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서 가장 애정을 쏟는 분야가 인터뷰다. 단순한 말과 말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잇는 것이 인터뷰라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터뷰의 묘미를 알려준 이가 월간지 PAPER의 편집위원이자 작가인 황경신이다. 그녀의 인터뷰는 뭐랄까. 읽는 이로 하여금 바로 그 자리에 동참하고 있다는 착각을 안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비밀 이야기를 몰래 엿듣는 듯한 짜릿함을 안기곤 했다. 형식적인 질문을 벗어던진 성실한 인터뷰어 앞에서 인터뷰이들은 왜 또 그리 상냥한 고양이가 되는지. 어디에서도 발설한 적 없는 자신만의 비밀을 그녀 앞에 날름 꺼내 바치기 일쑤였다.
인터뷰어 황경신이 인터뷰이의 마음을 훔친다면, 작가 황경신은 독자의 마음을 감성적으로 만들었다가 울렸다가 종국에는 따스하게 감싸 안는다. 그녀가 써내려간 책에는 가슴 울컥하게 하는 문장들이 넘쳐난다. 사랑에 아파하거나 이별을 앞 둔 이들이 무방비 상태에서 책을 들었다가는 눈물을 쏟게 될게 자명하다. 지난 해 10월 출간한 그녀의 열일곱 번째 책 ‘밤 열한 시’에도 서정적인 문구들은 넘실거린다. 가을에서 시작해 겨울, 봄, 여름으로 이어지는 120개의 이야기 안에는 사랑이, 이별이, 인생이, 위로가 가득하다. ‘밤 열한 시’를 빌미로 그녀에게 사랑에 대해 물었다. (오래전부터 인생의 선배이자 멘토로, 마음을 터놓는 언니로 만나 온 터라 이날의 만남은 인터뷰라기보다 사랑에 대한 솔직한 대화로 흘렀다. 이날 오고 간 말들은 훼손하기 싫어 호칭과 말투를 그대로 살렸으니 이해 바란다.)Q. 어제 밤 열한 시에 뭐 했어요?
황경신: 책을 읽었어. ‘마에스트로의 리허설’이라고 세계적인 지휘자들에 관한 이야기야.
Q. 애독가로 유명한데 한 달에 책은 얼마나 읽어요?
황경신: 대중없는데… 해야 할 일들이 많을 때에는 일주일에 1,2권, 책에 집중할 수 있을 때에는 2,3권 정도 읽는 것 같아.
Q. 그 책들을 그때그때 모두 소화하나요?
황경신: 아우~ 못하지. 그걸 어떻게 다 소화해. 읽고 나서도 많이 까먹어. 사람마다 독서의 이유가 다를 텐데, 나는 책을 보는 시간 자체가 좋아서 읽어. ‘책을 내 것으로 소화해서 글 쓸 때 써먹어야지’하는 생각은 전혀 안 해. 100% 독자의 입장에서 보는 편이야.Q. 저는 책을 읽을 때마다 자꾸 전투적이 돼요. 책을 모두 소화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거죠. 책에 밑줄 긋는 습관도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 같고요.
황경신: 그렇게 되면 재미가 없잖아. 영화를 볼 때 뭔가 분석하면서 보면 감동이 떨어지듯이 말이야. 물론 책을 읽다보면 인상 깊은 문구들을 만나지. 그런 경우 나는 일단 페이지를 접어 둬. 그런 다음, 시간이 지나서 문득 생각이 날 때 다시 꺼내 보지. ‘어떤 점이 나로 하여금 페이지를 접게 한 거지?’ 하면서 곱씹어 보는 거야. 그런 사고의 과정에서 글을 쓰게 되기도 해. 왜냐하면 글이라는 게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시작하는 건 아니니까. 언젠가 어디선가 내가 듣고 보고 느끼고 읽은 것들에게 다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도움이 되는 거야. 결국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하는 책들이 좋은 책인 것 같아. 가장 좋은 책은 쓰게끔 하는 책들이고.
