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
영화 ‘검은 사제들’이 이유진 대표에게 지니는 의미는 남다르다. ‘검은 사제들’은 제작사 영화사집의 10주년 작품인 동시에 10번째 영화. 즉 영화사집의 지난 10년을 갈무리 하는 작품이자, 다음 10년을 향해 가는 길목에 선 중요한 다리인 셈이다. 우려는 있었다. 10주년작으로 내걸기엔 여러 위험요소를 ‘검은 사제들’이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미개척지나 다름없는 오컬트라는 장르, ‘악령에 씐 소녀를 구하는 사제’라는 낯선 소재. 하지만 뚜껑을 연 영화엔 날선 비판보다, 신선하다는 호평이 더 크게 손을 흔들었다. 흥행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영화의 새로운 장르적 시도가 의미 있게 평가 받고 있는 점일 게다. 그 누구도 성공을 장담하지 않았던, 많은 이들이 모험이라고 말했던 이 프로젝트의 시작에 영화사집 이유진 대표가 있다.
Q. 광고 일을 하다가, 1997년도에 영화판에 뛰어든 것으로 안다. 굉장히 잘 나가는 ‘광고 카피라이터’였다고 들었는데.
이유진: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변화와 재미에 대한 바람이 컸다. 광고회사를 그만 둘 때 주변사람들 모두가 만류했다. IMF 전이었고, 그때는 또 광고회사가 굉장히 잘 나갈 때였거든.
Q. 그러게. 광고회사 지망생들이 넘쳐날 때 아닌가.
이유진: 이상하게, 나는 잘될 때 다른 걸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힘들 때는 모른다. 힘들 때는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으니까. 극복해야지라는 생각 외에는. 그러다가 여유가 생기면 다른 도전을 생각한다. 마침 오정완 대표님(현 ‘영화사 봄’ 대표. 외사촌 언니)이 영화 일을 하고 계셨다. 그때는 영화가 무슨 일인지 정확히 몰랐다. 방송이나 광고나 영화나 다 비슷하지 않을까란 생각까지 했으니, 진짜 몰랐던 거다.(웃음) 그렇게 ‘정사’ 마케팅으로 영화에 입문했다. 1-2년은 정말 ‘멘붕’이었다. 소위 말하는 ‘영화판’에 적응이 안됐다. 해야 하는 것은 많은데, 돈은 또 너무 적었고.Q. 그럼에도 계속 한 이유는?
이유진: 일단 오정완 대표님께 배울 점이 많았다. 재미도 있었고. 그리고 그때는 서울극장에 사람들이 줄을 설 때였다. 만들 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극장에 사람들이 꽉 찬 걸 보는 순간 성취감이 왔다. 광고는 잘 되도 내 것 같은 생각이 안 드는데, 영화는 안 그랬다. 광고가 남의 자식을 키워서 보내는 느낌이라면, 영화는 내 자식 같은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나를 계속 머물게 했다.(웃음)
Q. 이후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4인용 식탁’ ‘달콤한 인생’ 등의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프로듀서에서 제작자로 넘어온 데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건가.
이유진: 영화사봄에서 독립해 2005년도에 영화사집을 차렸다. 영화사봄에서 마지막으로 참여한 작품이 ‘너는 내 운명’이었다. 당시 ‘너는 내 운명’이 잘 됐고, 영화사봄도 충무로에서 자리를 잡을 때였다. 잘 되니까, ‘이제는 뭔가 또 다른 걸 해 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여유가 있으면 생각이 많아지는 스타일이다.(웃음) 그렇게 제작에 뛰어들었다. 소심한 면이 있지만, 한번 결정한 건 안 굽히는 편이다.
Q. 이유진의 인생은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장르의 영화가 나올 것 같나.
이유진: 하하하. 일단 아트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냥 드라마가 아닐까 싶은데, 내 인생을 영화로 하기엔 사연이 아직 별로 없다.Q. 사연이 없다니.(웃음) 많은 굴곡이 있었던 것 같다. 위기도 있었을 테고.
