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푸른 눈 박연’ 공연 장면

조선시대 최초의 귀화 서양인, 얀 얀스 벨테브레. 그는 ‘박연’이라는 조선 이름을 부여받고 조선여인과 결혼했으며 조선에서 뼈를 묻었다. 또한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홍이포’라는 대포를 만들었으며, 병자호란에 참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에 관해 알려진 기록은 거기까지 일뿐, 어째서 그가 모국 네덜란드로 돌아갈 수 있는 몇 차례의 기회를 그만두고 조선 땅에 정착했는지를 설명하진 않는다. 바로 이러한 궁금증에 착안해 최근 들어 창작 뮤지컬이 제작되었으니, 바로 ‘푸른 눈 박연’이다.

전작 ‘바람의 나라’, ‘윤동주 달을 쏘다’, ‘잃어버린 얼굴’ 등 한국적인 예술 미(美)을 한껏 살린 서울예술단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이번 공연의 극 전개 특징은 서양인과 한국인(조선인)이 각자의 관점에서 상대를 이해하고 동화해 간다는 것. 그러한 점에서 벨테브레를 비롯한 세 명의 네덜란드인이 조선에 정착해가는 과정은 단지 공연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바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소통(疏通)의 모습이자, 다문화사회로 지향하는 미래의 자화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영화 그 이상의 매력

‘푸른 눈 박연’처럼 서양인이 낯설고 이질적인 세계에 동화되어가는 내용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있다. 얼핏 생각나는 것이 ‘말이라 불리운 사나이’(1970), ‘쇼군’(1980), ‘라스트 사무라이’(2003). 그중에서도 영화 ‘쇼군’은 뮤지컬 ‘푸른 눈 박연’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다. 박연이 조선 최초의 귀화 서양인이라면, ‘쇼군’에 나오는 블랙슨(리차드 챔버레인)은 일본 최초의 서양인 사무라이이다. 부연하면 주인공 블랙슨은 실존인물 윌리엄 애덤스를 기초로 하여 각색된 인물이라는 점. 영국 출신의 항해사이고 일본 여인과 사랑에 빠지며, 사무라이로 거듭난다는 내용은 실제 역사와 영화 모두 동일하다. 더욱이 윌리엄 애덤스(1600년)와 벨테브레(1627년)가 각기 일본과 조선에 표착한 기간 차이가 30년도 채 안되는 동시대 인물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편 영화 ‘쇼군’은 두드러지게 미국 관객의 시선에서 제작되었다는 점이 아쉽다. 즉 영화에 등장하는 사무라이의 규율이나 명예 등, 일본의 관습을 이해하기보단 서양과 대비되는 동양의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주로 부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 방식은 ‘라스트 사무라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주인공 알그렌(톰 크루즈)이 신념과 무사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무라이에 대해 신비감 혹은 경외감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이처럼 ‘쇼군’이나 ‘라스트 사무라이’ 둘다 의도적으로 사무라이문화를 호의적으로 표현한 반면, ‘푸른 눈 박연’은 이러한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즉 무대 위 벨테브레가 어째서 조선에 남고자 했는지를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벨테브레가 조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드러난다. 그 한 예가 이 공연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결혼식 장면. 흥겹게 두들겨대는 꽹과리에 맞추어 벨테브레가 신명나게 네덜란드 전통무용을 추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뮤지컬 ‘푸른 눈 박연’ 공연 장면

이 공연은 극 전개 내내 관객에게 웃음이 절로 나오게 하는 동시에 여운도 남게 한다. 즉 주인공 벨테브레(김수용)를 비롯해서 그가 사랑한 연리(김혜원), 뚝배기 맛이 느껴지는 주모(고미경), 감초역의 덕구(박영수)가 펼치는 매끄러운 연기조화는 신선한 웃음을 선사하고, 벨테브레, 아니 박연이 조선인보다 더 조선을 사랑하는 과정에선 진한 감동을 이끌어낸다. 게다가 궁궐이나 민초들의 생활상을 독특한 조명장치로 연출한 것도 장면에 맞는 무대효과를 톡톡히 했다.끝으로 이 뮤지컬에서 한 가지 아쉬운 건 박연 스스로 해적이었다고 밝히는 대목이다. 만일 대사에 나온 것처럼 그가 실제로 해적 출신이라면 진한 아쉬움이 남는 반면, 단지 극의 흥미를 배가하기 위한 각색이라면 위험한 발상이다. 박연이 어느 조선인 못지않게 조선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이 공연을 제작하게 됐다는 기획의도와도 맞지 않는다. 더욱이 조선 최초의 서양 귀화인이자, 조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위인 아닌가!

씨네컬은 시네마(Cinema)와 뮤지컬(Musical)을 합성한 말로, 각기 다른 두 장르를 비교 분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글. 문화평론가 연동원 yeon04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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