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소연
차가운 냉기가 스쳐간 듯 유리같은 외모를 따스한 선한 기운이 관통하고 있다. 누군가 배우 김소연에 대해 설명하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직접 만나면 감탄을 하게 되는 완벽한 이목구비 탓에 그녀는 늘 도회적 이미지로 읽힌다. 그러나 단 한 번을 마주하더라도 알 수 있는 따듯한 기운이 그녀에게는 늘 맴돌고 있다. 세상을 명확한 흑과 백으로 나눌 수는 없다는 진리를 증명하듯 말이다.MBC 수목 드라마 ‘투윅스’에서 2주 간의 사투를 벌였던 김소연은 이번 인터뷰에서도 예외 없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토해내고 아직도 남아있는 박재경(극중 인물)으로서의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모두 꺼내는 것에 주저없었다. 유리창에 서린 따스한 입김과도 같았던 그녀와의 대화를 기록했다.
Q. ‘투윅스’가 종영하고 바로 만날 수 없었던 이유가 꼭 부산국제영화제를 가야했기 때문이라고 들었어요. 멋진 레드카펫은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혹시 부산의 밤도 즐길 기회가 있었나요?
김소연 : 늘 부산으로 향하기 전 목표는 나도 이번만큼은 해변 포차에서 부산의 밤을 즐기자이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방에만 있었어요(웃음). 아직은 영화인들의 밤에 합류하기가 쑥스러워요. 영화라고는 이제 겨우 한 편 했을 뿐이니까요.(그녀는 지난 해 영화 ‘가비’에 출연했다) 그래도 레드카펫만큼은 최대한으로 즐기고 왔어요. 먼저 관객들과 악수도 하고 연예정보프로그램 인터뷰에도 대답을 할 정도였어요. 이건 정말이지 장족의 발전이에요. 예전엔 너무 긴장한 탓에 아무 것도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았거든요. 그러니 제 자신은 푹 즐기고 온 영화제였고요, 다음 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꼭 술을 마시고 와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Q. 지난 번에 만났을 때는 영화 ‘가비’ 홍보 때 였어요. 그 때 영화에 대한 애정이 너무나 커서 다음 번에도 영화로 만나게 되지는 않을까 했었는데 말이죠.
김소연 : 하고 싶어요. 여전히! 그렇지만 요즘은 신인배우들도 너무나 잘 하고 경쟁률이 높아요. 그래도 언젠가는 내 영화를 가지고 영화제에 참석하는 것이 제 꿈이에요.Q. 올해가 데뷔 19년인가요?
김소연 : 주변에서 말씀해주시길 데뷔 20년이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1994년 12월에 데뷔를 해서 그런가봐요.
Q. 굉장히 긴 시간이고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오셨지만 배우로서 아직도 연출자들이 발견하지 못한 내 모습이 있다는 생각을 할 것 같아요.
김소연 : 너무 많죠. 일단 로맨틱 코미디에 어울리는 밝고 통통튀는 모습을 끄집어내주셨으면(웃음). ‘검사 프린세스’에서 해보긴 했지만요. 제게 그런 부분이 분명 있어요. 또 저는 정통 멜로도 너무나 해보고 싶어요. 2~3년이 더 흐르고 나면 서른 후반의 멜로를 꼭 표현해보고 싶은 그런 꿈도 있어요. 그렇지만 기존 이미지를 뒤집어 캐스팅하는 것이 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큰 용기를 요하는 일인지 잘 알아요. 그러니 이건 제가 풀어야 하는 숙제겠죠.
Q. ‘검사 프린세스’에 이어 ‘투윅스’로 소현경 작가님과 또 만나게 되셨어요. 재회의 과정도 궁금합니다.
김소연 : 인터넷으로 기사를 접했어요. 작가님과 손형석 PD님이 함께 드라마를 하신다는 것을. 보자마자 시놉시스를 보내달라고 했어요. ‘검사 프린세스’에 이어 ’49일’이나 ‘내 딸 서영이’ 등 작가님의 작품에는 언제나 숟가락을 얹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거든요. 그 때는 인연이 닿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너무나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캐릭터보다 작가님의 작품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행복이었으니까요. 물론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이후 3주 만에 작가님이 회사로 연락을 하셨고, 박재경을 만나게 됐죠.
배우 김소연
Q. 소연 씨 같은 인지도의 배우도 먼저 출연의사를 밝히고 그러는 군요.김소연 : 그럼요. 2~3주 동안 이야기가 없어서 굳이 연락을 또 하는 것은 실례가 될 것 같아 사실은 마음을 접고 있었는데 연락이 와서 너무 기뻤고 바로 ‘너무 하고싶어요!’라고 말했죠. 나중에 들어보니 처음부터 저를 박재경 역할에 염두에 두셨다고 하시더라고요.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또한 감사한 점은 작가님이 재경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주셨다는 것이었어요. 재경은 14일 동안 하나의 사건을 좇아 집념으로 질주하는 인물인데, 직진만 한다면 매력이 잘 표현되지 않을 수 있으니 초반부에 허당스러운 모습, 중간중간 깨알같은 모습들을 많이 넣어주셨어요. 너무 감사드려요. 지금도.
