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가요계는 총성 없는 전쟁터다. 그만큼 치열하다. 수많은 생존 전략이 난무하고 다양한 흥행 작전들이 이뤄진다. 너도나도 승리의 깃발을 탐하며 전쟁의 중심터로 달려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팬덤이 약한 여가수들에게 허락되는 구역은 기껏해야 전장 변두리 정도.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으니, 가수 린의 사례가 그러하다.

# 그 여자의 첫 번째 생존법, 피처링과거 한 음악프로그램에서 린은 말했다. “피처링으로 참여한 노래들만 모아도, 앨범 한 장은 낼 수 있을 거예요.” 그 때가 2007년이니, 지금은 피처링 곡들로 앨범 석 장 쯤은 채울 수 있겠다. 그만큼 많은 가수들이 린의 보컬을 원한다. 이유야 간단하다. 성적이 좋으니까. 증거도 명백하다. 린이 피처링한 MC몽의 ‘너에게 쓰는 편지’는 두 가수 모두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줬다.

그간 린은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과 입을 맞췄다. 에픽하이, CBMASS, 김진표 등의 힙합 가수들부터 바이브, 노을과 같은 발라드 가수, 김태우, 휘성 등의 소울 보컬과도 호흡했다. 심지어 김준수, 빅스 레오, 신화 등 아이돌 가수들의 앨범에서도 린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모든 곡이 히트한 건 아니지만, 모든 곡에서 린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덕분에 힙합 팬들도 린을 알고, 아이돌 팬들도 린을 안다. 높아진 게 어디 인지도뿐이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린의 음악적 스펙트럼도 함께 넓어졌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그 여자의 두 번째 생존법, OST

‘피처링의 여왕’으로 명성을 떨치던 린은, MBC ‘해를 품은 달’을 계기로 ‘OST의 여왕’ 자리에 오른다. 당시 그가 부른 ‘시간을 거슬러’는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상당한 히트를 기록했다. OST로는 이례적으로 음원 차트 1위도 차지했다. 이듬해 방송된 SBS ‘별에서 온 그대’는 더하다. 당시 린이 부른 OST ‘마이 데스티니(My Destiny)’는 무려 8개 음원차트를 올킬했다.

린의 고공행진은 단순히 음원에서 그친 게 아니었다. ‘별에서 온 그대’가 중화권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린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는 중국의 시상식 및 축제에 초청받아 무대에 올랐고 중국판 ‘나가수’에서도 더원과 호흡을 맞췄다. 그리고 지난 8월에는 휴맵컨텐츠와 계약을 맺고 중국 진출에 더욱 힘을 쏟았다.# 그 여자의 세 번째 생존법, 변화

아이러니하게도, 린이 히트할수록 새 앨범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잇따른 성공 뒤, 대중이 린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어느 정도 빤해진 시점도 있었을 것이다. 쉽게 말해 ‘시간을 거슬러’ 파트2 내지는 ‘마이 데스티니’ 파트2 나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던 상황이다. 그러나 린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 9일 발매된 ‘9X9th’는 세 가지 키워드로 설명된다. 월드뮤직, 집시, 재즈. 마이너 코드로 진행되는 타이틀곡 ‘사랑은 그렇게 또 다른 누구에게’에서는, 월드뮤직의 전통적인 악기와 주법이 재현됐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심수봉이나 이미자의 느낌도 난다. 월드뮤직의 색채에 가장 한국적인 한(恨)의 정서를 덧입히는 것. 린이 아니면 누가 또 할 수 있을까.가장 놀라운 것은 흥행성적이다. 앨범 발매 하루가 지난 10일 기준, 타이틀곡 ‘사랑은 그렇게 또 다른 누구에게’는 엠넷, 몽키3에서 실시간 차트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소리바다에서는 3위, 올레뮤직에서는 4위다. 이는 거대한 팬덤 없이 이뤄낸 성과이기에, 또 다소 낯선 장르로서의 도전이 이뤄낸 성과이기에 더욱 의미 깊다.

이세진으로 활동했던 시절까지 더한다면, 어느덧 데뷔 15년차다. 성적이 저조해 활동을 접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믿고 듣는 가수가 됐다. 린의 생존법은 그녀를 완생에 이르게 했으니. 후배 가수들이여, 보라.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뮤직앤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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