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영화 ‘위대한 소원’에서 남준 역을 맡은 배우 김동영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이름은 생소해도 얼굴을 보면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느낌을 주는 배우들이 많다. 김동영도 많은 사람에게 그런 배우다. 그는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데뷔해 ‘짝패’ ‘글러브’ ‘완득이’ ‘끝까지 간다’ ‘무수단’ 등에 출연하며 12년간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영화 ‘위대한 소원’(감독 남대중)은 이처럼 묵묵히 자신의 연기를 만들어 온 김동영의 내공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김동영은 ‘위대한 소원’에서 루게릭병에 걸린 절친 고환(류덕환)을 들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남자 남준 역을 맡았다. 친구의 소원을 실현해 주기 위해서 어딘가 모자라 보이고, 철없어 보이는 사건들을 계속해서 저지르고 다니는 남준이지만, 그의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관객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김동영의 눈빛이 그런 남준의 마음을 오롯이 전달해주고 있다.적지 않은 연기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연기에 만족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만족하는 그 순간, 더 큰 배우로 성장하고 싶다는 욕심도 멈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야 본격적인 연기 인생이 시작됐다는 김동영은 ‘위대한 배우’가 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10. 5년 전에 출연한 영화 ‘완득이’에서는 전교 1등 혁주를 맡았는데, 이번 ‘위대한 소원’의 남준은 전교 꼴등이다. 성적이 너무 떨어진 거 아닌가? (웃음)
김동영: 와, 이건 생각도 못 했는데. (웃음) ‘위대한 소원’의 남준이가 현실 속 내 모습과 더 흡사하다.

10. 남준이의 어떤 점이 본인과 비슷한가? 비슷한 점이 많았으면 연기하기엔 편했겠다.
김동영: 70~80% 정도 비슷하다. 나도 어디서 맞고 다니진 않았다. (웃음) 친구들 사이에서도 갑덕이 같은 친구가 있고, 고환이 같은 친구가 있지 않으냐. 난 남준이와 비슷한 캐릭터였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도 감독님이 생각하는 남준이도 있지만, 김동영스러운 남준이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또, 워낙 류덕환-안재홍이 친구처럼 대해주니 연기 호흡을 맞추기에도 굉장히 편했다. 연기한다는 느낌이 아니었다.10. 성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당연히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15세 이상 관람가더라. 의외였다.
김동영: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가 되면 흥행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웃음) 등급 심의는 영화를 다 찍은 뒤에 하니까 촬영 중에도 엄청 조심했다. 그래서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 친구들하고 편하게 같이 있다 보면 맛깔나게 욕도 해주고 그러는데, 거친 말이 나오려고 할 때마다 스스로 엄청 자제했다.

10. 코믹 연기는 처음이었다. 사실 누군가에게 웃음을 준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그런 점에서 부담감은 없었나?
김동영: 그런 건 없었다. 워낙 대사가 좋아서 내가 맛깔나게 살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게 ‘우습게 보여선 안 된다’였다. 갑덕이와 남준이는 우스운 애들이 아니라 진짜 절실한 친구들이다. 악을 쓰고 웃기려고 하는 애들이 아니라 어떻게든 자신들이 처한 난감한 상황을 헤쳐 나갈지 고민하는 그 모습이 관객들이 보기에 웃긴 것이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뒀고, 여기에 재미있는 대사가 버무려진 거다.

10. 감독과 배우들이 모여 더 좋은 장면을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면 중에 어떤 신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궁금하다.
김동영: 남준이가 갑덕이한테 “너네 누나?”라고 말했다가 가족을 건드린다고 멱살을 잡히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찍을 때는 내가 평소 친구한테 사과하는 것처럼 용서를 구했다. 실제로 친구들한테 사과할 땐 존댓말을 사용하거든. 이렇게 진짜 친구들 사이에서 있을 법한 진지한데 재미있는 상황, 절대 오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그런 상황들을 많이 그리려고 노력했다.

