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한혜리 기자]
영화 ‘건축학개론’ 납득이가 ‘로코킹’이 되다니. 능청스런 조정석이 로맨스 중심에 존재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종합편성채널 MBN ‘왓츠 업’에선 무대공포증의 소심한 병건이로, MBC ‘더킹 투하츠’에선 희생을 자처하는 은시경으로. “배우는 역할을 내 옷처럼 만들어야 한다.”라는 그의 말처럼 쉬지 않고 옷을 갈아입었다. 납득이로 스타덤에 올랐을 때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꾀했다. 그가 이번엔 케이블채널 tvN ‘오 나의 귀신님(이하 오나귀)’에선 까칠하면서도 다정한 셰프 강선우로 분했다. 이 남자가 이렇게 로맨틱할 줄이야. 상대 여배우를 바라보는 극 중 조정석의 눈에서는 요즘 말로 꿀이 떨어졌다. 그만큼 다정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드라마가 종영하고 로맨스를 되새기면서도, 그는 시원한 호선을 그리는 미소와 함께 눈에 꿀을 담았다. 로맨틱 선우를 복기하는 시간도 부족하건만, 조정석은 영화 ‘형’으로 또 다른 변신을 예고했다.
Q. ‘오나귀’를 통해 ‘로코킹(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왕)’으로 등극했다. 많은 여성들의 ‘워너비 셰프’가 됐는데, 기분이 어떤가?
조정석 : 기분 완전 좋다. 하하. 사실 ‘로코킹’이란 수식어 자체도 과분하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수확이지 않을까. 내가 ‘로코킹’이라니, 이게 웬 말인가. (웃음)Q. 능청스런 모습이 제격이었다. 자기 옷을 입은 느낌?
조정석 : 그런 얘기 들으면 기분 좋다. 배우는 역할을 내 옷처럼 만들어야 한다. 캐릭터는 작가님이 만들지만, 배우의 몸을 통해 표현된다. ‘오나귀’ 선우 역시 조정석이란 배우의 몸을 매개체로 나온 캐릭터다. 내 몸과 선우를 맞추려 노력했다.
Q. 폭풍 애드리브도 능청스러움에 한 몫 하지 않았나.
조정석 : 많이 오해하시는데, 사실 애드리브는 별로 없었다. 거의 다 대본에 있는 상황이었다. 대본이 생각보다 촘촘했다. 예를 들어 마지막 회에서 내가 봉선이(박보영)를 유학 보내면서 목걸이를 걸어주는 신이 있었다. 그때 내가 애드리브처럼 봉선이를 무릎에 앉히고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이게 다 지문에 있는 내용이었다. 아주 사소한 내용까지. 가끔 주어진 상황이 끝난 후에도 감독님이 ‘컷’을 안하실 때가 있었다. 그땐 애드리브 들어가는 거지. 감독님은 그걸 방송에 쓰시더라.(웃음)
Q. 방금 말한 그 신에서 선우가 나봉선을 무릎에 앉혀놓고 “감정이 격해져서 그래”라면서 울었다. 이건 애드리브였나?
조정석 : 하하. 애드리브였다. 선우를 연기하는 나였던 거지. 대본에는 “감정이 격해졌어” 이 전까지만 써 있었다.
Q. 까칠함부터 ‘능청’까지, 모든 모습을 다 보여줬다.
조정석 : 나만의 법칙이 있었다. 주방에서의 룰? 그러니까 ‘주방에서 강선우는 이럴 것이다’ 이런 거. 머릿속에서 계산 하고 있었다. 주방 밖에서 선우는 질투도 많고, 소심하기도 한 캐릭터다. 버럭하는 모습은 약점을 감추기 위한 자기 방어였지. 초반엔 주방 신이 많아서 버럭하고 까칠한 모습을 보여줬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봉선이랑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후반부로 갈수록 ‘버럭’이 ‘능청’으로 바뀌더라.
Q. 봉선 때문에 선우가 부드러워진 거겠지? 연인이 되고 난 다음부터 두 사람은 정말 ‘달달’했다. 실제 연인이 질투 났을 법도 했겠다. (웃음)
조정석 : 하하. 그런 건 전혀 없었다. ‘그 친구’도 ‘오나귀’ 애청자였다. 고맙게도 늘 응원해줬다. 갑자기 조심스러워진다.(웃음)Q. 그만큼 박보영과 ‘케미(호흡)’가 살았다. 시청자가 보기에도 호흡이 잘 맞는 느낌이었다.
