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셈버’는 잃어버린 사랑에 관한, 또는 잊혀진 시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잊은 줄 알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기억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추억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아픈 사랑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련한 설렘이라고 합니다.”- 연출 장진
올해 창작뮤지컬 흥행키워드는 단연 김광석이다. 김광석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날들’이 관객을 만난데 이어,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이하 ‘디셈버’)가 다시 한 번 김광석에 대한 추억을 건드린다. 지난 3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고(故) 김광석 탄생 50주년 기념 창작뮤지컬 ‘디셈버’ 제작 쇼케이스가 열렸다.제작비 무려 50억 원이 투입된 뮤지컬 ‘디셈버’가 주목 받은 이유는 차고 넘친다. ‘7번방의 선물’ ‘숨바꼭질’ ‘감시자들’ ‘피에타’ 등을 배급한 영화배급사 NEW가 처음으로 제작하는 뮤지컬이라는 점. 영화?연극?TV예능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장진 감독이 극작과 연출을 맡았다는 점. 김광석의 미발표 곡 ‘다시 돌아온 그대’와 ‘12월’이 처음으로 공개된다는 점. 그리고 바로 이것. ‘모차르트!’ ‘엘리자벳’ 등을 통해 실력과 흥행력을 검증받은 JYJ 김준수가 출연한다는 점에서 업계 안팎의 반응이 뜨겁다. 실제로 이날 쇼케이스는 이례적으로 관객들에게 1000석을 오픈했는데, 이는 김준수가 없었으면 쉽지 않았을 일이다.
NEW 김우택 대표, 세종문화회관 박인배 사장, 장진 감독을 비롯, 배우 김준수, 박건형, 오소연, 김예원, 김슬기 등이 참석한 이날 쇼케이스에서는 김광석의 미 발표곡 ‘12월’이 김준수의 목소리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김광석이 남긴 노래도 준수 실력도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사실임을 확인했다.
Q. 지금껏 영화만 해왔다. 뮤지컬에 도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김우택: 개인적으로 공연과 뮤지컬을 좋아한다. NEW는 영화로 시작했지만 장기적인 목표는 작지만 강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시도 속에서 뮤지컬을 기획하게 됐다. 좋은 감독과 훌륭한 배우들, 거기에 세종문화회관까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잘 조합이 돼서 기대가 크다. ‘디셈버’를 통해서 NEW가 뮤지컬 미디어산업에 조금 더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Q. 세종문화회관이 ‘디셈버’ 공동 주최한 이유는?
박인배: 김광석이 노래를 했던 1980-90년대 초반은 나에게 젊은 시절이었다. 당시 시대의 아픔에 힘들어하던 젊은 청춘들이 김광석의 노래로 많은 위안을 받았다. 그때의 감성이 오늘날의 젊은이들과 폭넓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를 희망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가장 객석이 많은 극장이 참여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짧은 기간에 많은 관객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연출을 맡은 장진
Q. 총 50억 원이 투입된 대형 창작뮤지컬이다. 어떻게 이런 프로젝트를 맡게 됐나.장진: 제작비 얘기는 더 이상 안 듣고 싶었는데 또 하시네.(웃음)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한 꿈은 예전부터 있었다. 제의도 여러 차례 받았는데, 선뜻 못했던 이유는 하나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좋은 재원과 무대와 관객들이 있는데 왜 옵션이 까다로운 라이선스 뮤지컬을 가지고 와서 디렉션을 카피 받아야 되고 안무와 무대를 가져와야 될까라는 답답함이 있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왔다. 내가 모자란 부분이 많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안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올까 싶었다. 게다가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음악마저 내 앞에 오니 안 할 수가 없었다. 흔히 말하는 ‘깡다구’를 좀 부려봤다. 공연을 보고 질책을 하실 분도 있을 텐데, 모두 달게 받을 생각이다.Q. 국내 창작뮤지컬로는 획기적인 시도다. 왜 ‘디셈버’를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박건형: 일단 장진 감독님과의 작업이 궁금했다. 그리고 고 김광석님의 노래가 뮤지컬로 나오면 어떨까 궁금하던 차에, 미발표 곡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같이 누군가와 새로운 것을 부활시키는 느낌을 맛보고 싶었다. (김)준수와 오랜만에 작업을 하게 되는 것도 반가운 일이었다. 여러 가지가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
김준수: 나 역시 마찬가지다. ‘디셈버’는 나를 끄는 요소가 너무 많았다. 일단 고 김광석 선배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미발표 곡을 내 목소리로 들려드릴 수 있다는 점에서 끌렸다. 장진 감독님과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점도 출연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뮤지컬(‘모차르트’)을 섰던 무대가 여기 세종문화회관이다. 그때의 느낌을 다시 받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렇게 참여하게 돼서 기쁘다.
