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

하늘. 그 이름, 주인 참 잘 만났구나 싶다. 하늘을 닮은 배우, 강하늘 이야기다. 그를 ‘미담천사’의 반열에 올려놓은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굳이 하나 보태자면, “강하늘을 인터뷰 한 후 그의 팬이 됐습니다” 정도 쯤 될까. 강하늘을 처음 만난 건 2년 전, 그가 막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할 때다. 미소를 달고 다니는 얼굴과 달리, 연기에 대한 뚜렷한 주관과 삶을 향한 강단 있는 면모가 굉장히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년, 드라마 ‘미생’, 영화 ‘스물’, 예능 ‘꽃보다 청춘’ 등을 거치며 이 배우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2년 전 만남에서 “변한다. 변질되지 않을 뿐”이라 말했던 강하늘은 인기라는 달콤함을 맛본 후, 그래서 변했지만 변질은 되지 않았을까. 다행히 영화 ‘동주’와 ‘좋아해줘’를 통해 만난 그는 아직도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연기라는 우물만을 파고 파고 파고 있는 듯했다. 한.결.같.다.

10. ‘동주’를 만나기 전부터 윤동주 시인의 팬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를 온몸으로 껴안아 연기한 이상, 이제 당신에게 윤동주 시인은 이전의 윤동주일 수 없을 겁니다. 연기 전과 후, 그에 대해 느끼는 감정엔 어떠한 변화가 있나요.
강하늘: 윤동주라는 분이 굉장히 사람다워졌어요. 많은 분들이 윤동주의 시는 알지만, 삶에 대해서는 모르잖아요. 저 역시 그랬어요. 윤동주 시인에 대해 막연하게 그려놓은 저만의 어떤 틀이 있었죠. 뭔가 거대하고, 우주 같고, 심오한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었어요. 그러다가 ‘동주’를 만났는데, 대본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어요. 윤동주 시인은 허구의 인물이 아니잖아요. 어떤 시대를 살았던 젊은 남자로서 열등감도 느꼈을 테고, 질투도 했을 테고, 누군가를 사랑도 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무시한 채, 저만의 편견으로 그 분을 바라봤다는 생각이 대본을 보면서 들더라고요. 반성을 많이 했어요.10. 구체적으로 윤동주 시인은 당신에게 어떤 이미지였던 건가요.
강하늘: 하얀색 구름 같은,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람. 펜을 잡으면 굉장히 쉽게 시를 써내려 갈 것 같은 분이라고 막연하게 상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분을 인간으로 안 보고 시대적 아이콘으로 보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동주’ 대본이 더욱 좋았어요. 윤동주라는 분을 사람으로 만나게 해 줘서.

10. 대중 또한 강하늘을 그렇게 바라보지 않을까 싶어요. 자신들만의 틀을 가지고 당신을 바라보겠죠. 각자의 강하늘을.
강하늘: 아…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해 봤는데. 아…(잠시, 생각에 잠기는) 말씀을 들어보니 그렇네요. 그런 말은 많이 들었어요. “장백기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말을. ‘미생’을 통해 저를 알게 된 분들은 제가 굉장히 까칠할 줄 알았대요. 그래서 사진 찍자는 얘기도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의아했죠. 전 그런 사람이 아닌데. 어렵지 않은 사람인데.(웃음) 그래도 제가 연기한 캐릭터의 일부분으로 바라 봐 주시는 건 개인적으로 고마워요. 그건 배우인 저에겐 칭찬이기도 하거든요.