조정석 : 보영 씨는 진짜 연기를 잘하는 친구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스럽고. 같이 작업하면서 느꼈는데 연기에 있어선 강단이 있더라. 멋있었다. 보영 씨랑 연기하면서 어려웠던 건 키스신이었다. 보영 씨가 작품에서 첫 키스신이었다. 상대 여배우가 첫 키스신이라는 게 꽤 부담되더라. 내가 긴장 많이 했다. 보영 씨도 눈치 챈 것 같았다. 하하. 그래도 막상 해보니 생각한 그림대로 잘 나왔다.
Q. 그렇게 달달 했으면서 초반엔 굉장히 까칠했다. 내내 냉정하게 굴다, 딴 사람처럼 로맨틱하게 변했다. 봉선에게 마음 돌린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
조정석 : 음, 7화 메밀전 데이트 할 때? 그때였던 것 같다. 선우가 빙의되지 않은 봉선을 처음 만났다. 사실 선우는 연민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봉선에게 애정이 있었다. 봉선에게 유독 소리치고 혼냈던 건, 예전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였겠지. 순애가 빙의되면서 봉선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점점 성장하는 봉선을 보면서 매력을 느꼈다. 빙의는 과정이었을 뿐, 선우는 성장한 쭈구리 나봉선을 사랑했다.
Q. 실제로 들이대는 여자는 어떤가?
조정석 : 그렇게 들이대면 이상하지 않을까. 안달난 것 같은? 좀 야하다. 하하. 게다가 보영 씨나 슬기 씨같이 예쁘고 사랑스러우면 더 이상할 것 같다. 그래서 선우도 초반에 당황했겠지. 결국 더 좋아하게 됐지만.(웃음)Q. 로맨스도 주목받았지만, ‘브로맨스’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수셰프(강기영)과 함께할 땐 코믹연기가 폭발하는 것 같았다. 뭔가 시너지효과 같은 느낌?
조정석 : 하하하. 수셰프랑은 너무 웃어서 NG를 많이 냈다. 왜 그렇게 웃겼는지 모르겠다. 가만히 얼굴만 봐도 웃기더라. 희한하게 기영 씨는 수셰프 옷만 입으면 웃기더라. 기영 씨가 순간 몰입도가 굉장히 좋았다. 참 근면한 배우였다. 뭐든지 열심히 했지. 기영 씨는 배우로서 타고난 끼와 재능도 뛰어났지만, 거기에 성실함까지 더했다. 앞으로 더 좋은 역할이나 작품으로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을 것 같다.
Q. ‘오나귀’ 시놉시스를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은 어땠나? 흥행할 것을 예상했나?
조정석 : 시놉시스 첫 줄만 읽었는데도 호감이 가더라. 처녀귀신이 빙의하고, 사랑에 빠지고…엄청난 매력을 느꼈다. 소재 자체가 재밌었으니까. 촬영하기 전부터 기대를 많이 했었다.Q. 제작발표회 당시 유제원 감독 연출에 만족스럽다는 말을 했다. 연출에 대한 믿음이 커 보였다.
조정석 : 개인적으로 나는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인정받기 전, 동료들에게 먼저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력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인간적인 면모를 더 크게 여긴다. 그런 점에 있어서 유제원 감독님은 실력뿐만 아니라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다. 위트 있고 귀엽기도 하고 또, 일할 땐 천재적이고. 다방면으로 갖춘 사람이었다. 그래서 연출을 잘하나? 하하. 유제원 감독님은 배우가 맘껏 날 수 있게 만들어줬다. 그게 되게 좋았다. 드라마 제작 여건 상 시간이 없어 빨리 빨리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편하게 연기 할 수 있게 멍석을 잘 깔아줬다. 그래서 믿고 잘 따를 수 있었다.