10. 그런 점이 ‘위대한 소원’의 미덕인 것 같다. 배우 개개인의 능력치에 기대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닌 상황 그 자체가 관객들을 웃겨서 좋았다.
김동영: 웬만한 코미디 영화들은 초반에 관객들에게 웃음을 강요하고, 끝날 무렵에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느냐. 그런데 우리 영화는 자연스럽게 인물이 처한 상황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당황하는 나와 재홍이 형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도 내가 저 상황이어도 저랬을 것 같다며 웃는, 그런 억지스럽지 않은 상황들이 좋았다. 남준이가 처한 상황 속에 푹 빠져서 편하게 연기했다. 그래야 관객들도 편하게 볼 수 있으니까.

10. 영화 속 세 사람의 호흡이 굉장히 차지다.
김동영: 알게 모르게 내가 경쟁의식 같은 게 생기고 그런데 우린 누구 하나 돋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게 정말 좋았다. 그런 마음들이 묻어나서 편하게 친구들과 놀듯이 촬영할 수 있었던 것 같다.10. 세 사람의 모습은 굉장히 조직적인 플레이를 하는 것 같았다. 먼저 고환이가 다른 친구들이 뛰어놀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고, 갑덕이가 독특한 캐릭터를 앞세워 마음껏 관객들을 웃긴 다음에 마지막으로 남준이가 뒤에서 무게를 잡아주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건 결과물을 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고, 직접 연기를 한 사람의 입장에서 세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분석했는지 궁금하다.
김동영: 원래 고환이가 루게릭병에 걸리기 전에는 우리 중에 가장 브레인이었는데, 병원에 입원하면서 남준이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갑덕이를 컨트롤하려고 하는데 뜻대로 잘 안 되는 거다. 결국 ‘에이 몰라, 일단 해봐’ 이렇게 되는 거지. 요약하자면, 브레인이 없는 상황에서 브레인 역할까지 하려는 힘 담당과 오락반장. (웃음)

10. 영화를 보면서 내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김동영: 학창시절의 추억이 진짜 소중한 것 같다. 살면서 제일 재미있었을 때가 아닌가 싶다. 난 비교적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해서 그런지 스스로 ‘때가 좀 묻은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어릴 때는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몇 시간씩 죽치고 앉아있어도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있으면 내가 뭐하지 이런 생각이 드니까. (웃음) 영화 속 세 친구도 똑같다. 어려서 친구 소원 들어주겠다고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하는 거지. 때가 잔뜩 묻은 애들이었으면 학교 여학생들에게 뺨 맞아 가면서 내 친구 소원 좀 들어달라고 했을까.

10. 하긴 그렇다. 하지만 고등학생인 남준과 갑덕이가 고환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성매매를 시도하려는 모습은 보는 사람에 따라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장면인 것 같다.
김동영: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남준과 갑덕은 당장 내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중요한 친구들이다. 불편하게 보일 수 있는 장면 또한 어린 친구들이 무모하게 이런 짓도 해보고 저런 짓도 해보다가 마지막으로 시도한 방법이다. 만약 아~무 생각 없는 어른들이었다면 아예 처음부터 돈을 주고 사람을 사려고 했겠지. 친구를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을 봐주셨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영화를 본 관객들이 큰 의미를 찾으시려고 하는 것보다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생각으로 정말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10. 그나저나 사건의 중심이 되는 류덕환이 군대에 가서 아쉽겠다.
김동영: 아쉽다. 류덕환이 우리 세 사람 중에 제일 말을 잘하는데 군대에 가버려서…. 아마 형이 있었으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위대한 소원’의 기사가 좋아졌을 거다. (웃음) 또, 아는 연예인들도 많으니까 VIP 시사회 때 누굴 초대했는지 구경도 하고 그랬을 텐데. 여러모로 쓸모 있는 사람이 제일 필요할 때 옆에 없으니까 정말 아쉽다.

