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소녀 같다. 남메아리의 연주를 들으며 처음 떠올랐던 생각이다. 관능적인 드레이프 원피스, 파격적인 레게 헤어는 소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남메아리의 연주는, 정말이지 소녀 같았다. 거침없고 순수했다. 공연이 끝난 뒤, 현장을 나서며 생각했다. 어느 아름다운 여인의 탄생기를 보았다고.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신정동 CJ아지트에서는 남메아리와 DJ소울스케이프의 합동콘서트가 개최됐다. 이날 DJ소울스케이프는 6~70년대의 재즈와 블루스 음악을 선곡해 오프닝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이어 남메아리는 피아노 독주를 비롯해 정재일(베이스), 서수진(드럼)과 트리오 구성 무대까지 선보였다.피아노에는 일자무식이지만, 남메아리의 연주가 깔끔하고 예쁘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클래식을 전공했던 그의 전적 때문인지도 모른다. 첫 번째 곡 ‘더 블랙 리베라체(The Black Liberace)’도 마찬가지. 발랄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새침데기 같은 구석이 있었다. 어린 백조 같은 느낌이었다.

남메아리 정재일 서수진

남메아리는 수줍음이 많은 연주자였다. 뭐가 그리 쑥스러운지, 그는 멘트를 하며 종종 민망한 듯 웃어보이곤 했다. 심지어 말솜씨가 제법 뛰어난 편인데도 그랬다. 남메아리는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음악이 늘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게 감사했다”고 ‘피플 체인지 벗 유(People Change But You)’를 소개했다. 뭉클한 곡이 나오리라. 미리부터 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연주는 명랑했다. 꾸미지 않은 즐거움이었다. 그의 솔직함에 일순 호기심이 솟았다.남메아리의 연주는 과감할 정도로 투명했다. 발랄함을 지나 관능과 슬픔까지도, 그는 있는 그대로 들려줬다. 더한 것도 없었고 뺀 것도 없었다. 덕분에 소녀가 어떻게 자라났는가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너 무브먼트(Inner Movement)’와 ‘에이프릴 송(April Song)’을 거치며 소녀는 더 넓은 세상을 만났고, 울고 견디며 어른이 되어갔다. 곡이 끝날 쯤, 어린 백조는 우아한 발레리나가 되어 눈앞에 아른거렸다.

공연의 마지막곡은 ‘에코 블루스(Echo Blues).’ 아둔하게도, 남메아리가 내내 맨발로 연주하고 있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순간,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게 한 곡들을 들려드리려고 한다. 그래서 공연 타이들도 ‘에코이즘’으로 지어보았다”던 그의 멘트가 다시금 떠올랐다. 남메이라는 존경하는 제임스 부커에게 자작곡을 바쳤고, 음악을 향해 찬가를 보냈으며 자신을 위로해준 곡들을 재해석해 연주했다. 세상은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고, 이야기는 영감이 되어 음악으로 만들어졌다. 맨발의 소녀, 혹은 여자. 오늘의 남메아리는 그렇게 탄생했다.

남메아리의 첫 정규앨범은 오는 10월 초 발매될 예정이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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