10. ‘동주’에서는 시를 쓰는 남자를, ‘좋아해줘’에서는 음악을 만드는 남자를 연기했습니다. 현실에서도 연기라는 예술을 하고 있죠. 조금 거창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강하늘에게 예술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강하늘: 음. 제가 하고 있는 연기를 예술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예술관은 있어요. 일단 예술이라는 건 관객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집에서 혼자 팬케이크를 만들어놓고 예술이라고 한들, 자기만족인 거잖아요. 그래서 내 나름대로 세운 것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 혹은 상대를 진화시키거나 변화시키는 것. 그런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들을 예술이라 칭할 수 있다,가 제가 생각하는 예술관이에요.10. 뚜렷하군요.
강하늘: 네. 그런데 예술가의 삶이란 뭘까,를 생각하면… 연기라는 게 힘든 이유는 정답이 없는 행위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정답이 없는 것인데, 정답인 것처럼 연기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정답처럼 느끼게 해야 하는 게 힘들어요. 그래서 가끔은 싫을 때도 있어요. 진짜 너무 어렵거든요. 그건 아마 글, 미술, 음악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런 점에서 끊임없이 자아성찰하고 반성하는 것이 예술가의 삶이지 않을까 싶어요.

10. 각 시대마다 예술가에 대한 시선은 달라요. 타임머신을 탈 수 있다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떤 시대의 예술가로 살아보고 싶어요?
강하늘: 바로 떠오르는 건 르네상스. 제가 그 시대를 좋아하거든요. 뭐랄까. 그 시대로 가면, 예술을 한답시고 막 살 것 같아요. 한량으로 세상을 떠돌면서요. 하하하. 르네상스가 아니라면, 춘추전국시대? 예술이 시대마다 다른 건 예술이 당대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춘추전국시대로 가면 굉장히 격렬하게 예술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재미있을 것 같네요.

10. 시인이 출연하는 영화로 가장 유명한 건 아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랭보를 연기한 ‘토탈 이클립스’(1995)가 아닐까 싶어요.
강하늘: 맞아요. ‘토탈 이클립스’ 아니면, ‘죽은 시인의 사회(1989)’ 정도죠. ‘동주’를 찍으며 레퍼런스 삼을 만한 영화가 별로 없더라고요.10.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아마, ‘동주’가 시인이 등장하는 영화들의 레퍼런스가 되겠죠?
강하늘: (부끄러워하며 손사래)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런데 그러면 진짜 좋겠다. 하하하하.


10. 평소, 시를 쓰는 걸로 알아요.
강하늘: 원래는 일기를 썼는데, 매일 쓰게 되지 않더라고요. 귀찮기도 하고.(웃음) 조금 더 쉽게 하루 일과를 정리할 만한 게 없을까 고민했죠. 그러다가 찾은 게 끼적거리는 건데, 딱히 시라고 하기에도 민망해요. 진짜 아무것도 없거든요. 가령 이런 거예요. ‘아침은 커피, 점심은 스파게티, 저녁은 김치찌개, 지금 잠.’ 이런 거? 시가 아니라 진짜 끼적거림인 거예요. 이게 훨씬 쓰기 쉽고 제 성향과 맞더라고요. 그러다가 가끔 ‘삘 받으면’ 제법 시에 가까운 글도 써보는 그런 정도에요.

10. 글은 노트에 필기를 하나요? 아니면 컴퓨터?
강하늘: 필기를 해요. 컴퓨터를 키고 세팅하고 하는 게 더 번거로워요. 저는 필기가 더 편해요.10. 필기를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는 강하늘에게 ‘좋아해줘’가 그려내는 SNS 관계는 어떤가요. SNS에서 드러나는 나라는 건, 사실 자신의 모습 중 좋은 모습을 취사선택한 거잖아요?
강하늘: 질문이 언제 ‘좋아해줘’로.(웃음) 제가 지금은 SNS를 안 해요. SNS 어플까지 지워버린 지 1년 가까이 됐어요. SNS는 잘만 사용하면, 좋은 기능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길 원하는 외로운 존재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예쁜 모습을 올리는 것들에 반하는 감정은 없어요. 그런데 저는 사용을 잘 못하는 편이더라고요. 어느 날 자다가 일어났는데 너무 습관처럼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고 있는 거예요. 순간 생각했죠. ‘내가 지금 뭘 보려고?’ 목적 없는 페이스북을 하고 있었던 거죠. 친구들의 일과가 궁금해서 보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아무 목적 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올리고 있는 저를 확인하고는 어플을 지워버렸어요.

