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레븐’이라는 이름의 수상한 노래가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기괴한 전자음 위로 “아바바바바바바바바”라는 가사가 무한 반복되는 노래. 뮤직비디오를 보면 실사 배경 위로 요상한 캐릭터들이 입을 두드리며 춤을 추고 있고 그 가운데 은색 반사재질의 방화복과 같은 옷을 입은 정체불명의 캐릭터가 있다. 바로 노래의 주인공 히치하이커다. 지난 10일 공개된 ‘일레븐’의 뮤직비디오는 일주일 만에 갖가지 괴담(?) 만들어내며 퍼지고 있는 중이다. 세계적인 DJ 스크릴렉스와 디플로는 칭찬과 함께 ‘일레븐’ 뮤직비디오를 리트윗하기도 했다.

이 노래를 만든 히치하이커(본명 최진우)는 다수의 히트곡을 만든 SM엔터테인먼트의 전속작곡가다. SM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자신을 슈퍼스타라고 소개했다. 그가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에프엑스, 엑소, 보아 등 슈퍼스타들의 노래를 만든 작곡가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본인이 슈퍼스타라니?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히치하이커는 콘셉트 자체가 세계적인 슈퍼스타예요. 이 3D 캐릭터가 저의 아바타와 같은 존재인데요. 유튜브, SNS 등을 통해서 영상 속의 캐릭터로 활동하는 거죠. 영상 속 히치하이커는 전용기를 타고 다니면서 전 세계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해요. 물론 가상이지만, 동시에 가상이 아닌 거죠. 영상 속에서는 살아있는 아티스트로 존재하니까요.”

설명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상이지만, 가상이 아닌 캐릭터라니? 쉽게 말하면 슈퍼맨, 스파이더맨과 같은 것이란다. 그들이 영화 속 영웅인 것처럼, 히치하이커는 영상 속에서 슈퍼스타인 것이다. 가상의 세계에서 그는 잡지 표지 모델이 될 수도 있고, 유명 여배우와 스캔들이 날 수도 있다. 어떻게 이런 황당무계한 캐릭터를 만들게 됐을까?

“저의 새 앨범을 내고 싶은데 음악방송에 나가 어린 친구들과 섞여서 활동을 하려니 겁이 덜컥 났어요. 그래서 난 음악만 만들고 누가 나를 대신해 활동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SM 가수들 중에 친한 이들에게 노래를 맡길까 생각도 해봤는데 워낙에 다들 스케줄들이 바빠서 힘들 것 같았고, 그러면 아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서 나 대신에 활동하게 하자…”히치하이커는 음악 외에도 뮤직비디오, 티저 다큐까지 모두 직접 만들었다. 캐릭터 디자인만 2년 넘게 걸렸다. 영상을 만들기 위해 3D 그래픽, 모션캡쳐 등 10개가 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몸소 익혔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팀이 분업으로 해야 하는 작업을 오로지 혼자서 다 해낸 것이다. 도대체 히치하이커는 왜 이런 짓을 한 것일까? 그는 “이게 내 꿈이었다”고 대답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도대체 왜 이런 프로젝트를 하게 된 것인가?
히치하이커: 원래 애니메이션 제작이 내 꿈이었다. 일본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혼자서 거의 모든 작업을 다 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초속 5센티미터’ 등을 혼자 다 만들었다. 가령 마음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직접 촬영을 한 다음에 그림으로 옮기고, 그 위에 캐릭터를 그려 넣는 식으로 일련의 프로세스를 혼자서 다 해낸다. 그러한 방식의 작업에 매력을 느껴서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Q. ‘일레븐’은 어떻게 만들었나?
히치하이커: 다섯 살짜리 딸아이 덕분에 나온 노래다. 아이가 세 살 때 같이 장난치고 놀다가 입을 두드리니까 ‘아바바바바바’ 소리가 났다. 소리가 재밌어서 아이폰으로 녹음해서 그걸 즉석에서 음악으로 만들었다. 딸아이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어떻게 음악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 들려주고 싶었다. 10분 만에 약 1분짜리 짧은 트랙을 만들어서 딸에게 들려줬더니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놀더라. 아내에게 들려줬더니 제대로 완성해보면 재밌겠다고 해서 하나의 곡으로 완성했다. 그 곡을 SM과 함께 작업한 해외 작곡가들에게도 들려줬다. 다들 재밌어했고,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라고 하더라. 막연한 기대감이 생겨서 이 곡으로 나의 새로운 솔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았다.

Q. 제목은 왜 ‘일레븐’인가?
히치하이커: 아바바바바바‘라는 소리와 함께 약 4분짜리 트랩 리듬의 트랙이 완성됐는데, 정작 노래가 없었다. 딸아이에게 노래까지 시키면 재밌을 것 같았다. 영어유치원에 다닐 때라 “네가 아는 영어 해봐라”라고 시켰더니 영어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고, ‘일레븐’을 너무 예쁘게 발음해서 제목으로 쓰게 됐다. 또 아이가 영어로 즉흥적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아내(작사가 김부민)가 곡에 어울릴만한 영어 가사를 써서 아이에게 읽어보라고 시키기도 했다.(웃음) 그걸 모두 녹음해서 리믹스를 한 것이다. 또 원래는 에프엑스 크리스탈에게 노래를 시켜볼까 생각했는데, 너무 바빠서…. 즉, ‘일레븐’ 나와 아내, 딸아이가 함께 만든 곡인 셈이다.

