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장진리 기자]
이동하는 ‘촛불 같은 배우’다. 촛불은 늘 고요하게, 은근하게 빛을 밝히지만 사실 1천도가 넘는 불꽃을 가지고 있다. 돌을 던져도 아무런 파장이 없을 것 같은 고요한 얼굴의 이동하. 그의 가슴 속에는 촛불처럼 은근하면서도 사실은 가장 뜨거운 열정이 살아 숨쉰다. 조용히, 아주 오랜 빛을 내지만, 사실은 가장 뜨거운 배우 이동하. 조용하게, 하지만 가장 뜨겁게 타오를 그의 연기 열정을 아주 오래 보고 싶다.
10. 인기를 실감하나.
이동하 : 욕을 많이 먹고 있다. 다들 패고 싶다고, 한 대 때리고 싶다고 하더라. 주변 사람들까지도(웃음).10. ‘시그널’의 한세규와 실제 이동하의 성격은 정반대라던데.
이동하 : 맞다. 완전히 정반대다. 말도 잘 못하고, 남한테 싫은 소리는 더 못한다. 내성적인 편 같다. 낯도 가린다. 공연할 때는 강한 캐릭터도 많이 연기했지만 ‘시그널’ 촬영은 힘들었다. 사람을 죽이고, 여자를 유린하고 그런 감정들을 정말 싫어하고 혐오하는데, 그런 역을 내가 직접 해야 한다니(웃음). 한세규의 감정은 대체 뭘까 계속 고민했다.
10. 캐릭터의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했나.
이동하 : 일단은 감독님의 디렉션을 받고 한세규는 사이코패스니까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그러니까 그런 행동에도 거리낌이 없다고 생각했다. 한세규에게 그런 일들은 정말 즐거운 것이라고, 아무렇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다. 이동하가 한세규의 행동을 하는 것은 비록 힘들지만, 한세규로서는 극 중에서 충분히 즐기자는 생각이었다.
10. 영화 ‘베테랑’ 속 조태오와 비교되기도 한다.
이동하 : 언급되는 것조차 영광이다(웃음). 극 속에서 내 역할로 잘 흘러갔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이름이나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각인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10. 악역 인기의 척도는 시청자의 욕이 아닐까(웃음). 욕을 먹어보자는 목표가 있었나.
이동하 : 이왕 욕을 먹을 거면 한 번 시원하게 먹어보자고 생각했다. 내 연기의 방향은 배역마다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10. ‘이브의 사랑’에서도 재벌 2세를 연기했고, ‘시그널’에서도 검사장 아들이자 재벌 아들들과 어울리는 이른바 귀티 나는 캐릭터였다. 비결이 있다면.
이동하 : 감독님들이 그런 이미지로 봐주신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 아닐까.
10. 아버지가 유명한 조각가라고 들었다. 진정한 ‘엄친아’ 아닌가.
이동하 : (손을 내저으며) 절대 아니다. 이 일을 하는데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아버지가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하고, 다양한 예술에 관심이 많다. 아버지의 감성적인 면을 내가 물려받은 것 같다.
10. ‘시그널’ 속 한세규 연기는 어땠나.
이동하 : 한세규는 정말로 세상에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연기할 수 있다는 게 한세규로서 가장 즐겁더라. 장현성 선배님과 함께 연기하는 신은 너무 어려웠다. 선배님에게 ‘제가 이런 역할은 처음이라 너무 어렵다’고 했더니, ‘나를 한참 밑이라고 생각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나중에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해서 재밌었지. 막 해도 되니까(웃음). 한세규 아니면 그런 경험을 어디 가서 해보겠나. 실제 이동하는 예의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타입이다. 촬영 끝나고 죄송하다고 사과도 드렸다. 선배님이 ‘아니야, 잘 했어’라고 격려해 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10. ‘시그널’은 ‘미생’을 히트시킨 김원석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캐스팅 당시 감격이 컸겠다.
이동하 : 처음에는 설마 캐스팅 되겠어, 라고 반신반의했다. 정말 유명하신 분이고, 캐스팅은 상상도 못했다. 캐스팅 됐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쁘고, 그저 감사했다.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신기하고 기쁜 마음뿐이었지. 기대라기보다는 걱정과 설렘이 반반이었다. 이걸 잘 해내지 못하면 큰일 나겠지만, 몰입해서 한다면 이런 쟁쟁한 대배우분들과 함께 얼마나 즐거울까 생각했다.10. 얘기를 나누다 보니 굉장히 조용하지만 뜨겁게 타오르는 불같은 느낌이 있다.
