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 방송 화면 캡처
MBC 수목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이하 운널사)가 본격적인 닻을 올린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완벽한 남자 이건(장혁)과 평범보다 더 못 미치는 듯 답답하고 안쓰러운 여주인공 김미영(장나라)은 겨우 2회 만에 임신을 하더니 4회 만에 결혼에 골인, 빤한 신데렐라형 스토리를 예상했던 이들에게 한 방을 먹이는 것에 성공한다.제목만 들어서는 달콤한 운명적 사랑을 그릴 정통 로맨스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데, 이 드라마는 역설적으로 두 남녀의 ‘원나잇 스탠드’와 ‘속도위반’ 임신에서 시작된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나 결국 벌어지고만 사고가 전혀 알지 못했던 두 남녀를 가족이라는 떼놓을 수 없는 강력한 끈으로 묶어버리니, 다시 생각해보면 운명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긴 하다.그렇게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한 드라마 ‘운널사’는 초반부터 눈도장도 확실히 찍는 것에 성공한다. 파닥파닥 활어 같은 매력으로 이건을 표현하는 장혁의 변신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캔디형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소화하는 장나라의 여전한 매력이 큰 공을 했다.
‘선 임신, 후 로맨스’라는 파격적인 콘셉트를 재치 있고 쫀득하게 묘사한 제작진도 큰 몫을 했다. 이들은 국내 드라마 베드신 계(?)에 다시없을 떡방아 신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이렇듯 남다른 드라마 ‘운널사’의 매력은 시청률 수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듯하다. 그래서 준비한 ‘운널사! 매력탐구’.
시청률보다 더 뜨거운 체감 반응의 중심에는 극 중 ‘기이한 재벌남’으로 분한 장혁이 있다. ‘운널사’를 통해 코믹 연기에 출사표를 던진 장혁은 매회 자신을 내려놓는 열연으로 극에 활력을 더하고 있다.대만 드라마 리메이크, 장나라와의 12년만의 재회 등 심적 부담이 극심했을 상황에 장혁이 들고 나온 전략은 다름 아닌 ‘코믹’이었다. 장혁이 연기한 이건이 ‘운널사’의 원작인 대만 드라마 ‘명중주정아애니’ 속 지춘시와는 전혀 딴판이다. 원작의 지춘시는 다소 진지하고 얌전한 캐릭터인데 반해, 이건은 과장된 몸짓과 표정으로 희화화된 코믹 캐릭터의 끝판왕에 가깝다.
장혁이 연기한 ‘운널사’ 속 이건은 독고진의 뒤를 잇는 희대의 캐릭터로 기억될 전망이다
장혁의 연기가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간 다소 진중한 역할만을 맡아왔던 장혁의 변신은 꽤 충격적이다. 수많은 코믹 설정이 난무했던 영화 ‘화산고’에서조차 독야청청 ‘멋남’ 이미지를 고수했던 장혁은 ‘운널사’로 완전히 변신했다. 과장된 몸짓과 표정, 해괴하기까지 한 웃음소리는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차승원이 그려낸 독고진 캐릭터를 떠올리게 한다.디테일이 살아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단순히 웃기기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자칫하면 B급 로맨스로 탈바꿈할 ‘선 임신, 후 로맨스’라는 소재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도 장혁의 수훈이다. 김미영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등장하는 이건이 진부한 ‘키다리 아저씨형’ 인물로 보이지 않는 것도 과격한 코믹 연기 이면에 진중하고 사려 깊은 이건의 속내를 녹여낸 덕분이다. 장혁이 그려낸 이건에는 늘 제멋대로이고 자신만만하지만, 어딘가 허당 같은 지고지순한 남성의 모습이 담긴다.‘운널사’가 배우 장혁의 연기 인생 2막을 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같은 이유다. 굳어진 과거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캐릭터를 전복, 더 큰 파급력을 일으키는 대목에서는 연기 경력 18년 차 배우의 관록이 느껴진다.
대중이 자신을 통해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꿰뚫는 혜안도 돋보인다. 앞서 MBC ‘일밤-진짜 사나이’ 출연 당시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절권도로 대표되는 ‘장혁의 액션 감각’이었지만, 되레 가장 큰 웃음을 이끌어냈던 건 의외의 허당 기질이었다. 유격 왕으로 등극한 장혁이 씨름 대결에서 1초 만에 바닥에 패대기쳐진 순간, ‘멋남’ 장혁은 다시 태어났다. ‘운널사’로 돌아온 장혁의 코믹 연기가 치밀한 계산으로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 방송 화면 캡처
‘코믹’으로 열어젖힌 ‘운널사’의 이후 전개는 장혁에게 또 다른 도전이 될 전망이다. ‘운널사’의 주된 얼개가 방송 4회 만에 결혼에 골인한 이건이 미영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과정에 있는 만큼 장혁의 어깨는 가볍지 않다. 처음에 잡은 연기 톤을 유지하며 한 남자의 성장을 담는 과정은 ‘장혁’이라는 배우의 진가를 확인하는 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운널사’를 애청하는 우리에게 큰 쾌감을 선사할 것임이 틀림없다. 노련한 배우의 도전은 언제나 흥미로우므로.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 방송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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