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슴 속에 흑심을 품고 산다. 그것을 겉으로 표현하는 사람과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그 흑심을 혼자 간직하고, 누구는 기록으로 남긴다. 그 차이다.
미미 시스터즈(큰 미미, 작은 미미)는 음악을 통해 흑심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궁합도 안 본다는 택시로 5분’ ‘오늘은 낮술이니까 술값은 누나가 낼게’ ‘내 맘도 언제 다시 바뀔지 모르지만 기회는 없을지도 몰라 그냥, 그냥 사랑해줘’라는 가사. 아 진취적이다!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음반에서 이런 가사를 본 적이 없다. 선글라스 뒤로 흑심을 숨긴 미미 시스터즈. 이들의 앨범 ‘어머, 사람 잘못 보셨어요’를 듣고 있으면 얼굴은 달아오르고, 마음은 두근거린다. 그녀들을 만나니 괜히 낮술이 마시고 싶어졌다.Q. 낮술을 좋아하나?
큰 미미(이하 큰): 낮술을 자주 한다. 보통 낮술은 맥주로 시작한다. 맥주는 해가 났을 때 먹어야 제 맛이다.
작은 미미(이하 작은): 더 잘 취해서 좋다.
Q. 보통 낮술을 시작하면 그날을 종치는 각오로 먹지 않나?
큰: 꼭 그런 건 아니다. 낮 맥주를 즐기게 된 이유가 있다. 술에 잘 안 취해서 섞어 마시는 편이다. 그런데 낮에 마시면 섞어 마시지 않아도 취한다. 경제적이다.
작은: 낮술을 마시면 하루가 길어진다. 낮에 마시다가 취하면 한숨 자고 밤에 2차전을 재개할 수 있다. 여러모로 좋다.
Q. 앨범 이야기로 넘어가자.
큰: 앗!(기자가 입고 있는 셔츠를 가리키며) 노이즈가든 티셔츠를 입고 왔다.Q. 노이즈가든 리마스터 앨범 발매 기념 공연 갔다가 샀다.
큰: 우리도 그 공연 봤다.
Q. 노이즈가든 공연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작은: 난 15년 전에 대구에서 노이즈가든 공연을 봤다. ‘노이즈가든 빠’였던 친구랑 같이 보러 갔다. 미미 시스터즈 1집을 나왔을 때 그 친구에게 윤병주랑 술 마셨다고 자랑도 했었다.(웃음) 그런데 정작 그 친구는 공연 본 걸 기억 못하더라.
Q. 고향이 대구인가? 15년 전에 몇 살이었냐?(미미들은 신비주의 콘셉트)
큰: 어디서 유도심문이냐?
작은: 미미는 나이가 없다. 먹을 만큼 먹었다. 묻지 마라.Q. 앨범 이야기를 하자니까. ‘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 거야’ 이후 3년 만에 새 앨범이다.
큰: 우리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1집을 낼 때에는 60~70년대 한국 가요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선배들의 주옥과 같은 음악을 재현해보고 싶은 열망이 컸다. 1집은 하세가와 요헤이(양평이 형) 덕분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우리가 프로듀서 하세가와의 머리를 얹어줬다.
Q. 머리를 얹어줬다니?
큰: 하세가와가 프로듀서로서 다른 뮤지션의 앨범에 참여한 것이 우리 1집이 처음이었으니까. 60~70년대 가요를 재현하는데 하세가와는 너무나 적합한 사람이었다. 하세가와는 음악 취향도 넓지만 아이디어도 매우 풍부한 사람이다. 하세가와가 우리 1집을 할 때 욕심이 대단했다. 예전 음악들을 들려주고, 이런 저런 제안을 많이 했다. 그런 욕심에 우리가 배팅을 한 거지.
Q. 2000년대 중반, 그러니까 한 10년쯤 전에 하세가와가 MBC 라디오 ‘김C 스타일’의 ‘플라스틱 사운드’라는 코너에서 옛날 한국 LP들을 가져와서 틀었다. 그때 입으로 딜레이 효과를 내는 바니걸스의 ‘우주여행’과 같은 신기한 곡들을 틀었었다.