10. 지우고 나서 생활이 보다 자유로워졌나요?
강하늘: 처음 1일주일은 ‘아, 다시 깔까?’하는 마음이 컸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편해지더라고요. 인스타그램이든 페이스북이든 모르는 사람의 공간에 한번 씩 들어가 보던 걸 안 하게 되니까 핸드폰도 덜 만지게 되고, 이젠 굉장히 편해요.

10.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축구감독 퍼거슨의 말이 배우들에겐 좀 의미심장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합니다.(웃음)
강하늘: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는데, 한창 SNS를 할 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SNS가 전 세계 사람들의 소통을 위해 바로 옆 사람과의 소통을 끊어 버린다”는 말을요. 그 말을 듣고 ‘아!’ 했던 기억이 나네요.
Q. 지난 해 영화 ‘스물’로도 큰 사랑을 받았어요. 스무 살 윤동주는 시를 썼을 테고, ‘미생’의 장백기의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만 했을 것 같아요. 강하늘의 스물은 어땠나요.
강하늘: 한 가지 기억밖에 없어요. 당시 제가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라는 뮤지컬을 했어요. 그게 6개월짜리 공연이었는데, 연습기간이 3개월이었어요. 또 오디션이 4차까지 있었기 때문에 다 합치면 1년 가까운 시간을 그 뮤지컬에 쏟았던 셈이죠. 그래서 스무 살 때의 기억은 그 공연밖에 없어요. (조)정석 형 등 함께 공연한 형들과 광장시장 가서 술 마시고, 공연하고, 실수하면 막 웃고, 연습실과 분장실을 누볐던 기억들이 다죠.

10. 영화 ‘평양성’도 스무 살 때 찍은 작품 아닌가요?
강하늘: 그게 아마 ‘스프링 어웨이크닝’ 끝나자마자 일거예요. 이준익 감독님과 만난, 저의 첫 영화.

10. 처음 만나는 영화 현장은 어땠어요?
강하늘: 제가 이준익 감독님께 아직까지도 감사한 게, 저의 첫 현장을 너무나 아름답게 꾸며주셨어요. 하루는 촬영 끝나고 함께 술을 마시는데, 갑자기 저랑 (이)광수 형에게 친구를 하자는 거예요. “감독님 저희가 어떻게 감히 친구를 해요?” 했더니, “왜? 외국인들은 할아버지랑 아이도 다 친구하고 하는데, 우린 왜 안 돼” 하시더라고요. 그 인연으로 ‘평양성’이 끝나고도 감독님 사무실에 놀러가기도 하고, 술도 함께 마시고 지냈죠. 너무 좋았어요.

Q 연극 ‘해롤드&모드’에서는 80번째 생일을 앞둔 할머니(모드)에게 사랑에 빠지는 17세 소년(해롤드)을 연기했잖아요?
강하늘: 하하하하. 맞아요. 나이를 뛰어넘는 사랑을.

10. ‘동주’에는 윤동주의 시가 적재적소에 내레이션으로 등장해요. 개인적으로는 ‘쉽게 씌어진 시’가 가장 좋았어요. 그 시를 읽는 당신의 톤이 다른 시와는 다르기도 했고요.
강하늘: 네. 톤이 좀 달라요. 그 시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네요.


Q. ‘쉽게 씌여진 시’는 식민지 시대, 고뇌에 사로잡힌 시인의 마음이 담긴 시에요.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조금 다른 의미로 배우 강하늘에겐 부끄러운 일이 뭔가요?
강하늘: 윤동주 시인이 표현하고자 했던 부끄러움이 얼마나 큰 부끄러움이었을지…그 크기에 비하면 큰 게 아니지만, 저는 과거 연기를 너무 못했을 때를 생각하면 한 없이 부끄러워요. ‘그때 왜 그렇게 못했을까’ ‘다시 돌아간다면 조금 다르게 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가끔 해요. 연기를 못한다고 진짜 무섭게 혼났었던 것 같아요. 울기도 많이 울었고요. “죄송합니다! 더 연습하고 오겠습니다” 하고는 나가서 혼자 서럽게 울고 그랬죠.(웃음)

