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태현은 참 친근하다. 얼굴엔 개구진 표정이 가득하고, 4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 이 같은 그의 매력은 충무로에서도 독보적이다. 그의 출연작 역시도 차태현을 많이 닮아 있다. 10월 2일 개봉을 앞둔 ‘슬로우 비디오’ 역시 차태현표 휴먼 코미디다. 엄청난 동체 시력으로 세상과 어울릴 수 없는 차태현이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는 이야기다. 우리 주변을 보듬고, 희망을 건넨다. 비록 자신은 외톨이처럼 지냈을지라도. 이렇게 차태현이 전하는 따뜻한 기운은 우리의 마음마저 훈훈하게 만든다. 인터뷰에서도 그는 솔직하고, 친근하다. 마치 자주 만난 이웃처럼 실컷 떠들게 된다.
Q. 최근 ‘슬로우 비디오’가 아닌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모았다. 무엇보다 ‘엽기적인 그녀2’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다.
차태현 : 잘 만들어서 보여줄 수밖에. 조근식 감독님이 잘 하겠지.
Q. 솔직히 ‘엽기적인 그녀’가 나왔을 당시 엄청났다. 그 이상의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나.
차태현 : 절대 안 나온다고 본다. 그래서 정말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견우가 보고 싶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나이 든 견우가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때 마음가짐을 했다.Q. 견우 이미지가 강해서 오히려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차태현 : 그렇지 않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내 연기 스타일이다. 견우는 차태현이란 사람하고 비슷한 점이 많은 캐릭터다. 만약 견우가 그런 역이 아니었다면 달랐을 거다. 나 같은 경우는 무슨 역이 들어와도 차태현화 시키는 게 많다. 처음 연기를 배울 때도 그렇게 배웠다. 대사할 때도 평소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다. 견우가 그렇다. ‘슬로우 비디오’ 언론시사회에서 애착 가는 캐릭터를 뽑았는데, 그땐 견우를 1등을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무조건 1등이고, 다음으로 승룡, 장부다.
Q. 1편 이상의 작품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엽기적인 그녀2’를 선택했다는 건, 그래도 뭔가 기대할만한 요소가 많은가 보다.
차태현 : 그동안 ‘엽기적인 그녀2’ 시나리오가 굉장히 많이 들어왔다. 그중 이번 시나리오가 가장 ‘엽기적인 그녀’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제는 영화나 드라마 할 때 시나리오 외적인 부분도 많이 작용한다. ‘슬로우 비디오’도 ‘바보’를 같이 했던 제작자가 하는 거다. ‘바보’ 때 잘 안됐으니까 다시 잘 되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런 이유가 꽤 큰 퍼센트를 차지한다. 신씨네(‘엽기적인 그녀2’ 제작사)도 오랜만에 영화를 하는 건데, 그런 걸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형 영화도 마찬가지다. 다만 형 작품은 좀 더 기준을 세게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당시 여러 시나리오 중에 형이 준 게 제일 좋다. 그리고 ‘끝까지 간다’가 잘 돼서 이제 내가 (형 작품) 안 해도 된다. (웃음) 형이 준 모든 작품 중에 ‘끝까지 간다’가 제일 좋았다. 근데 그건 캐스팅이 다 돼 있었다.
Q. 방금 견우 이야기는 들었고, 그다음으로 승룡과 장부를 꼽았다. 장부를 꼽은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차태현 : 승룡은 마음에 남는 아이고, 장부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사랑스럽거나 그런 것 보다 연기한 것 중에 독특한 아이였고, 평소 내가 쓰는 말투도 아니다 보니 연기를 가장 많이 해야 했다.Q. 앞서 말한 차태현의 연기 스타일을 생각했을 때 장부는 상당히 힘들었겠다.