이동하 : 흥이랄까, 즐거움이 있다. 고등학생 때 방황한 적도 있다. 힘들었던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면 연기할 때 도움이 되더라. 열정이나 에너지가 생겨난다. 지금은 물론 아니지만 어릴 때는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칭찬을 많이 못 받고 자랐다. 사춘기 때 압박을 받으면서 살다 보니 삭발도 하고, 고등학교 3년 내내 친구들과 어울리고 놀며 비뚤어지기도 했지(웃음). 학교 졸업 후 4수까지 하면서 나를 깎고 또 깎았다.
10. 처음부터 배우를 꿈꿨나.
이동하 : 사실 군대 다녀오고 나서도 연기 생각이 전혀 없었다. 대학 때는 막연하게 공연 제작을 하고 싶었다. 전공은 기획이었다. 군대 다녀오니 당시 선배가 무대를 경험해 보는 게 무대 제작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해서 앙상블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여기까지 온 거다(웃음). 내면의 흥이 많은데 내 안의 다른 사람을 연기하면서 그런 감정들이 표출되니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10. 내면의 숨겨진 흥에 불을 붙이는 게 있다면.
이동하 : 배역에는 각자 그 사람의 인생이 있다. 캐릭터에 부여된 인생이나 스토리를 살면서 그 사람이 되어가는 게 정말 재밌다. 역시 내면의 흥에 불을 붙이는 건 연기다.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게 정말 흥미롭다.10. 어떤 삶이 가장 흥미로웠나.
이동하 : (골똘히 생각하다가) 고를 수가 없다(웃음). 다 재밌고, 모든 인물이 내게는 다 하나하나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10. ‘시그널’의 한세규는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했나. 이동하가 그린 한세규의 모습이 궁금하다.
이동하 : 검사장의 아들이지만 사랑은 못 받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자기의 욕구를 표출할 데가 없으니 마약까지 하고 흥청망청 놀지 않았겠나. 아이 때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자라오다가 사이코패스까지 됐다고 상상해봤다. 검사장 아들이라 무서울 게 없다. 세상에 정말 아무 것도 무서울 게 없는 거지. 한세규는 가정환경 때문에 망가진 것이 아닐까 싶다.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떨까, 형제관계는 어떻게 될까 많이 생각해봤다.
10. 한세규는 과연 반성했을까.
이동하 : 반성할 성격이 아니다. 한 치의 반성도 없을 거다.
10. 최근 안방은 ‘악역 전성시대’다. ‘리멤버-아들의 전쟁’의 남규만(남궁민)과 함께 ‘시그널’ 한세규가 가장 눈에 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동하 : 촬영하느라 ‘리멤버’를 보지는 못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다. 그 사람도 정말 나쁘더라.
10. 한세규가 남규만에게 하는 말이네(웃음).
이동하 : 둘 다 나쁜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은 악역은 극적인 스토리를 위해 있어야 하는 건 맞지만, 어쨌든 정말 나쁜 놈은 없어야 한다는 거다(웃음).
10. 이동하의 고향은 무대다. TV, 스크린이라는 매체와 무대는 어떻게 다른가.
이동하 : 무대에서 처음 시작했고, 평생 할 거기 때문에 무대에 계속 서고 싶다. 무대는 현장감이 있다. 라이브라는 맛이 있지. TV나 스크린은 촬영할 때 디렉션 받고 내가 하는 연기를 나중에 시청자 입장에서 봤을 때 정말 재밌다. 희열이 느껴진다.
10. 무대 경험이 도움이 되나.
이동하 : 정반대다. 무대에서는 눈을 보고 얘기하니까 감정이 확 올 때가 많다. 연기의 매커니즘이 완전히 다르지만 오히려 힘든 게 더 많다. 무대에서는 순차적으로 기승전결에 따라 감정이 끌어 오르지 않나.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는 갑자기 울거나 웃어야 하고, 뒷부분을 찍다가도 갑자기 앞부분을 찍기도 한다. 적응이 필요했다. 몰입도와 순발력을 요한다. 무대는 서서히 끝까지 올라간다면, 카메라 앞에서는 순간순간 짧은 감정을 필요로 한다. 연기하는 건 똑같은데, 매력이 완전히 다르다. 특히 긴 호흡의 일일이나 주말드라마는 보통 내공이 아니면 쉽지 않다. 많이 경험을 해봐야 더 많이 알겠지.
