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 채널A의 양승원(왼쪽), 강태연 PD
바야흐로 ‘스타 PD’의 전성시대다. 본래 방송국의 프로그램기획자로 작품 선정, 인력관리, 예산 통제 등을 담당했던 PD들의 활동 영역은 최근 들어 전에 없이 확장됐다. PD들이 프로그램의 전면에 서는 경우도 잦아졌다. 예능 PD들은 프로그램의 중심에서 ‘제3의 멤버’와 같이 활약을 펼치기도 한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도 “관찰자는 관찰하는 대상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PD의 이름이 곧 하나의 브랜드처럼 여겨질 만큼 명확하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PD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독창적인 색깔을 드러내며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이들에 시청자들의 열광 한다. 그들이 그려내는 세계가 그만큼 깊고 중독성이 강하다는 증거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소위 ‘스타 PD’라 불리는 이들은 무엇을 보고 있으며, 그들이 그려내는 세계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 하는 걸까.그런 측면에서 지난달 12일(현지시각) 미국 휴스턴 시에서 열린 제47회 휴스턴 국제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최고상을 거머쥔 채널A ‘특별취재 탈북(이하 탈북)’은 눈길을 끈다. 그간 소문만 무성했던 ‘탈북 과정’을 현지에서 밀착 취재한 ‘탈북’은 북한의 실상과 함께 음지에 묻혀있던 탈북자 인권 문제를 재조명하며 주목받은 것.
‘탈북’이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데는 탈북자와 함께하는 위험천만한 여정을 마다치 않은 양승원, 강태연 PD의 공이 컸다. 중국에 위치한 안전가옥(이하 안가)에서 탈북자들과 숙식을 함께한 강 PD와 국경을 넘는 순간에도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은 양 PD의 노고는 ‘탈북’에 오롯이 담겼다. ‘탈북’이 방송 이후 모금 활동 등으로 실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탈북’ 안에는 사실 이상의 진실이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수상 이후 첫 인터뷰 자리에서 마주한 두 PD는 ‘탈북’을 이야기하며 ‘탈북자의 인권’을 말했다. 그리고 20일간의 위험하고도 뜨거웠던 취재기를 회상하는 이들과의 인터뷰는 ‘다큐의 존재 의의’로까지 뻗어 나갔다. “세상을 조금 더 움직이는 PD가 되고 싶다”는 이들의 시선 끝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있을지. 사선을 넘어온 두 PD의 시선을 쫓아가 봤다.Q. 수상 축하드린다. 우선 소감부터.
양승원 PD: 세계 최초로 탈북 과정을 밀착 취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PD로서는 영광스럽지만, 그 공을 우리만 차지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만은 않다. 함께 사선을 넘은 15명의 탈북자에게 이 공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다.
Q. 앞서 말한 대로 ‘탈북’의 성과는 탈북 과정 밀착 취재로부터 비롯됐다. 어떻게 그들과 동행할 생각을 하게 됐나.
양승원 PD: 취재 전 1년 정도 기획 과정을 거쳤지만, 처음부터 탈북 과정을 다룬 것은 아니었다. 원래 기획은 김정일 사후 북한의 모습을 담아보자는 것이었다. 근데 취재 과정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게 아니다 보니 막상 현장(중국)에 도착해서 수정한 부분이 많다.
Q. 결과적으로 별 탈은 없었지만, 자칫하면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었다.
강태연 PD: 현지인들 말에 따르면 만약 탈북 과정 중에 잡혔다면 구금되고 조사를 받게 된다고 들었다, 물론 누구에게 어디서 잡히는지도 중요하겠지만. 또 방송 이후에는 지인한테 전해 들은 건데 우리는 중국 공항만 가도 바로 잡힌다더라. 앞으로 중국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하하.
양승원 PD: 마침 시진핑 정부로 바뀐 다음 전당대회가 막 끝난 시점에 들어가게 됐다. 전당대회 기간에는 국경 경비도 삼엄했다고 하는데 운이 따라준 것 같다.Q. 취재원과의 소통이 중요했겠다. 탈북 브로커 입장에서도 목숨이 달린 일이니 위험부담이 컸을 텐데 모든 과정을 공개했다. 어떻게 이들의 마음을 돌려놓았는지 궁금하다.
양승원 PD: 당연히 쉽게 오픈할 리 없다. 현지에서 브로커들과 만난 뒤 숙식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처음에는 그쪽에서도 정보공개를 꺼려며 카메라를 치우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사람은 사람이라 계속해서 살을 맞대니까 어느 순간 따로 이야기도 없이 오픈하더라. “함께 어디 좀 가자”고 해서 따라갔더니 그게 탈북 현장이었다.
Q. 동행하는 탈북자들도 자신의 신원을 밝히는 데 부담이 컸을 것 같다. 그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강태연 PD: 동행했던 탈북자들의 경우에는 갈렙선교회 측과 이야기가 돼 있는 상태였다. 가명은 물론이고 직접적인 노출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자이크나 음성변조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를 그대로 수용하되 따로 설득하지는 않았다. 다만 탈북 과정 중에 생사고락을 함께하다 보니 자연스레 ‘어떤 정’ 같은 게 쌓였다. 그런 상황 속에 ‘탈북’이 이렇게까지 만들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일부 탈북자들은 방송이 본인의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도 촬영에 동의한 거다.Q. 구체적인 취재 과정이 궁금하다.