Q. 가령 어떤 책이 그런가요?
황경신: J. D. 샐린저의 모든 책들! 어떤 책을 보는데 재미가 없어. 그럼 내 경우엔 다음 책을 봐. 그런데 그 책도 재미가 없어. 재미없는 책을 연달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여. 스트레스를 빨리 풀어야 할 때, 나는 다시 샐린저의 책을 봐. 샐린저의 책들은 볼 때마다 또 다른 자극을 주거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도 정말 아름다워. 그 책이 롤리타 콤플렉스나 선정적인 부분들만 이상하게 부각돼서 그렇지, 사실 나보코프의 문장은 너무나 아름다워. 너무 아름다워서 페이지를 넘기기가 어렵지. 이 구절도 좋고 저 구절도 좋고 모든 구절이 너무 좋다보니, 한 장을 넘기기가 아까운 거야.
Q. 글을 쓰게끔 하는 책이 가장 좋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황경신의 책을 보는 독자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황경신: 그건… 바랄 수는 있겠지만 작가의 영역은 아닌 것 같아. 그래서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건 좋았던 것 같아. ‘그림 같은 세상’(2002년)을 냈을 때, 누군가가 그런 얘기를 했어. “나는 그림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이 책을 보고 나서 좋아하는 화가가 생겼어요”라고. 그 말이 너무 좋았어. 내 책이 누군가의 사고가 확장되는 하나의 계기가 된 거잖아. 그런 식으로 내 책이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가 된다면 너무 좋지.Q. 언니의 책을 읽는 독자들은 아마 ‘황경신은 연애에 도가 튼 여자일 거야!’ 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아요.(웃음)
황경신: 정말 그런 생각이 들어?(Q. 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니, 왜?
Q. 일단 작가 황경신의 글은 보편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게 있어요. 읽다보면 ‘아, 내가 이래서 외로웠구나’ ‘이래서 슬펐구나’ 무릎을 치며 공감하게 되죠.
황경신: 만약 그런 느낌을 받는다면… 그건 내가 사랑의 중심에 있었던 시간보다 그 외각에 있었던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일 거야. 왜냐하면 중심에 있을 때는 그런 생각을 잘 안 하잖아. 연애하는데 빠져서 그런 생각 자체를 잘 안 하게 된단 말이야. 그러다가 부재의 시간에, 내 안의 욕망이라든지 질투라든지 하는 사랑의 부산물들이 떠오르게 되지. 내 경우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그것이 생각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문장으로 이어지는 것일 테고. 그렇다고 억지로 쓰는 건 아니야. 본능적으로 쓰게 되는 것 같아. 머릿속의 것들을 내뱉음으로서 정화를 한다고 할까? 릴케가 ‘쓰는 것은 모든 것의 끝’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을 믿어. 사실 진짜 힘들 때는 쓰지도 못하거든. 말도 못 하지. 그런데 누군가에게 얘기를 하고 쓴다는 것은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가 돼 있다는 의미이고, 정리가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 해. 표현을 함으로써 나에게서 떠나가게 하는 거지. 그러면서 나는 또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되는 거고 말이야.
Q. ‘밤 열한 시’를 내고 나서 밤 열한 시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게 있어요?
황경신: 그 시간에 문자는 가끔 오더라? 뜬금없이 말이야.(웃음) 그런데 나는 잘 모르겠어. 왜 우리가 격의 없는 사이라는 말을 하잖아? 그런데 나는 적당히 격이 있는 게 좋은 것 같아. 즐길 때 즐기더라도 존중할 건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 너무 친밀해지면 서로에게 당연하게 되는 순간이 오잖아. 미안한 것도 없고, 고마운 것도 없고, 내가 원하는 걸 상대방이 안 해주면 괜히 밉고… 나는 그걸 경계하며 사는 것 같아.Q. 사랑이라는 게 결국 그렇잖아요. 친밀해지면 어느 순간 당연시 여기게 되는.
황경신: 그렇지. 그런 순간이 오지. 상대의 문자 하나에 기뻤던 순간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는 전화 한 번 안 받아도 괜히 짜증나고 서운해 하게 되지. 어떤 사람은 상대가 그런 집착의 제스처를 보이지 않으면 ‘쟤가 나를 안 좋아하나보다’ 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Q. 문자나 전화 횟수로 사랑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꽤 많죠. 여자들이 특히 그런 부분에 집착을 하는 것 같아요.
황경신: 나는 그런 건 진짜 없는 것 같아. 연락이 없으면, ‘상대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신경을 별로 안 쓰는 편이야.
Q. 남자들 입장에서는 최고의 여자네요?(웃음)
황경신: 아니야. 그렇게 하면 서운해 한다니까?