10. ‘시그널’ 현장에서 배운 게 있다면.
이동하 : 김원석 감독님은 굉장히 디테일하다. 극세사 디테일(웃음). 여기서는 이런 행동, 이런 말투, 이런 것들까지 현장에서 하나하나 다 체크하신다. 더 좋은 드라마를 위해 디테일을 하나하나 짚어주시는 데, 감독님에게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가 있구나, 이렇게 드라마에 더 빠져들 수가 있구나, 몰입도 자체가 다르다. 배우로서 너무 감사한 일이지. 앞으로도 연기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김원석 감독님은 엄청난 장인, 열정의 천재 같은 느낌이다.
10. 촬영 에피소드가 있나.
이동하 : ‘분노의 윤리학’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조진웅 선배님, 이제훈 씨, 이은우 씨에 이동하까지(웃음) ‘시그널’의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현장에서 만난 적은 없는데 이제훈 씨가 날 알아봐 줘서 정말 반가웠다. 아마 감독님은 이런 우연을 모르고 캐스팅하지 않으셨을까. 조진웅 선배님은 날 몰랐다(웃음).
10. 김원석 감독이 요구한 한세규의 모습이 있나.
이동하 : 한없이 가벼운 사이코패스(웃음). 감독님은 한세규가 일단 사이코고, 한없이 가볍고,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생각하고 더 몰입하라고 알려주셨지. 가볍고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고, 20살과 40살이 별다른 차이가 없는 인물? 오히려 더 썩었으면 더 썩었지, 생각이 성장하지 못하고 그대로인 인물이었다.
10. 20년이 지나도 한세규의 얼굴이 그대로인 게 놀랍더라.
이동하 : 처음에 분장을 안 해주시길래 ‘전 안 하나요’ 물어보기까지 했다. 감독님은 한세규는 보톡스, 필러 맞고 관리를 할 거라고 생각하신 거다. 이동하도 지금 34살인데 6살 더 먹어도 똑같지 않을까 물어보시더라. 생각해보니 그렇겠다 싶은 거지. 한세규의 얼굴이 차이가 없었던 건 의도된 거다. 반성도 없고, 변화도 없이 똑같다는 상징 아니겠나. 박해영이 한세규에게 20년 전이나 넌 변하지가 않는다고 해서 작가님과 감독님이 그런 생각이 있나보다 했다. 나도 개인적으로 20살 얼굴과 지금 변함이 없다(웃음).
10. 한세규 캐릭터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이동하 : 악인들이 나오는 영화를 다양하게 봤다. ‘조커’나 ‘아메리칸 사이코’ 등 사이코 캐릭터 연기를 굉장히 많이 찾아봤다. 계속 보다 보니까 배우들이 그 사람이 되어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실제로는 그런 악인들이 많지도 않잖아. 있다고 해도 내가 경험해 볼 수는 없는 거니까 간접적으로 작품을 통해 체험하려고 노력했다.
10. 이동하는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 점점 궁금해진다.
이동하 : 일단 열정이 많은 사람이다. 무엇보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엄청나게 크다. 또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끝까지 해내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고,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거다. 열정을 가진 내 모습을 배역을 통해 봐주셨으면 좋겠다. 이동하라는 이름보다 극 중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다. 이동하가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은 전혀 없다(웃음). 내가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는 배우는 다니엘 데이비스다. 역할마다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 히스레저도 마찬가지고. 저 역할이 곧 저 배우구나, 라는 연기를 꿈꾸고 있다.
10.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 아닌가(웃음).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이동하 : 아버지를 보면서 커서 그런가. 아버지가 정말 한우물만 파셨다. 고생만 하시다가 작품으로 인정받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으니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 아닐까. 또 어릴 때 무너지고 깨지고, 이런 경험도 많았으니까(웃음). 꾸준하게 노력하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신념이 생긴 것 같다.
10. 목표가 있다면.
이동하 : 매 작품마다 매 연기마다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해 즐기자는 생각이다. 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현재를 즐기며 살자, 그 마음으로 매순간, 평생 살고 싶다. 그냥 좋은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10. 한세규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웃음).
이동하 : 있어선 안 될 사람이다. ‘절대악’이지. 너 그렇게 살면 안 돼(폭소). 사람들에게 그렇게 상처주는 너는 있어서는 안되는 존재야. 물론 드라마를 위해서는 존재해야 했고, 존재해야 하지만(웃음).