Q. 영화 같은 연출이 유제원 감독의 큰 특징이었다. 배우로서 그런 점도 만족스러웠을 거 같은데.
조정석 : 우리 티저에서 감독님의 영상 특징이 잘 나타났다. 그때가 촬영 초반이었다. 테스트 촬영이었는데 어느 샌가 TV에 나오더라. 하하. 사실 유제원 감독님 ‘고교처세왕’도 재밌게 봤다. 그 작품을 보고 ‘오나귀’ 출연을 결심했지. 굉장히 인상 깊었던 게, 이하나 씨랑 서인국 씨가 숲 속에서 쭉 걸어오면서 대화하는 장면이 있었다. 드라마에선 잘 볼 수 없었던 롱테이크 신이었다. 연출가로선 굉장히 용기있는 선택이었다. 그게 참 멋있었다. 또, ‘오나귀’ 마지막 회에서도 순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려고 할 때 아버지 얼굴을 안보여주고 오로지 순애 감정으로만 몰아붙인다. 굉장히 고급스런 연출이라 생각했다.
Q. 대본과 조정석이란 배우의 합이 잘 맞았던 것 같았다. 양희승 작가는 코믹에 강한 사람이다. 시트콤도 했었고. 그런 점이 조정석과 잘 맞지 않았나.
조정석 : 종방연 때 작가님께 다음 작품은 뭘 하시든지 불러만 주시면 하겠다고 말했다. 하하. 그만큼 작가님 대본이 미치도록 좋았다. 작가님은 부족했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건 진짜 겸손의 말씀인 것 같다.(웃음) 작가님이 코믹스런 장면도 잘 써주셨지만, 드라마 전체의 그림을 잘 짜주셨다. 전체 이야기를 풀면서 개인의 삶까지 조명해주셨다. ‘오나귀’는 사실 성장드라마였다. 선우가 마지막 회에서 청소기를 구입했다. 과거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가 파는 청소기였다. 친구를 용서한거지. 봉선이 같은 경우는 마지막회 키스신에서 “한 번 더 해도 돼요?”라고 물었다. 속으로 ‘나랑 또 키스를 하고 싶은가?’라고 생각했다. 하하. 그게 성장의 은유적인 표현이었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수셰프, 경모(이학주), 은희(신혜선)까지 모든 캐릭터가 아름다운 성장을 했다.
Q. “모든 캐릭터가 아름다운 성장을 했다.” 꽤 인상 깊은 말이다. 임주환은? 임주환은 굉장한 악역이었다.
조정석 : 최 경장(임주환)도 마지막엔 자신의 죄를 뉘우쳤지. 물론 괴로워서 자살 시도를 했지만. 근래 볼 수 없었던 최고의 악역이었다. 그걸 주환이가 해냈다. 워낙 잘하는 친구였지만 이번엔 고민도 많이 하고, 연구도 많이 했다. 고민의 결과가 매우 훌륭했다. 최 경장 캐릭터는 작가님이 만들어주셨지만, 주환이 연기력 아니고서야 어떻게 15회까지 호흡을 이끌 수 있었겠는가. 이번 드라마를 통해 주환이 매력을 시청자분들이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Q. 그럼 조정석이란 배우는 이번 작품을 통해 어떻게 성장했나?
조정석 : 음,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는 배우로 성장했다고나 할까? 하하. ‘오나귀’하면서 다음 작품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늘어났다.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커졌다. 기대도 없으면 관심도 없겠지.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배우가 돼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 조정석이란 배우의 길이 구체적으로 변화하게 된 것 같다.
Q. 그러고보니 작품을 오래 쉬지 않는 것 같다. 쉼 없이 도전했다. 분명 쉬고 싶을 때도 있을 텐데.
조정석 : 쉬고 싶지. 하하. 좋은 시나리오가 있으면 ‘쉴까, 할까’ 계속 고민한다. 결국 하는 쪽을 택하지만.(웃음) 알차게 쉬진 못하지만 하루, 이틀 씩은 쉬고 있다. 9월엔 길게 쉴 예정이다. 가족여행 갈 거다. 그 놈의 가족여행, 4년 전부터 ‘간다, 간다’ 해놓고 한 번도 못 갔다. 이번엔 진짜 가야지. 하하.
