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임요환의 표정에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지난 1999년 데뷔한 이래 13년간 ‘스타크래프트의 황제’로 군림하며 대한민국 e스포츠의 근간을 세웠던 임요환은 2014년 프로 포커플레이어로 전향하며 새로운 도전을 앞뒀다.

그는 늘 홀로 걸었다. ‘스타크래프트’가 단순히 ‘게임’으로 치부됐던 시기에도 그는 철저히 혼자였다. 게임 산업을 e스포츠와 연계하려는 관계자들의 부담과, 한 분야에서 ‘황제’의 칭호를 거머쥔 자의 중압감 속에서도 임요환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밀물과도 같았던 전성기를 지나 13년간 한결같이 게임에 몰입한 그의 모습에 팬들이 열광했던 이유도 단순히 그가 거둔 성적과 업적에만 있지는 않았다.잦은 논란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던 케이블채널 tvN ‘더 지니어스: 룰 브레이커’(이하 ‘더 지니어스2’)에서 준우승을 거둔 뒤에도 임요환은 스포트라이트를 피했다. 오로지 현재 자신이 집중하고 있는 홀덤 포커로만 평가받고 싶다는 그의 의연함 속에서는 또다시 고된 길을 걷고자 하는 ‘테란의 황제’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자신이 걷는 길이 곧 미래라고 믿는 남자 임요환, 그에게 ‘게임’은 곧 삶의 일부인 듯했다.

Q. ‘더 지니어스2’를 향한 대중의 반응이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임요환: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방송보다는 내가 몸담은 ‘홀덤 포커(게임의 참가자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카드를 보면서 베팅을 하며, 가장 높은 가치의 카드 조합을 가지고 있는 참가자가 승리하는 게임)’로 이름을 알렸으면 했기에 조금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

Q. 방송 중에 ‘스타크래프트1’에서의 모습을 기억하는 팬들의 아쉬움도 쏟아졌다. 그만큼 ‘더 지니어스2’는 당신에게 득과 실이 분명한 도전이었다.
임요환: 득이라고 하면 게임으로만 알려졌던 나를 많은 사람에게 알렸다는 거다. 좀 더 친근한 이미지를 얻은 것 같다. 단점은…, 뭐 그건 (방송을) 보신 분들은 다 아실 테고. (웃음)

Q. 반전 리얼리티 쇼 ‘더 지니어스2’의 진짜 반전은 바로 당신의 준우승이 아니었을까. 결승전 이후 “‘가넷 거지’는 의도된 전략이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웃음)
임요환: 솔직히 나는 메인매치를 잘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방송 출연 전에 ‘더 지니어스: 게임의 법칙’을 복습했는데 잘나고, 밉상인 사람은 다 제쳐지더라. ‘살아남아야 할 때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깨달음을 얻고 보니 ‘0 가넷’도 전략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물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내가 미숙한 부분이 있었던 건 인정한다.

Q. 그러고 보면 선수 생활을 할 때도 팀플레이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임요환: 원래 팀플은 되게 못했다. 구상한 전략과 생각을 전달하는 게 쉽지 않다. 감독 생활할 때도 그런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충분히 설명하는 게 아니라면, 오랜 시간 함께하며 이심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단계까지 가야 하는데 그게 어렵더라.Q. 감독직을 맡다가 다시 ‘스타크래프트2’의 선수로, 그리고 마침내 프로 포커플레이어 선수로 전향했다. 안정보다는 도전을 선호하는 편인가.
임요환: 전 프로게이머 베르트랑(Bertrand Grospellier)만 보더라도 확실히 프로게이머는 승부의 현장에 있을 때 강한 면모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부터 홀덤 포커에 관심이 있었고 미투온 손창욱 대표를 만나면서 도전에 대한 확신도 생겼다.

Q. 홀로 상대방과 맞서야 한다는 점에서 ‘스타크래프트’와 ‘홀덤 포커’가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임요환: 승부의 세계에서 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점은 어느 게임이나 모두 같다. 반면 프로게이머 생활을 할 때는 전자기기를 통해 상대방을 마주하지만, 홀덤 포커는 직접 상대방의 몸짓, 표정, 반응 등을 보면서 전략을 짜야하기에 심리적인 요소가 좀 더 강하다.