이유진: 위기라고 생각되어지는 시점들, 당연히 있었다. 가령 ‘초능력자’ 때. ‘초능력자’는 내가 ‘달콤한 인생’ 프로듀서를 할 때 연출부였던 김민석 감독의 데뷔작이다. 워낙 재능과 열정이 넘치는 친구여서 데뷔를 시켜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마침 강동원 씨도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읽어줬고. 그런데 소재가 다소 모험적이었다. 투자사를 찾아다녔는데 모두 ‘NO’를 했다. 그때 뭐랄까. ‘아, 스타 감독이 아니면 믿어주지 않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내가 엎어지나?’ 하는 심리적 압박도 왔다. 마침 파트너 관계인 UP(영화사집, 보경사, 오퍼스픽처스가 함께 만든 회사)와, 당시 신생 투자사였던 NEW가 도와줬다. UP와 NEW가 없었다면 ‘초능력자’를 못했을 거다. ‘초능력자’가 200만 관객을 넘기고 이익을 내면서 극복이 됐는데,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Q. 재능을 발굴해 주고 싶은 욕구가 큰 것 같다.
이유진: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나 역시 처음 영화사를 할 때, 박진표 허진호 최동훈 등 여러 감독님 덕을 봤다. 마케팅-프로듀서 이력이 있긴 했지만 그분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시작하기 쉽지 않았을 거다. 도움을 받았으니, 이젠 내가 누군가의 도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 그리고 사실, 이름 있는 감독님들은 본인들이 너무나 잘 하신다. 내가 딱히 할 일이 없다. 개인적으로 내가 뭔가에 좋은 쓰임이 되는 게 좋다. 그러다보니 신인감독이나 도움이 필요한 감독들과의 작업이 늘어나는 것 같다.
Q. 그래서 ‘감시자들’ 조의석 감독이 영화사집에 유독 고마움을 표했나보다. ‘일단 뛰어’ ‘조용한 세상’의 실패 후 마음고생이 있었을 조의석 감독은 ‘감시자들’을 통해 다시 좋은 기회를 얻었다.
이유진: 하하하. 조의석 감독은 마음이 굉장히 잘 맞는 파트너다. 서로 농담도 자주 하는데, “신인 감독보다, 하나 망한 감독이 더 어려워~”라고 놀리기도 했었다.(일동웃음) 조의석 감독은 시나리오를 굉장히 잘 쓴다. 특유의 ‘쿨’한 감성이 있다. 그 쿨한 것이 뜨거운 장르와 결합했을 때 언밸런스 한 게 있지 않았나 싶다. 쿨하고 드라이한 정서가 돋보일 수 있는 장르를 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게 ‘감시자들’과 잘 맞아 떨어졌다.Q.영화사집의 다음 작품이…
이유진: 조의석 감독의 차기작이다. 범죄액션물인데, 지금 배우 캐스팅 중에 있다.
이유진: 다르다. ‘감시자들’은 다른 걸 다 떠나서 조의석 감독이 잘 된 거. 그게 가장 기뻤다. ‘검은 사제들’의 경우 배우들이 어려운 선택이라면 어려운 선택을 한 건데, 그 선택이 장르확장에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신인감독이 다음 작품을 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했고.Q. ‘전우치’의 경우 어떻게 보면 한국판 히어로물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유진: ‘전우치’ 같은 히어로물을 또 하고 싶은데 안타고니스트(Antagonisten)를 설정하는 게 너무 어렵다. ‘전우치’때도 최동훈 감독님과 고민을 했었다. 우리가 마블 영웅들처럼 세계평화를 위해 싸울 수도 없고. 너무 애매한 거다. 북한이라는 안타고니스트들이 우리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관객들이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극적인 악당이 별로 없으니까. 그런데 또, 북한 악당은 너무나 많아서 개인적으로 끌리지가 않고…악당 설정은 참 어려운 것 같다.
Q. ‘감시자들’에서 정우성이 연기한 악당 제임스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구구절절한 사연 없이 진짜 악당을 연기했는데, 그게 오히려 신선했다.
이유진: ‘감시자들’때 감독과 이야기 한 것도 ‘사연을 넣지 말자’였다. 투자사 입장에서는 주인공에게 사연이 없으면 약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다행히 잘 받아줬다. 정우성 씨 태도도 굉장히 쿨했다. “한방에 날, 죽여줘! 나쁜 놈은 나쁜 놈답게 죽어야해. 죽을 듯 안 죽을 듯 하지 말고, 그냥 총 방에 죽여 달라”고 했다.(웃음)
Q. ‘감시자들’을 보면 정우성이 자신의 캐릭터를 굉장히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진: 정우성 씨는 쿨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열정이, 열정이~. 도로를 막고 찍어야 하는 큰 씬이 있으면, 본인이 더 걱정이다.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우린 그가 (촬영장에) 안 나왔으면 했거든. 정우성이 서 있기만 해도 사람들이 몰려드니까.(일동웃음) 영화와 현장에 대한 열정이 정말 대단한 배우다.Q. 처음 시작했을 때의 영화와 지금의 영화는 당신에게 다른 의미일 것 같다.