장진리 기자 mari@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이동하는 ‘촛불 같은 배우’다. 촛불은 늘 고요하게, 은근하게 빛을 밝히지만 사실 1천도가 넘는 불꽃을 가지고 있다. 돌을 던져도 아무런 파장이 없을 것 같은 고요한 얼굴의 이동하. 그의 가슴 속에는 촛불처럼 은근하면서도 사실은 가장 뜨거운 열정이 살아 숨쉰다. 조용히, 아주 오랜 빛을 내지만, 사실은 가장 뜨거운 배우 이동하. 조용하게, 하지만 가장 뜨겁게 타오를 그의 연기 열정을 아주 오래 보고 싶다.
10. 인기를 실감하나.
이동하 : 욕을 많이 먹고 있다. 다들 패고 싶다고, 한 대 때리고 싶다고 하더라. 주변 사람들까지도(웃음).10. ‘시그널’의 한세규와 실제 이동하의 성격은 정반대라던데.
이동하 : 맞다. 완전히 정반대다. 말도 잘 못하고, 남한테 싫은 소리는 더 못한다. 내성적인 편 같다. 낯도 가린다. 공연할 때는 강한 캐릭터도 많이 연기했지만 ‘시그널’ 촬영은 힘들었다. 사람을 죽이고, 여자를 유린하고 그런 감정들을 정말 싫어하고 혐오하는데, 그런 역을 내가 직접 해야 한다니(웃음). 한세규의 감정은 대체 뭘까 계속 고민했다.
10. 캐릭터의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했나.
이동하 : 일단은 감독님의 디렉션을 받고 한세규는 사이코패스니까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그러니까 그런 행동에도 거리낌이 없다고 생각했다. 한세규에게 그런 일들은 정말 즐거운 것이라고, 아무렇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다. 이동하가 한세규의 행동을 하는 것은 비록 힘들지만, 한세규로서는 극 중에서 충분히 즐기자는 생각이었다.
10. 영화 ‘베테랑’ 속 조태오와 비교되기도 한다.
이동하 : 언급되는 것조차 영광이다(웃음). 극 속에서 내 역할로 잘 흘러갔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이름이나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각인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10. 악역 인기의 척도는 시청자의 욕이 아닐까(웃음). 욕을 먹어보자는 목표가 있었나.
이동하 : 이왕 욕을 먹을 거면 한 번 시원하게 먹어보자고 생각했다. 내 연기의 방향은 배역마다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10. ‘이브의 사랑’에서도 재벌 2세를 연기했고, ‘시그널’에서도 검사장 아들이자 재벌 아들들과 어울리는 이른바 귀티 나는 캐릭터였다. 비결이 있다면.
이동하 : 감독님들이 그런 이미지로 봐주신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 아닐까.
10. 아버지가 유명한 조각가라고 들었다. 진정한 ‘엄친아’ 아닌가.
이동하 : (손을 내저으며) 절대 아니다. 이 일을 하는데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아버지가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하고, 다양한 예술에 관심이 많다. 아버지의 감성적인 면을 내가 물려받은 것 같다.
10. ‘시그널’ 속 한세규 연기는 어땠나.
이동하 : 한세규는 정말로 세상에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연기할 수 있다는 게 한세규로서 가장 즐겁더라. 장현성 선배님과 함께 연기하는 신은 너무 어려웠다. 선배님에게 ‘제가 이런 역할은 처음이라 너무 어렵다’고 했더니, ‘나를 한참 밑이라고 생각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나중에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해서 재밌었지. 막 해도 되니까(웃음). 한세규 아니면 그런 경험을 어디 가서 해보겠나. 실제 이동하는 예의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타입이다. 촬영 끝나고 죄송하다고 사과도 드렸다. 선배님이 ‘아니야, 잘 했어’라고 격려해 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10. ‘시그널’은 ‘미생’을 히트시킨 김원석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캐스팅 당시 감격이 컸겠다.
이동하 : 처음에는 설마 캐스팅 되겠어, 라고 반신반의했다. 정말 유명하신 분이고, 캐스팅은 상상도 못했다. 캐스팅 됐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쁘고, 그저 감사했다.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신기하고 기쁜 마음뿐이었지. 기대라기보다는 걱정과 설렘이 반반이었다. 이걸 잘 해내지 못하면 큰일 나겠지만, 몰입해서 한다면 이런 쟁쟁한 대배우분들과 함께 얼마나 즐거울까 생각했다.10. 얘기를 나누다 보니 굉장히 조용하지만 뜨겁게 타오르는 불같은 느낌이 있다.
