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
시대마다 각광받는 남성상이 있다. 일명 메트로섹슈얼, 레트로섹슈얼 등으로 명칭 되는 남성군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남자배우들은 이러한 카테고리 안에 대입시켜 보다가 유아인 앞에서 막.혔.다. 어디에 둬야 정답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이 배우는 결국 ‘규정할 수 없음’으로 백기를 들게 만든다. 그 스스로가 직접 지었다는 예명인 ‘아인’은 독일어로 (오직) ‘하나(ein)’를 뜻한다는데, 그 이름 과연 절묘하구나 싶어진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일찍이 자기 재능에 운명을 내맡긴 유아인은, 어린 나이에 홀로 어른들의 세계에 똑 떨어진 케이스다. 기회는 빨랐고, 성취도 빨랐다. 데뷔작인 성장드라마 ‘반올림’(2003)이 끝났을 때 유아인은 옥림이(고아라)만의 ‘아인오빠’가 아닌, 전국 소녀들의 ‘아인오빠’가 돼 있었다. 하지만 진짜 그의 운명을 가른 것은 ‘반올림’ 이후였다. ‘반올림’ 이후 그가 노동석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6)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유아인은 어땠을까. 간혹 어떤 작품이 한 배우의 인생을 흔드는 경우를 목격하곤 하는데, 유아인에겐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그랬다(고 확신한다).
“훌륭한 소년이 될 거예요?”
“네”(종대/유아인).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마지막 씬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것은 하나의 징후였다. “네”라고 대답하는 순간, 유아인은 종대의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지독한 자기화, 운명적 (캐릭터와의) 만남, 거부할 수 없는 동일시. 이후 유아인이 ‘완득이’(2011), ‘깡철이’(2013), ‘밀회’(2013)에서 연기한 청춘들은 마치 종대의 DNA를 이식받은 분신들 같았다. 그러니까, 유아인의 삶은 ‘훌륭한 소년이 되기 위한’ 나름의 고군분투 같았다. 유아인은 “기획성이고, 이벤트성이고, 뭔가 너무 전략적으로 변해가는” 청춘영화들 속에서, 세상사는 답답함을 대변해주는 ‘청춘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고 싶어 전전긍긍하고 방황하고 반항하고 저항하며 분노했다. 정우성 이정재 이후 한동안 끊겼던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단어가 유아인 앞에서 다시 부활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청춘을 향한 유아인의 욕망은 그가 지닌 외형적 요건과 어우러져 묘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유아인의 매혹은 ‘손에 잡히지 않음’이다. 가름한 얼굴선으로 배시시 웃을 때는 유약한 어린아이 같다가고, 쌍꺼풀 없는 눈에 독기를 품을 땐 상대를 일순간 긴장시킨다. 인상을 쓸 때 유독 심하게 구부러지는 미간 주름은 그의 감성을 보다 풍부해 보이게 하는 촉매제다. 유아인은 때로 ‘시한폭탄’ 같다. ‘툭’하고 살짝만 건드려도 터져버릴 것 같은 불안을 온 몸 가득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장기라면 그러한 불안을 상대가 본능적으로 감지하게 할 뿐, 그것으로 위협을 가하지는 않는다. 불안하지만 그 불안이 보는 이로 하여금 등 돌리게 하지 않고 외려 다독이게 하는 이상한 불안함이다.
# 진짜 중요한 건, 행동끓어오르는 20대를 보낸 청춘은 서른을 맞았다. 그리고 ‘재벌 3세 유아인’(베테랑)과 ‘비운의 왕자 유아인’(사도)과 ‘호방한 이방원으로 분한 유아인’(육룡이 나르샤)이 동시에 대중을 만나고 있는 지금을 많은 이들은 ‘아인시대’라 한다. ‘베테랑’에서의 유아인의 연기를 높게 사는 이유는 그가 악역을 연기함에 있어 연민을 구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래 배우들이 악역을 연기함으로써 얻고 싶어 하는 ‘비극적 비애’에 대한 갈망이 그에겐 없다. 조태오는 유아인의 실제 성격을 의심하게 할 뿐이다. 이 영화는 응당 황정민이 연기한 서도철이 조태오를 뭉갰을 때 쾌감이 커야 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결말의 만족도가 클 수 있었던 것은 조태오가 철저히 ‘순수악’이었기 때문이다. 유아인이 욕심을 부렸다면 쾌감의 크기가 지금과 같았을지 의문이다.