10. ‘동주’는 윤동주의 소울메이트 송몽규(박정민)의 영화이기도 해요. 실제로 송몽규 같은 친구가 있나요?
강하늘: 네. 대학 때 친해진 5명이 있어요. 제 인생의 마지막 친구라고 생각하는 녀석들이에요. 일요일마다 모여서 연기스터디를 하는데, 1학년 때 시작해서 지금도 하고 있어요. 그 중 한 명은 연기를 그만두고 우리의 응원아래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어요. 또 한 명은 영화 연출을 준비하고 있고요. 나머지 3명이 연기를 하고 있는데 그 중 한명이 이번 ‘동주’에 출연해요. 문익환 목사 연기를 한 최정헌이라고, 제겐 정말 소중한 친구죠. 누군가는 그러더라고요. 제가 추천했다고. 그런데 제가 추천을 해서 되는 게 어디 있겠어요.(웃음) 촬영장에서 만났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한 거예요. 그 친구는 처음이라 긴장했는지 손을 덜덜덜 떨고.(웃음) 내가 좋아하는 친구와 같은 현장에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10. 훗날 연출 준비하는 친구의 작품에 모두가 함께 출연하면 의미 있겠네요.
강하늘: 꿈이죠. 연출 데뷔작에 우리가 함께 하자, 이런 이야기를 해요.

10. 윤동주가 송몽규에게 느끼는 감정 중에는 열등감과 질투도 있어요. 열등감과 질투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봐요. 배우에게는 특히.
강하늘: 그럼요. 이 세상에 연기 잘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최근 느낀 열등감의 최고봉은 ‘버드맨’의 에드워드 노튼! 솔직히 말하면 욕하면서 봤어요. 미치겠더라고요. ‘어떻게 저렇게 연기하지?’ 그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들더라고요. 마음을 다잡았죠.


10. 2년 전 만났을 때 “변한다. 변질되지 않을 뿐이다”라고 말한 거, 기억해요? 그 말이 굉장히 인상에 남아요. 2년 사이 많은 사랑을 받는 배우가 됐어요. 강하늘은 그 사이 변했지만, 변질되지는 않았나요?
강하늘: 그렇다고 믿어요. 그랬으면 좋겠고요. 초심을 항상 지키려고 해요. 사람은 어차피 변해요. 또 변해야 해요. 안 변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변질되지는 말아야 하는 것 같아요. 특히 연기라는 건,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일들이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서 정확하게 얘기해 줄 사람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들의 이야기에 또 순응할 줄 알아야 하고요.

10. 변질되는 건 사실 본인은 제대도 느끼기 어렵죠.
강하늘: 그럼요. 모르죠. 변질되는 걸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건 성공한 거예요.

10. 인터뷰는 윤동주의 시로 마무리 할게요. 어떤 시에 가장 끌려요?
강하늘: 원래는 ‘서시’를 가장 좋아했어요. 유명한 시는 이유가 다 있잖아요. 그런데 ‘동주’를 찍고 나서는 ‘자화상’에 마음을 빼앗겼어요.

10. 시에 등장하는 ‘한 사나이’를 영화는 송몽규에 비유했더군요.
강하늘: 네. 저는 그 해석이 너무 좋았어요. 사나이를 송몽규에 비유하다니. 와~. 그런데 저는 ‘한 사나이’가 윤동주 시인 스스로를 의미한다고 믿어요. 그런 의미에서 윤동주 선생님은 자신을 굉장히 사랑한 사람이라 생각해요.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그렇게 비판할 수 없거든요. 자기를 돌아볼 수 없어요. 자신을 진짜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10. 그런 의미에서 강하늘은 자신을 사랑하는 배우 같네요.
강하늘: (웃음) 네. 그렇게 따지면 저는 저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서예진 기자 yejin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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