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5월 10일 MBC 가요 순위프로그램 ‘인기가요 베스트 50’(‘쇼! 음악중심’의 전신)에 괴상한 밴드가 니왔다. ‘장르파괴선언’이란 소개를 받고 무대에 오른 팀은 황신혜 밴드. 요란한 의상과 퍼포먼스와 함께 ‘짬뽕’을 노래하자 화면 밑에 자막으로 “타이틀곡 ‘짬뽕’은 인류문화와 사상의 융합을 기원한 내용”이라는 설명이 흐른다. 킥킥대다 보면 밴드 옆으로 각국의 민속의상을 입은 백댄서들이 춤을 추는 카메라에 잡힌다. 이것이야말로 ‘버라이어티 짬뽕 쇼’가 아닌가? 이걸 보고 있으면 웃기기보다는 당시 가요 프로그램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PD가 용감했거나.
황신혜 밴드는 별의별 짓을 다했다. 무대 위에서 연막탄을 터트리고, 비를 내리게 하고, 다 죽어가는(?) 여고생을 일으켜 세웠다. 미술가 출신인 김형태는 심각한 예술에 실증을 느껴서 음악을 시작했다. 신중현, 산울림 풍의 한국 록과 뽕짝, 디스코 등을 뒤흔들어놓은 듯한 음악은 상당히 창의적이었지만,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외관 때문인지 키치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키치도 어느새 하나의 오리지널리티로 자리 잡아갔다. 그리고 황신혜 밴드는 음악의 기본에 충실한 12년 만의 정규 4집 ‘인간이 제일 이상해’로 돌아왔다. 2인조로 돌아온 황신혜 밴드(김형태, 허동혁)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Q. 무려 12년 만에 새 앨범이다. 12년 동안 준비한 앨범이라고 하더라.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김형태: 하하하 그것만 써도 연재해야 될 것 같다. 지난 3집은 나 혼자서 일렉트로니카를 콘셉트로 만들었는데 별 반응이 없었다. 때문에 상처를 받고 운둔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음악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대중음악이기 때문에 대중과 소통이 안 되면 아무리 앞서가는 실험도 큰 의미가 없더라. 내가 현대예술에 회의를 가지면서 대중음악을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내 음악에 실험성이 가미되기 시작하는 거야. 욕심이 들어간 거지. 그래서 대중과 거리가 멀어지게 됐다. 이번에는 초심으로 돌아가 보려 했고, 음악의 본질에 다가가려 했다.
Q. 음악의 본질은 뭐던가?
김형태: 음악의 본질은 사운드다. 노래의 본질은 가사고. 콘셉트는 부수적인 것이다. 그걸 다시 깨달은 것이다. 음악이 별로인데 콘세트, 태도가 좋아서 들어달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사실 음악이 좋아야 하는 것이 기본인데, 깨닫고 보니 그 기본이 가장 어렵더라는 거지. 그게 장난 아니게 어려운 거야. 깜짝 놀랄만한 퍼포먼스, 스타일은 아이디어지만, 좋은 사운드, 곡이 나오려면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정말 지하실에서 기타 연습하고 앰프도 바꾸고, 계속 레코딩 테스트를 했다. 물론 1년에 한두 번은 공연을 했다. 방구석에만 있으면 ‘오타쿠’가 되니까. 또 귀를 높이고자 하이파이 오디오를 시작하고, 과거에 처분했던 LP를 다시 구해서 들었다. 3년간 LP만 2천 장 정도를 샀다.
Q. 12년은 긴 세월이다. 그 사이에 앨범을 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김형태: 매년 앨범을 내고 싶었지만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밴드 멤버를 계속 바꿔가면서 음악을 테스트했는데 만족이 안 됐다. 작년까지는 4인조 록밴드 편성이었는데 앨범 발표 코앞에서 해산했다. 최종적으로 허동혁과 2인조 편성으로 완결됐다. 밴드 음악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만들져야 되기 때문에 음악을 바꾸려면 사람을 바꿔야 한다. 그런 시행착오를 겪었다.