차태현 : 불편하고, 어색했다. 그런데 그런 부분에서 변화를 줄 수 있으면 주려고 한다. 항상 비슷한 역할을 하고, 비슷한 장르의 영화를 하다 보면, (대중들이) 지겨울 수 있으니까. 이런 기회에 한번 도전해보는 것도 꽤 신선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내가 영화를 보고 나서 ‘이걸 왜 했는지 알겠다’고 하더라. 주변에 일반 사람이 아내밖에 없어서 시나리오도 같이 본다. 이번에도 시나리오를 봤는데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보고 나서 ‘왜 했는지 알겠다’면서 ‘탁 감독님이 잘 만들었다’고 하더라. 나도 비슷하다. 흥행을 떠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헬로우 고스트’보다 잘 만들었다. 주인공의 성장기를 봐야 하는데, 이건 감독의 성장을 보는 것 같다. 어쨌든 굉장히 뿌듯하다. (웃음)
Q. 역할을 떠나 영화의 기본적인 톤은 매우 밝다. 최근 차태현 주연 작품이 다 마찬가지다.
차태현 : 피하는 건 아닌데, 맘에 드는 작품이 많지 않았다. 가령, 하정우가 출연한 ‘추격자’같이 재밌는 건 나한테 안 들어왔다. (웃음) 나한테 들어온 여러 스릴러 중 한 작품도 완성된 영화로 본 적 없다. 안 하는 게 아니다.
Q. 근데 일부러 피하는 것도 일정 부분 있지 않나. 예전엔 그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
차태현 : 굳이 끝까지 기다리면서까지 해야겠다는 건 없다. 밝은 영화로 사랑받는 게 기본적인 틀이긴 하다. 그런데 중간에 새로운 걸 보여드려야 틀이 완성된다. 그래서 이 영화가 눈에 들어왔던 것도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1박2일’에서는 밝게만 나오지 않나. 이걸 하면 뭔가를 보여줄 기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얘기하다 보니 든 생각인데 계속 겹치는 감이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가 제작될 경우 그건 안 할 수 없다. 그 작품 이후 장르적으로 변화나 긴 호흡을 보여줄 수 있는 걸 해볼까 싶다. ‘엽기적인 그녀2’가 조금 보여주겠지만.Q. 그래도 밝은 게 가장 잘 어울린다.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도 과거 유명했던 드라마 속 대사는 물론 낯간지러운 대사들도 많았다. 그런 것들이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우러진 건 차태현의 힘이 큰 것 같다.
차태현 : 이상하게 탁 감독 코드가 맞는다. 개그코드도 이상한데, 그게 끌린다. 솔직히 지금보다 더 웃기게 할 순 있다. 근데 감독님이 그걸 원하지 않고, ‘이게 맞다’라고 하고 싶지도 않다. ‘헬로우 고스트’ 때도 감독님 의견을 많이 따랐다. 영화 완성되고 나서 ‘웃기는 부분은 태현 씨가 맞는 것 같아’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그런데 내가 우겨서 해도 흥행 적으로 많아야 50만 차이다. 그 코믹한 부분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슬로우 비디오’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다행히 일반 관객 반응이 훨씬 좋은 것 같다.(차태현은 인터뷰 내내 김영탁 감독을 탁 감독이라 지칭했다.)
Q. 첫사랑의 이미지도 여전해 보인다. 과거 첫사랑을 다룬 작품을 많이 하기도 했고, 이번에도 첫사랑을 보여준다.
차태현 : 정말 첫사랑에 관련된 작품을 많이 했다. 다르게 생각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소재인 것 같기도 하다. 그 와중에 유독 많이 한 거고. 살짝 지겨워지려고 한다. 나로서는 그게 좀 걸리는 부분이다.
Q. 그런데 키스신은 좀 진하지 않았나. 풋풋한 첫사랑의 느낌인데 키스신은 진했던 것 같다.
차태현 : 그게 잘려서 그렇다. 키스신이 두 번이다. 영화 보니까 앞에 했던 키스가 빠졌더라. 감독이 아직 거기까지 내공이 안 되는 거다. (웃음) 감독이 속상할 것 같은데, 편집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잘릴 수밖에 없다. 다 살린다고 꼭 재밌는 건 아니니까. 여하튼 시나리오보다 편집을 잘했다. 내레이션이 더 많이 들어갔고, 그 덕분에 훨씬 친절해졌다.Q. 직접 감독을 해보는 건 혹시.
