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수정 기자]

구혜선이 두 번째 뉴에이지 앨범 ‘숨2’를 발표했다. 무려 6년만이다. 하지만 놀랍지 않았다. 구혜선은 그동안 영화감독, 전시회 개최, 소설 출판 등 정말 다양한 활동을 펼친 인물이니까. 대신 그에 따른 무수한 색안경도 많았다. 노래가 아닌 연주곡 위주로 발표하는 이유, 연기력 논란 등등 구혜선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구혜선의 음악은 그 이야기가 무색하리만치 편안했다. 눈을 감고 들으면 다양한 그림이 펼쳐지는 듯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제목에 꼭 들어맞는 알맞은 음악 퍼즐이 또 다른 재미를 줬다. 편견 없는 열린 마음이 주는 즐거움이었다. 구혜선과의 인터뷰도 그랬다. 오로지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음악이야기는 곧 사람이야기가 됐다.

Q.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 소감이 어때요?
구혜선 : 소감이요? 소감을 생각하진 못했어요. 하하. 음.. 편해진 거 같아요. 털어버린 거 같아요.Q. 6년 만에 새 앨범이에요. 얼마동안 준비했나요?
구혜선 : 틈나는 대로 만들었던 곡들이에요. 만든 지 시기가 좀 된 노래들이 있어요. 3년 된 것도 있고, 5년 된 것도 있고.. 만들었던 곡 중에 버릴 곡은 버리고, 조금 다듬을 건 다듬었어요.

Q. 또 앨범을 낸다고 하니 회사 반응은 어땠나요?
구혜선 : 다 만들어놓고 내겠다고 보고를 드렸어요. 1집보다는 풍성하게 했고, 창피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회사에서도 날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겠지… 어차피 회사 색깔과는 전혀 다른 장르이니까요. 회사에는 ‘또 쟤가 뭘 했구나’라고 생각하세요.

Q. 너무 오랜만이에요. 지금 나올 준비가 됐다고 생각한 건가요?
구혜선 : 음.. 한가해서요? 하하. 작품 계획이 있거나 촬영 중이었으면 조금 더 미뤘을 거예요. 원래는 ‘블러드’가 끝나고 4월쯤에 발표하고 싶었어요. ‘사월’이라는 곡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 ‘사월’이 4월이 아니라 죽을 사(사)를 쓴 ‘사월’이에요. 시기가 안 맞아 ‘십년이 백년이 지난 후에’로 타이틀 곡을 바꿨어요. 힘들 때마다 한 번씩 듣는 음악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Q. 타이틀곡 ‘십년이 백년이 지나 후에’는 영화 ‘복숭아나무’ OST를 다시 재편곡했네요.
구혜선 : 네, 오케스트라와 다시 한 건데 그때는 음악이 동요 같은 느낌이었고, 원곡 느낌에서 벗어나게 녹음됐어요. 이번엔 원곡 느낌을 살려서 자연 느낌을 내고 첼로 선율을 넣었죠.

Q. 이미 한 번 공개했던 노래를 재편곡해 앨범 타이틀로 정해서 궁금했어요.
구혜선 : 아무도 그 곡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전혀 상관없었어요. 하하. 사실 그 노래만 유일하게 코드가 변해요. 변주가 되는 곡이에요. ‘나도 이런 곡을 만들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을 했던 곡이에요. 또, 검정 건반을 시도한 음악이 처음이에요. 편곡이 완성됐을 때 편안하게 들렸어요. 그렇다고 기승전결이 없는 음악도 아니에요. 잔잔하게 시작했다가 색깔이 여러 가지로 변하고, 가장 계절을 많이 담았어요. 원래 슬픈 가사도 있던 음악인데 그 느낌도 많이 와 닿았어요. 제가 만든 곡이지만 좋은 것 같아요. 하하.Q. 뮤직비디오도 인상깊었어요. 영어 자막도 흐르고.
구혜선 : 영상 자체가 돈이 많이 든 게 아니에요. 그냥 제가 셀카로 찍었는데 되게 타이트게 앵글을 잡았어요. 스토리도 없는데 만약 스토리가 있으면 곡을 감상할 때 너무 내용을 따라가는 것 같았어요. 귀, 목선 등으로 여성성을 보여주려고 했었어요. 목선 장면이 나왔을 때는 그게 엉덩이인 줄 알았다는 분들도 있었어요. 하하. 너무 타이트하게 잡아서 폰트라도 넣어야 할 거 같아서 모르는 말 좀 썼어요. 하하. 올드 필름 같은 걸 쓰고, 쨍한 느낌이 나는 게 슬프게 보였어요. 영상 편집하는 재미도 있었어요.

