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예원

흔히 군대 다녀오면 사람된다는 말이 있다. 요즘처럼 군대 내부의 문제들이 시끄러운 시대, 그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지만 확실히 극단적 단체생활과 국가의 분단현실을 온 몸으로 체험하게 되는 군대라는 공간은 인간에게 많은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곳임이 분명한 듯 하다. MBC 예능 프로그램 ‘일밤’의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 편에서는 군대와 군대 밖 세계 간 이질감이 가장 분명하게 전달되는 듯 하다.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여군특집 1편에 이어 또 한 번 선보인 2편에서는 배우 강예원을 통해 많은 이들이 군대라는 공간의 생소함을 간접 경험했다. 이제 군대를 나와 다시 현실에 적응 중인 그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강예원
Q. 여군특집 1편과 다르게 2편에는 군대에 자원입대한 이들의 비율이 많았다고 하더라. 하지만 당신은 자원입대는 아닌 것 같았다.
강예원 : 맞다. 원하는 분들이 많이 오셨다. 나는 원하지 않았던 입장은 아니었으나, 회사에서 추천을 적극적으로 했었다. 회사의 회의 끝에 ‘나가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고, 나 역시 ‘하라면 하겠습니다’ 했다. 그러다보니 준비성이 남들보다 미약했던 것 같다. 무지하기도 했다. 동생이 해병대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군인정신이나 자부심은 나와는 거리가 먼 감정이었다.

Q. 나쁜 시력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그것만 봐도 군대라는 공간에서 처할 어려움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강예원 : 원래 원시가 있었고, 시력은 마이너스다. 가까이 있는 사물이 잘 안 보인다. 이런 신체적 결함에 대해서는 사전에 다 말했었다. 막상 현장에서는 다른 분들이 정말로 열심히 무엇보다 완벽에 가깝에 하는 반면, 나는 자꾸만 도태되다보니 자책감이 컸다. 자책감에 멘탈도 무너졌다. 눈 외에도 발목이 접질러진 것도 속상했다. 누군가는 콘셉트 잘 잡은 것 같다고도 하셨지만, 스스로는 한심스럽고 죄송스러울 밖이었다.

Q. 지난 1편은 본 적이 있나.
강예원 : 매니저가 예능은 리얼이어야 한다며 사전에 다 보고 공부하고 가면 재미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완벽하게 무지한 상태로 왔다. 그게 미스였던 것 같다(웃음).Q. 정말 많이 울었다.
강예원 : 정말 남들과 다른 눈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서럽더라. 바느질 할 때, 바늘이 안들어가는데 할머니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보면 나를 얼마나 놀릴까’라는 콤플렉스, 일종의 공포가 있었다. 자신감이 없으니 도와달라는 말은 못하고, 실은 그 모습을 시청하면서도 다시 한 번 울었다. 가슴이 아프더라. 어떤 장애들은 극복이 가능하고 내 스스로 극복하는 맛도 느껴지는데, 극복가능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또 이번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내 스스로 세운 목표가 내 아킬레스건, 낯선 현장과 낯선 사람들에 대한 공포를 극복해보자 였는데, 첫날부터 그런 공포가 밀려오며 자신감을 상실했던 것도 힘든 점이었다. 이러려고 온 것이 아닌데 싶었다.

Q. 그런데 또 밥 먹을 땐 그렇게나 밝아지더라.
강예원 : 혼을 그렇게나 많이 났는데, 어느 순간 혼나는 것도 면역이 생기더라. 사실 밥 먹을 때 보여드린 모습처럼 나는 참 밝고 긍정적인 사람인데, 우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또 함께 입대한 출연자들은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싶긴 했다. 감정이 극단적으로 바뀌는 나를 안영미 후보생은 이상하게 보기도 했다(웃음). 그런데 그런 게 또 나라는 사람이더라. 이번에 내 정체성을 새롭게 알게 된 점이기도 했다.

Q. 또 군대를 통해 깨닫게 된 점은?
강예원 : 여배우로 살아오면서 좀 더 세지고 더 예민해지고 까칠해지고 그러면서 성격이 안 좋아지게 되는 것들을 염려했다. ‘나는 저렇게 되진 말아야지’ 늘 그런 생각을 품고 살았는데, 이번에 군대를 경험하며 복종도 잘 하고 한없이 나약하고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는 모습을 보며 새삼 또 반성하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주변에 더 잘 해야겠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은 이제 다 혼자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Q. 혹시 다시 출연하라고 한다면, 할 수 있을까?
강예원 : 두려워서 못하겠다. 군대가 아니라 프로그램이 두렵다. 큰 관심이 익숙하지 않은데, 프로그램이 워낙 핫하다 보니 관심이 쏟아지더라. 매니저에게 ‘이런 거 무서워’ 했더니 ‘창피하다’고 하더라. 그렇지만 나는 과도한 관심을 즐기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번에 홍조 노출로 원터치 커버 메이크업 CF라도 들어오겠다’ 하는데, 나는 애초에 CF에 대한 꿈이 없기도 했다. 밀물과 썰물이 센 프로그램인데, 도무지 내 심장으로는 맞설 힘이 없다.

