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시양

[텐아시아=이정화 기자] 말끝엔 가끔 애교가 묻어났다. 눈을 구기며 웃을 땐 마냥 어린아이 같아 보이기도 했다. 얼마 전 종영한 Mnet 뮤직드라마 ‘칠전팔기 구해라’에서 ‘감정불합격자’ 강세종을 연기한 곽시양은 극중 인물과는 달랐다. 밝고, 활기찼다. 대신, “(어린 시절의) 그 시기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한층 성숙해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고 말하던 순간에 스치던 진지한 얼굴은 세종의 것과 많이 닮아 있었다.
영화 ‘야간비행’을 시작으로, 드라마 ‘기분 좋은 날’을 거쳐 ‘칠전팔기 구해라’로 배우로서의 아침을 맞이한 그는 이야기의 마지막에 “제일 뜨거운 때로 올라가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에서 몇 번의 크고 작은 굴곡을 겪으며 연기를 시작한 그이기에 더욱 치열하게 자신만의 빛을 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눈부시게 빛나는 저 하늘 위 태양처럼.

Q. 얼마 전에 빅스 콘서트(곽시양은 빅스 맴버 홍빈과 ‘기분 좋은 날’에 출연했다)를 다녀오지 않았나. 어땠나. ‘칠전팔기 구해라(이하 칠전팔기)’를 찍은 후라 무대가 좀 다르게 보였을 것도 같은데.
곽시양 : 드라마를 하고 난 후라 그런가, 보는 시점이 달라졌다. ‘내가 저 무대에 선다면 어떤 걸 하는 게 좋을까’라는 것도 생각하게 되고, ‘아, 이런 연출도 가능하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콘서트를 끝까지 봤는데, 재미있더라.Q. 드라마 속에선 직접 노래도 부르고 댄스도 했다.
곽시양 : 춤은 생각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 칼군무가 그렇게 힘든 건 줄 몰랐다. 으허허. 숨도 차고, 각도 잘 안 나오고… 어려웠다.

Q. 키가 커서 안무를 할 때 더 힘들었을 수도 있다.
곽시양 : 다리도 더 펴야 하고, 몸도 확 숙여야 하고! 하하. 내가 한 걸 TV로 보는데, 말도 못하게 부끄러웠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저 정도로밖에 안 나오나 싶기도 했고. 그래도 한 회 한 회 거듭하면서 조금씩 늘어가는 게 보여 그나마 다행이었다. 스태프들도 처음엔 “고생했어” 정도로만 얘기했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늘었는데~” 라고 해줬다. 기분 좋았다.

Q. 아무렴, 1만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인재인데!
곽시양 : 그런데, 강세종 캐릭터의 경쟁률이 1만 대 1이나 되는지 몰랐다. 메이킹 찍을 때였나, 제작발표회 때인가, 감독님이 이 얘기를 하셔서 “네?” 하고 놀랐지. 내가 대 여섯 번 정도 오디션을 봤었다. 세 번째 정도에 가선 이렇게까지 했는데 떨어지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아서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이 악물고 하게 되더라. 감독님이나 작가님들이 그런 모습을 좋게 봐 주셨던 것 같다.
곽시양

Q. 이번에 강세종을 표현하며 어떤 점이 제일 신경 쓰였나.
곽시양 : 아무래도 감정을 억누르는 게 많이 힘들었다. 빨리 마음을 열어서 (해라에게) 고백을 하고, 뭔가 좀 더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야기의 흐름상 세종이가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으니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었다. 너무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칠전팔기 멤버들에게 빨리 돌아갔다면 재미있는 음악들을 조금 더 같이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봤다. 그곳에서 강세종도 행복감을 함께 느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고. 이건 그냥, 개인적인 바람이었다.