Q. 가사가 없으니 스스로 해석하는 재미도 있었어요.
구혜선 : 상상할 수 있는! 뮤직비디오는 가사가 없어서 몰입하기가 힘들기도 해요. 귀가 더 열리게끔 노력을 했어요.

Q. 수록곡 ‘사월’에만 가사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구혜선 : 음이 안 높아요. 하하. 편안하게 부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예전에 ‘덕혜옹주’ 시나리오 작업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쓰려고 음악을 만들었는데 주인공에 대입해서 계절의 쓸쓸함을 담으려고 했어요. 3년 전이에요. 지금 시대와는 다른 조금 아날로그한 가사죠.

Q. 보통 제목을 짓고 음악을 만드나요. 다 만든 음악에 제목을 짓나요?
구혜선 : 음악을 만들고 제목을 떠올려요. 이번 앨범에는 제가 안 지은 제목도 있어요. 어떤 제목이 어울릴 것 같은지 같이 이야기해서 딱 느낌이 오는 걸로 골라요.

Q. 특별한 시상 없이 음악을 만든다면 영감이 두루뭉술하게 올 텐데요.
구혜선 : 네, 자연이나 경치르 봤을 때 느낌이 두루뭉술하게 와요. 사랑 이야기 같은 경우는 유치한 가사가 많잖아요. 저는 계절을 많이 담아서 그런지 뉴에이지란 장르가 잘 맞는 것 같아요. 정확한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상상, 명상을 유도하는 거예요. 제가 지은 제목 중에는 ‘사월’이 제일 분위기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제목 짓기가 너무 어려워요. ‘사라지다’같은 건 무슨 제목을 정할지 몰라서 그냥 ‘사라져라’는 뜻을 담았어요. 하하. 예전에 처음 전시를 했을 때도 작품들 제목이 다 ‘무제’였어요. 그러니까 제목을 지어달라고 그러시더라고요. 제목 짓는 연습을 좀 하고 있어요.Q. 그런데 모든 곡을 편곡한 최인영 씨는 어떤 분이세요?
구혜선 : 최인영 씨는 처음부터 계속 작업하는 프로듀서예요. 제가 항상 두서없이 만들어놓으면 편곡을 해주세요. 마치 제가 그림을 그려놓으면 그것을 실현시키는 분이시죠. 영화 같은 경우에 감독의 연출만 있는 게 아니라 카메라가 담고 배우들이 연기를 해야 하잖아요. 일종의 제가 감독이라면 그 분은 배우가 된 느낌이에요. 전 연주자가 아니에요. 그 분이 누구보다 저를 알고, 성격이 비슷해서 잘 맞아요.

Q. 정말 끈끈한 사이일 것 같아요.
구혜선 : 의리도 있고, 우정도 있어요. 예전에는 작업실이 아파트였어요. 일산에 있는 아파트가 작업실이었는데 작업을 하러 가면 간혹 오해를 받았어요. 아파트에 작업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잘 못하니까요. 남자친구라는 오해도 받을 뻔했는데 우리 둘을 보면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아, 그 분 결혼도 하셨어요. 아파트에 스튜디오 간판도 달고 녹음 부스, 방음 장치도 모두 설치해 놨어요. 매니저랑 같이 갔을 때 매니저가 “아파트 안에 이런 녹음실이?”라면서 놀랬어요.

Q. 편곡하면서 처음 구상과 달라졌던 곡이 있나요?
구혜선 : 유일한 공동작곡인 ‘달빛’이란 곡이에요. 편곡할 때 최인영 씨가 의견을 주셔서 원래 멜로디라인에서 벗어나게 편곡됐어요. 그 음악이 정말 좋았어요. 공동작곡으로 인정해야 해요.

Q. 비교적 뚝딱 만들어진 노래가 있다면요?
구혜선 : 음…. 한 번 녹음하고 그게 끝난 곡이 ‘요술’이에요. 제가 실제 피아노를 친 노래인데 술을 많이 마시고 연주했던 노래에요. 지금은 술을 끊었는데 그때 피아노 연주도 엉망인데 효과음을 넣으니까 못 쳤는데도 그럴싸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진짜 즉흥곡이죠. 영화 ‘요술’을 만들 때 배경음처럼 만들려고 했는데 날 것 그대로 담았어요.