Q. 미발표 곡을 본인의 목소리로 처음 들려줄 수 있어서 끌렸다고 했는데, 미발표 곡을 접한 소감이 궁금하다.
김준수: 처음 여러 곡의 CD를 받았다. 그 중에 ‘미발표 곡’이라고 적힌 케이스가 있었는데, 그게 가장 먼저 끌렸다. 보물함에서 보물을 꺼내듯 열어서 음악을 들었다. 듣자마자 ‘이걸 놓치면 후회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두 개의 미발표 곡 중에서 ‘12월’ 이라는 곡이 특히 좋았는데 마침 뮤지컬 제목도 ‘디셈버’였다. ‘감독님도 이 곡이 마음에 들어서 제목으로 했나보다’ 생각했는데, 아니라고 하시더라. “제목을 붙이고 나서 보니 ‘12월’이라는 곡이 있었다”고 하셨다. 운명 같은 만남이 아니었나 싶다.
장진: 준수 말 그대로다. 제목에 대해서는 얘기가 많았다. 앞서 ‘그날들’이라는 뮤지컬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노래 제목으로 가자 말자’라는 게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제목을 지었지, ‘12월’이라는 노래가 미발표 곡 중에 있는 줄은 물랐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12월’을 들어봤는데, 노래가 너무 귀에 쏙 들어오는 게 아닌가. 그때 ‘왜 이 분은 이 곡을 악보로만 남긴 채 가셨을까. 혹시 이걸 뮤지컬로 하라고 남기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했던 것 같다.
Q. ‘그날들’이라는 뮤지컬 때문에 캐스팅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그리고 ‘그날들’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던 것으로 아는데 거기에 대한 부담은 없었는지도 궁금하다.
장진: 부담감, 아주 크다. 얼마 전에 송영창 선배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조문을 갔었다. 거기에서 서부영화에서처럼 ‘그날들’을 연출한 장유정을 만났다. 내가 살짝 선배인데 ‘그날들’이 얼마 전에 상도 많이 받고 했잖아. 그 중압감에 장유정 연출에게 “당신이 NEW랑 만나서 포개서 하면 안 되겠냐. 사람들이 작품 대 작품으로 보지 않고 그냥 비교대상으로 볼까봐 걱정이다” 라고까지 애기했다.(웃음) 캐스팅이 힘들지 않았냐고? 그것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워낙 잘하는 분들이 ‘그날들’을 했기에, 배우들도 비교가 되지 않을까란 부담이 있었을 것 같다. 캐스팅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사실 오랫동안 공을 들인 배우가 캐스팅을 고사하기도 했고. 그의 고사가 날 힘들게 하기도 했지만 ‘디셈버’ 연습이 시작된 이후 아무런 기억으로도 남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겐 이 작품이 중요하니까.
쇼케이스에 모인 ‘디셈버’ 연출진과 배우들
Q. 김광석 노래에서 어떤 영감을 받아 이번 이야기를 만들었나.장진: 김광석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젊은 어느 한 시절 낭만을 얼추 흉내 낸 세대로서 그의 음악을 한다는 건 너무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가지고 이런 대극장에서 버라이어티 대형 뮤지컬을 한다는 건 난감한 일이기도 하다. 가사를 보면 이건 신파 통속극 외에는 나올 수 없거든. 이걸 가지고 어드벤처를 만들 수 있겠나, 느와르를 만들 수 있겠나. 그래도 오랜 시간 사람들을 보듬고 울린 노랫말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편곡·음악팀을 믿어보기로 했다. 나는 이 시대 뮤지션들이 김광석의 음악에 일정 부분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격적인 편곡으로 신선한 느낌을 준 곡도 있지만, 김광석 음악의 감성을 고스란히 살린 곡도 있다. 김광석의 음악을 보호해 준 부분이 있어서 더욱 더 마음에 든다.