Q. 영화, 드라마, 뮤지컬. 모두를 소화하고 있다. 같은 연기지만 엄연히 다른 분야다. 연기하는 방식도 다르고.
조정석 : 솔직히 차이점은 그다지 없다. 굳이 꼽자면, 공간의 차이? 영화, 드라마, 뮤지컬을 극장으로 비교하면 소극장, 중극장, 대극장으로 볼 수 있다. 소극장에서 쩌렁쩌렁하게 “안녕하십니까”(뮤지컬 톤)라고 안하잖아. 하하. 이런 기술적 이해만 있다면 연기는 다르지 않다.
Q. 뮤지컬은 작년 ‘블러드 브라더스’가 마지막 작품이었다. 새로운 뮤지컬 계획은 없나?
조정석 : 내년엔 무조건 할 거다. 꼭. 빨리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 무대에 대한 애정이 깊다.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매년 한 작품씩은 하려고 노력한다. 또, 무대에 선 나를 그리워하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꾸준히 작품할 예정이다.
Q. 영화 ‘형’의 촬영을 앞두고 있다. 거침없이 쭉쭉 나아간다. 작품 고르기도 쉽지 않을 텐데. 자신만의 작품을 선별하는 기준이 있는가?
조정석 : 내 기준은 늘 똑같다. 감독님, 작가님, 상대 배우도 모두 중요하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시나리오가 재밌어야 한다. 이야기가 나에게 흥미를 주느냐, 안주느냐가 관건이었다.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열의도 안 생기니까. 영화 ‘형’이란 작품도 흥미로웠기 때문에 선택했다. 매력을 느꼈다. 지금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Q. ‘오나귀’란 작품이 끝나고 시간이 지났다. 강선우를 쉽게 떠나보낼 수 있겠는가?
조정석 : 원래 작품을 끝내면 역할을 잊으려고 노력한다. 그게 잘 안 되는 편이지만.(웃음) ‘오나귀’ 선우는 천천히 두고 싶다. 지금은 기운을 즐기며 천천히 보내고 있다.
Q. 마지막으로 선우에게 한 마디 해 달라.
조정석 : 고맙고, 멋있었다. 참 멋있었다.
한혜리 기자 hyeri@
사진. 와이트리컴퍼니
영화 ‘건축학개론’ 납득이가 ‘로코킹’이 되다니. 능청스런 조정석이 로맨스 중심에 존재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종합편성채널 MBN ‘왓츠 업’에선 무대공포증의 소심한 병건이로, MBC ‘더킹 투하츠’에선 희생을 자처하는 은시경으로. “배우는 역할을 내 옷처럼 만들어야 한다.”라는 그의 말처럼 쉬지 않고 옷을 갈아입었다. 납득이로 스타덤에 올랐을 때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꾀했다. 그가 이번엔 케이블채널 tvN ‘오 나의 귀신님(이하 오나귀)’에선 까칠하면서도 다정한 셰프 강선우로 분했다. 이 남자가 이렇게 로맨틱할 줄이야. 상대 여배우를 바라보는 극 중 조정석의 눈에서는 요즘 말로 꿀이 떨어졌다. 그만큼 다정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드라마가 종영하고 로맨스를 되새기면서도, 그는 시원한 호선을 그리는 미소와 함께 눈에 꿀을 담았다. 로맨틱 선우를 복기하는 시간도 부족하건만, 조정석은 영화 ‘형’으로 또 다른 변신을 예고했다.
Q. ‘오나귀’를 통해 ‘로코킹(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왕)’으로 등극했다. 많은 여성들의 ‘워너비 셰프’가 됐는데, 기분이 어떤가?
조정석 : 기분 완전 좋다. 하하. 사실 ‘로코킹’이란 수식어 자체도 과분하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수확이지 않을까. 내가 ‘로코킹’이라니, 이게 웬 말인가. (웃음)Q. 능청스런 모습이 제격이었다. 자기 옷을 입은 느낌?
조정석 : 그런 얘기 들으면 기분 좋다. 배우는 역할을 내 옷처럼 만들어야 한다. 캐릭터는 작가님이 만들지만, 배우의 몸을 통해 표현된다. ‘오나귀’ 선우 역시 조정석이란 배우의 몸을 매개체로 나온 캐릭터다. 내 몸과 선우를 맞추려 노력했다.