Q. 맞다. 노래를 하며 즐거워하던 칠전팔기 멤버들과 달리, 세종이는 매번 그런 행복감으로부터 배제돼 있었다.
곽시양 : (애교 섞인 목소리로) 없었어요~ 하하.Q. 강세종과 실제 곽시양은 많이 다른가?
곽시양 : 난 애교가 좀 많다. 하하. 되게 활발하고, 자기 감정에 솔직한 편이다. 닮은 부분도 좀 있긴 했다. 투덜투덜대면서도 뒤에서 ‘툭’ 한 번 챙겨주는 거나 집안의 장남으로서 해야 할 것들은 닮았다, 나랑.

Q. 드라마 중간중간, 개구쟁이 같은 표정이 ‘탁’ 튀어 오를 때가 있었다. ‘어라, 장난기가 많나?’ 했다.
곽시양 : 네~ 에헤헤. 나를 잘 캐치하셨다. 하하하.

Q. 그런데, 맡았던 역할들은 줄곧 자신을 꾹꾹 눌러내야 하는 캐릭터였다. ‘야간비행’의 용주도, ‘기분 좋은 날’의 희주도, 이번 강세종도. 감독들이 자신에게서 왜 자꾸 그런 면들을 끌어내는 것 같나?
곽시양 : ‘야간비행’을 찍으신 이송희일 감독님께 “저, 왜 캐스팅하셨어요?”하고 물어봤었다. 그럴 때마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몰라~ 이 새X야” 이러셨거든. 하하. 그런데 한 번은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눈이 되게 슬퍼 보이기도 하고, 눈에 뭔가 생각이 많이 담겨 있는 것 같다고. 사연 많은 눈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 역할들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장난스런 말투로) 인생에 굴곡도 있었고. 하하.Q. 우는 연기는 또 어찌나 슬픈지. ‘칠전팔기’에선 죽은 동생을 생각하며 울고, ‘기분 좋은 날’에서도 서럽게 눈물을 쏟아냈다.
곽시양 : ‘기분 좋은 날’ 42회였는데,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울었는지 모르겠다. 모든 걸 다 쏟아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동안 힘들었던 거, 연기하면서 힘들었던 것들이 갑자기 터졌다. ‘칠전팔기’에선 세찬이가 정말 내 동생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지금도 세찬이 사진만 봐도 울먹울먹할 거 같다.

곽시양

Q. 어렸을 때 대형기획사의 연습생으로 있었고, 그 후엔 모델 활동, 그러다 교통사고가 나서 일을 쉬고, 2010년에 군대에 갔다. 제대 후엔 이송희일 감독이 ‘야간비행’을 같이 하자고 해서 연기를 시작했고, 그 뒤 드라마 ‘기분 좋은 날’에 출연해 지금의 ‘칠전팔기’까지 왔다. 스물 아홉 인생에서 포인트라 말할 수 있을 만한 구간들이 있어 보인다. 그 시간들은 자신에게 어땠던 것 같나.
곽시양 : 그 시기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한층 성숙해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한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때보다는 조금 더 어른스러워졌다. 어렸을 땐 마냥 연예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방황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시간은 가버렸고. 스물 네 살에 군대에 갔는데, 제대할 때쯤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아, 나도 저거 진짜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주인공이나 멋있는 역할이 아니어도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 제대하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하려고 했다.Q. 어떻게 보면 좀 먼 길을 돌아오기도 했으니, 어떤 이유로 배우가 되고 싶었을까, 하는 게 가장 궁금했다. 지금 말하는 걸 들어보면, 군대에서의 시간이 그 생각의 시작이었던 건가 보다.
곽시양 : (그때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Q. 배우를 하는 데에 있어서 힘이 되어준 사람도 있었을 텐데.
곽시양 :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힘이 되었던 분은 (소속사) 대표님과 정만식 선배님이다. ‘기분 좋은 날’을 할 때 첫 브라운관 연기라 많이 헤맸다. 힘들어하고 있을 때 정만식 선배님이 오시더니 “힘드냐?” 그러시는 거다. “아닙니다” 하니, “야, 그거 뭐 어렵게 생각하냐. 어차피 네가 캐스팅 된 거고, 그 역할은 너밖에 못해” 라고 말씀하셨다. ‘그렇지, 희주 역할은 나밖에 못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차츰차츰 자신감도 생기고 용기도 얻었다. 대표님은 내가 이 일을 하기 전에 자주 찾아 뵙던 분이다. 대표님 이런 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런 고민이 있습니다, 하면서 힘들 때마다 의논했다. 제대하고 대표님을 찾아갔을 때, “저, 연기가 너무 하고 싶습니다” 하니, “야, 그러면 살 빼고 와” 라고 하셔서 2주 만에 8키로 정도를 빼고 갔다. 그랬더니 “녀석, 그래도 근성은 있네, 하자” 하셔서 지금의 소속사(스타하우스)에 들어가게 됐다.