차태현 : 감독은 어휴~. 확실히 영화를 전체적으로 보는 게 감독은 감독이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많이 이야기한 것 중에 하나가 선글라스를 언제까지 쓸 것이며, 중간에 벗어야 하지 않을까에 대해서다. 영화를 보는데 시나리오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선글라스를 벗을 때 임팩트가 굉장히 세더라. 글로 봤을 땐 그렇게 세지 않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부분이다. 그런 것을 보면 확실히 감독은 감독이다.
Q. 김영탁 감독과 연이어 작품을 함께 했다. 같은 감독과 연속 작업하는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 감독의 매력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차태현 : 영화에선 (연이어 호흡을 맞추는 게) 처음이다. 그리고 나밖에 모르니까 처음으로 나한테 이야기했다. (웃음) 탁 감독이 이 작품 전에 준비하던 게 있었는데 잘 안 됐다. 그건 내가 주인공이 아닌데, 듣기론 꽤 센 영화였다. 이후 완전 다른 장르의 영화를 한 거다. 글도 참 빨리빨리 쓰는 거 보면 대단하긴 하다. 하여간 뭔가 독특한 매력이 있다. 이번에 언론시사회에서 나보다 감독님한테 질문이 더 많이 가더라. 마이크를 몇 번 들었다 놨다 했다. 그동안 많이 해봤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만큼 뭔가 독특하고 궁금한 감독인 것 같다. 포장이 잘 돼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웃음) ‘라디오스타’도 같이 나갔는데 ‘이번 주는 쉬어가는 주냐’고 먼저 물어봤다. 그런데 ‘라디오스타’ 팀에서 먼저 원했다고 하는 거다. 뭔가 궁금한 사람인가 보다.
Q.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춘 남상미는 어떤가.
차태현 : 나무랄 데 없다. 전작에서 지쳐있었다고 해야 하나, 역할 자체가 우울한 역할이었나 보더라. 그래서 이 시나리오 보더니 너무너무 좋아했나 보더라. 첫 만남이 기대에 찬 모습으로 왔다. 그래서 다행이네 싶었다.Q. 동체 시력이 소재인데, 이 동체 시력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의문이었겠다. 워낙 뜬금없는 소재이지 않나. 달리기를 못 한다거나 그런 것들도 궁금했다. 정말 그러는 건지. 수저 던져서 잡는 것은 뭐 당연히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하고.
차태현 : 상상할 수 없고, 있는 병도 아니다. 알고 보니 동체 시력 소재만 따오고, 나머지는 다 만든 거다. 뛰면 넘어지고 하는 것들이 다 거짓이다. 정말 배신감 느꼈다. (웃음) 마을버스가 고속도로를 못 가는 것도 물어봤더니 ‘나도 몰라’ 그러더라. 연기할 때 동체 시력 때문에 주변이 느리게 보이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그건 기술적인 거니까. 넘어지는 건 정말 고민 많이 했다. 그러다가 ‘세상이 이런일이’에서 신경 쪽에 장애가 있어 걷거나 뛰지 못하는 분을 우연히 봤다. 그분께는 정말 미안하지만, 연기할 때 그 정도로 심하게 넘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아팠다. 생각해보니 고생했네.
Q. 선글라스를 쓴 채로 연기하지 않나. 동체 시력이 좋으면 진짜 선글라스를 끼어야 하나? 딱히 관련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그럴 것 같기도 하고.
차태현 : 나도 모르겠다. 미리 설정을 다 만들어 놨더라. 난 정말 그런 게 있는지 알았다. 다 속은 거지. 그런 거 보면 참 뻔뻔해. (웃음) 그리고 ‘챔프’ 때 시력을 잃어가는 걸 경험했던 터라 그것 관련해서는 하나도 안 물어봤다.
Q. 동체 시력이 뛰어나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차태현 : 정말 쓸데없는 것 같다. 질문을 많이 받아서 생각했는데 써먹을 곳이 없다. 투시도 아니고, 멀리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상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 ‘1박2일’ 가서 가위바위보는 무조건 이기는 정도다. 뛰질 못하게 해 놔서 더 그렇다. 동체 시력만 있으면 스포츠가 최고지.