Q. 남자들도 서운해 한다고요?
황경신: 그럼. 상대가 보이는 집착의 제스처가 불평인 동시에 자랑일 수도 있어. 자기가 그만큼 관심 받고 있다는 의미니까. 상대가 나에게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잣대가 될 수도 있고.
Q. 언니는 왜 그런 부분에 집착(?)을 안 할까… 상대방에 대한 존중?
황경신: DNA적으로 집착의 유전자가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렇게 교육이 된 것도 있고. 그리고… 초연한 것 같지만 사실은 겁이 많아서일 수도 있어.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그러는 거지. ‘왜 상대는 대답이 없는 걸까…’ ‘왜 나는 그의 연락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걸까…’ 그런 생각을 부여잡고 있으면 내가 힘들어지잖아. 그래서 책에도 썼고.
Q. 아… ‘대답 없음도 대답이다?’
황경신: 응. 대답 없음도 대답이다.
기다리는 답이 오기를 기다리다
나도 누군가에게 기다리는 답을
기다리게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자 오래 전에 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대답 없음도 대답이다.
-황경신 ‘생각이 나서’ 中 -
Q. 그게, 책 ‘생각이 나서’에 있는 문구죠? 그 문구 읽고 한참을 멍하게 있었던 기억이 나요.
황경신: 그런데 그건 진리 아니니?
Q. 이성적으로 보면 진리인데, 사랑에 빠지면 이성적이지 못하니까요.
황경신: 생각을 해 봐. 연인관계뿐 아니라 일적으로든 뭐든 대답이 없다는 건… 그건 그냥 대답하기 싫으니까 안 하는 거야.
Q. 그래서 그걸 읽으면서 멍했다고요.(웃음) 언니 책에는 ‘연애의 정수’라고 느껴지는 문구들이 많은데 그 중에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게 ‘밤 열한 시’에 언급된 착한 연인 콤플렉스예요.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주겠다는 마음가짐이 되는 상태를 ‘착한 연인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중략) 중요한 것은 당신이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 그 사람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는가이다. 그 사람은 당신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는가이다”라는 부분이요.
황경신: 만약 누군가가 내 인생의 리모컨을 쥐고 있다고 생각해 봐. 그 사람이 리모컨을 꺼 버리면 나는 그냥 꺼져버리는 거잖아. 그러면 나는 뭐가 되겠어. 그 다음의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거고. 내 삶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잖아. 그 사람하고만 연결돼 있는 게 아니니까. 가족들도 있고, 친구들도 있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 온 인생도 있고, 그 사람 없이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라는 게 있는데 그렇게 꺼져버리면 안될 거 아니야. 그것도 매번! 번번이!
Q. 그래서 그런 말도 썼죠? ‘누군가 당신을 당신 자신으로 살아가도록 할 때, 당신 역시 그 사람을 그 사람 자신으로 살게 할 때, 그것이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요.
황경신: 응. 연애와는 다른 차원에서의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게끔 하는 게 아닐까 싶어. 나와 끝까지 살아가야 하는 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 세상에 말도 안 되게 절대적이고 영원한 사랑이 있다 하더라도 어쨌든 한 명은 먼저 떠나는 거잖아. 그리고 한 사람에게 내 모든 인생을 바치는 것이, 인류애적으로 봤을 때는 불공평한 것일 수도 있다고 봐. 연애하는 커플들은 보면 신기하게도 이기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아.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절대적인 세계 안에서 다른 사람을 잊어버리는 느낌이랄까.
Q. 연애할 때 친구들과 연락을 뚝 끊는 사람도 많죠.(웃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나다움을 잃지 않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상대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황경신: 그런 연애 관계가 오래 가기가 힘들지.
Q. 상대가 질리니까.
황경신: 내가 먼저 지치거나.
Q. 그걸 뒤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황경신: 내가 주도권을 잡는 방법? 주도권을 잡는다 한들 뭐가 크게 달라지겠어.(웃음) 음… ‘밤 열한 시’에도 썼지만 덜 사랑하는 자가 권력을 가질지는 몰라도 사랑이 행하는 일을 온전히 겪는 사람은 더 사랑하는 자이고, 정말 아름다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나는 게 아닐까 싶어.