Q. 오기가 있는 편인가 보다.
곽시양 : 그런 것 같다. 끈기도 있고. 그때는 어떻게든 해야 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Q. 요즘은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나.
곽시양 : 어떻게 하면 진실되게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누군가 내가 연기하는 걸 보면서 치유를 받거나, 같이 울거나, 한편으론 기분이 좋아지거나 했으면 좋겠다. 그런 연기자가 되고 싶다.

곽시양

Q. 일전에 ‘칠전팔기’에서 사기준 역할을 한 김민재를 만나 얘기를 듣다가 시양 형이 잘 해줬느냐 물으니, “정말 잘 해줬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이건 진짜 안 알려주는 건데, 말하면 안 된다”고 하며 연기적으로 알려준 게 있다고 하더라.
곽시양 : 하하하하하. (민재는) 그런 얘기 왜 한 거야~ 아 그건, 너무 부끄럽다. 나도 아직 한없이 부족한데… 민재가 너무 열심히 해서 내가 아는 부분에선 도와주고 싶었다. 나도 분명 예전에 저랬었는데 하면서. 열정은 넘치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던 때가 많았거든. 내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애틋했다. 알려준 거라고는 딱 두 개밖에 없다. 내가 아는 것도 딱 두 개거든. 하하. 하나는 사기준이 애처럼 보이면 안 되니 뒷말을 흐리지 말라고 했다. “그랬잖아~~” 하면 애 같지 않나. “그랬잖아” 하면 좀 어른스러워 보이고. 그래서 뒷말을 흘리는 게 안 좋은 것 같다 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앗, 이건 말할 수 없다. 이 얘기가 나가면 내 밥줄이 끊어질 것 같다. 하하.

Q. 하하. 그러면,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랑 이번 ‘칠전팔기’는 느낌이 달랐겠다.
곽시양 : 내가 다작을 한 것도 아닌데, 예전 작품들은 너무 부끄러워서 못 보겠다. 지금도 연기할 때 떨리긴 하지만, 그땐 왜 저렇게 많이 떨었지 라는 생각도 들고, 아쉬운 부분도 많다. 물론, 그때는 안 보이던 것들이 지금 와서 보이면 ‘아, 내가 이런 것까지 생각할 수 있는 거 보면 조금씩은 성장해 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은 든다. 아마 이번 연기도 며칠 지나면 ‘왜 저랬지’ 이럴 거다.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어디선가 읽은 건데, 고두심 선생님이셨나. 여태까지 자신이 연기한 걸 한 번도 만족해 본적이 없다라고 하시더라. 나도 내가 해 왔던 작품을 보고 ‘좋았어, 대단했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Q. 그래도 이번에 연기하며 가장 마음에 드는 신이나 연기가 있었을 텐데.
곽시양 : 세찬이가 죽고 나서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가 방에 들어가서 혼자 울 때. 그때 생각하니깐 또… (이 얘기를 하며 곽시양의 눈엔 눈물이 고였다) 그거랑, 레이랑 포장마차에서 술 대작할 때, 그때 좀 재미있었다.