‘사도’에서의 사도세자는 주류에 있지만 주류와는 다르고 싶은 욕망을 지닌 인물이다. 유아인이 그러하다. 사도의 기질과 유아인의 기질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안전망 안에서 세상의 소리에 귀를 닫는 것은 유아인에게 맞지 않는 옷이다. 유아인은 자신의 신념과 견해를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겸손이 미덕으로 평가받는 쇼비지니스 세계에서 그의 행보는 위험한 구석이 있었고, 실제로 그가 내뱉은 말들은 누군가에게 ‘허세’로 평가 받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밀회’에서 시작돼 ‘베테랑’ ‘사도’ ‘육룡의 나르샤’로 이어지는 유아인의 행보는 그가 단순히 슈퍼스타에 등극했다는 면보다, 그의 재능과 취향이 보다 넓게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많은 이들이 유아인의 ‘진짜 생각’에 관심을 갖고 고개 끄덕이기 시작한 것이다.
유아인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배우라는 인상을 주지만, 정작 그를 만나보면 이성과 감성의 양단을 팽팽하게 조율하는 배우임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최근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시대정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요즘은 정신이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정신은 너무들 있는 것 같고, 진짜 중요한 건 행동이다. 사치스러운 말들로 들릴까봐 조심스러운데, 분노 절망 좌절 슬픔 등 내가 동시대에 느끼는 감정들은 굉장히 많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고 움직이며 사느냐에 있다고 본다”
얼마 전 그가 백혈병 환아의 골수이식 수술비용을 몰래 지원해 온 사실이 알려졌다. 행동하는 배우에게 내일은 있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유아인 인스타그램, 영화 스틸
시대마다 각광받는 남성상이 있다. 일명 메트로섹슈얼, 레트로섹슈얼 등으로 명칭 되는 남성군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남자배우들은 이러한 카테고리 안에 대입시켜 보다가 유아인 앞에서 막.혔.다. 어디에 둬야 정답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이 배우는 결국 ‘규정할 수 없음’으로 백기를 들게 만든다. 그 스스로가 직접 지었다는 예명인 ‘아인’은 독일어로 (오직) ‘하나(ein)’를 뜻한다는데, 그 이름 과연 절묘하구나 싶어진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일찍이 자기 재능에 운명을 내맡긴 유아인은, 어린 나이에 홀로 어른들의 세계에 똑 떨어진 케이스다. 기회는 빨랐고, 성취도 빨랐다. 데뷔작인 성장드라마 ‘반올림’(2003)이 끝났을 때 유아인은 옥림이(고아라)만의 ‘아인오빠’가 아닌, 전국 소녀들의 ‘아인오빠’가 돼 있었다. 하지만 진짜 그의 운명을 가른 것은 ‘반올림’ 이후였다. ‘반올림’ 이후 그가 노동석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6)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유아인은 어땠을까. 간혹 어떤 작품이 한 배우의 인생을 흔드는 경우를 목격하곤 하는데, 유아인에겐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그랬다(고 확신한다).
“훌륭한 소년이 될 거예요?”