Q. 폭풍 애드리브도 능청스러움에 한 몫 하지 않았나.
조정석 : 많이 오해하시는데, 사실 애드리브는 별로 없었다. 거의 다 대본에 있는 상황이었다. 대본이 생각보다 촘촘했다. 예를 들어 마지막 회에서 내가 봉선이(박보영)를 유학 보내면서 목걸이를 걸어주는 신이 있었다. 그때 내가 애드리브처럼 봉선이를 무릎에 앉히고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이게 다 지문에 있는 내용이었다. 아주 사소한 내용까지. 가끔 주어진 상황이 끝난 후에도 감독님이 ‘컷’을 안하실 때가 있었다. 그땐 애드리브 들어가는 거지. 감독님은 그걸 방송에 쓰시더라.(웃음)
Q. 방금 말한 그 신에서 선우가 나봉선을 무릎에 앉혀놓고 “감정이 격해져서 그래”라면서 울었다. 이건 애드리브였나?
조정석 : 하하. 애드리브였다. 선우를 연기하는 나였던 거지. 대본에는 “감정이 격해졌어” 이 전까지만 써 있었다.
Q. 까칠함부터 ‘능청’까지, 모든 모습을 다 보여줬다.
조정석 : 나만의 법칙이 있었다. 주방에서의 룰? 그러니까 ‘주방에서 강선우는 이럴 것이다’ 이런 거. 머릿속에서 계산 하고 있었다. 주방 밖에서 선우는 질투도 많고, 소심하기도 한 캐릭터다. 버럭하는 모습은 약점을 감추기 위한 자기 방어였지. 초반엔 주방 신이 많아서 버럭하고 까칠한 모습을 보여줬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봉선이랑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후반부로 갈수록 ‘버럭’이 ‘능청’으로 바뀌더라.
Q. 봉선 때문에 선우가 부드러워진 거겠지? 연인이 되고 난 다음부터 두 사람은 정말 ‘달달’했다. 실제 연인이 질투 났을 법도 했겠다. (웃음)
조정석 : 하하. 그런 건 전혀 없었다. ‘그 친구’도 ‘오나귀’ 애청자였다. 고맙게도 늘 응원해줬다. 갑자기 조심스러워진다.(웃음)Q. 그만큼 박보영과 ‘케미(호흡)’가 살았다. 시청자가 보기에도 호흡이 잘 맞는 느낌이었다.
조정석 : 보영 씨는 진짜 연기를 잘하는 친구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스럽고. 같이 작업하면서 느꼈는데 연기에 있어선 강단이 있더라. 멋있었다. 보영 씨랑 연기하면서 어려웠던 건 키스신이었다. 보영 씨가 작품에서 첫 키스신이었다. 상대 여배우가 첫 키스신이라는 게 꽤 부담되더라. 내가 긴장 많이 했다. 보영 씨도 눈치 챈 것 같았다. 하하. 그래도 막상 해보니 생각한 그림대로 잘 나왔다.
Q. 그렇게 달달 했으면서 초반엔 굉장히 까칠했다. 내내 냉정하게 굴다, 딴 사람처럼 로맨틱하게 변했다. 봉선에게 마음 돌린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
조정석 : 음, 7화 메밀전 데이트 할 때? 그때였던 것 같다. 선우가 빙의되지 않은 봉선을 처음 만났다. 사실 선우는 연민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봉선에게 애정이 있었다. 봉선에게 유독 소리치고 혼냈던 건, 예전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였겠지. 순애가 빙의되면서 봉선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점점 성장하는 봉선을 보면서 매력을 느꼈다. 빙의는 과정이었을 뿐, 선우는 성장한 쭈구리 나봉선을 사랑했다.
Q. 실제로 들이대는 여자는 어떤가?
조정석 : 그렇게 들이대면 이상하지 않을까. 안달난 것 같은? 좀 야하다. 하하. 게다가 보영 씨나 슬기 씨같이 예쁘고 사랑스러우면 더 이상할 것 같다. 그래서 선우도 초반에 당황했겠지. 결국 더 좋아하게 됐지만.(웃음)Q. 로맨스도 주목받았지만, ‘브로맨스’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수셰프(강기영)과 함께할 땐 코믹연기가 폭발하는 것 같았다. 뭔가 시너지효과 같은 느낌?