Q. 황신혜 밴드의 앨범이 12년 동안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허동혁이 이제야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김형태: 허동혁은 MDS라는 팀을 했던 일렉트로닉 뮤지션이다. 단순한 건반 연주자가 아니다. 음악적인 풀이 매우 넓어서 사운드 전반의 디자인이 가능한 뮤지션이다. 동혁이를 만나기 전부터 리얼 악기는 황신혜 밴드가 추구하는 것을 구현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여겼다. 원래 트윈 기타였는데 기타가 두 대라 사운드가 무거워지고, 너무 블루지하게 되더라. 현악기 자체가 슬픈 거니까. 그래서 악기를 최소화하고 그걸 채워줄 다른 사운드가 필요했다. 그런 역할을 해줄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동혁 이전에 일렉트로닉 계열 뮤지션들과 함께 해봤는데, 이들의 특징이 혼자 작업해 버릇해서 그런지 합주가 여의치 않은 거야. 그런데 허동혁은 밴드적인 앙상블이 가능한 연주자였다. 내가 원하는 것을 바로바로 이해하고 음악으로 디자인해줄 수 있는 이였다.
Q. 허동혁은 황신혜 밴드 이전에 어떤 활동을 했나?
허동혁: 계속 전자음악을 했다. MDS라는 팀으로 한국 인디 신의 음악들을 리믹스한 앨범을 한 장 냈다. 일부러 이쪽 동네 음악을 리믹스 한 것은 아니고, 내가 아는 사람들이 다 이 동네 사람들이니까. 형태 형과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다. 페스티벌도 나가고, 클럽에서 디제잉도 하고 그랬다. 지금은 황신혜 밴드 작업 마치고, 윤일상과 가요 작업 중이다.Q. 둘이서 분담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김형태: 작사 작곡 노래와 기타 연주 같은 기본적 뼈대는 내가 맡고 허동혁이 나머지 사운드를 디자인해줬다. 곡 분위기를 바꾸는데 동혁이의 비중이 상당히 컸다. 제일 중요한 것은 황신혜밴드는 신나고 밝아야 한다. 가사 이면에는 짙은 페이소스가 있기 때문이다. 록은 사운드 자체가 슬픈데 거기에 페이소스까지 들어가면 너무 무거워진다. 농담은 농담이어야 한다. 그래서 리듬 파트를 최대한 신나게 갔다. 동혁이는 기본적으로 DNA가 신나는 사람이라 어떤 곡을 줘도 유쾌하게 풀었다. 나처럼 이무기 같이 오래된 형이 음악까지 처절하면 무섭잖아.
Q. 이번 앨범은 새로운 황신혜 밴드의 음악이라고 볼 수 있을까?
김형태: 가요계에서 보기에는 새롭겠지만, 황신혜 밴드로서는 초기 스타일로 돌아간 것이다. 오히려 보편적인 정서로 갔다고 할까? 이번 앨범 작업을 하기 전에 모토로 한 것은 ‘더 새로울 필요 없다. 더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황신혜 밴드는 18년 전에 이미 새로웠다. 사실 새로운 음악이라는 것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음악이 아니다. 그건 그냥 이상한 거야. 음식으로 치면 자장에 케첩 얹고 스파게티소스 섞은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거다. 오서독스한 맛은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뭔가 없던 것을 찾아내야 한다. 납득이 가야 돼, 그런데 평범하면 안 돼. 그런 것을 해보고 싶었다.
Q. 허동혁은 황신혜 밴드의 의상을 입어보니 어떤가?
허동혁: 의외로 편하다. 나도 무대에 대충 입고 올라가는 것은 싫다. 최소한 구두라도 닦아야지. 황신혜 밴드는 일단 콘셉트가 확실한 것이 좋다. 사실 가요계에 새로운 음악이라고 할 것이 별로 없다. 예전 것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뭔가 하나라도 다르게 하는 것에 있어서는 황신혜 밴드가 1등이다.
Q. 황신혜 밴드에 대해서는 과거 음악보다 퍼포먼스에 중심을 둔 팀이라는 오해도 있었다.
김형태: 예쁜 애들의 억울함이지. 퍼포먼스를 하니까 나머지는 아닐 거라는 선입견과 같은 것이다. 사실 황신혜 밴드를 거쳐 간 이들 중에 좋은 연주자가 많다. 나와 조윤석(베이스)가 1집으로 활동 활 때에도 연주 잘하는 세션 연주자들을 썼다. 1집 때 드럼을 친 게 이상민(긱스 출신의 이상민)이었다.
