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시나리오 작가]
분명 영화를 보러 갔다. 휴 잭맨의 마지막 울버린 영화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가 끝을 향해 갈수록 이미 관객이 아니라 조문객으로 앉아있었다.2000년 8월 12일 토요일, ‘엑스맨’의 개봉일이다. 개봉 전부터 어마어마하게 궁금한 영화였다. 허나 그날은 필자의 첫 영화 개봉일이기도 했다. 개봉 스코어에 연연해서가 아니라 첫 영화에 대한 예의로 차마 다른 영화의 티켓을 끊을 수는 없었다. 영화사 식구들과 극장 근처에 나가 있었다. 필자의 심장은 첫 영화 포스터 뿐 아니라 ‘엑스맨’ 포스터를 마주할 때도 금세 터질 것처럼 쿵쿵 뛰었다. 결국 개봉하고 이틀 후에야 ‘엑스맨’을 보았다.
19금 영화답게 ‘로건’은 울버린의 칼날손이 망설임 없이 쓰인다. 그러나 그 끝에 남는 잔상은 잔인함을 넘어서는 처연함이다. 울버린의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은 전 같지 않고, 그의 친구이기도 적이기도 했던 엑스맨들도 찰스와 칼리반을 제외하곤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그를 찾아온 가브리엘라에게 자신의 존재마저 부정한다. 이제 그는 자신의 본래 이름인 로건으로 살아간다. 마음의 상처 없는 엑스맨이 누가 있겠냐마는 로건에게는 더 짙게 상처의 음영이 드리워진다.
그에게 로라(다프네 킨)라는 심상치 않은 소녀가 찾아온다. 찰스의 대사처럼 로건과 참 많이도 닮은. 로라는 세상을 등지고 있는 로건을 돌려세우며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영화 말미에 로라는 로건의 돌무덤 십자가를 X자로 다시 꽂아 놓는다. 순간 필자의 심장이 턱 막혔다. 울버린이 등장하지 않는 엑스맨을 봐야 하다니…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블랙으로 온전히 사라질 때까지, 장례식에 온 조문객처럼 엑스맨 시리즈를 통해 만났던 울버린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으로 휙휙 지나갔다. 사실 조문객이면서 상주이기도 했다. 로라만 그의 가족이 아니라 울버린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관객들은 이미 그의 가족 같은 친구들이 아니던가.
참 많이도 울었던 까닭에 그날 밤은 잠이 드는 순간까지 눈 주위가 아릿했다. ‘로건’을 볼 수 있는 열아홉에는 턱없이 모자란 열세 살 아들에게 대강의 줄거리를 들려주며 우리의 오랜 친구인 ‘울버린’을 추억했다. 만약 울버린의 묘비를 세운다면, 필자의 아들이 쓴 ‘마침표’라는 시를 새기고 싶다.
‘마침표는 쉽게 말하면 끝. 마지막이라면 불행이기도 하다. 끝이라 생각하면 특별하지도 않다. 하지만 끝은 끝이 아니다. 마침표를 찍으면 다시 시작이다.’
[작가 박미영은 영화 ‘하루’, ‘빙우’, ‘허브’의 시나리오. 연극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의 극본. 그리고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의 동화를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입문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정리=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로건’ 포스터 /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 영화 ‘로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분명 영화를 보러 갔다. 휴 잭맨의 마지막 울버린 영화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가 끝을 향해 갈수록 이미 관객이 아니라 조문객으로 앉아있었다.2000년 8월 12일 토요일, ‘엑스맨’의 개봉일이다. 개봉 전부터 어마어마하게 궁금한 영화였다. 허나 그날은 필자의 첫 영화 개봉일이기도 했다. 개봉 스코어에 연연해서가 아니라 첫 영화에 대한 예의로 차마 다른 영화의 티켓을 끊을 수는 없었다. 영화사 식구들과 극장 근처에 나가 있었다. 필자의 심장은 첫 영화 포스터 뿐 아니라 ‘엑스맨’ 포스터를 마주할 때도 금세 터질 것처럼 쿵쿵 뛰었다. 결국 개봉하고 이틀 후에야 ‘엑스맨’을 보았다.
19금 영화답게 ‘로건’은 울버린의 칼날손이 망설임 없이 쓰인다. 그러나 그 끝에 남는 잔상은 잔인함을 넘어서는 처연함이다. 울버린의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은 전 같지 않고, 그의 친구이기도 적이기도 했던 엑스맨들도 찰스와 칼리반을 제외하곤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그를 찾아온 가브리엘라에게 자신의 존재마저 부정한다. 이제 그는 자신의 본래 이름인 로건으로 살아간다. 마음의 상처 없는 엑스맨이 누가 있겠냐마는 로건에게는 더 짙게 상처의 음영이 드리워진다.
그에게 로라(다프네 킨)라는 심상치 않은 소녀가 찾아온다. 찰스의 대사처럼 로건과 참 많이도 닮은. 로라는 세상을 등지고 있는 로건을 돌려세우며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영화 말미에 로라는 로건의 돌무덤 십자가를 X자로 다시 꽂아 놓는다. 순간 필자의 심장이 턱 막혔다. 울버린이 등장하지 않는 엑스맨을 봐야 하다니…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블랙으로 온전히 사라질 때까지, 장례식에 온 조문객처럼 엑스맨 시리즈를 통해 만났던 울버린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으로 휙휙 지나갔다. 사실 조문객이면서 상주이기도 했다. 로라만 그의 가족이 아니라 울버린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관객들은 이미 그의 가족 같은 친구들이 아니던가.
참 많이도 울었던 까닭에 그날 밤은 잠이 드는 순간까지 눈 주위가 아릿했다. ‘로건’을 볼 수 있는 열아홉에는 턱없이 모자란 열세 살 아들에게 대강의 줄거리를 들려주며 우리의 오랜 친구인 ‘울버린’을 추억했다. 만약 울버린의 묘비를 세운다면, 필자의 아들이 쓴 ‘마침표’라는 시를 새기고 싶다.
‘마침표는 쉽게 말하면 끝. 마지막이라면 불행이기도 하다. 끝이라 생각하면 특별하지도 않다. 하지만 끝은 끝이 아니다. 마침표를 찍으면 다시 시작이다.’
[작가 박미영은 영화 ‘하루’, ‘빙우’, ‘허브’의 시나리오. 연극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의 극본. 그리고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의 동화를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입문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정리=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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