“네”(종대/유아인).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마지막 씬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것은 하나의 징후였다. “네”라고 대답하는 순간, 유아인은 종대의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지독한 자기화, 운명적 (캐릭터와의) 만남, 거부할 수 없는 동일시. 이후 유아인이 ‘완득이’(2011), ‘깡철이’(2013), ‘밀회’(2013)에서 연기한 청춘들은 마치 종대의 DNA를 이식받은 분신들 같았다. 그러니까, 유아인의 삶은 ‘훌륭한 소년이 되기 위한’ 나름의 고군분투 같았다. 유아인은 “기획성이고, 이벤트성이고, 뭔가 너무 전략적으로 변해가는” 청춘영화들 속에서, 세상사는 답답함을 대변해주는 ‘청춘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고 싶어 전전긍긍하고 방황하고 반항하고 저항하며 분노했다. 정우성 이정재 이후 한동안 끊겼던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단어가 유아인 앞에서 다시 부활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청춘을 향한 유아인의 욕망은 그가 지닌 외형적 요건과 어우러져 묘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유아인의 매혹은 ‘손에 잡히지 않음’이다. 가름한 얼굴선으로 배시시 웃을 때는 유약한 어린아이 같다가고, 쌍꺼풀 없는 눈에 독기를 품을 땐 상대를 일순간 긴장시킨다. 인상을 쓸 때 유독 심하게 구부러지는 미간 주름은 그의 감성을 보다 풍부해 보이게 하는 촉매제다. 유아인은 때로 ‘시한폭탄’ 같다. ‘툭’하고 살짝만 건드려도 터져버릴 것 같은 불안을 온 몸 가득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장기라면 그러한 불안을 상대가 본능적으로 감지하게 할 뿐, 그것으로 위협을 가하지는 않는다. 불안하지만 그 불안이 보는 이로 하여금 등 돌리게 하지 않고 외려 다독이게 하는 이상한 불안함이다.
# 진짜 중요한 건, 행동끓어오르는 20대를 보낸 청춘은 서른을 맞았다. 그리고 ‘재벌 3세 유아인’(베테랑)과 ‘비운의 왕자 유아인’(사도)과 ‘호방한 이방원으로 분한 유아인’(육룡이 나르샤)이 동시에 대중을 만나고 있는 지금을 많은 이들은 ‘아인시대’라 한다. ‘베테랑’에서의 유아인의 연기를 높게 사는 이유는 그가 악역을 연기함에 있어 연민을 구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래 배우들이 악역을 연기함으로써 얻고 싶어 하는 ‘비극적 비애’에 대한 갈망이 그에겐 없다. 조태오는 유아인의 실제 성격을 의심하게 할 뿐이다. 이 영화는 응당 황정민이 연기한 서도철이 조태오를 뭉갰을 때 쾌감이 커야 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결말의 만족도가 클 수 있었던 것은 조태오가 철저히 ‘순수악’이었기 때문이다. 유아인이 욕심을 부렸다면 쾌감의 크기가 지금과 같았을지 의문이다.
‘사도’에서의 사도세자는 주류에 있지만 주류와는 다르고 싶은 욕망을 지닌 인물이다. 유아인이 그러하다. 사도의 기질과 유아인의 기질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안전망 안에서 세상의 소리에 귀를 닫는 것은 유아인에게 맞지 않는 옷이다. 유아인은 자신의 신념과 견해를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겸손이 미덕으로 평가받는 쇼비지니스 세계에서 그의 행보는 위험한 구석이 있었고, 실제로 그가 내뱉은 말들은 누군가에게 ‘허세’로 평가 받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밀회’에서 시작돼 ‘베테랑’ ‘사도’ ‘육룡의 나르샤’로 이어지는 유아인의 행보는 그가 단순히 슈퍼스타에 등극했다는 면보다, 그의 재능과 취향이 보다 넓게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많은 이들이 유아인의 ‘진짜 생각’에 관심을 갖고 고개 끄덕이기 시작한 것이다.
유아인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배우라는 인상을 주지만, 정작 그를 만나보면 이성과 감성의 양단을 팽팽하게 조율하는 배우임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최근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시대정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요즘은 정신이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정신은 너무들 있는 것 같고, 진짜 중요한 건 행동이다. 사치스러운 말들로 들릴까봐 조심스러운데, 분노 절망 좌절 슬픔 등 내가 동시대에 느끼는 감정들은 굉장히 많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고 움직이며 사느냐에 있다고 본다”
얼마 전 그가 백혈병 환아의 골수이식 수술비용을 몰래 지원해 온 사실이 알려졌다. 행동하는 배우에게 내일은 있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유아인 인스타그램, 영화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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