Q. 말이 나와서 그런데, 민낯 노출은 여배우로서는 큰 마음을 먹었어야 하는 일이다.
강예원 : 엄청나게 두려웠다. 하지만 다 보여주고 난 지금은 오히려 행복하다. 앞으로는 더 이상 창피할 것도 없고 내 컴플렉스를 다 드러내고 나니 편해진다.

Q. 함께 한 동기들 중에는 누가 가장 큰 힘이 됐나.
강예원 : 보미와 박하선이 가장 생각 난다. 하선이는 모범병사로 항상 옆에서 많이 도와줬다. 화생방은 박하선 아니었으면 못 견뎠다. 보미는 감정적으로 기대었던 존재다. 나처러 마음도 약하고 겁도 많았던 친구였는데 그러면서도 잘 하더라. 늘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후보생이었다.Q. 군대에서 나온 뒤, 만난 적이 있나.
강예원 : 다 같이 네 번이나 만났다. 보미는 아이돌이라 스케줄이 바빠서 못 만났지만, 다른 이들은 많이 봤다.

Q. 초반에 면접 장면에서의 버라이어티한 대답도 한참 화제가 됐다. 편집 탓인가?
강예원 : 아니다. 그래도 편집해주신 것이다. 또 어찌됐건 모두 내가 한 말이다. 사실 그 전까지 다른 이들에게는 주로 지원동기를 물어보았고 나도 그 부분은 잘 정리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게만 ‘살면서 가장 힘든 순간’에 대해 묻는데, 훅 들어왔다. 1초 만에 무너졌다. 그동안 웃으면서 잘 살았지만 힘든 것도 있었다. 와르르 무너져서는 ‘왜 나한테만 이런 질문을 하지’ 싶었다. 그렇게 무너져 눈물이 흘렀고 감당이 안됐다. 그러고보니 그것이 내 첫 눈물이었다.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횡설수설 했다. 오히려 편집은, 두 번에 질문에 걸쳐 웃음 포인트로 자연스럽게 넘어가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참, 언제 한 번은 그런 부분에 관해서도 웃음으로 넘어갈 날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미리 준비하지 못해 눈물은 훅 났으나, 덕분에 지금은 담대하게 이야기하고 유연하게 받아칠 수 있는 시간이 온 것 같다. 운명인 것 같다. 걸리는 타이밍도 정확하고, 보면서 깜짝 놀란다.

Q. 군대 이후로 혹시 인생을 바라보는 큰 관점도 변했나?
강예원 : 충격적인 경험이었기에 당연히 변화가 있다. 시청자와의 교감 면에서 다 오픈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기존에 꿈꿨던 롤모델, 하고 싶은 캐릭터, 작품 면에서 다 놓게 되는 것 같다. 과거에는 롤모델 하면 나탈리 포트만을 꼽았었다. 지금은 새로운 롤모델이 생겼다. 바로 차태현 오빠다. 그렇게 편안하게 가고 싶다. 내가 가진 것을 다 보여줬기에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 각박하게 계획하며 두려워하던 것들에서 벗어나 유연해진 느낌이 든다. 또 이번에 흘린 많은 눈물에서 내가 부족하게 태어났으며 남들에 비해 시간이 더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 같다.Q. 군대에 있는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강예원 : 그 공간에서 1등이 아니라고 해서 사회에서도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그 안에서의 생활에 너무 갇혀있지 않았으면 한다. 나 역시 짧은 경험 안에 갇혀 자책을 많이 해서 고통을 알게 됐다. 그런 한편, 내가 자책은 해도 남탓은 안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돼 다행이기도 했다. 아무튼 군대에서의 1등과 꼴등은 중요하지 않다. 최선을 다하긴 해야하지만, 그 안의 세계는 현실과는 다른 세계라는 것을 알고 청년들이 휘둘리지 않았으면 한다.

Q. 여군특집 2기의 전우애는 언제까지 유효할까.
강예원 : 지금까지 총 4번 모였는데 너무 행복했다. 마음으로 따듯하게 하나가 된 사람들이다. 각박한 연예계 생활 가운데 이렇게 함께 들어온 것도 인연인데 앞으로도 자주 만나고 싶다. 언젠가 단체 카톡방이 사라진다면 슬플 것 같다. 사람들을 잘 모으는 편인니 내가 나서서 자주 만나야지. 부족한 나를 많이 도와준 사람들이기에 그 고마움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SM 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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