조정석 : 하하하. 수셰프랑은 너무 웃어서 NG를 많이 냈다. 왜 그렇게 웃겼는지 모르겠다. 가만히 얼굴만 봐도 웃기더라. 희한하게 기영 씨는 수셰프 옷만 입으면 웃기더라. 기영 씨가 순간 몰입도가 굉장히 좋았다. 참 근면한 배우였다. 뭐든지 열심히 했지. 기영 씨는 배우로서 타고난 끼와 재능도 뛰어났지만, 거기에 성실함까지 더했다. 앞으로 더 좋은 역할이나 작품으로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을 것 같다.
Q. ‘오나귀’ 시놉시스를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은 어땠나? 흥행할 것을 예상했나?
조정석 : 시놉시스 첫 줄만 읽었는데도 호감이 가더라. 처녀귀신이 빙의하고, 사랑에 빠지고…엄청난 매력을 느꼈다. 소재 자체가 재밌었으니까. 촬영하기 전부터 기대를 많이 했었다.Q. 제작발표회 당시 유제원 감독 연출에 만족스럽다는 말을 했다. 연출에 대한 믿음이 커 보였다.
조정석 : 개인적으로 나는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인정받기 전, 동료들에게 먼저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력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인간적인 면모를 더 크게 여긴다. 그런 점에 있어서 유제원 감독님은 실력뿐만 아니라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다. 위트 있고 귀엽기도 하고 또, 일할 땐 천재적이고. 다방면으로 갖춘 사람이었다. 그래서 연출을 잘하나? 하하. 유제원 감독님은 배우가 맘껏 날 수 있게 만들어줬다. 그게 되게 좋았다. 드라마 제작 여건 상 시간이 없어 빨리 빨리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편하게 연기 할 수 있게 멍석을 잘 깔아줬다. 그래서 믿고 잘 따를 수 있었다.
Q. 영화 같은 연출이 유제원 감독의 큰 특징이었다. 배우로서 그런 점도 만족스러웠을 거 같은데.
조정석 : 우리 티저에서 감독님의 영상 특징이 잘 나타났다. 그때가 촬영 초반이었다. 테스트 촬영이었는데 어느 샌가 TV에 나오더라. 하하. 사실 유제원 감독님 ‘고교처세왕’도 재밌게 봤다. 그 작품을 보고 ‘오나귀’ 출연을 결심했지. 굉장히 인상 깊었던 게, 이하나 씨랑 서인국 씨가 숲 속에서 쭉 걸어오면서 대화하는 장면이 있었다. 드라마에선 잘 볼 수 없었던 롱테이크 신이었다. 연출가로선 굉장히 용기있는 선택이었다. 그게 참 멋있었다. 또, ‘오나귀’ 마지막 회에서도 순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려고 할 때 아버지 얼굴을 안보여주고 오로지 순애 감정으로만 몰아붙인다. 굉장히 고급스런 연출이라 생각했다.
Q. 대본과 조정석이란 배우의 합이 잘 맞았던 것 같았다. 양희승 작가는 코믹에 강한 사람이다. 시트콤도 했었고. 그런 점이 조정석과 잘 맞지 않았나.
조정석 : 종방연 때 작가님께 다음 작품은 뭘 하시든지 불러만 주시면 하겠다고 말했다. 하하. 그만큼 작가님 대본이 미치도록 좋았다. 작가님은 부족했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건 진짜 겸손의 말씀인 것 같다.(웃음) 작가님이 코믹스런 장면도 잘 써주셨지만, 드라마 전체의 그림을 잘 짜주셨다. 전체 이야기를 풀면서 개인의 삶까지 조명해주셨다. ‘오나귀’는 사실 성장드라마였다. 선우가 마지막 회에서 청소기를 구입했다. 과거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가 파는 청소기였다. 친구를 용서한거지. 봉선이 같은 경우는 마지막회 키스신에서 “한 번 더 해도 돼요?”라고 물었다. 속으로 ‘나랑 또 키스를 하고 싶은가?’라고 생각했다. 하하. 그게 성장의 은유적인 표현이었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수셰프, 경모(이학주), 은희(신혜선)까지 모든 캐릭터가 아름다운 성장을 했다.