Q. 1995년에 곰팡이에서 결성해 이듬해 모 갤러리 기획전에서 퍼포먼스 형식의 라이브로 실체를 드러냈다고 하더라. 당시가 궁금하다.
김형태: 설명하자면 길다. 1991년에 홍대에 발전소라는 카페를 했다. 지금 FF가 있는 클럽가 자리였는데 말하자면 ‘홍대 스타일’의 원조 격의 카페였다. 당시 발전소에서 종업원 하던 친구들이 명월관, 상수도, 500과 같은 클럽을 차리게 된다. 발전소가 히트를 쳤는데 난 거기서 나와서 좀 더 마니악한 ‘곰팡이’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거기에 훗날 ‘도시락 특공대’라 불리는 모임인 김창완, 강산에, 황보령, 어어부 밴드, 달파란, 삐삐밴드와 같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아지트와 같은 곳이었다. 어어부 밴드는 곰팡이에서 데뷔 공연을 했다. 난 당시까지 음악을 하지 않고 곰팡이에서 DJ를 했었다. 그러다가 하이텔 음악동호회 게시판에 황신혜 밴드에 대한 페이큐 다큐와 같은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황신혜 밴드라는 팀이 나왔는데 음악이 어떻다는 것을 ‘카더라 통신’처럼 올린 거다. 일종의 ‘구라 방송’인 거지. 그렇게 1년을 썼더니 독자 층이 생겼다. 연주는 안 하고 글을 계속 올리는데 어느 날 조윤석이 놀러 와서 진짜 밴드를 만들자고 하더라.Q. 데뷔 무대는 어떻게 갖게 됐나?
김형태: 내가 원래 미술가였기 때문에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 초청작가로 갔다. 설치미술을 하던 때다. 연락을 받고 나는 음악 퍼포먼스를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하이텔에 황신혜 밴드가 공연을 한다고 공지를 올렸다. 공평아트센터라는 곳이었는데 300명 정도가 왔다. 거기에 이석원(언니네 이발관), 윤준호, 김민규(델리 스파이스)와 같은 친구들도 있었다. 다들 밴드를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 공연에 기자들까지 놀러와서 첫 공연 하고 인터뷰까지 하게 됐다. 그 다음에 ‘살’에서 두 번째 공연을 하고 동아기획과 계약한 후 1997년에 1집 ‘만병통치’를 냈다. 첫 공연 후 6개월 만에 앨범이 나온 것이다.
Q. 첫 공연부터 퍼포먼스를 따로 했나?
김형태: 현대무용가와 함께 공연을 했다. 그때부터 헬멧을 썼다. 난 그런 게 재밌다. 내가 토킹헤즈를 제일 좋아하는데, 리더 데이빗 번도 종합 예술인이다. 루 리드와 결혼한 전위음악가 로리 앤더슨도 무척 좋아한다. 황신혜 밴드와 같은 팀도 있어야지. 정말 그때만 해도 레이디 가가처럼 생고기 의상을 입는 세상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 것이 문화의 다양성이다. 난 기존의 심각한 음악이 싫었다.
Q. 당시 어어부 밴드는 무대 위에서 성경책을 찢기도 했고 레이니썬은 불을 지르기도 했다. 황신혜 밴드는 어떤 퍼포먼스들을 했었나?
김형태: 그들은 좀 파괴적이었고, 우리는 버라이어티했다. 연막탄을 헬멧에 달아서 연기가 나게도 하고, 무대에서 비 내리기도 했다. 민방위훈련 할 때 쓰는 연막탄을 청계천에 가서 구했는데 그게 분말이라서 기타에 들어간 게 안 닦여서 고생했다. 교주 콘셉트로 공연할 때에는 쓰러진 여고생을 음악의 힘으로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물론 짜고 한 거다.
Q. 그런 것들 때문일까? 인디 신이 태동했을 때 기존 음악에 대한 안티태제라는 글들도 있었다.
김형태: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안티태제가 아니라 중산층 아이들이 음악을 하러 나온 것이다. 록에 심각하게 다가가지 않고 패션으로써 즐겁게 대한 것이다. 그런 대상이 너바나, 그린 데이와 같은 팀이 된 것이다. 난 토킹헤즈를 좋아했던 거고. 그런 걸 가져다가 90년대에 글쟁이들이 거창한 문화운동인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실제 뮤지션들은 심각하지 않았다.