Q. 직접 연주해서 녹음할 때가 많나요?
구혜선 : 연주를 잘 못해요. 백번 연습해서 녹음해 드려요. 그래도 못해요. 연주자가 하는 디테일의 감성이 달라요. 깔끔해져요. 제가 연주하면 지저분해요. 하하.





Q. 구혜선이 노래를 정말 잘하는데 연주곡만 발표하는 이유가 무대공포증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구혜선 : 소문 아니고 사실 같아요. 하하. 저는 라이브 공포증 같아요. 녹음이나 녹화는 틀려도 된다는 생각을 하면 편한데 무대는 돌이킬 수 없잖아요. TV 인터뷰도 편집된 것은 아닌데 라이브는 말이 무서워요.

Q.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건가요?
구혜선 : 완벽하지 않은데 완벽주의 성향만 있어서 어색해지고 딱딱해져요. 하하. 놀지 못하고 세팅돼 있다고 보세요. 그렇다고 완벽한 건 아니에요. 표현을 열심히 하는데 항상 전달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음악은 완성을 해서 보여 주는 것이니까 편해요. 무대는 내가 완성품이 되야 하니까요. 노래하는 구혜선은 잊어주세요. ‘사월’은 비교적 빨리 녹음한 편이에요. 노래를 한다기보다 말하는 것처럼 가사를 전달하는 게 컸어요. 노래한다는 생각을 안하니까 바이브레이션 없이 풋풋한 느낌이 생겼어요.

Q. 소설가, 영화감독, 전시회 개최 등 여러 가지를 도전을 하는데 보통 하나만 잘하라는 비판도 있긴 해요. 그럼에도 비판을 무릅쓰고 도전하는 원동력이 뭔가요?
구혜선 : 자유! ‘난 자유야’라는 생각이요. 어떤 사람의 어떤 자유를 침해할 권리는 없잖아요. 윤리는 있지만, 침해할 권리는 없어요. 분산되는 느낌 때문에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어중간하고 두루뭉술한 사람 같아요. 밥은 꼭 김치랑만 먹어야 하고, 잠은 12시에 꼭 잘 수 있는 게 인생이 아니잖아요. 누구도 그 인생을 뭐라 할 수가 없어요. 완성도에 대한 비판도 그런 것 같아요. 1등은 한 명뿐이고, 나머지는 그런 건데..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들을 만들어내는 어중간한 것의 힘이 크다고 생각해요. ‘어중간함’이 자유를 주고 버티는 힘이 있어요. 확고하게 하면 고집이 되고, 아집이 돼요. 애매모호함을 지키면서 여러 가지를 받아들일 마음을 열어가면서 되는 것 같아요. 답이 없이 자유롭게! 내가 이 행동을 해서 이 결과가 나온 게 아니라 이 결과는 이미 벌어질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편해진 것 같아요. 그래야 내일을 살 수 있어요. 어렸을 때나 과거에 연연하면 트라우마에 갇혀 살아요. 과거가 지금 나를 만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건 핑계 같아요. 빨리 잊어버리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해요.

Q. 어려 가지 장르에 도전을 하는 것도 내일을 살기 위함이군요.
구혜선 : 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에너지도 넘쳤었고, 오늘도 살아야 내일이 오고, 내일도 살아야 그 다음 내일이 와요. 사람들은 항상 뉴 아이템을 원해요. 휴대폰을 매번 바꾸는 것처럼 싫증을 느끼고, 나한테도 싫증나는 순간이 오잖아요. 인간이란 동물 자체가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것 같은데 지우고 기록하고 반복인 것 같아요.







Q. 예전 인터뷰에 어렸을 때 생각한 목표와 꿈은 현실화시킨 것 같다고 했어요. 새로운 꿈이 있나요?
구혜선 : 꿈은 항상 이루지 못하는 것들을 꿈꿔요. 현실화를 이야기했지만, 그것도 타협을 본 현실화에요. 요정도면 잘한 것 같다! 매일 매일 꿈이 달라져요. 꿈을 꾸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환상이 없으면 살수가 없는 거죠. 그래야 싫증이 나지 않아요. 꿈꾸지 않은 인생이 얼마나 쓸쓸한가요. 어차피 끝이 똑같다면 마음 편한 쪽으로 가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이 세상은 아름다웠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제일 행복한 사람이죠.

Q. 마지막으로 행복한 삶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내볼까요?
구혜선 : 하하. 음.. 뭐라고 할까요? 용서해줄게. 다시 살자. 또 잘 살자. 또 잘 살아가보자. 돌이킬 수 없으니 앞만 보자!

박수정 기자 soverus@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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