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과 전쟁’에서 주로 했던 대사는 ‘이건 우리만의 비밀이야’, ‘자기는 언제 이혼할 거야’, ‘오늘 집에 안 들어가면 안 돼?’ 등이었다. 이후 나는 길을 가다가 아주머니들에게 이유 없이 맞고 욕을 먹었다. 심지어 내가 집에 들어갈 때도 ‘저긴 어떤 놈 집이래’라는 소리를 들었다. 30년 넘게 산 우리 아빠 집인데 말이다” – KBS2 ‘개그콘서트’ 속 코너 ‘희극 여배우들’ 중에서.

자신을 희화화할 수 있다는 것.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이 과정을 견뎌낸 여자가 있다. KBS2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이하 ‘사랑과 전쟁’) 시리즈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민지영의 이야기다. 민지영은 지난 2005년 ‘사랑과 전쟁1’의 ‘사기 치는 남자’ 편에 ‘꽃뱀’ 역으로 출연하며 명실공히 ‘사랑과 전쟁’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 했지만, ‘국민 불륜녀’라는 수식은 멍에처럼 그녀를 붙들었다. 하지만 민지영은 이에 대해 아쉬운 기색을 드러내기보다는 특유의 털털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농을 친다.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낫지 않나요?” 정말 보통이 아니다 싶다.‘개그콘서트’, ‘해피투게더3’ 등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KBS에서 연기 생활을 시작했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민지영은 지난 2000년 S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연기 경력 13년 차 배우다. 종합편성채널 JTBC 일일드라마 ‘더 이상은 못 참아’ 이후 다시 ‘사랑과 전쟁’으로 돌아온 그녀는 17일 100회 특집 편 ‘며느리 열전’ 출연에 이어 본격적인 연기 행보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Q. ‘더 이상 못 참아’ 이후 다시 한 번 ‘사랑과 전쟁2’에 100회 특집 편에 출연하게 됐다. ‘사랑과 전쟁’으로 다시 돌아온 건가.
민지영: 아무래도 100회 특집이다 보니 ‘익숙한 배우가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제작진의 요청이 있었다. 아직은 확답하기 어렵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넘겨줘야 할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웃음).

Q. 처음 ‘더 이상 못 참아’ 출연을 결정했을 때 주변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사람들도 있는 걸로 안다.
민지영: 아마도 ‘사랑과 전쟁2’가 한창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던 시점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방송가 사람 중에는 ‘쟤가 딴 데 가서 뭘 할 수 있겠어’하는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그게 더 날 자극했다. 정극 연기를 통해 ‘재연 배우’라는 오명을 벗고 싶었다.Q. ‘사랑과 전쟁’과 달리 일일드라마는 6개월 정도로 촬영 호흡이 길다. 어려운 점은 없었는가.
민지영: ‘더 이상 못 참아’ 섭외가 왔을 때만 해도 망설였다. 그게 또 ‘불륜녀’ 역할이었거든(웃음). 근데 점차 캐릭터에 몰입하면서 반응이 올라오자 후반부에는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격상됐다. 또 ‘사랑과 전쟁’ 때는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야기 하나에 연애, 결혼, 고부갈등 등 감정의 기승전결을 담아야 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근데 일일드라마는 6개월 정도로 호흡이 길다 보니 내가 캐릭터를 잡아서 몰입하는 재미가 있더라. 나중에는 너무 몰입해서 문제였다. 후반부에 일주일간 산소 호흡기를 달고 누워 있었는데 작품이 끝나도 여운이 안 가시더라.



Q. 극 중 소아암에 걸린 딸과 찍은 장면이 ‘더 이상은 못 참아’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들었다. 미혼녀인 당신이 그런 모성애를 표현해냈다는 점이 놀랍다(웃음).
민지영: 그게 다 ‘사랑과 전쟁’을 통해 배운 거다. 보통 ‘사랑과 전쟁’하면 불륜 드라마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전부 다 불륜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출연했던 ‘아들을 위해서’ 편도 그렇고 현실성 있는 이야기도 많이 다뤘다. 그런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더 이상은 못 참아’를 찍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매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개인적으로는 소중하고 값진 연기 수업을 들었다고 생각한다.Q. ‘사랑과 전쟁2’의 고찬수 PD도 “민지영은 표현해낼 수 있는 감정의 폭이 넓다”고 극찬하더라. 그럼에도 대중은 아직 당신을 ‘불륜녀’로만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민지영: 이미지를 벗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난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요?(웃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그만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Q. 아무래도 ‘사랑과 전쟁’으로 인지도를 얻어서인지 ‘불륜녀’라는 꼬리표를 떼어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민지영: 그건 내가 앞으로 극복해나가야 할 문제다. ‘사랑과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순 없지 않은가. 스물다섯 살에 ‘사랑과 전쟁’에 처음 출연할 때만 해도 나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다만 ‘사랑과 전쟁’에 수많은 배우가 스쳐 지나갔는데, 그중 내가 살아남은 것은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낫지 않은가(웃음).

Q. 배우로서도 이미지가 하나로 굳어지는 건 좋은 일이 아니겠다. 들어오는 배역도 한정적일 테고.
민지영: 그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정말 스케줄이 안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역할이나 작품을 고르지 않는다. 나는 이미지가 굳어진 게 아니다. 나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사랑과 전쟁’에서 항상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왔다고 생각한다.

Q. 이미지를 한 번에 바꿀만한 연기 변신을 시도해보고 싶다는 욕심은 없나.
민지영: 항상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자는 주의다. “어떤 연기를 하고 싶으냐?”고 묻는 말이 가장 답변하기 어려운 것 같다. ‘사랑과 전쟁’을 통해 수많은 역할을 맡아봤고, 예전에 연극을 할 때는 잔다르크와 거지 역도 맡아봤다. 지금 배우로서 목표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고 싶다’는 것 하나뿐이다. 여배우로서 내 나이에 맞는 그런 연기를 하고 싶다.

Q. 어느덧 30대 중반이다. 배우로서 여자로서 어느 정도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계획이 섰겠다.
민지영: 오히려 내가 신인이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스타를 꿈꾸지 않는다. 연기가 나의 삶이고 직업이기 때문에 이렇게 잔잔하게 계속하고 싶다. 데뷔한 이래로 소속사 없이 계속 혼자 일해 왔으니 얼마나 마음이 단단해졌겠나. 그 과정을 겪으면서 욕심도 버렸다. 작년에는 불러주시는 곳이 많아서 몸은 바빴는데 마음은 그다지 풍요롭지 못했다. 요즘은 자기 그릇에 맞게 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도 한다(웃음).

Q. ‘사랑과 전쟁’은 정말 당신과 떼어놓기도, 붙여놓기도 애매한 ‘애증’의 관계인 것 같다(웃음).
민지영: 무명시절 수많은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에 항상 불안했다. 그때 흔들리는 나를 붙잡아준 작품이 바로 ‘사랑과 전쟁’이다. 내가 연기자로서 사는 한 함께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사랑과 전쟁’을 통해 결혼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처음에는 ‘결혼하기 싫다’ 정도였는데, 나이를 먹다 보니 ‘드라마에 나온 상황만 없으면 난 행복하겠구나’ 싶더라. 그것도 내가 ‘사랑과 전쟁’을 통해 거둔 나름의 성과가 아닐까(웃음).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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