Q. ‘정말 아름다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난다’라…
황경신: 모르겠어. 그것 또한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서 한 것인지도. 하지만 그런 감정을 경험한 사람으로서는 정말 그렇더라고. 자기 진심을 다 한 사람은 이별 후에 크게 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 쪽은 진심을 다하지 못한 사람들이지. 그런 사람들은 또, 다음 사람을 만났을 때 이전의 사람을 생각하느라 현재의 관계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Q. 여기에서 질문 하나. 이렇게 이론이 빠삭한 작가 황경신도, 정작 누군가가 치고 들어오면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어렵지 않나요?
황경신: 하하하. 나는 오히려 이젠 이성적으로 덜 판단하고 싶어. 이성적으로 너무 생각하다보면 확 빠져들기가 어렵거든.
Q. 사랑이라는 게,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속성을 더 많이 알게 되는 것 같나요?
황경신: 그건 아닌 것 같아.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확실한 건 세상에 없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딱 하나 확신하게 되는 건 ‘결국 우리는 모두 죽는다!’ 이거 하나 같아.
Q. 황경신의 인생에서 사랑은 지금 몇 순위인가요?
황경신: 나에게 있어 사랑은 늘 1순위야. 사랑이 없으면 글을 쓴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 나 혼자 좋자고 책을 쓰는 건 아니거든.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어주고, 그런 그들을 위해 다시 펜을 잡고. 이런 게 없으면 삶이 너무 무의미하지 않을까.
Q. 황경신의 책은 어떤 사람들에게 더 깊게 가 닿는 것 같나요?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 이별한 사람, 사랑을 준비하는 사람…
황경신: 내 책은 늘 이별한 사람에게 더.(웃음)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책을 읽겠어? 연애하기도 바쁜데. 그리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내 책을 보면 실망하지 않을까 싶어. 사랑에 대한 예쁜 그림을 그려놓고 있는데 내가 자꾸 초를 치고 있으니까.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 둥 아프다는 둥 그러면서 말이야.(웃음) 하지만 이별을 한 사람이라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어. ‘인생이 나에게만 가혹하게 구는 게 아니구나.’ ‘어떤 식으로든 인생은 흘러가는 구나’ ‘이게 끝이 아니구나.’ ‘흘러가다보면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구나’ 하면서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어.
Q. 흔한 질문이지만 묻고 싶어요. 황경신에게 사랑이란?
황경신: 나에게 사랑이란. 가능하다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지속하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다행히도 노력을 하면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아. 마음을 계산하지 않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그런 사람이 나를 찾아오는 것 같아. 그런데 만약 그게 안 된다? 그러면 그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야. 그건 상대가 진심을 보는 눈이 없는 거야. 나와는 다른 걸 원하는 사람이거나.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특히 많은 여자들이, 그런 일들 때문에 자존감을 많이 잃어버리지. 내 주위에 그런 친구들이 많은데, 그건 경계해야 한다고 봐. 내가 걔네들에게 늘 하는 애기가 “거울을 봐라”야. “네가 얼마나 예쁜지. 거울도 안 보냐”고 말해. 일단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해. 내가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
Q. 마지막 질문이에요. 요즘 행복한가요?
황경신: 네. 저는 행복합니다.(웃음)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 내 인생을 들여다봤을 때 ‘행복한 인생이 아니다’라고 얘기할 수도 있어. 일반적인 삶의 기준, 그러니까 돈이라든지 안정성이라든지 결혼이라든지 하는 것들로 봤을 때 나에게는 없는 것들이 많으니까. 반대로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어. “너는 좋겠다. 피아노도 치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며 자유롭게 사니까.” 그런데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나의 전부는 아니잖아. 세상의 어떤 부당한 일들을 나도 똑같이 당하고 있고, 나에게도 말 못할 어려움들이 많아. 하지만 어느 쪽이든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해 왔고, 그 결과 이런 삶을 살고 있잖아. 산다는 것이 기본적으로 ‘견디는 것’이라고 전제했을 때, 그 속에서 꽃봉오리 터지는 사소한 기쁨을 누리는 것이 행복이라고 했을 때, 나는 굉장히 행복한 사람이야. 적어도 내 주위에는 늘 나를 사랑해주는 친구들이 있고, 그런 걸 내가 감사하며 살고 있으니까.
나는 아직도 살아 있고, 기어이 살아 있고, 황홀하게 살아 있고, 봄날의 속살처럼 연약하게 살아 있으니, 우리는 사랑을 하자.
-밤 열한 시 中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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