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준이 톱스타일까? 아마 대부분이 선뜻 ‘맞다’라고 동의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런 그가 영화 ‘톱스타’에서 톱스타 장원준 역을 맡는다고 했을 때 분명 누군가는 ‘반신반의’ 했을 것이다. 김민준 자신도 ”톱스타가 아니기 때문에 톱스타를 할 수 있었다”며 웃음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김민준은 참 멋진 배우였다. ’다모’에서 장성백이 풍긴 야성적인 매력에 푹 빠졌던 사람이 어디 한 둘이던가. 잠시 기억에서 사라졌던, 잠시 잊혀졌던 그의 매력이 ‘톱스타’에서 다시 한 번 제대로 드러났다. 누가 뭐래도 영화 ‘톱스타’에서만큼은 톱스타 그 자체였다. 박중훈 감독 역시 “외형이 내가 생각하는 톱스타에 가깝다”고 힘을 실었다. 그래서 김민준에게 물었다. 톱스타가 뭐냐고.

Q. 연기 중단 선언을 했다가 다시금 나왔다. 스스로 연기를 잠시 쉬겠다고 해놓고선 얼마 안돼서 다시 복귀를 할 만큼의 이유가 있었나. 큰 결심이었을 텐데.
김민준 : 작품은 (SNS에 쉬겠다고 올리기) 훨씬 전에 하는 걸로 이야기가 끝났다. 그런데 작품이 밀리면서 당시 상황 상 조금 더 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쉬겠다고 적은 이유는 내 주변 사람들 대부분 연예 종사자다보니 그들에게 알리는 차원이었다. 여러 일이 들어오는 데 매번 직접 거절하는 것도 죄송하기도 하고, 그래서 SNS에 적으면 죄송한 마음이 덜 할 것 같았다. 그런데 ‘톱스타’가 훨씬 빨리 들어가게 됐다. 시기적으로 딱 중간에 끼인 상황이었다.

Q. 그때 당시 잠시 쉬겠다고 한 이유를 말해줄 수 있나.
김민준 : 방전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만 쉬면 충전될 것 같았고, 목표점도 다시 잡아야 했다. 가령 목표는 서해상에서 제주도인데 풍랑 때문에 좌표대로 못 갈 때가 있다. 그러면 닻을 내리고 다시 좌표를 잡고, 엔진도 손보고 해야 하지 않나. 딱 그런 거였다. 마냥 새로운 작품을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의문도 들었고, 내가 잘하고 있나 싶기도 했다. 그 순간의 감정일수도 있고. 여하튼 복잡다단했던 것 같다. 또 한편으론 내가 그렇게 공표를 했으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강한 도덕적인 굴레를 씌워야 하는 건가란 생각도 들었다.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직업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지 않나 싶다.Q. 사실은 쉬겠다고 한 배우를 박중훈 감독이 어떻게 설득했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건 아니고. 그러면 처음 제안이 왔을 때 하겠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민준 : 박중훈 감독이 해온 작품을 좋아했고, 영화인으로서 해왔던 발자취가 좋았다. 후배들한테 귀감이 돼 왔다. 이런 사람이 영화를 찍는다면 좋을 거라는 게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톱스타를 다룬 영화란 점이다. 박중훈이 이 작품을 감독한다면 누구보다 잘 할 거라는 촉이 왔다. 그래도 10년 이상 하다 보니 나름대로 촉이 있다. (웃음). 기성 감독이나 입봉 준비하는 감독이었다면 고민을 더 했을 것 같다. 또 매번 찍는 순간순간 반발감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박중훈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톱스타를) 잘 알고, 잘하겠다 싶었다. 크랭크인 순간부터 신뢰는 두터워졌다.


