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찌푸리면 소실점이 흐려지면서 입체적인 영상이 떠오르는 매직아이. 제임스 블레이크의 음악이 바로 매직아이와 같았다. 블레이크가 실어 나르는 음의 파동은 귀를 뚫고 뇌로 들어와 온몸을 전율시키는 듯 했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면 머릿속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듯했다. 즉석에서 다양한 소리를 버무리는 모습은 마치 피카소와 같았고, 개구지게 웃는 모습은 풋풋한 소년과 같더라.
19일 오후 6시 제임스 블레이크의 내한공연이 열린 서울 광장동 유니클로 악스에 1,700여명의 관객이 몰렸다. 최근 일렉트로닉 음악의 트렌드를 선도하며 ‘덥스텝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제임스 블레이크인지라 이기용(허클베리 핀), 김반장(윈디시티) 등 뮤지션들도 눈에 띄었다. 현재 ‘그래미 어워즈’ 신인상 후보에 올라 수상이 유력시되고 있기 때문에 더 ‘비싼 몸’이 되기 전에 얼른 봐야 할 공연이기도 했다.
공연장의 열기는 대단했다. 첫 곡 ‘아이 네버 런트 투 쉐어(I Never Learnt To Share)’가 시작되자 객석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져나왔다. 공연은 첫 내한공연이었던 재작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처럼 3인조 밴드로 진행됐다. 건반과 샘플러를 맡은 제임스 블레이크와 드러머, 그리고 기타와 건반을 함께 다루는 멤버 셋은 엄청난 음압의 사운드를 펼쳐냈다. 블레이크는 즉석에서 목소리를 샘플링해 반복시키더니 거기에 이펙터를 걸어서 기묘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형형색색의 소리들이 하나로 뭉쳐져 거대한 파동으로 다가오자 관객들은 탄성을 질러댔다. 특히 낮게 깔리는 덥스텝 사운드가 온몸을 진동시켰다.
음악은 대체적으로 음산하고, 음침했다. 하지만 블레이크가 소울풀한 목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바뀌었다. 재작년 페스티벌이 제임스 블레이크의 거대한 사운드 이스케이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면, 이번 단독공연은 그의 소울풀한 음색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였다. ‘투 더 라스트(To The Last)’와 같은 곡에서 블레이크의 목소리는 영적인 느낌을 주기도 했다. 제임스 블레이크의 음악은 단순한 전자음악을 넘어 소울이 충만한 사운드를 들려줬다. 전자음은 단지 도구에 불과하다고 할까? 가령, 피아노 한 대와 함께 노래한 ‘아워 러브 컴스 백(Our Love Comes Back)’은 우아한 발라드 그 자체였다.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블레이크의 곡 ‘리미트 투 유어 러브(Limit To Your Love)’의 피아노 전주가 흐르자 관객들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이날 공연에서 관객들은 전주가 나오자마자 어떤 곡인지 알아채고 함성을 질러댔다. 블레이크는 “반응(reaction)이 대단하다”며 한국 관객에게 감탄했다.
앵콜에서는 즉석에서 곡을 만들어 들려주는 특별 서비스를 선사했다. 노래 한 소절을 반복적으로 샘플링해 마치 그레고리안 찬트처럼 만들더니, 그 위로 트랙 하나를 얹어 하나의 곡을 완성해나갔다. 그것이 바로 블레이크가 곡을 만드는 주된 방식이었다. 그렇게 만든 소리를 뒤로 하고 그는 무대 밖으로 사라졌다. 제임스 블레이크는 “페스티벌이 아닌 단독공연이라서 관객들과 더욱 밀접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서울에서 공연을 갖고 싶다”라고 전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예스컴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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