작은: ‘우주여행’은 우리 1집을 내게 된 모티브가 된 곡이다. 그 노래를 너무나 부르고 싶은 거다. 그 음악을 처음 들었던 것도 하세가와가 구워준 CD를 통해서다.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큰: 그 노래를 리메이크하기 위해 허락을 구하려 원작자인 신중현 선생님을 찾아뵀다. 그 노래를 한다고 하니, 선생님께서 “그때는 기계가 없어서 그랬다. 요새 좋은 딜레이도 많은데 왜 그런 걸 따라하느냐”라고 하시더라.Q. ‘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 거야’는 김창완, 서울전자음악단, 크라잉넛, 로다운 30 등 그야말로 쟁쟁한 이들이 총출동했다.
큰: 그래서 ‘전설’인 거다. 우리는 전설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 콘셉트의 앨범은 우리 전에도, 이후로도 없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하세가와가 앨범 제목을 ‘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 거야’라고 지었다. 후대에 널리 회자될 앨범이 될 거다!
Q. 2집 제목은 왜 ‘어머 사람 잘못 보셨어요’다.
작은: 미미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코믹한 캐릭터에 그냥 서서 노래만 한다는 그런 선입견 말이다. 원래 우리는 음악도 만들었고, 웃기려 한 적도 없는데 말이야. 2집 제목은 “미미가 무슨 음악을 해?”에 대한 대답 같은 거다.
Q. 새 앨범은 거의 자작곡이다. 이병훈 프로듀서와의 궁합이 상당히 좋아 보인다.
작은: 이병훈은 우리에게 자작곡이 있는지도 모르고 미미에게 접근했다. 우리를 퍼포먼스 그룹으로 보고 제작을 하려 한 것이다. 헌데 우리가 만든 곡을 들려주니 이 정도면 낼만하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 우리의 거칠거칠한 데모를 매끈매끈하게 바꿔줬다.
큰: 음악이 이병훈의 손을 거쳐서 많이 바뀌었다. ‘그냥 사랑해줘’는 완전 로큰롤이었는데 이병훈의 손을 거치면서 완전히 다른 곡이 됐다.
작은: 원래 괴성을 지르며 부르던 노래인데 병훈 오빠가 엄정화 스타일로 바꿔버렸다. 노래를 할 때에도 ‘무조건 섹시하게!’를 외치더라.Q. 이번 앨범이 개인적으로 매우 마음에 드는 것은 가사가 야하기 때문이다.
큰: 원래 더 야했다.
작은: 많이 수정했다. 선을 넘지 않으려 했다. 처음에는 아예 19금으로 만들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참았다.
Q. 이 앨범이 일관성이 있게 들리는 건 가사 때문인 것 같다. 노래들의 장르가 제각각인데 미미의 오묘한 창법과 가사가 그것을 하나로 뭉치게 해준다. 무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질펀한 가사를 예쁘게 노래한다.
작은: 우리는 김추자처럼 질펀한 노래를 질펀하게 부를 수는 없다. 대신 우리는 순수한 면이 있다.
Q. 이런 야한 가사를 대놓고 쓰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는 못 본 것 같다. 남자 뮤지션으로 가도 이런 가사는 십센치 정도다.
작은: 우리가 십센치보다 더 야하게 쓸 수 있다. 갑자기 오기가 생긴다!
Q. 그래서 1번곡 ‘나랑 오늘’은 뭘 하자는 건가? 첫 곡부터?
큰: 그 노래 가사가 야하다는 반응들이 있더라. 작은 미미가 ‘이리 와 나는 준비가 됐어’라고 부르는 부분이 ‘이리 와 나는 침대가 됐어’로 들린다고.
작은: 그냥 침대로 바꿀까?
Q. 가사들이 찰지다. 특히 ‘택시로 5분’에서 ‘궁합도 안 본다는 택시로 5분’이라는 가사, 이건 정말 주옥같은 가사다. 경험담인가?
작은: 이 가사에 영감을 준 남자가 있다.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집이 우리 집과 택시로 5분 거리인거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갑자기 그 남자가 예뻐 보이는 거다. 가까이 사는 이성에 대한 로망 비슷한 것이 발동한 거다. 결국 그날 같은 차를 타고 집에 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조금 기대했는데…. 그날 밤에 채워지지 않은 욕망을 가사로 썼다.