Q. “모든 캐릭터가 아름다운 성장을 했다.” 꽤 인상 깊은 말이다. 임주환은? 임주환은 굉장한 악역이었다.
조정석 : 최 경장(임주환)도 마지막엔 자신의 죄를 뉘우쳤지. 물론 괴로워서 자살 시도를 했지만. 근래 볼 수 없었던 최고의 악역이었다. 그걸 주환이가 해냈다. 워낙 잘하는 친구였지만 이번엔 고민도 많이 하고, 연구도 많이 했다. 고민의 결과가 매우 훌륭했다. 최 경장 캐릭터는 작가님이 만들어주셨지만, 주환이 연기력 아니고서야 어떻게 15회까지 호흡을 이끌 수 있었겠는가. 이번 드라마를 통해 주환이 매력을 시청자분들이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Q. 그럼 조정석이란 배우는 이번 작품을 통해 어떻게 성장했나?
조정석 : 음,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는 배우로 성장했다고나 할까? 하하. ‘오나귀’하면서 다음 작품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늘어났다.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커졌다. 기대도 없으면 관심도 없겠지.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배우가 돼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 조정석이란 배우의 길이 구체적으로 변화하게 된 것 같다.
Q. 그러고보니 작품을 오래 쉬지 않는 것 같다. 쉼 없이 도전했다. 분명 쉬고 싶을 때도 있을 텐데.
조정석 : 쉬고 싶지. 하하. 좋은 시나리오가 있으면 ‘쉴까, 할까’ 계속 고민한다. 결국 하는 쪽을 택하지만.(웃음) 알차게 쉬진 못하지만 하루, 이틀 씩은 쉬고 있다. 9월엔 길게 쉴 예정이다. 가족여행 갈 거다. 그 놈의 가족여행, 4년 전부터 ‘간다, 간다’ 해놓고 한 번도 못 갔다. 이번엔 진짜 가야지. 하하.
Q. 영화, 드라마, 뮤지컬. 모두를 소화하고 있다. 같은 연기지만 엄연히 다른 분야다. 연기하는 방식도 다르고.
조정석 : 솔직히 차이점은 그다지 없다. 굳이 꼽자면, 공간의 차이? 영화, 드라마, 뮤지컬을 극장으로 비교하면 소극장, 중극장, 대극장으로 볼 수 있다. 소극장에서 쩌렁쩌렁하게 “안녕하십니까”(뮤지컬 톤)라고 안하잖아. 하하. 이런 기술적 이해만 있다면 연기는 다르지 않다.
Q. 뮤지컬은 작년 ‘블러드 브라더스’가 마지막 작품이었다. 새로운 뮤지컬 계획은 없나?
조정석 : 내년엔 무조건 할 거다. 꼭. 빨리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 무대에 대한 애정이 깊다.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매년 한 작품씩은 하려고 노력한다. 또, 무대에 선 나를 그리워하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꾸준히 작품할 예정이다.
Q. 영화 ‘형’의 촬영을 앞두고 있다. 거침없이 쭉쭉 나아간다. 작품 고르기도 쉽지 않을 텐데. 자신만의 작품을 선별하는 기준이 있는가?
조정석 : 내 기준은 늘 똑같다. 감독님, 작가님, 상대 배우도 모두 중요하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시나리오가 재밌어야 한다. 이야기가 나에게 흥미를 주느냐, 안주느냐가 관건이었다.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열의도 안 생기니까. 영화 ‘형’이란 작품도 흥미로웠기 때문에 선택했다. 매력을 느꼈다. 지금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Q. ‘오나귀’란 작품이 끝나고 시간이 지났다. 강선우를 쉽게 떠나보낼 수 있겠는가?
조정석 : 원래 작품을 끝내면 역할을 잊으려고 노력한다. 그게 잘 안 되는 편이지만.(웃음) ‘오나귀’ 선우는 천천히 두고 싶다. 지금은 기운을 즐기며 천천히 보내고 있다.
Q. 마지막으로 선우에게 한 마디 해 달라.
조정석 : 고맙고, 멋있었다. 참 멋있었다.
한혜리 기자 hyeri@
사진. 와이트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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