Q. 지금 눈에 눈물이…
곽시양 : 그니깐… 세찬이 생각만 하면… 아, 내가 미쳤나 보다. 인터뷰 하다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일동 웃음)

Q. 그만큼 세찬이가 세종에게 애틋한 존재였던 거겠지.
곽시양 : 세찬이, 진영이가 나한텐 너무나 좋은 동생이었다.

Q. 진영이 연기한 세찬과 레이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다. 진영과 호흡을 맞출 때 기분이 묘했겠다.
곽시양 : 어우, 그럼.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세찬이, 진영이인데, 어느 순간 레이로 ‘탁’ 나타나서 연기하고 있으니 이상하게 서먹서먹했다. 슛 들어가기 전엔 서로 좋아서 장난도 치고 부둥켜 안고 그랬는데, 슛만 들어가면 그렇게 어색하더라. 그런데 진영이가 정말 프로구나 라고 느끼며 고마웠던 게, 슛 들어가면 자기 감정을 끌어내니깐 나도 덩달아 끌어 올릴 수 있게 되더라. 그렇게 되니 연기할 땐 연기, 슛 안 들어갈 땐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동생, 이렇게 구분할 수 있었다. 가수들이 연기한다고 하면 선입견이 생길 수 있는데, (진영이가) 너무 잘했다. 이러니깐 연기를 하는구나 했지. 정말 잘해서 내가 감히 누군가를 평가할 수는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진영이는 원래 꿈이 연기자였다고 항상 말을 하기도 했고. 정진영 짱! 하하하.

곽시양

Q. 그동안의 작품에선 여자와의 로맨스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 이번 드라마에선 구해라(민효린)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첫사랑이 단 한 번의 흔들림 없이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도 이어져 온 건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옆에서 스칼렛(서민지)이 그렇게 들이댔는데 꿈쩍도 안 하다니!
곽시양 : 남자는 그런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옆에서 아무리 쿡쿡 찔러도, 그 여자가 정말 매력적이어도, 마음이 안 간다. 내 경우만 말하면 그런데, 다른 남자들도 아마 다 그러지 않을까? 옆에서 흔들려고 해도 뿌리깊은 나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Q. 사랑할 때 어떤 스타일인가.
곽시양 : 한 사람한테 올인 한다. 대신 세종이처럼 눌러 참지는 않는다. 좋으면 좋다, 싫은 게 있으면 싫다, 그 이유는 이렇다, 말한다. 싫은 부분은 그 사람이 오해하지 않게끔, 상처받지 않게끔 말을 해야 하니 풀어서 잘 말하는 편이고.

Q. 최근에 한 인터뷰들을 보니 올해에 4개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밝혔더라. 이제 어느덧 4월, 2분기가 시작되었다.
곽시양 : 그러게, 뭔가를 해야 하는데! 욕심이 많아서인지, 소처럼 일하고 싶다. 하하. 영화든 드라마든 가리지 않고 많이. 아직은 ‘배우 곽시양’이란 말이 어색해서 배우로서의 입지를 어느 정도 다져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배우란 타이틀이 잘 어울릴 수 있게 하고 싶다. 해치우듯 날로 하는 게 아니라, 한 작품 한 작품 정성을 들여서 꼭 해내고 싶다.

Q. 많이 묻는 질문이겠지만,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나.
곽시양 : ‘파스타’의 이선균 선배 같은 역할. “(극중 이선균 성대모사 하며) 봉골레 하나~” 하하. 그리고 현실적이고 현대적인 드라마에서 검사나 의사 역할도. 또, 남자라면 느와르? 마지막으로 세종이처럼 힘들어하는 사랑이 아니라 달달한 로맨스 속 인물도 해보고 싶다.

Q. 배우가 되면서 해보고 싶은 것을 적어 둔다는 개인 수첩은 아직도 쓰고 있나?
곽시양 : 갖고 있다. 요 근래에 (이뤄서) 지웠던 건 ‘첫 주인공 작품을 잘 마무리하기’다. 앞으로 또 좋은 작품을 만나서 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태양이 떠오를 시간이니깐.

Q. 안 그래도 시양이란 이름의 뜻이 ‘때 시(時), 태양 양(陽)’ 아닌가.
곽시양 : 대표님이 작명소에서 지어주신 이름인데, 지금 한 아침 7시쯤 된 것 같다. 12시나 2시로 올라가야지. 제일 뜨거울 때로.

이정화 기자 lee@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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