이동하 : 흥이랄까, 즐거움이 있다. 고등학생 때 방황한 적도 있다. 힘들었던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면 연기할 때 도움이 되더라. 열정이나 에너지가 생겨난다. 지금은 물론 아니지만 어릴 때는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칭찬을 많이 못 받고 자랐다. 사춘기 때 압박을 받으면서 살다 보니 삭발도 하고, 고등학교 3년 내내 친구들과 어울리고 놀며 비뚤어지기도 했지(웃음). 학교 졸업 후 4수까지 하면서 나를 깎고 또 깎았다.
10. 처음부터 배우를 꿈꿨나.
이동하 : 사실 군대 다녀오고 나서도 연기 생각이 전혀 없었다. 대학 때는 막연하게 공연 제작을 하고 싶었다. 전공은 기획이었다. 군대 다녀오니 당시 선배가 무대를 경험해 보는 게 무대 제작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해서 앙상블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여기까지 온 거다(웃음). 내면의 흥이 많은데 내 안의 다른 사람을 연기하면서 그런 감정들이 표출되니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10. 내면의 숨겨진 흥에 불을 붙이는 게 있다면.
이동하 : 배역에는 각자 그 사람의 인생이 있다. 캐릭터에 부여된 인생이나 스토리를 살면서 그 사람이 되어가는 게 정말 재밌다. 역시 내면의 흥에 불을 붙이는 건 연기다.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게 정말 흥미롭다.10. 어떤 삶이 가장 흥미로웠나.
이동하 : (골똘히 생각하다가) 고를 수가 없다(웃음). 다 재밌고, 모든 인물이 내게는 다 하나하나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10. ‘시그널’의 한세규는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했나. 이동하가 그린 한세규의 모습이 궁금하다.
이동하 : 검사장의 아들이지만 사랑은 못 받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자기의 욕구를 표출할 데가 없으니 마약까지 하고 흥청망청 놀지 않았겠나. 아이 때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자라오다가 사이코패스까지 됐다고 상상해봤다. 검사장 아들이라 무서울 게 없다. 세상에 정말 아무 것도 무서울 게 없는 거지. 한세규는 가정환경 때문에 망가진 것이 아닐까 싶다.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떨까, 형제관계는 어떻게 될까 많이 생각해봤다.
10. 한세규는 과연 반성했을까.
이동하 : 반성할 성격이 아니다. 한 치의 반성도 없을 거다.
10. 최근 안방은 ‘악역 전성시대’다. ‘리멤버-아들의 전쟁’의 남규만(남궁민)과 함께 ‘시그널’ 한세규가 가장 눈에 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동하 : 촬영하느라 ‘리멤버’를 보지는 못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다. 그 사람도 정말 나쁘더라.
10. 한세규가 남규만에게 하는 말이네(웃음).
이동하 : 둘 다 나쁜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은 악역은 극적인 스토리를 위해 있어야 하는 건 맞지만, 어쨌든 정말 나쁜 놈은 없어야 한다는 거다(웃음).
10. 이동하의 고향은 무대다. TV, 스크린이라는 매체와 무대는 어떻게 다른가.
이동하 : 무대에서 처음 시작했고, 평생 할 거기 때문에 무대에 계속 서고 싶다. 무대는 현장감이 있다. 라이브라는 맛이 있지. TV나 스크린은 촬영할 때 디렉션 받고 내가 하는 연기를 나중에 시청자 입장에서 봤을 때 정말 재밌다. 희열이 느껴진다.
10. 무대 경험이 도움이 되나.
이동하 : 정반대다. 무대에서는 눈을 보고 얘기하니까 감정이 확 올 때가 많다. 연기의 매커니즘이 완전히 다르지만 오히려 힘든 게 더 많다. 무대에서는 순차적으로 기승전결에 따라 감정이 끌어 오르지 않나.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는 갑자기 울거나 웃어야 하고, 뒷부분을 찍다가도 갑자기 앞부분을 찍기도 한다. 적응이 필요했다. 몰입도와 순발력을 요한다. 무대는 서서히 끝까지 올라간다면, 카메라 앞에서는 순간순간 짧은 감정을 필요로 한다. 연기하는 건 똑같은데, 매력이 완전히 다르다. 특히 긴 호흡의 일일이나 주말드라마는 보통 내공이 아니면 쉽지 않다. 많이 경험을 해봐야 더 많이 알겠지.