Q. 음악적으로 황신혜 밴드는 인디 신에서 신중현, 산울림과 같은 한국적인 록을 시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후에 곱창전골, 눈뜨고코베인, 장기하와 얼굴들이 이런 시도들을 했다.
김형태: 난 의도적으로 그런 색을 했다. 우리나라 음악의 정체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록 외에 뽕짝도 마찬가지다. 사실 뽕짝은 키치적인 것인 의미가 아닌데, 우리가 그것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다. 뽕짝은 한국인이 만든 중요한 음악적 요소다. 신중현, 산울림이 만든 한국 특유의 록도 마찬가지이고. 난 그런 음악의 기타 리프, 창법들을 연구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느낌이다.
Q. 새 앨범은 기존의 김형태의 한국적인 록, 뽕짝과 허동혁의 일렉트로니카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인간이 제일 이상해’를 타이틀곡으로 한 이유는?
김형태: 12년 곡을 만들어 모았다. 동혁이와 만나서 ‘인간이 제일 이상해’ ‘몰래 몰래’, ‘썩 비켜라 우리가 간다’를 새로 만들었다. 이 곡들이 딱 신상 느낌이다. 둘의 개성이 잘 묻어난 곡들이고, 특히 ‘인간이 제일 이상해’는 지금의 황신혜 밴드를 잘 보여주는 곡이다.
Q. 이번 앨범을 들어보면 음악은 쉽고, 메시지는 심오하다.
김형태: 심오한가? 황신혜 밴드는 늘 그랬다.(웃음) 황신혜 밴드는 음악은 재밌고 쉽고 만만한데 가사는 깊이 있게 들어간 부분이 있다. 우리 음악은 그냥 재밌게 들어줬으면 좋겠다. 의미부여하지 말고 말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많이 사서 차에 넣고 졸음 운전할 때마다 팍팍 틀어라.
Q. 이번 앨범을 통해 죄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김형태: 죄의식을 음악으로 다뤄봤다. ‘인간이 무엇인가’는 누구에게나 평생의 화두인데, 그 단계가 있다. 행복이 뭔가에 대해 집착할 때도 있는 것이고. 요즘 사람들은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 좋아하는 게 뭘까 찾는 것이 화두인 것 같다. 근래 5~6년 정도 사이에 인간의 죄가 뭘까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최근 세월호 사태를 지켜보면서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죄의식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 사건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이들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나.
Q. 수록곡 중 ‘죄 Song’이 좋더라.
김형태: 죄가 많아서 그런 거야.(웃음) 확 와 닿지? 헝클어지지? 면죄부를 받은 듯한 느낌이 들 거야. 사람이 지고 있는 큰 짐, 고통은 죄가 아니고 죄의식에 있다. 죄의식이 없으면 죄를 지어도 아무렇지도 않다. 그런 것을 음악으로 이야기해봤다.
Q. 3집에 실렸던 ‘잘 먹겠습니다’는 왜 다시 수록했나?
김형태: 내가 진짜 아끼는 노래다. 3집 버전이 약간 성이 안 차서 다시 녹음해보고 싶었다. 내가 제일 힘들 때 쓴 곡이다. 내 인생이 바닥이라고 생각했을 때 ‘정말 다행이에요’라며 이 노래가 나왔다. 지금 힘든 사람들 많을 거다. 거창한 거 아니어도 그냥 혼자서 힘든 사람들 말이다. 몰래 몰래 힘든 거. 정말 힘든 것은 남들에게 내색을 못한다. 그런 사람들은 이 곡의 트럼펫 연주를 들어봐라.
Q. 올해 쉰 살이다. 인디 신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배로써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형태: 늦깎이라 그렇지 크라잉넛과 동기다. 선배라기보다 동료로써 한마디 한다면 다들 눈치 안 보고 음악 했으면 좋겠다. 뻣뻣한 자세가 평화로울 때에는 걸리적거리지만, 뭔가 휩쓸리는 상황이 왔을 때에는 기둥이 될 수 있다. 나약함을 버리자. 강해졌으면 좋겠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황신혜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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