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음식을 소개한 ‘스페인 타파스 사파리’(왼쪽) 유키마사 리카의 ‘저녁 7시, 나의 집밥’

지인들 사이에서는 나름 미식가로 통하지만, 집에서 느긋하게 요리하기를 즐기진 못한다. 그저 감자전을 부쳐 먹는데 만족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설거지가 너무 귀찮은 탓에 컵라면만 먹은 적도 있다. 작년에는 친구가 고로케 레시피를 주면서 수제 고로케집을 열자고 제안했지만, 톡톡 튀는 기름이 싫어서 시도조차 안하고 도망가느라 분주했다. 이유야 어쨌든 “이건, 아닌데!”하는 마음이 들 무렵, 유키마사 리카의 ‘저녁 7시, 나의 집밥’이란 책을 우연히 서울역 서점에서 발견했다. 요리 코너에 꽂혀 있던 책을 무사히 집에 가져오긴 했으나, 여기서 제안한 간단한 요리조차 아직 실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살림의 여왕 유키마사의 글(생활에 디자인을)에는 “가구를 산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을 사는 것입니다. 인테리어 이미지를 바꾸고, 듣는 음악을 바꾸고, 먹는 밥을 바꾼다는 것은, 새로운 자신을 만드는 방식입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다소 평범한 주장일 수 있지만, 사실 이건 개인적인 사유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예술 즐기는 습관’이라는 칼럼을 쓰는 목적도, 내 삶을 변화시키는 갖가지 시도들을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내게 예술이란 진부한 일상과 틀에 박힌 생활을 바꾸려는 총체적인 시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약 매일 1시간이라도 미술관 안에 존재한다면, 내 집은 곧 미술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논리(엉뚱한 궤변!)다. 그러니 이번에는 또 다른 변화를 위해 요리의 기술을 한번 습득해 봐야겠다. 이 책에서 어떤 레시피를 따라 할지 아직 결정하진 못했지만, 몇 가지(특히 우엉 그린 카레)는 꼭 만들어 먹고 싶다. 누구나 스스로를 응원하는 요리는 필요하지 않은가!

‘TAPAS: 스페인 음식 디자인’
마침 ‘저녁 7시, 나의 집밥’에 어울리는 전시가 있다. ‘TAPAS: 스페인 음식 디자인’ 전이다. 전시는 크게 KITCHEN(부엌), TABLE(식탁), FOOD(음식)의 세 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고, 총 190여 점의 전시품을 통해 스페인의 음식과 디자인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담았다. 무엇보다 음식을 디자인하거나 전시한다는 점이 상상력을 자극했다. 전시장의 입구에는 스페인의 대표 음식 하몽(돼지 뒷다리)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아기자기한 부엌 도구들을 먼저 만날 수 있다. 아이스 큐브나 전자레인지에 넣을 수 있는 찜통은 아예 구입하고 싶었다. 빵으로 새집을 만들어서 먹이로 주거나 버려지는 빵가루를 새에게 주는 장치처럼 친자연적인 프로젝트도 있고, 거리에서 군밤을 사먹을 데 껍질을 해결하기 위해 봉투(2개의 구멍)를 편리하게 디자인한 ‘꾸꾸루초 도블레’ 같은 아이디어 상품도 있다. 다큐멘터리 ‘엘 불리: 요리는 진행 중’을 본 사람들이라면, 더 관심을 가질 만한 것도 있다. 스페인 레스토랑 엘 불리에서 가져 온 색깔 찰흙(클레이 모형)을 실제로 볼 수 있다. 이 전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스페인 음식을 소개한 책 ‘스페인 타파스 사파리’를 곁들이면 좋다. 바르셀로나의 뒷골목에 자리한 타파스 식당과 음식들에 얽힌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전시장에서 특별 할인가로 10,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TAPAS전은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갤러리에서 4월 29일까지 계속 된다. 참고로, 이 전시가 마음에 들었다면 꼭 가봐야 할 행사가 있다. 서울리빙디자인페어가 ‘행복한 식구’라는 테마로 3월 26일부터 코엑스에서 열린다. 이곳에 가서 부엌에 서식해야 할 친구를 몇 개 구입해 볼 생각이다.

연극 ‘은밀한 기쁨’

연극으로 아놀드 웨스커의 ‘키친’을 더하면 금상첨화겠지만, 끝으로 소개할 것은 ‘은밀한 기쁨’이다. 이미 국내 무대에 소개된 ‘에이미’(1997)와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윤무’를 각색한 ‘블루 룸’(1998)으로 잘 알려진 데이빗 헤어의 작품이다. 1988년에 로얄 내셔널 씨어터에서 하워드 데이비스의 연출로 첫선을 보였다. 1980년대 영국을 무대로 대처주의가 한 가족의 개인적인 관계에 미친 영향을 제시하고 있다. 데이비스에 의해 1993년에 영화화된 바 있다. 헤어에 따르면 ‘the secret rapture’라는 원제는 프로테스탄트의 휴거보다는 수녀가 죽음의 순간에 신을 영접하면서 얻는 환희를 의미한다. 김광보 연출은 이 희곡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을 “한마디로 채홉과 입센의 결합”이라고 정의하는데, 아주 적절한 해석이다. 다변적이고 복합적인 인물의 심리는 체홉을 연상시키고, 정치적 주제를 가족의 드라마 안에 기입하는 극작술이나 주제의식은 입센을 닮았다. ‘은밀한 기쁨’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시대적인 상징성을 화두로 탐욕스런 자본주의를 분석하며, 전통적인 가치와 인간성의 붕괴(동시에 회복)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런 설명이 다소 어렵고 낯설게 느껴진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영국의 종교나 정치적 상황을 잘 몰라도, 이 역시 보편적인 인간의 이야기다. 우리 시대의 얼굴과 다를 바 없다. 연출은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의 김광보가 담당했고, 주인공 이사벨 역은 5년 만에 무대로 복귀한 추상미가 맡았다.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이번 주말까지 공연되니, 조금 서둘러야 한다. 러닝타임 100분이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120분이니, 마음에 준비가 필요하다.

글. 전종혁 대중문화 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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