Q. ‘일레븐’과 히치하이커 캐릭터 둘 중에 뭐가 먼저 나왔나?
히치하이커: ‘일레븐’이 나오기 전부터 솔로 프로젝트를 위해 이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있었다. 솔로앨범을 위한 일렉트로 하우스 류의 곡도 몇 개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고민해보니 그저 그런 일렉트로닉 음악은 별로 새로울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일레븐’은 달랐다. 이건 나도 뭐라고 정의할 수가 없는 곡이었던 거다.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곡이었고, 또 만드는 과정이 너무 재밌었다.

Q. 뮤직비디오와 티저 영상까지 본인이 만들었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히치하이커: 영상작업이 오래된 꿈이었지만, 막상 혼자서 만들려니 힘들었다. 각종 컴퓨터 프로그램을 익히고, 모션캡쳐하고, 색을 만지고, 최종 편집까지 모두 내가 하려니 몸이 많이 상할정도 힘들었다. 하루종일 앉아서 영상 작업만 하다 보니 허벅지가 피가 안 통해서 보라색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점점 스킬이 늘다보니 즐겁더라. 주위에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시는 분들에게 내가 혼자 만든 영상이라고 보여줬더니 다들 놀라시더라. 이건 절대 혼자서 할 작업이 아니라고 말이다.

Q. 아마도 올해의 괴작이 되지 않을까?
히치하이커: 하하. 그럴 것 같다. 망했을 때에는 정말 놀림감이 될 테고, 잘 되면 엄청 희한한 콘텐츠로 남을 수도 있다. 극과 극의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일레븐’은 기존에 없던 스타일의 곡이었기 때문에 믹싱이 매우 힘들었다. 보통 일정한 장르의 곡은 비슷한 계열의 레퍼런스들이 있는데 ‘일레븐’은 레퍼런스 삼을 만한 게 아예 없었다. 베이스를 키울지 말지, 그런 것에 대한 기준이 없어서 애를 많이 먹었다.

Q. SM의 전속 작곡가가 아닌가? SM에서 이런 음악이 나온 것에 대해 사람들이 당황할 수도 있겠다.
히치하이커: 고맙게도 SM에서 유통과 홍보를 도와주겠다고 하더라. 제작은 내 개인 레이블인 FIT 레이블에서 하는 것이다. SM 산하에 울림 엔터테인먼트, 발전소 등이 있는데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원래는 나 혼자 독립적으로 유통까지 다 하려고 했다. 우리 회사의 스케줄이 가히 살인적인데, 직원들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또 같은 식구라고 열성적으로 도와주셔서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다.

Q. 히치하이커는 SM 작곡가를 하기 전에 90년대에 ‘지누’라는 이름으로 솔로 가수로 활동했고, 조원선, 이상순과 함께 3인조 밴드 롤러코스터로도 인기를 모았다. 앞으로는 캐릭터 히치하이커로 활동하는 것인가?
히치하이커: 그렇다. 이건 장기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앞으로 두고 봐야겠지만, 히치하이커란 캐릭터가 알려지려면 적어도 3~5년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다음 목표는 히치하이커가 진짜 스타가 되어서 영화와 광고도 찍고 피규어 상품이 등장해 장난감 가게에 진열되는 것이다.(그는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또 누군가 히치하이커 방화복 의상을 입고 공연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와 백화점에서 하는 ‘코코몽 콘서트’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일반 배우들이 만화 캐릭터 코코몽의 탈을 쓰고 공연을 하는데 관객으로 온 아이들이 마치 SM 공연장의 팬들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하더라. 히치하이커가 정말 스타가 되면 그런 방식으로 전국 여기저기서 동시에 공연이 가능할 것이다. 최종 목표는 히치하이커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내가 직접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이들이 먹는 비타민 포장지에 히치하이커가 새겨졌으면 좋겠다. 하하! 그냥 허황된 꿈일 수도 있지만.

Q. 허황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재밌다. 그렇다면 이제 과거의 지누는 없어지는 것인가?
히치하이커: 이제부터 제3의 삶이 될 것 같다. 솔로부터 롤러코스터 DJ까지가 첫 번째 삶, 작곡가가 두 번째 삶이라면, 세 번째는 히치하이커 캐릭터로서의 삶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내 솔로 음악은 히치하이커 캐릭터로 낼 생각이다. 이 캐릭터의 장점은 뭘 해도 된다는 것이다.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과 같은 EDM 페스티벌에서 DJ를 해도 되고, 가상의 밴드와 함께 헤비메탈을 연주할 수도 있다. 또 발라드를 노래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발라드를 부르면 정말 웃기겠다. 하하하.

오! 히치하이커 ② ‘엉뚱한 상상’ 지누가 SM 작곡가 히치하이커가 되기까지 (인터뷰)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히치하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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