이유진: 이젠 내 인생에서 떼놓을 수 없는 게 됐다. 가끔은 너무 힘들어서 그만할 때가 됐나 생각을 하기도 한다. 기술이라도 배웠으면 기술로 먹고 살 텐데, 그것도 아니고.(웃음) 영화라는 게 ‘맨땅에 헤딩’을 하는 기분이다. 한 줄의 단어, 하나의 컨셉, 하나의 이미지…아무 실체도 없던 것들을 모아서 영화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매번 너무 힘들다.
Q. 힘들어서 계속 할 것 같다. 여유가 생기면 다른 길을 생각하는 타입 아닌가.(웃음)
이유진: 하하하. 맞다. 만만치가 않기 때문에 계속 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정도했으니 쉬어도 되겠지’가 아니라, 매 작품마다 늘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라 긴장을 놓을 수 없다.
Q. 하나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다양한 과정을 거친다. 시나리오부터, 캐스팅, 촬영, 후반편집, 시사회, 홍보, 그리고 결과물을 받기까지. 어떤 과정이 가장 보람되거나 힘든가.
이유진: 영화마다 조금씩 다른데, 그런 건 있다. ‘고생질량보존의 법칙’이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한 경우는 없다.(웃음) 캐스팅이 생각보다 너무 잘 됐어! 그럼 현장에서 비가 미친 듯이 온다거나 난리가 나는 일이 생긴다. 어떨 땐 캐스팅이 너무 안 돼서 고생하는데 촬영이 문제없이 진행되기도 한다. 또 촬영까지 무사히 다 됐는데, 마케팅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사고가 날 때도 있고. 영화는 그냥 고생하는 거구나 한다.(웃음)
Q. ‘그 놈 목소리’를 시작으로 10년. 처음을 돌아보면 어떤가.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
이유진: 일단은 ‘이렇게 오래 버텼다니!’ 라는 생각이 든다.(웃음) ‘한두 개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이후에도 쭉 내가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시작했거든. 어떻게 하다 보니 10주년이 됐다. 정말 잘 버텼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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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제들]이유진 대표 “도전, 10년 그리고 강동원”①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팽현준 기자 pangpang@
영화 ‘검은 사제들’이 이유진 대표에게 지니는 의미는 남다르다. ‘검은 사제들’은 제작사 영화사집의 10주년 작품인 동시에 10번째 영화. 즉 영화사집의 지난 10년을 갈무리 하는 작품이자, 다음 10년을 향해 가는 길목에 선 중요한 다리인 셈이다. 우려는 있었다. 10주년작으로 내걸기엔 여러 위험요소를 ‘검은 사제들’이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미개척지나 다름없는 오컬트라는 장르, ‘악령에 씐 소녀를 구하는 사제’라는 낯선 소재. 하지만 뚜껑을 연 영화엔 날선 비판보다, 신선하다는 호평이 더 크게 손을 흔들었다. 흥행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영화의 새로운 장르적 시도가 의미 있게 평가 받고 있는 점일 게다. 그 누구도 성공을 장담하지 않았던, 많은 이들이 모험이라고 말했던 이 프로젝트의 시작에 영화사집 이유진 대표가 있다.
Q. 광고 일을 하다가, 1997년도에 영화판에 뛰어든 것으로 안다. 굉장히 잘 나가는 ‘광고 카피라이터’였다고 들었는데.
이유진: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변화와 재미에 대한 바람이 컸다. 광고회사를 그만 둘 때 주변사람들 모두가 만류했다. IMF 전이었고, 그때는 또 광고회사가 굉장히 잘 나갈 때였거든.
Q. 그러게. 광고회사 지망생들이 넘쳐날 때 아닌가.
이유진: 이상하게, 나는 잘될 때 다른 걸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힘들 때는 모른다. 힘들 때는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으니까. 극복해야지라는 생각 외에는. 그러다가 여유가 생기면 다른 도전을 생각한다. 마침 오정완 대표님(현 ‘영화사 봄’ 대표. 외사촌 언니)이 영화 일을 하고 계셨다. 그때는 영화가 무슨 일인지 정확히 몰랐다. 방송이나 광고나 영화나 다 비슷하지 않을까란 생각까지 했으니, 진짜 몰랐던 거다.(웃음) 그렇게 ‘정사’ 마케팅으로 영화에 입문했다. 1-2년은 정말 ‘멘붕’이었다. 소위 말하는 ‘영화판’에 적응이 안됐다. 해야 하는 것은 많은데, 돈은 또 너무 적었고.Q. 그럼에도 계속 한 이유는?