10. ‘시그널’ 현장에서 배운 게 있다면.
이동하 : 김원석 감독님은 굉장히 디테일하다. 극세사 디테일(웃음). 여기서는 이런 행동, 이런 말투, 이런 것들까지 현장에서 하나하나 다 체크하신다. 더 좋은 드라마를 위해 디테일을 하나하나 짚어주시는 데, 감독님에게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가 있구나, 이렇게 드라마에 더 빠져들 수가 있구나, 몰입도 자체가 다르다. 배우로서 너무 감사한 일이지. 앞으로도 연기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김원석 감독님은 엄청난 장인, 열정의 천재 같은 느낌이다.
10. 촬영 에피소드가 있나.
이동하 : ‘분노의 윤리학’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조진웅 선배님, 이제훈 씨, 이은우 씨에 이동하까지(웃음) ‘시그널’의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현장에서 만난 적은 없는데 이제훈 씨가 날 알아봐 줘서 정말 반가웠다. 아마 감독님은 이런 우연을 모르고 캐스팅하지 않으셨을까. 조진웅 선배님은 날 몰랐다(웃음).
10. 김원석 감독이 요구한 한세규의 모습이 있나.
이동하 : 한없이 가벼운 사이코패스(웃음). 감독님은 한세규가 일단 사이코고, 한없이 가볍고,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생각하고 더 몰입하라고 알려주셨지. 가볍고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고, 20살과 40살이 별다른 차이가 없는 인물? 오히려 더 썩었으면 더 썩었지, 생각이 성장하지 못하고 그대로인 인물이었다.
10. 20년이 지나도 한세규의 얼굴이 그대로인 게 놀랍더라.
이동하 : 처음에 분장을 안 해주시길래 ‘전 안 하나요’ 물어보기까지 했다. 감독님은 한세규는 보톡스, 필러 맞고 관리를 할 거라고 생각하신 거다. 이동하도 지금 34살인데 6살 더 먹어도 똑같지 않을까 물어보시더라. 생각해보니 그렇겠다 싶은 거지. 한세규의 얼굴이 차이가 없었던 건 의도된 거다. 반성도 없고, 변화도 없이 똑같다는 상징 아니겠나. 박해영이 한세규에게 20년 전이나 넌 변하지가 않는다고 해서 작가님과 감독님이 그런 생각이 있나보다 했다. 나도 개인적으로 20살 얼굴과 지금 변함이 없다(웃음).
10. 한세규 캐릭터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이동하 : 악인들이 나오는 영화를 다양하게 봤다. ‘조커’나 ‘아메리칸 사이코’ 등 사이코 캐릭터 연기를 굉장히 많이 찾아봤다. 계속 보다 보니까 배우들이 그 사람이 되어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실제로는 그런 악인들이 많지도 않잖아. 있다고 해도 내가 경험해 볼 수는 없는 거니까 간접적으로 작품을 통해 체험하려고 노력했다.
10. 이동하는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 점점 궁금해진다.
이동하 : 일단 열정이 많은 사람이다. 무엇보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엄청나게 크다. 또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끝까지 해내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고,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거다. 열정을 가진 내 모습을 배역을 통해 봐주셨으면 좋겠다. 이동하라는 이름보다 극 중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다. 이동하가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은 전혀 없다(웃음). 내가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는 배우는 다니엘 데이비스다. 역할마다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 히스레저도 마찬가지고. 저 역할이 곧 저 배우구나, 라는 연기를 꿈꾸고 있다.
10.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 아닌가(웃음).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이동하 : 아버지를 보면서 커서 그런가. 아버지가 정말 한우물만 파셨다. 고생만 하시다가 작품으로 인정받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으니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 아닐까. 또 어릴 때 무너지고 깨지고, 이런 경험도 많았으니까(웃음). 꾸준하게 노력하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신념이 생긴 것 같다.
10. 목표가 있다면.
이동하 : 매 작품마다 매 연기마다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해 즐기자는 생각이다. 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현재를 즐기며 살자, 그 마음으로 매순간, 평생 살고 싶다. 그냥 좋은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10. 한세규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웃음).
이동하 : 있어선 안 될 사람이다. ‘절대악’이지. 너 그렇게 살면 안 돼(폭소). 사람들에게 그렇게 상처주는 너는 있어서는 안되는 존재야. 물론 드라마를 위해서는 존재해야 했고, 존재해야 하지만(웃음).
장진리 기자 mari@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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