큰: 욕망이 채워졌으면 노래가 나오지 않았겠지.
Q. ‘낮술’의 가사도 재밌다. 누나 좋아해도 돼요?
큰: 그런 비슷한 일이 있을 수 있다. 낮술을 마시면 호감이 쉽게 생길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럼 더 많이 상상하게 되고 실제로 별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거고.
작은: 그런 이야기 그만 하자. 우리 맨날 야한 상상만 하는 것 같아.
Q. 누구나 흑심을 가지고 사는 거 아닌가. 기록으로 남기느냐 안 남기느냐의 차이다.
큰: 20대 남성들이 ‘택시로 5분’ ‘낮술’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 나이는 아직 여성의 속마음을 잘 모르는 나이인 것 같다. 여자들도 자기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데 말이야.
Q. ‘배꼽’이 정말 좋더라. 하루 종일 그 곡만 들었다.
작은: 사실 그 곡은 급조한 노래다. 우리가 만든 다른 곡들이 탈락을 하면서 트랙수가 모자라져서. 원래는 방에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녹음한 곡이었다.
큰: 작은 미미가 가져온 데모를 들었을 때는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읊조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참 좋았다.
작은: 원래 코드도 없었고 멜로디만 있는 곡이었는데 병훈 오빠가 편곡을 너무 멋지게 해 놨다. 완전히 다른 곡이 된 거지.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빤 천재!”라고 외쳤다.
Q. 가사가 재밌다. 만두를 먹을 때 만두피만 먹는 가사는 어떻게 나왔나?
작은: 실제로 주위에 호빵을 먹을 때 흰 빵만 먹고, 핫도그도 빵만 먹고 소시지는 버리는 사람이 있다. 노래 내용은 양다리를 걸치는 남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 남자의 뒤를 캐보니 나와 함께 한 시간과 옛 여자 친구와 사귄 시기가 겹치는 거야.
Q. 슬픈 노래군.
작은: 슬픈 걸로 따지면 ‘어제의 해바라기 씨’가 정말 슬픈 노래다. 그 곡은 내 경험담과 큰 미미의 생각이 합쳐진 내용이다. 남자친구와 중국여행을 갔는데 현지인들처럼 해바라기 씨를 한 움큼 들고 다녔다. 숙소에서 한참을 싸웠는데, 다음날 베게 속에서 해바라기 씨가 나오는 걸 보고 슬퍼졌던 이야기로 시작한다.
큰: 작은 미미가 준 곡을 들어보니 이건 분명히 이별 노래였다. 난 이 곡을 만들 때 패티 스미스 언니의 책의 에피소드 하나를 떠올렸다. 패티 스미스 언니의 책을 사흘 밤낮을 울면서 봤거든. 결국 그 노래는 작은 미미와 나와 패티 스미스 언니가 함께 만든 거다.
Q. 진지한 노래군.
작은: 사실 그 곡은 큰 미미가 벨벳드레스를 입고 터질 듯한 가슴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불렀으면 해서 만든 곡이다. 카바레에서 해골 마이크를 움켜쥐고 말이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Q. 역시 야하군. 난 이번 앨범에 대해 야하다고만 생각해 ‘배시시’가 ‘패티시’로 들리더라.
작은: 홍대의 멋진 카페에서 흐를만한 예쁜 곡이 아닌가. 우리도 그런 노래 하나쯤 있어야지. 우리 앨범에 연애에 대한 기승전결 중 ‘기승결’만 있고 ‘전’이 없는 거야. 한창 ‘썸’타는 그런 시기 말이다. 싸우거나 스토킹하는 노래는 있는데 말이다. 연애는 ‘썸’인데 말이야. 그런데 큰 미미가 이 곡을 싫어하더라.
큰: 우리가 홍대 여신 풍의 노래를 부를 수는 없잖아.