이유진: 일단 오정완 대표님께 배울 점이 많았다. 재미도 있었고. 그리고 그때는 서울극장에 사람들이 줄을 설 때였다. 만들 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극장에 사람들이 꽉 찬 걸 보는 순간 성취감이 왔다. 광고는 잘 되도 내 것 같은 생각이 안 드는데, 영화는 안 그랬다. 광고가 남의 자식을 키워서 보내는 느낌이라면, 영화는 내 자식 같은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나를 계속 머물게 했다.(웃음)
Q. 이후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4인용 식탁’ ‘달콤한 인생’ 등의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프로듀서에서 제작자로 넘어온 데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건가.
이유진: 영화사봄에서 독립해 2005년도에 영화사집을 차렸다. 영화사봄에서 마지막으로 참여한 작품이 ‘너는 내 운명’이었다. 당시 ‘너는 내 운명’이 잘 됐고, 영화사봄도 충무로에서 자리를 잡을 때였다. 잘 되니까, ‘이제는 뭔가 또 다른 걸 해 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여유가 있으면 생각이 많아지는 스타일이다.(웃음) 그렇게 제작에 뛰어들었다. 소심한 면이 있지만, 한번 결정한 건 안 굽히는 편이다.
Q. 이유진의 인생은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장르의 영화가 나올 것 같나.
이유진: 하하하. 일단 아트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냥 드라마가 아닐까 싶은데, 내 인생을 영화로 하기엔 사연이 아직 별로 없다.Q. 사연이 없다니.(웃음) 많은 굴곡이 있었던 것 같다. 위기도 있었을 테고.
이유진: 위기라고 생각되어지는 시점들, 당연히 있었다. 가령 ‘초능력자’ 때. ‘초능력자’는 내가 ‘달콤한 인생’ 프로듀서를 할 때 연출부였던 김민석 감독의 데뷔작이다. 워낙 재능과 열정이 넘치는 친구여서 데뷔를 시켜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마침 강동원 씨도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읽어줬고. 그런데 소재가 다소 모험적이었다. 투자사를 찾아다녔는데 모두 ‘NO’를 했다. 그때 뭐랄까. ‘아, 스타 감독이 아니면 믿어주지 않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내가 엎어지나?’ 하는 심리적 압박도 왔다. 마침 파트너 관계인 UP(영화사집, 보경사, 오퍼스픽처스가 함께 만든 회사)와, 당시 신생 투자사였던 NEW가 도와줬다. UP와 NEW가 없었다면 ‘초능력자’를 못했을 거다. ‘초능력자’가 200만 관객을 넘기고 이익을 내면서 극복이 됐는데,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Q. 재능을 발굴해 주고 싶은 욕구가 큰 것 같다.
이유진: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나 역시 처음 영화사를 할 때, 박진표 허진호 최동훈 등 여러 감독님 덕을 봤다. 마케팅-프로듀서 이력이 있긴 했지만 그분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시작하기 쉽지 않았을 거다. 도움을 받았으니, 이젠 내가 누군가의 도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 그리고 사실, 이름 있는 감독님들은 본인들이 너무나 잘 하신다. 내가 딱히 할 일이 없다. 개인적으로 내가 뭔가에 좋은 쓰임이 되는 게 좋다. 그러다보니 신인감독이나 도움이 필요한 감독들과의 작업이 늘어나는 것 같다.
Q. 그래서 ‘감시자들’ 조의석 감독이 영화사집에 유독 고마움을 표했나보다. ‘일단 뛰어’ ‘조용한 세상’의 실패 후 마음고생이 있었을 조의석 감독은 ‘감시자들’을 통해 다시 좋은 기회를 얻었다.
이유진: 하하하. 조의석 감독은 마음이 굉장히 잘 맞는 파트너다. 서로 농담도 자주 하는데, “신인 감독보다, 하나 망한 감독이 더 어려워~”라고 놀리기도 했었다.(일동웃음) 조의석 감독은 시나리오를 굉장히 잘 쓴다. 특유의 ‘쿨’한 감성이 있다. 그 쿨한 것이 뜨거운 장르와 결합했을 때 언밸런스 한 게 있지 않았나 싶다. 쿨하고 드라이한 정서가 돋보일 수 있는 장르를 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게 ‘감시자들’과 잘 맞아 떨어졌다.Q.영화사집의 다음 작품이…
이유진: 조의석 감독의 차기작이다. 범죄액션물인데, 지금 배우 캐스팅 중에 있다.