Q. ‘슬로우 비디오’는 ‘런닝맨’에 이어 이십세기폭스코리아의 두 번째 투자 배급 작품이다. 한국 투자 배급사와 할 때와 이십세기폭스와 할 때, 뭔가 다른 부분이 있나.
차태현 : 진짜 신기하다. 내가 들은 이야기로는 ‘헬로우 고스트’ 할 때 동시기에 개봉했던 게 ‘황해’다. 당시 이십세기폭스가 ‘황해’에 부분 투자를 했는데, 최종 흥행 성적에서 ‘헬로우 고스트’가 이겼다. 당시 ‘황해’는 최고 기대작이었다. ‘헬로우 고스트’는 아니고…. 내 작품은 항상 그렇게 큰 기대작이었던 적이 별로 없어 속상하지 않다. (웃음) 그래서 도대체 ‘쟤는 누구냐’ 이렇게 된 거다. ‘저 감독은 뭐 하는 사람이냐, 나중에 투자하겠다’고 했나 보더라. 나한테 들어오기 전에 이 작품은 전액 투자가 돼 있었다. 그리고 계약서가 너무 복잡하고 피곤하다. 또 이십세기폭스 고유의 시그널이 나온 다음에 한국영화가 나오는 게 신선하게 느껴지긴 하더라.
Q. ‘과속스캔들’은 몇 가지 조화를 이뤘을 때 잘 될 것 같았다고 말했고, ‘헬로우 고스트’는 대본 자체가 재밌었다고 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흥행을 떠나 형이 하는 거라 참여했다고 그럼 이번 작품은.
차태현 : 과거 그렇게 망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건 있다. ‘해피에로크리스마스’ ‘챔프’ 등. 특히 ‘챔프’의 경우 적잖은 충격이었던 게 개봉 날 ‘퐁당퐁당’이었다. 뭘 해보지도 못했다. 영화라는 게 참 냉정하다. 먼저 관객들 이전에 극장주 마음에 들어야 하는데, ‘챔프’는 그 1단계조차 통과하지 못한 셈이다. 그때 대중들이 내가 하는 가족영화를 보고 싶지 않구나, 그런 게 느껴졌다. 그다음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계획한 건 아니지만, 오랜만에 코미디였다. 그게 또 성공하더라. 그것도 계산을 잘해야 할 것 같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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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슬로우 비디오’가 아닌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모았다. 무엇보다 ‘엽기적인 그녀2’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다.
차태현 : 잘 만들어서 보여줄 수밖에. 조근식 감독님이 잘 하겠지.
Q. 솔직히 ‘엽기적인 그녀’가 나왔을 당시 엄청났다. 그 이상의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나.
차태현 : 절대 안 나온다고 본다. 그래서 정말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견우가 보고 싶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나이 든 견우가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때 마음가짐을 했다.Q. 견우 이미지가 강해서 오히려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차태현 : 그렇지 않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내 연기 스타일이다. 견우는 차태현이란 사람하고 비슷한 점이 많은 캐릭터다. 만약 견우가 그런 역이 아니었다면 달랐을 거다. 나 같은 경우는 무슨 역이 들어와도 차태현화 시키는 게 많다. 처음 연기를 배울 때도 그렇게 배웠다. 대사할 때도 평소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다. 견우가 그렇다. ‘슬로우 비디오’ 언론시사회에서 애착 가는 캐릭터를 뽑았는데, 그땐 견우를 1등을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무조건 1등이고, 다음으로 승룡, 장부다.