Q. 근데 배우가 감독한다는 거에 대해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

김민준 : 굉장히 긍정적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벤 애플렉도 감독도 하고 연기도 한다.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를 연출한 에밀 쿠스트리차도 연기를 정말 잘한다. ‘증오’의 마티유 카소비츠도 유명한 연기자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도 소설 등을 읽으면서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영화를 찍곤 한다. 머릿속으로 1,000억도 쓰고, 한정판 람보르기니를 등장시키기도 하고, 어떤 장치나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 최고의 대작을 만들기도 하지 않나. 그런데 현실적으로 감독을 하면 시스템적인 환경에 부딪히게 된다. 박중훈 감독은 30년 가까이 그런 환경을 지켜봐왔고, 가늠했고, 이론적으로 공부를 하셨던 분이다. 그런 부분들이 신뢰를 가질 부분이 아닌가 싶다. 특히 빛나는 부분 중 하나가 리더십이다. ‘나를 믿고 따라 와라’가 아니라 ‘이 정도면 믿을만하지 않니’라고 매순간 농담처럼 얘기한다. 또 현장에서의 판단력을 보면, 신인 감독이란 수식어가 붙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

Q. 제목이 ‘톱스타’ 아닌가. 그리고 실제 맡은 역할도 최고 톱스타 장원준 역할이다. 실제 본인은 톱스타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고민은 하지 않았나.
김민준 : 그건 순간이었다. 예전에 드라마 ‘온에어’에 김민준이란 이름 그대로 카메오 출연한 적 있다. 그땐 굉장히 쑥스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톱스타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분명 (톱스타의) 기준이 있을 텐데 내가 극 중 톱스타를 했기 때문에 편하다. 적어도 동일시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만약 정우성 선배 같은 진짜 토스타가 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자신과 극 중 장원준을 분리시켜야 하니까. 그래도 분명 관객은 비교할 것이다. 그리고 영화에 집중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이야기를 따라 가야 하는데 태도나 행동에 집중하게 될테고, 그러면 영화적으론 마이너스가 될 것 같다. 물론 그 분(톱스타)들이 했으면 잘하셨겠지만. 어쨌든 나는 다르지 않나.Q. 톱스타가 갖춰야 할 덕목 또는 기준, 그런 게 있을까? 있다면?
김민준 : 감히 이렇다 저렇다 할 입장은 아닌 것 같다. 같은 업계에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톱스타에 대한 개인적인 정의는 영화배우로서 캐스팅 첫 번째로 거론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정말 몇 명 없다. 또 유망한 감독님이 차기작을 준비하는데 굉장히 욕심나는 캐릭터라면 ‘저도 생각 있습니다. 생각 한 번 해주세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는 정도. 그리고 주위 톱스타를 보면 도덕적이기도 하고, 선후배 관계를 잘 푼다. 연기만 잘하면 됐지 저런 거까지 해야 되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다.

Q. 그렇게 얘긴 하지만 영화 속에서 굉장히 멋있었다. 솔직히 이렇게 멋진 배우였나 싶을 정도였다. 극 중 톱스타 역을 위해 준비도 많이 하고, 부담도 많았을 텐데.
김민준 : 그 부담감이 안 느껴지게 잘 해주셨다. 누구보다 걱정을 많이 하는 게 당사자다. 그리고 중요한 장면일 땐 당연히 전날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현장에서 감독님도 중요한 장면이고, 잘 찍어야 한다고 확인시켜주는데 그건 한 번 더 긴장감을 주는 거다. 박중훈 감독님은 그럴 때 전날 ‘편하게 놀러온다는 생각으로 오라’는 문자를 보낸다. 그리고 촬영장에서도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준다. 슛이 들어가면, 감독님이 뛰어와서 배우들만 들리게 말을 한다. 이미 ‘오케이 컷’은 나왔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이렇게 바꿔서 다시 한 번 해보자고 한다. 나중에 보면 다시 찍은 게 오케이 컷인 거다. 카메라 앞에 혼자서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박중훈 감독의 가장 유능한 부분의 한 면인 것 같다.