‘감시자들’ 정우성
Q. 10년간 10작품, 각 작품마다 의미가 다를 것 같다.이유진: 다르다. ‘감시자들’은 다른 걸 다 떠나서 조의석 감독이 잘 된 거. 그게 가장 기뻤다. ‘검은 사제들’의 경우 배우들이 어려운 선택이라면 어려운 선택을 한 건데, 그 선택이 장르확장에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신인감독이 다음 작품을 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했고.Q. ‘전우치’의 경우 어떻게 보면 한국판 히어로물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유진: ‘전우치’ 같은 히어로물을 또 하고 싶은데 안타고니스트(Antagonisten)를 설정하는 게 너무 어렵다. ‘전우치’때도 최동훈 감독님과 고민을 했었다. 우리가 마블 영웅들처럼 세계평화를 위해 싸울 수도 없고. 너무 애매한 거다. 북한이라는 안타고니스트들이 우리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관객들이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극적인 악당이 별로 없으니까. 그런데 또, 북한 악당은 너무나 많아서 개인적으로 끌리지가 않고…악당 설정은 참 어려운 것 같다.
Q. ‘감시자들’에서 정우성이 연기한 악당 제임스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구구절절한 사연 없이 진짜 악당을 연기했는데, 그게 오히려 신선했다.
이유진: ‘감시자들’때 감독과 이야기 한 것도 ‘사연을 넣지 말자’였다. 투자사 입장에서는 주인공에게 사연이 없으면 약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다행히 잘 받아줬다. 정우성 씨 태도도 굉장히 쿨했다. “한방에 날, 죽여줘! 나쁜 놈은 나쁜 놈답게 죽어야해. 죽을 듯 안 죽을 듯 하지 말고, 그냥 총 방에 죽여 달라”고 했다.(웃음)
Q. ‘감시자들’을 보면 정우성이 자신의 캐릭터를 굉장히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진: 정우성 씨는 쿨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열정이, 열정이~. 도로를 막고 찍어야 하는 큰 씬이 있으면, 본인이 더 걱정이다.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우린 그가 (촬영장에) 안 나왔으면 했거든. 정우성이 서 있기만 해도 사람들이 몰려드니까.(일동웃음) 영화와 현장에 대한 열정이 정말 대단한 배우다.Q. 처음 시작했을 때의 영화와 지금의 영화는 당신에게 다른 의미일 것 같다.
이유진: 이젠 내 인생에서 떼놓을 수 없는 게 됐다. 가끔은 너무 힘들어서 그만할 때가 됐나 생각을 하기도 한다. 기술이라도 배웠으면 기술로 먹고 살 텐데, 그것도 아니고.(웃음) 영화라는 게 ‘맨땅에 헤딩’을 하는 기분이다. 한 줄의 단어, 하나의 컨셉, 하나의 이미지…아무 실체도 없던 것들을 모아서 영화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매번 너무 힘들다.
Q. 힘들어서 계속 할 것 같다. 여유가 생기면 다른 길을 생각하는 타입 아닌가.(웃음)
이유진: 하하하. 맞다. 만만치가 않기 때문에 계속 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정도했으니 쉬어도 되겠지’가 아니라, 매 작품마다 늘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라 긴장을 놓을 수 없다.
Q. 하나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다양한 과정을 거친다. 시나리오부터, 캐스팅, 촬영, 후반편집, 시사회, 홍보, 그리고 결과물을 받기까지. 어떤 과정이 가장 보람되거나 힘든가.
이유진: 영화마다 조금씩 다른데, 그런 건 있다. ‘고생질량보존의 법칙’이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한 경우는 없다.(웃음) 캐스팅이 생각보다 너무 잘 됐어! 그럼 현장에서 비가 미친 듯이 온다거나 난리가 나는 일이 생긴다. 어떨 땐 캐스팅이 너무 안 돼서 고생하는데 촬영이 문제없이 진행되기도 한다. 또 촬영까지 무사히 다 됐는데, 마케팅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사고가 날 때도 있고. 영화는 그냥 고생하는 거구나 한다.(웃음)
Q. ‘그 놈 목소리’를 시작으로 10년. 처음을 돌아보면 어떤가.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
이유진: 일단은 ‘이렇게 오래 버텼다니!’ 라는 생각이 든다.(웃음) ‘한두 개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이후에도 쭉 내가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시작했거든. 어떻게 하다 보니 10주년이 됐다. 정말 잘 버텼다 싶다.
1부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클릭!
[검은 사제들]이유진 대표 “도전, 10년 그리고 강동원”①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팽현준 기자 pangp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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