Q. 1편 이상의 작품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엽기적인 그녀2’를 선택했다는 건, 그래도 뭔가 기대할만한 요소가 많은가 보다.
차태현 : 그동안 ‘엽기적인 그녀2’ 시나리오가 굉장히 많이 들어왔다. 그중 이번 시나리오가 가장 ‘엽기적인 그녀’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제는 영화나 드라마 할 때 시나리오 외적인 부분도 많이 작용한다. ‘슬로우 비디오’도 ‘바보’를 같이 했던 제작자가 하는 거다. ‘바보’ 때 잘 안됐으니까 다시 잘 되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런 이유가 꽤 큰 퍼센트를 차지한다. 신씨네(‘엽기적인 그녀2’ 제작사)도 오랜만에 영화를 하는 건데, 그런 걸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형 영화도 마찬가지다. 다만 형 작품은 좀 더 기준을 세게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당시 여러 시나리오 중에 형이 준 게 제일 좋다. 그리고 ‘끝까지 간다’가 잘 돼서 이제 내가 (형 작품) 안 해도 된다. (웃음) 형이 준 모든 작품 중에 ‘끝까지 간다’가 제일 좋았다. 근데 그건 캐스팅이 다 돼 있었다.
Q. 방금 견우 이야기는 들었고, 그다음으로 승룡과 장부를 꼽았다. 장부를 꼽은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차태현 : 승룡은 마음에 남는 아이고, 장부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사랑스럽거나 그런 것 보다 연기한 것 중에 독특한 아이였고, 평소 내가 쓰는 말투도 아니다 보니 연기를 가장 많이 해야 했다.Q. 앞서 말한 차태현의 연기 스타일을 생각했을 때 장부는 상당히 힘들었겠다.
차태현 : 불편하고, 어색했다. 그런데 그런 부분에서 변화를 줄 수 있으면 주려고 한다. 항상 비슷한 역할을 하고, 비슷한 장르의 영화를 하다 보면, (대중들이) 지겨울 수 있으니까. 이런 기회에 한번 도전해보는 것도 꽤 신선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내가 영화를 보고 나서 ‘이걸 왜 했는지 알겠다’고 하더라. 주변에 일반 사람이 아내밖에 없어서 시나리오도 같이 본다. 이번에도 시나리오를 봤는데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보고 나서 ‘왜 했는지 알겠다’면서 ‘탁 감독님이 잘 만들었다’고 하더라. 나도 비슷하다. 흥행을 떠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헬로우 고스트’보다 잘 만들었다. 주인공의 성장기를 봐야 하는데, 이건 감독의 성장을 보는 것 같다. 어쨌든 굉장히 뿌듯하다. (웃음)
Q. 역할을 떠나 영화의 기본적인 톤은 매우 밝다. 최근 차태현 주연 작품이 다 마찬가지다.
차태현 : 피하는 건 아닌데, 맘에 드는 작품이 많지 않았다. 가령, 하정우가 출연한 ‘추격자’같이 재밌는 건 나한테 안 들어왔다. (웃음) 나한테 들어온 여러 스릴러 중 한 작품도 완성된 영화로 본 적 없다. 안 하는 게 아니다.
Q. 근데 일부러 피하는 것도 일정 부분 있지 않나. 예전엔 그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
차태현 : 굳이 끝까지 기다리면서까지 해야겠다는 건 없다. 밝은 영화로 사랑받는 게 기본적인 틀이긴 하다. 그런데 중간에 새로운 걸 보여드려야 틀이 완성된다. 그래서 이 영화가 눈에 들어왔던 것도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1박2일’에서는 밝게만 나오지 않나. 이걸 하면 뭔가를 보여줄 기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얘기하다 보니 든 생각인데 계속 겹치는 감이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가 제작될 경우 그건 안 할 수 없다. 그 작품 이후 장르적으로 변화나 긴 호흡을 보여줄 수 있는 걸 해볼까 싶다. ‘엽기적인 그녀2’가 조금 보여주겠지만.Q. 그래도 밝은 게 가장 잘 어울린다.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도 과거 유명했던 드라마 속 대사는 물론 낯간지러운 대사들도 많았다. 그런 것들이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우러진 건 차태현의 힘이 큰 것 같다.