강태연 PD: 양 PD와 나는 각기 다른 때에 중국 심양과 국경 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는 13명의 성인 그룹과 함께 국경 쪽으로 이동했고 양 PD는 신혁이가 있는 그룹과 내려오다가 국경 끝에서 합류했다.
Q. ‘탈북’ 2회에서는 동남아 국경에서 합류한 두 사람의 모습이 담겼다. 특히 만나자마자 양 PD가 강 PD에게 “(카메라) 메모리칩을 먼저 받아”라고 외치며 빠져나갔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양승원 PD: 한 차에 다 탈 수 없었기에 메모리칩을 먼저 전한 거다. 혹시라도 공안에게 발각될 시에는 관광객이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카메라 내장 메모리에는 풍경 사진도 찍어뒀다, 하하.
Q. 강 PD는 안가에서 머물며 탈북자들과 숙식을 함께한 것으로 안다.
강태연 PD: 대륙이 넓고 곳곳에 공안이 있다 보니 쉽게 이동하기가 어려웠다. 대형 버스를 대절하면 좋으련만 발각 위험이 있어 소수로 나뉘어 이동했다. 안가도 3~4회 정도 바꿨다.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냉방도 안 되고 집기도 다 부서진 안가에서 커튼치고 불 끄고 숨어 있는 거다. 육체적인 피곤보다도 언제 발각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고통스러웠다.Q. 국경으로 이동하는 중에는 “발각되면 차라리 죽겠다”며 면도칼을 챙기는 탈북자도 있었다.
강태연 PD: 장소에 따라 죄의 질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잡히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나마 중국에서 잡히면 “돈을 벌려고 왔다”고 이야기라도 하겠지만, 한국으로 가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에는 수용소에서 고문을 당하거나 총살당한다더라.
Q. 기존의 다큐멘터리처럼 전문가 인터뷰나 제공 영상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탈북 과정과 탈북자의 인터뷰를 중점적으로 다루다 보니 ‘탈북’에는 살아있는 메시지가 담겼다는 느낌이다.
양승원 PD: 우리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제대로 된 탈북 과정을 보여주자는 것. 보통 기사화된 내용이나 자료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탈북이 이뤄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느낀 탈북 과정은 또 달랐다. 너무나도 복잡한 과정이 있었고 매 순간 긴장감 속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단 하루만이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한국으로 오는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Q. 그런 메시지는 신혁이의 이야기를 통해서 구체화됐다. 특히 방송을 통해 신혁이의 이야기를 접한 시청자 중에는 탈북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더라.
강태연 PD: 한국에 수많은 탈북자가 살고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잦다. ‘탈북’을 통해서 그간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탈북자들의 삶을 처음 대면한 분들이 많을 거다. 이렇게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라도 간접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내가 바뀌었던 것처럼 그분들의 향한 인식도 조금씩 변하지 않을까 싶다.
양승원 PD: 지금 신혁이가 머물고 있는 집의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 “통일은 거창한 게 아니고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함께 사는 게 아니냐”고. 나도 그렇지만, 특히나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탈북자가 관심 밖의 대상일 거다. 이들의 관심을 다시 돌려놓는 것, 거기에 ‘탈북’의 메시지가 있다.
Q. 물리적인 통일보다도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게 급선무라는 이야기인 것 같다.
강태연 PD: 내가 만난 한 탈북자는 “탈북자라고 말하는 것보다 조선족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취직이 잘 된다”고 하더라. 그들이 사는 곳이 남한이든 북한이든, 사실 가장 중요한 건 ‘삶’ 자체가 아닐까. “그들을 더 지원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나, 어떤 거대담론을 꺼내놓으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탈북자들이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정도만이라도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Q. 신혁이에 대한 이야기는 ‘탈북’ 이후 ‘추석특집 재회’, ‘신년특집 신혁이’를 통해서 추가로 담겼다. 특히 양 PD와는 여전히 애틋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더라.
양승원 PD: 출연자와 PD의 관계는 오래전에 뛰어 넘었다. 어린이날에도 함께 있었고, 하하. 사실 이번에 휴스턴 국제 영화제 시상식에도 함께 갔다. 회사 측의 도움으로 신혁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것 같다.
Q. 후속 다큐멘터리에서도 드러난 부분이지만, 신혁이를 비롯한 탈북 아이들의 정신적 외상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더라. 정말 마음이 안타까웠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나.
양승원 PD: 많이 나아졌다. 물론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부분도 있다. 미국에서는 일정을 함께 다녔는데 신혁이가 편식을 많이 해서 고생했다. 근데 억지로 밥을 떠먹이면 짜증을 내면서도 다 먹는다. 불행한 가정환경(신혁이의 어머니는 돈을 벌겠다며 중국으로 떠났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기다리다가 자살했다) 때문에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거다. 그런 모습을 보며 마음 아플 때가 많다.
Q. ‘탈북’으로 인해 ‘탈북 전문가’라는 수식도 얻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다.
양승원 PD: 그런 수식은 정말 부담이다, 하하.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안에 진정성을 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다큐멘터리는 몸으로 뛰는 PD가 만든 것’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을 조금 더 움직일 수 있는 PD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더 노력해나갈 거다.
강태연 PD: ‘탈북’이 이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데는 내용의 ‘포장’보다도 그 안에서 PD가 어떻게 출연자를 대하는 지, 그 마음이 전달된 결과라고 본다. 적어도 우리가 구현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그런 진정성이 담긴 프로그램이다. 다큐멘터리의 초심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게 우리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유이니까.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제공. 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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