Q. 한 가지 궁금한 건 톱스타 장원준이 굳이 왜 사투리를 쓰냐는 거다. 어떤 의도인건가.

김민준 : 장원준을 입체화 시키는 과정에서 우리끼리 인물의 배경을 만들곤 한다. 가령 장원준은 어떻게 스타가 됐을까 또는 일약 스타덤에 올라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는 스타일까 아니면 지방에서 올라와 갖은 고생을 이겨내며 스타가 됐을까 등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장원준은 멋있는 사람으로 그려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반짝 스타가 아니라 지방에서 올라와 매니저와 함께 으?으? 하면서 톱스타에 오른 것으로 설정했다. 그래서 일상적인 모습은 따뜻하고, 사람 냄새 나게 그리려고 했다. 또 감독님께서 사투리가 가미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 역시 찍기 전까지 톱스타가 사투리를 한다는 게 이질감을 주지 않겠냐고 했는데 감독님이 해보자고 해서 믿고 갔다.Q. 특정인을 지칭하진 않지만 언론을 통해 봐 왔던 사건들의 나열이다. 실질적으로 연예계 종사자로서 영화 속 사건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직접 연기하는 기분은 어떤가.
김민준 : 매번 개인적인 심리에 집중했던 것 같다. 역할의 직업이 연기자고 톱스타일 뿐이지 사실 그 외의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연인 관계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집중했던 것 같다. 실제적인 이야기로 그려졌다면, 또는 배우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였다면 힘들었을 거다. 순간순간 어떤 상황에 닥칠 때마다 그 캐릭터의 상황에 집중했다.

Q. 극 중 장원준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표현했어야만 했나 싶었다.
김민준 : 시한부 6개월을 선고 받고,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데 그에게 6개월은 지옥이나 다름없는 거다. 시한부 6개월이 아니었다면 나름의 방법을 총동원해 상황을 모면하거나 바로 잡았을 거다. 하지만 그게 아니니까.

Q. 캐릭터적인 측면이 아니라 연예인의 극단적 선택에 관해서다. 종종 그런 일이 발생하니까. 연기라고는 하지만 연예인으로서 조금은 불편하지 않았을까 싶은 거다.
김민준 : 그렇긴 하다. 그런데 찍으면서 걱정한 건 아니다. 찍을 땐 어떻게 하면 설득력 있게 찍을지가 더 중요했다. 초반에 옥상에 올라가는 게 복선인데 그것도 감독님과 상의를 해서 만들어냈고, 옥상에 올라가기 전 거울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것도 고심 끝에 추가한 거다.
Q. 박중훈 감독은 김민준 씨에 대해 저평가된 배우이며 아직 보여줄 게 많다고 했다. 이 말에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나.

김민준 : 그게 정말 기분 좋은 이야기다. 저평가됐다는 것도 기분 좋다. 위태위태한 순간의 연속이라 생각한다. 저평가됐는데 보여줄게 많은 거랑 그냥 저평가로 끝나는 것은 다르다.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기회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지만. 예를 들면, 고교 때 랭킹을 다투던 선수가 프로로 직행했는데 실력이 애매한 거다. 어느 정도는 하는데 뛰어나진 않고. 만약 그런 선상에 (내가) 있는 거라면 몇 안 되는 기회를 살려서 좋은 연기자로 발돋움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아직 그 기회는 있는 거니까.

Q. 그렇다면 기회가 주어졌다고 하고, 가장 보여주고 싶은 게 무엇인가.
김민준 : 많은 것 같다. 안 닥쳐봐서 규정하기는 힘든데 주변인들이 ‘오빠는 구멍’이라고 한다. 소이현 씨도 생각지도 못하게 웃기다고 한다. 똑 부러지고, 냉철할 것 같은데 너무 허술하다고. 그래서 굉장히 진지한데 상황이 웃기고, 약간 사회에 적응 못하는 그런 바보 연기도 해보고 싶다. 사실 지금까지는 이미지 캐스팅이 많았다. 그런 건 할 때마다 힘들었다. 다들 멋있다는 데 틀 안에 갇혀 있는 것 같고. 트레이닝 복 입고 편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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