차태현 : 이상하게 탁 감독 코드가 맞는다. 개그코드도 이상한데, 그게 끌린다. 솔직히 지금보다 더 웃기게 할 순 있다. 근데 감독님이 그걸 원하지 않고, ‘이게 맞다’라고 하고 싶지도 않다. ‘헬로우 고스트’ 때도 감독님 의견을 많이 따랐다. 영화 완성되고 나서 ‘웃기는 부분은 태현 씨가 맞는 것 같아’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그런데 내가 우겨서 해도 흥행 적으로 많아야 50만 차이다. 그 코믹한 부분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슬로우 비디오’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다행히 일반 관객 반응이 훨씬 좋은 것 같다.(차태현은 인터뷰 내내 김영탁 감독을 탁 감독이라 지칭했다.)
Q. 첫사랑의 이미지도 여전해 보인다. 과거 첫사랑을 다룬 작품을 많이 하기도 했고, 이번에도 첫사랑을 보여준다.
차태현 : 정말 첫사랑에 관련된 작품을 많이 했다. 다르게 생각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소재인 것 같기도 하다. 그 와중에 유독 많이 한 거고. 살짝 지겨워지려고 한다. 나로서는 그게 좀 걸리는 부분이다.
Q. 그런데 키스신은 좀 진하지 않았나. 풋풋한 첫사랑의 느낌인데 키스신은 진했던 것 같다.
차태현 : 그게 잘려서 그렇다. 키스신이 두 번이다. 영화 보니까 앞에 했던 키스가 빠졌더라. 감독이 아직 거기까지 내공이 안 되는 거다. (웃음) 감독이 속상할 것 같은데, 편집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잘릴 수밖에 없다. 다 살린다고 꼭 재밌는 건 아니니까. 여하튼 시나리오보다 편집을 잘했다. 내레이션이 더 많이 들어갔고, 그 덕분에 훨씬 친절해졌다.Q. 직접 감독을 해보는 건 혹시.
차태현 : 감독은 어휴~. 확실히 영화를 전체적으로 보는 게 감독은 감독이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많이 이야기한 것 중에 하나가 선글라스를 언제까지 쓸 것이며, 중간에 벗어야 하지 않을까에 대해서다. 영화를 보는데 시나리오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선글라스를 벗을 때 임팩트가 굉장히 세더라. 글로 봤을 땐 그렇게 세지 않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부분이다. 그런 것을 보면 확실히 감독은 감독이다.
Q. 김영탁 감독과 연이어 작품을 함께 했다. 같은 감독과 연속 작업하는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 감독의 매력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차태현 : 영화에선 (연이어 호흡을 맞추는 게) 처음이다. 그리고 나밖에 모르니까 처음으로 나한테 이야기했다. (웃음) 탁 감독이 이 작품 전에 준비하던 게 있었는데 잘 안 됐다. 그건 내가 주인공이 아닌데, 듣기론 꽤 센 영화였다. 이후 완전 다른 장르의 영화를 한 거다. 글도 참 빨리빨리 쓰는 거 보면 대단하긴 하다. 하여간 뭔가 독특한 매력이 있다. 이번에 언론시사회에서 나보다 감독님한테 질문이 더 많이 가더라. 마이크를 몇 번 들었다 놨다 했다. 그동안 많이 해봤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만큼 뭔가 독특하고 궁금한 감독인 것 같다. 포장이 잘 돼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웃음) ‘라디오스타’도 같이 나갔는데 ‘이번 주는 쉬어가는 주냐’고 먼저 물어봤다. 그런데 ‘라디오스타’ 팀에서 먼저 원했다고 하는 거다. 뭔가 궁금한 사람인가 보다.
Q.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춘 남상미는 어떤가.
차태현 : 나무랄 데 없다. 전작에서 지쳐있었다고 해야 하나, 역할 자체가 우울한 역할이었나 보더라. 그래서 이 시나리오 보더니 너무너무 좋아했나 보더라. 첫 만남이 기대에 찬 모습으로 왔다. 그래서 다행이네 싶었다.Q. 동체 시력이 소재인데, 이 동체 시력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의문이었겠다. 워낙 뜬금없는 소재이지 않나. 달리기를 못 한다거나 그런 것들도 궁금했다. 정말 그러는 건지. 수저 던져서 잡는 것은 뭐 당연히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하고.