김종오(편곡): 편곡에 앞서 선곡이 첫 단추였다. 사실 나에겐 이 작품이 첫 뮤지컬이다. 대중음악 씬에서 활동하는 나에게 장진 감독님이 왜 이런 임무를 주셨을까 고민해봤을 때, 결코 평범한 걸 원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편곡가들이 뭉쳐서 새로운 걸 만들어보려 많은 시도를 했다. 스페셜하게는 돈 스파이크 같은 편곡가도 함께 했다. 하지만 편곡의 키포인트는 김광석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였다. 그 부분은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Q. 김광석의 곡들 중 어떤 노래가 마음에 와 닿았나.
박건형: 사실 김광석의 노래를 듣기만 했지 불러본 적은 없다. 김광석을 못 잊는 사람들을 통해 그의 음악을 들어왔을 뿐이다. 그래서 사실 이번 작품이 들어왔을 때 나에게 익숙함이란 없었다. 모든 게 새로움이었다. 김광석의 노래를 원곡 그대로 듣고 싶은 분들도 계실 테고, 새롭게 듣고 싶은 분들도 계실 텐데, 그 분들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김광석 노래는 모두 사랑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실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나는 군대도 다녀왔기 때문에… ‘이등병의 편지’도 좋았다. 하하하. (아직 군대를 안 간 준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마이크 넘겨받을래?(일동 웃음)
김준수: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던 터라 ‘일어나’라는 곡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리고 앞으로 군인으로서 짊어져야 될 것이 있기 때문에 ‘이등병의 편지’도 좋았다.(웃음) 미리 군인의 마음을 느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김광석 선배의 노래는 나 또한 불러보기 보다는 들어본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이번 작품에는 공격적으로 편곡된 곡이 몇 곡 있기 때문에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느껴질 부분이 있을 거다.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보셔도 좋을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부탁한다.
김슬기: 김광석의 노래를 탄탄한 각본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다. 따뜻한 관심 부탁한다.
박호산: 긴 말이 필요하겠나. 배우는 공연으로 말한다. 열심히 해서 좋은 연기 보여주겠다.
이창용: 나는 (박호산과 달리)말을 조금 하겠다.(일동 폭소) 너무 좋은 환경에서 좋은 스태프와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어서 기쁘다. 퍼즐의 작은 조각이 되도록 하겠다.
조원희: ‘디셈버’는 최소 12번은 봐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성원 부탁한다.
김예원: 김광석의 음악만큼 장진 감독의 극작에 대한 기대감도 많았다. 음악 못지않게 드라마에 대한 부분도 놓치지 않는 공연이 될 거라 생각한다.
송영창: 우리 딸이 학창시절 미친 듯이 ‘시아준수, 시아준수’ 하면서 좋아했다.(일동 웃음) 그땐 왜 그러나 싶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분장실에서 노래 연습하는 걸 들으니까 정말 잘 부르더라. 그래서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다.(웃음) 모쪼록 많은 기대 바란다.
김준수: 뮤지컬 쇼케이스는 처음인데 이렇게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하다. 좋은 작품 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
박건형: 탄탄한 각본을 쓰신 장진을 선장으로 열심히 준비 중이다. 12월, 선물 같은 공연이 되리라 믿는다.
장진: 사실 이런 사람들이 캐스팅이 안 됐으면 했다. 행여 작품이 안 되면 ‘캐스팅이 약하다’는 핑계를 댈 수 있으니까. 연습 들어가기 전에 한 지인이 그러더라. “이번 뮤지컬 대박이라며?” 아니, 나는 연습을 한 번도 안 했는데? 그게 다 이 분들 때문이다. 그동안 해 보고 싶었던 것을 이들의 힘을 빌려 해보자는 생각이다. 지금 아주 잘 가고 있으니 기대해 달라.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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