Q. ‘배시시’는 정말 배시시 웃으면서 부른다.
작은: 나사가 대여섯 개 풀린 것처럼 웃지? 이 곡은 듣는 사람이 배시시 웃으면 성공한 거다. 그러려면 나도 웃어야 되지 않겠나. 이 곡을 녹음할 때 병훈 오빠가 내가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 사진으로 모니터에 띄우더라. 난 “이걸 보면서 어떻게 노래하란 말이야?”라고 말하지만 얼굴을 웃고 있는 거지. 배시시.
Q. 누구 사진?
작은: 조휴일과 테이스티! 앨범에 이름 나와 있다. 테이스티는 아이돌 치고는 너무 잘 생기지 않아서 좋다.
큰: 너무 잘생긴 남자는 사람 같지 않아서 매력이 없어.
Q. 선글라스는 왜 안 벗나?
작은: 선글라스는 이미 우리 신체의 일부다.
큰: 미미의 정체성이다. 선글라스를 벗느니 차라리 옷을 벗겠다.
Q. 그 정도인가?
큰: 이번 앨범을 통해서 더 확실히 느꼈다. 장기하와 얼굴들 때에는 정체성이라는 생각까지는 못했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팬들과 SNS, 게시판 등을 통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가끔 깊은 속내를 털어놓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선글라스가 팬들에게 익명게시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선글라스로 눈을 가림으로 인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다.
Q. 편한 누나들에게 속내 털어놓는 것처럼?
작은: 그렇지. 사실 우리 둘 다 눈이 예쁜데.
Q. 보고 싶다.
큰: 안 벗을 거다.
Q. 옛날 이야기를 좀 해보자. 둘은 어떻게 만났나?
큰: 10여 년 전 12월 31일 서울 변두리의 막창집에서 술 마시다가 우연히 합석을 했다. 그때 ‘위 아 더 월드; 분위기라서. 이후 급속히 친해졌다. 우리는 서로가 알면 알수록 너무 다르다. 모든 게 다 달라. 하지만 오묘하게 겹치는 게 있지.
Q. 뭐가?
작은: 야한 거?
큰: 목소리도 다르고, 성격, 말투, 남자 취향, 신체사이즈도 다르지만, 음악적인 부분은 톱니바퀴 맞듯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있다.
작은: 그래서 오래 갈 수 있다. 앞으로도 남자로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Q. 장기하와 얼굴들과는 어떻게 함께 하게 됐나?
큰: 장기하와 얼굴들과 만나기 전에 깜악귀가 하던 밴드 기타 트윈스의 코러스를 잠시 한 적 있다. 그들과 코러스도 하고, 멜로디언도 불고 재밌게 놀았지. 그런데 기하가 ‘싸구려 커피’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하는데 도와달라고 하더라. 세 시간 정도 기하와 안무를 짜면서 같이 미미의 캐릭터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시간이 너무 재밌었다.
작은: 그래서 결국 기타 트윈스를 뒤로 하고 장기하와 얼굴들과 계속 함께 하게 된 거다.
Q. 그 시절도 재미났다.
작은: 이번 2집을 가장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 하세가와였다. 하세가와는 이 음악을 어떻게 들을지 궁금하더라. 우리 음악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
Q. 로망이 있다면?
큰: 70대가 돼서 ‘글래스톤베리’에 나가고 싶다. 지금 가는 것보다 70살이 돼서 할머니 밴드로 나가고 싶다.
작은: 할머니 밴드에 대한 로망이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 할머니가 될 때까지 밴드를 유지하는 팀은 없지 않나? 섹시한 할머니가 돼서 계속 공연할 테다.
Q. 쉬운 목표가 아니다.
큰: 패티 스미스, 오니시 유카리처럼 계속 하고 싶다. 그 둘은 이번 앨범을 만들 때에도 우리에게 큰 힘이 됐다. 특히 유카리 언니랑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작은: 유카리 언니는 볼 때마다 가수의 삶에 대한 덕담을 많이 해주신다. 본인이 산전수전 다 겪은 가수가 아닌가. 언니처럼 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정말 본받고 싶다.
Q. 11월 21일 롤링홀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다. 팬들에게 한마디.
큰: 미미 누나들이랑, 꿀물 한 잔 할래?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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