10. 세 친구와 전노민의 호흡도 인상적이었다.
김동영: 정말 좋은 선배님이시다. 워낙 우리와 촬영장에 오는 걸 즐거워하시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한 번은 사우나 같이 가자고 하셔서 선배님과 사우나도 같이 다녀왔다. 쉬는 날 홍성 맛집도 같이 찾아다니기도 했고. 정말 많이 챙겨주셨다. 현장에 오실 때도 항상 간식거리도 사다 주셨다. 뭐, 꼭 그래서 선배님이 좋다는 건 아니다. (웃음)

10. ‘위대한 소원’을 비롯해 ‘무수단’, ‘밀정’까지 개봉하거나 또 개봉 예정인 영화가 세 편이다. 12년 동안 다양한 장르에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던 김동영이 이제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다.
김동영: 오히려 요즘에는 관심받는 게 두렵다. 누군가 날 좋아해 준다면 속으로 좋으면서도 ‘내가 뭐라고 좋아해 주시는 걸까’란 생각이 들면서 좀 부끄럽다. ‘위대한 소원’만 해도 크게 시작한 영화가 아니었는데 중간에 재홍이 형이 잘 되고, NEW에서도 잘 봐주신 덕분에 판이 커졌다. 그러니까 오만 생각이 다 드는 거다. 확실히 주연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란 걸 느꼈다. 영화가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무섭고,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가슴이 아플 것 같은 기분이다. 대중들이 김동영이란 배우를 기억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본격적인 연기 인생이 시작한다고 가정하면, ‘위대한 소원’이 그 시작이 될 수 있으니까 한편으론 부담이 된다.

10. 12년 동안 연기를 했으니 나름의 ‘연기관’이 있을 텐데.
김동영: 난 누가 봐도 정말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고 싶다. 꾸며진 연기가 아닌 정말 말하듯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고 싶다. 관객들의 눈높이가 “저 배우는 연기가 왜 저래?”라고 생각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그래서 연기를 할 때마다 ‘가짜 같은 연기는 하지 말자’고 생각한다. 내 연기가 가짜처럼 느껴지는 순간 관객들은 영화가 아닌 내 연기의 미숙함을 보기 때문이다. 관객들에게 친근하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

영화 ‘위대한 소원’의 남준을 연기한 배우 김동영 / 사진. yejin0214@tenasia.co.kr

10. 닮고 싶은 배우가 있을까?
김동영: 송강호 선배와 같이 연기를 하면서 곁에서 지켜볼 기회가 많았는데, 정말 연기를 자유롭게 하시는 것 같다. 캐릭터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폭넓은 연기를 보여주신다. 난 카메라 앞에 서면, 해야 하는 것도 까먹을 지경인데 송강호 선배는 이런 것도 해보고, 저런 것도 하시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신다.

10. 송강호를 보며 굉장히 느낀 점이 많은 것 같다.
김동영: 난 한 컷을 찍더라도 화면 안에서는 내가 맡은 그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선배님은 오케이 사인이 나와도 만족한 얼굴이 아니다. 한 번도 만족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모든 배우에게 해당하는 말이겠지만, 만족하는 순간 거기서 멈춘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연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마지막 연기를 하는 날까지 난 내 연기에 만족 못 할 것 같다. 사실 ‘위대한 소원’도 만족 못 한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왜 그때 더 잘하지 못했을까. 아쉬웠던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10. 만족하는 순간, 거기서 멈춘다는 말이 와 닿는다.
김동영: 나보다 연기를 잘하는데 여전히 빛을 못 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난 운이 좋아 이번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을 뿐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한시도 만족해선 안 된다.

10. 김동영의 ‘위대한 소원’이 궁금하다.
김동영: ‘연기 잘하는 배우’, ‘믿고 보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 연기라는 일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기쁨일 것 같다.

10. 그런 김동영의 소원을 도와줄 갑덕이와 남준이는 누구일까?
김동영: 스스로 노력해야 할 부분 아닐까. (웃음) 앞서 말했지만, 만족하면 그 자리에서 멈추는 것 같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채찍질해야 한다. 늘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데 부족하다.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