Q. ‘승부의 세계’에 발 담갔던 프로게이머 경험이 프로 포커플레이어로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임요환: 프로게이머 시절 다양한 전략을 짜고, 상대방의 수를 읽기 위해 노력했던 게 큰 도움이 된다. 이제는 습관이 되다시피 한 ‘순간적인 집중’이나 ‘혹독한 연습’도 그렇고. 그래서 늘 고질병도 달고 산다.

Q. 그럼에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홀덤 포커’를 ‘도박’과 동의어로 생각하는 사람들인 다수 있다. 그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꿔나가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일 텐데.
임요환: 실제로 프로게이머 출신 중에 프로 포커플레이어로 전향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전향했다는 사실을 떳떳이 밝히기를 주저하더라. ‘홀덤 포커’는 ‘도박’이 아니다. ‘도박’은 확률이 50% 이하인 것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고, 홀덤 포커는 다양한 전략을 통해 승률을 높이는 게임이다. 해외에서 홀덤 포커는 이미 수십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 홀덤 포커의 가치를 믿고 하나하나씩 바꿔나가려고 한다. e스포츠도 똑같았다. 그것도 불모지에서 조금씩 싹을 틔우듯 이미지를 가꿔나간 거다. 그래서 앞으로의 내 대회 성적이 중요하다고 본다.

Q. 부담감이 적지 않겠다. 그렇게 총대를 메고 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 어떤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임요환: e스포츠계에 종사할 때도 가장 큰 한이 ‘버블(선풍적인 인기)’이 일어났을 때 ‘게임’을 재빨리 ‘스포츠화’하지 못한 거다. 시작이 중요하다. 나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이 정도의 성적(임요환은 지난 1월 첫 출전 한 ‘마카오 포커컵’ 터보 토너먼트에서 파이널 테이블까지 진출, 235명 중 8위를 차지했다)을 기록할지는 몰랐다. 가깝게는 일단 홀덤 포커를 활성화하는 것이고, 좀 더 멀리 보자면 언젠가 홀덤 포커가 올림픽의 한 종목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해외에서 홀덤 포커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게임 중 하나이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Q. 정말 당신과 ‘게임’은 떼어 놓으려고 해도 떼어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임요환: ‘게임’은 나의 인생이다. 내 인생에서 ‘게임’을 빼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 지금 겸직하고 있는 미투온 홍보이사직도 게임 산업에 일조할 수 있다는 생각과 그런 부분에 나의 이미지가 도움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진행하고 있는 거다. 사무직으로 회사에 다닌다거나, 기술을 배워서 하는 일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웃음)



Q. ‘더 지니어스2’ 출연으로 가시화된 부분이지만, 여전히 당신의 팬덤은 공고한 것 같다. (웃음) 앞으로 방송에 좀 더 출연해볼 계획은 없나.
임요환: 은퇴할 때는 ‘앞으로 무엇을 하든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금방 잊히겠구나’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요즘에는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 아닌가. (웃음) 근데 ‘더 지니어스2’에 출연하면서 무엇을 하든 간에 열심히 하고,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방송 이후 여러 곳에서 출연 제의는 받았지만, 당분간은 홀덤 포커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게 내가 지금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일이니까. 물론 어떤 방식이든 나를 믿고 기다려주신 팬들에게 종종 얼굴을 비쳐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Q. 오는 4월 마닐라에서 큰 대회 출전을 앞둔 것으로 안다. 한때 ‘테란의 황제’ 수식을 거머쥔 당신의 활약을 기대해 봐도 되겠는가.
임요환: 과거에 아스트랄(뭔가 신기한 것을 봤을 때 4차원 세계에 있는 것 같은 기분)한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처럼, 홀덤 포커에서도 나만의 플레이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당장은 아니라도 어느 순간 보일 거다. 그 쫄깃한 매력이 나의 트레이드마크가 아닌가. (웃음)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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