차태현 : 상상할 수 없고, 있는 병도 아니다. 알고 보니 동체 시력 소재만 따오고, 나머지는 다 만든 거다. 뛰면 넘어지고 하는 것들이 다 거짓이다. 정말 배신감 느꼈다. (웃음) 마을버스가 고속도로를 못 가는 것도 물어봤더니 ‘나도 몰라’ 그러더라. 연기할 때 동체 시력 때문에 주변이 느리게 보이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그건 기술적인 거니까. 넘어지는 건 정말 고민 많이 했다. 그러다가 ‘세상이 이런일이’에서 신경 쪽에 장애가 있어 걷거나 뛰지 못하는 분을 우연히 봤다. 그분께는 정말 미안하지만, 연기할 때 그 정도로 심하게 넘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아팠다. 생각해보니 고생했네.
Q. 선글라스를 쓴 채로 연기하지 않나. 동체 시력이 좋으면 진짜 선글라스를 끼어야 하나? 딱히 관련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그럴 것 같기도 하고.
차태현 : 나도 모르겠다. 미리 설정을 다 만들어 놨더라. 난 정말 그런 게 있는지 알았다. 다 속은 거지. 그런 거 보면 참 뻔뻔해. (웃음) 그리고 ‘챔프’ 때 시력을 잃어가는 걸 경험했던 터라 그것 관련해서는 하나도 안 물어봤다.
Q. 동체 시력이 뛰어나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차태현 : 정말 쓸데없는 것 같다. 질문을 많이 받아서 생각했는데 써먹을 곳이 없다. 투시도 아니고, 멀리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상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 ‘1박2일’ 가서 가위바위보는 무조건 이기는 정도다. 뛰질 못하게 해 놔서 더 그렇다. 동체 시력만 있으면 스포츠가 최고지.
Q. ‘슬로우 비디오’는 ‘런닝맨’에 이어 이십세기폭스코리아의 두 번째 투자 배급 작품이다. 한국 투자 배급사와 할 때와 이십세기폭스와 할 때, 뭔가 다른 부분이 있나.
차태현 : 진짜 신기하다. 내가 들은 이야기로는 ‘헬로우 고스트’ 할 때 동시기에 개봉했던 게 ‘황해’다. 당시 이십세기폭스가 ‘황해’에 부분 투자를 했는데, 최종 흥행 성적에서 ‘헬로우 고스트’가 이겼다. 당시 ‘황해’는 최고 기대작이었다. ‘헬로우 고스트’는 아니고…. 내 작품은 항상 그렇게 큰 기대작이었던 적이 별로 없어 속상하지 않다. (웃음) 그래서 도대체 ‘쟤는 누구냐’ 이렇게 된 거다. ‘저 감독은 뭐 하는 사람이냐, 나중에 투자하겠다’고 했나 보더라. 나한테 들어오기 전에 이 작품은 전액 투자가 돼 있었다. 그리고 계약서가 너무 복잡하고 피곤하다. 또 이십세기폭스 고유의 시그널이 나온 다음에 한국영화가 나오는 게 신선하게 느껴지긴 하더라.
Q. ‘과속스캔들’은 몇 가지 조화를 이뤘을 때 잘 될 것 같았다고 말했고, ‘헬로우 고스트’는 대본 자체가 재밌었다고 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흥행을 떠나 형이 하는 거라 참여했다고 그럼 이번 작품은.
차태현 : 과거 그렇게 망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건 있다. ‘해피에로크리스마스’ ‘챔프’ 등. 특히 ‘챔프’의 경우 적잖은 충격이었던 게 개봉 날 ‘퐁당퐁당’이었다. 뭘 해보지도 못했다. 영화라는 게 참 냉정하다. 먼저 관객들 이전에 극장주 마음에 들어야 하는데, ‘챔프’는 그 1단계조차 통과하지 못한 셈이다. 그때 대중들이 내가 하는 가족영화를 보고 싶지 않구나, 그런 게 느껴졌다. 그다음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계획한 건 아니지만, 오랜만에 코미디였다. 그게 또 성공하더라. 그것도 계산을 잘해야 할 것 같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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