일관 당당하고 확고한 태도로 일본을 뒤흔든다.

대지진이나 대학살 등이 재현되긴 하지만, 극적인 전개를 위해 더한 화려한 볼거리는 없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역사적 사실 그대로를 전하는 것. 그럼에도 ‘볼거리’가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박열과 후미코의 존재에 있다. 극 중 상황이나 인물들의 존재는 물론 대사의 80% 이상이 실제로 기록된 내용이다. 이들의 놀라운 이야기는 그 자체로 극을 풍성하게 만든다. 마냥 진중하지 않고 웃음과 해학이 더해진 극은 현실적이고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허황된 이상을 쫓는 것 아니냐” “미친 것이냐”는 말을 들을지언정 목숨을 바쳐 소신을 지켜내는 박열과 후미코의 삶은 2017년을 사는 청춘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제야 조명되는 조선 최고의 불량 청년 박열의 이야기는 감동을 넘어 울림이고, 울림을 넘어 반성이다.

현지민 기자 hhyun418@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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