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 김성균이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새내기를 연기하고 있다
배우 김성균을 처음 본 것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2011)에서였다. 부산을 배경으로 조직폭력배와 부패한 공무원을 이야기한 이 영화는 진한 남자의 냄새로 가득했고, 조직 보스 곁을 지키던 박창우라는 첫 인상으로 다가온 김성균이라는 배우 역시 영화의 거친 향기를 깊이 품고 있었다.그러니 김성균을 처음 만난 순간 오늘의 삼천포를 떠올릴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줄곧 시커멓고 둔탁한 남자들의 세계 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단발머리의 조직폭력배가 가진 인상은 강렬했고, 실제 김성균은 차기작 ‘박수건달’(2012)에서도 조직폭력배를 연기했다. 뒤이어 그의 첫 주연작 영화 ‘이웃사람’(2012)에서는 무려 연쇄살인마를 연기하게 된다. 그 때의 김성균이 염소소리 BGM과 함께 새침한 표정을 가진 18세 대학생이 되리라고는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영화 ‘화이’ 속 김성균, 미소가 섬뜩하다
그의 변화를 감지한 것은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2013)의 무대인사 현장에서였다. 이 영화 속에서도 잔혹한 킬러로 잔인한 미소를 머금었던 김성균. 그런데 무대인사에서 주연 배우인 16세 여진구의 인사말을 받아치며 자신 역시 미성년자라 영화를 보지 못했다라는 농담을 했다. 실제 나이 만33세의 김성균이 왜 그런 말을 하였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 그는 tvN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의 첫 방송을 앞두고 한창 마인드콘트롤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공식석상에서도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정도로 투철한 준비 끝에 ‘응사’의 뚜껑이 열렸다. 첫 회 에피소드 ‘서울사람’에서 주인공은 김성균의 삼천포였다. 막 상경한 대학 새내기 삼천포가 서울역에서 신촌까지 무려 10시간이나 걸렸던 여정, 그 길을 따라가다보니 어느 새 김성균의 실제 나이를 잊고 말았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속 김성균(왼), 조직폭력배를 연기했다
사실 이 캐스팅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이들이 많다. 배우 본인 역시도 불안했던 캐스팅이었다. 김성균은 신원호 PD 등 ‘응사’ 제작진으로부터 출연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이들이 진심인건가”라며 의심부터 했다고 한다. 이후 꽤 오랜 시간 고민을 거듭했다. 30대 중반의 자신이 대학생 새내기를 연기한다는 것에 스스로도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하지만 배우의 도전욕구는 걱정을 앞섰나 보다. 혹은 제작진의 끈질긴 설득 때문일 수도 있겠다. 결국 김성균은 삼천포가 되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출연이 확정되고 제작진이 그에게 주문한 것은 ‘피부과 치료’ 정도였다고. 그러나 이마저도 빠듯한 일정 속에 몇 번 나가지도 못했다고 한다. 김성균은 감성에 주목하기로 한다. 기억 속 1990년대를 돌이켜 그 시절 자신을 깨워나갔다. 실제 지방출신인 점도 한몫 했을 것이다.모두의 의심, 심지어는 스스로의 의심 속에서 그는 삼천포가 되었고, 실제보다 15살이나 어린 배역을 연기하는 것이 어떤 배우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일임을 알게 해주었다. 킬러 집단에서도 유독 사나운 눈빛을 뿜어내던 사나이의 얼굴은 고작(?) 서울이라는 낯선 공간에서도 어찌할 바 몰라 불안해하는 어린 소년의 그것으로 완벽하게 변해있었던 것이다.
김성균의 삼천포 캐스팅은 최근 몇 년 안에 가장 파격적인 캐스팅이라고 할 정도다.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전복시키는 캐스팅인 동시에 18살과 33살, 간극이 커도 너무나 큰 연령을 오가는 그림은 보기 전까지는 전혀 예상되지 않는 충격적 캐스팅이었다. 그런데 결과도 충격적이었다. 분명 33살의 얼굴을 한 배우가 표정에 그가 그리고자 하는 정서를 소복하게 담아내 18살이 된 마법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김성균(오른쪽)이 1990년대 대학생 의상을 입고 있다
정말 연기를 잘 하는 배우에게는 그 어떤 장애물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려주는 사례가 됐다.그렇게 틀을 깨버린 김성균에게 ‘응사’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동시에 김성균의 이 캐스팅 사례는 방송계와 영화계 전체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으로도 기대된다. 신체적인 요인이나 전작에서 쌓아온 이미지의 반복 탓에 배우를 특정 이미지에 가두어버리는 이들을 향해 경종을 울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김성균이라는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는 타인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알게 해준 진귀한 사례로 존재하게 됐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tvN,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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