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밀회’ 방송 화면 캡처
위험해서 아름답고, 아름답기에 슬프다. 종합편성채널 JTBC ‘밀회’(극본 정성주, 연출 안판석)의 김희애는 스무 살 청년 유아인과의 로맨스를 ‘불륜’보다는 ‘여자 오혜원의 홀로서기’에 초점을 맞춰 한 여성의 기구한 삶을 감각적으로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불륜’이라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김희애의 연기에서 공감 혹은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느껴지는 이유는 극 중 ‘오혜원’이라는 인물이 놓인 복합적인 상황에 있다. 겉으로는 서한예술재단의 기획실장으로 1억이 넘는 연봉을 받고 있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이지만, 그 실상은 사랑을 갈구하는 보통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오혜원에 대한 공감은 그 지점부터 시작된다.이선재(유아인)이 그녀의 삶에 불쑥 뛰어들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안정적이었다. 예고 동기이자 상사인 서영우(김혜은)의 온갖 투정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건, 이 모든 게 혜원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선택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상류층에 속하기 위한 그녀의 삶은 한 편의 투쟁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런 혜원의 삶은 선재를 만나면서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선재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타고 그녀의 삶 전체를 흔들어놓았다. 항상 모든 것을 자신이 계산한 범위 내에서 통제해온 혜원이 스무 살이나 어린 남자로 인해 이토록 위태롭게 된 것은 선재가 모든 게 완벽한 그녀에게 결핍된 ‘어떤 것’의 틈새를 정확하게 비집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JTBC ‘밀회’ 방송 화면 캡처
그 ‘어떤 것’이란 바로 ‘꿈’과 ‘사랑’이다. ‘밀회’의 초반부에는 혜원이 어찌하여 그토록 사랑했던 피아노 연주를 포기하게 됐는지가 드러났다. 혜원은 건초염 때문에 피아노를 포기했다. 그러나 그게 꿈을 포기한 이유의 전부였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밀회’에서 두 남녀의 로맨스와 함께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이 음악 교육의 어두운 측면인 만큼, 불우했던 환경 속에 그녀가 온전히 자신의 꿈을 지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 또 결혼과 함께 서한예술재단에 몸담으면서 “예술업계에 뼈를 묻겠다”고 말한 것도 꿈을 포기한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어기제였던 지도 모른다.선재의 천재성은 그녀가 스무 살 청년에게 관심을 두게 되는 이유이자 질투의 대상이다. 따라서 혜원은 선재를 보며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투영하려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마치 ‘중2병(중학교 2학년 나이 또래의 청소년들이 사춘기 자아 형성 과정에서 겪는 혼란이나 불만과 같은 심리적 상태)’에 걸린 듯한 인상의 남편 강준형(박혁권)의 기를 살려주려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피해왔던 혜원이 선재에게는 스스로 ‘선생님’이라고 칭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호기심으로부터 기원한 관심은 질투가 됐고, 결국 혜원이 선재를 갈망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JTBC ‘밀회’ 방송 화면 캡처
혜원의 또 다른 틈새는 바로 남편의 사랑이다. ‘밀회’는 초반부부터 줄곧 혜원의 잘 가꿔진 몸매를 노골적으로 조명한다. 마흔의 여성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자신을 몸매를 가꿔왔다는 점은 ‘김희애’라는 배우 자체의 매력일 수도 있겠으나, 사실 혜원이라는 인물의 표현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이후 주된 이야기 전개와 함께 ‘밀회’는 ‘오혜원’이라는 여성의 ‘사랑에 대한 갈망’을 중간중간 배치한다. 탐스럽게 익은 빨간 사과를 크게 베어 무는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담는 모습에서는 ‘육체적 사랑’에 대한 메타포가 읽히며, 조인서(박종훈)와 애정 행각을 펼치는 친구를 바라보는 혜원의 질투심 가득한 시선에서 ‘정신적 사랑’에 대한 결핍이 묻어난다.마흔이 지났으나 아이가 없다는 점, 또 혜원과 준형이 침대를 따로 쓴다는 점도 이들이 ‘섹스리스 부부’일 가능성을 암시한다. 항상 혜원에게 “넌 누구랑 사는 거냐”며 조인서에 대한 질투심만 드러내는 준형은 정작 친구들과의 모임에 함께 가자는 혜원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해 버린다. 보통의 부부들에게는 일상적인 정신적, 육체적 사랑이 혜원-준형 부부에게는 장기간 결핍되었으며, 이 때문에 혜원이 어느 정도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JTBC ‘밀회’ 방송 화면 캡처
결국 혜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어수룩한 감정의 포장도 없이 한결같이 자신의 사랑을 드러낸 선재에게 마음이 기운다. 먼저 다가가 꼭 안아주는 선재의 행동과 이들이 피아노를 연주하며 나누는 교감이 100번의 스킨십보다도 더 먹먹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이유다. 혜원은 선재를 통해 자신의 결핍된 부분이 채워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 이는 5회를 기점으로 타인을 대하는 혜원의 태도에 미묘한 변화가 일고 있다는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물론 ‘불륜’ 자체로는 어떠한 감동도 줄 수 없으며, 아무리 드라마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그려져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40대 여성으로, 누군가로부터도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는 한 여성으로서의 혜원의 삶은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만 한 문제를 던진다. 어쩌면 이것이 ‘음악’과 ‘혜원’을 통해 성장통을 겪는 선재의 성장기보다도 ‘여자로서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혜원의 모습에 더 눈길이 가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JTBC ‘밀회’ 방송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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