Q. 그런가하면 동시간대 방송됐던 SBS ‘주군의 태양’팀과는 워낙에 친하다고요.
김소연 : 네. 그럼요. 스태프들과 같이 MT도 가는 그런 사이에요. 다들 ‘검사 프린세스’할 때 만났었으니까요. 주기적으로 MT도 가고, 고스톱도 치고(웃음). 아마 10월 네째주 정도에 또 다 같이 만날 거예요. 이번에는 경쟁한다는 느낌보다는 서로 격려한다는 느낌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어요.Q. 친하게 지내는 이들이 주로 스태프인가요?
김소연 : 네. 배우 중에는 박정아 씨와 친해요. MT 멤버 중 한 명이고도 하고요. 또 (조)민기 오빠를 비롯해 ‘투윅스’ 선배 후배들과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아요. 하지만 역시 스태프들과의 유대관계가 더 큰 것 같아요 저는.
Q. ‘주군의 태양’과 서로 격려를 했다고는 하지만, ‘투윅스’가 웰메이드 드라마란 점을 누구보다 잘 아시니까 시청률은 아무래도 아쉬울 수밖에 없었을 텐데요.
김소연 : 그럼요. 참 아쉬웠어요. 정말로요. 하지만 또 이런 기분도 있어요. ‘투윅스’는 정말 본방사수를 해야 드라마가 전하는 짜릿한 전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그걸 놓치신 분들한테 ‘메롱’하고 싶을 정도의 그런 드라마였어요. 시청률을 떠나 저는 이 작품에 자부심이 커요. 제작진은 끝까지 퀄리티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어요. 대단해요. 정말이지! 늘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모든 찬사는 배우에게 집중되는 것이 그래서 너무나 죄송하죠.
Q. 또한 ‘투윅스’에서 소연 씨를 보면, 김혜옥 조민기 같은 쟁쟁한 선배들과 연기할 때 굉장히 신이 나있는 것이 눈에 보였어요.
김소연 :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어요. 리허설 할 때 ‘어! 이거 뭐지? 내 기분, 뭐지?’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후반부 취조하는 신에서는 정말 짜릿해 죽을 지경이었어요. 연기할 때는 한 번 하고 끝나버리는 장면이니까, 리허설 할 때도 리딩할 때도 일부러 더 많이 느끼려 진짜처럼 임하기도 했어요. 흔치 않은 감정을 많이 느낀 작품이었죠. 김혜옥 선생님, 민기 오빠 모두 별다른 리액션 없이도 감정이 전해져요.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Q. 개인적으로는 조서희(김혜옥)를 취조하는 장면이 가장 좋았어요. 너무 과잉되지 않고 완벽히 재경에 밀착해있는 당신을 보았거든요.
김소연 : 초반에는 과한 감정이 드러난 신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박재경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그 어떤 것도 과잉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특히 미숙이와의 상황은 숨이 턱턱 막혔어요. 미숙이 배의 칼자국, 그 선연한 핏자국을 보는 순간 감정의 절제가 되지 않더라고요. 준비한 것보다 더 강하게 감정이 드러났어요. 울컥울컥 했었거든요. 매 신 미칠 것 같았어요. 그렇게 모든 내(재경) 상황이 분노와 폭발을 절제할 수 없는 그런 상황임에도 너무 감정을 앞세우지 말아야겠다, 내 감정만 우선시 하면 안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 공부를 앞으로는 더 하려고요.
Q. 그런 감정들은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비례할 수밖에 없을텐데요. 재경은 그럴 자격이 충분한 매력적인 캐릭터인 것 같아요. 재경이 되기 위해 당신이 기울였던 노력을 디테일하게 설명해주세요.
김소연 : 작가님이 재경의 연대표를 작성해서 주셨어요. 몇 살 때 이러했고 이러했고 이런 식으로. 그래서 이입이 더 잘 될 수 있었죠. 개인적으로는 ‘살인의 추억’, ‘몽타주’, ‘나는 살인범이다’ 같은 영화들을 봤어요. 저는 재경을 보이시한 여자 검사로 보지 않았고, 여성성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저 검사로 보았기에 관록있는 선배들의 남자형사 연기를 중점적으로 봤었죠. 물론 초반부 제 연기는 여전히 아쉬워요. 다시 다 찍고 싶을 정도로!
배우 김소연
Q. 재경이 매력적인 포인트가 바로 그것이었어요. 말씀하신대로, 여성성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슬픔을 지닌 인물이지만 그것이 직접적으로 전해진 순간은 없었다는 것. 그럼에도 느낄 수 있었다는 것.김소연 : 무슨 말인지 알아요. 한국 드라마 전반을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한국 드라마의 전형성대로라면 재경은 태산(이준기)을 짝사랑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흘러갔을 거예요. 그렇게 캐릭터가 변질되는 이유는 결국 드라마의 시청률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을 때 대안 때문인데요. 제작진이 뚝심있게 초심을 지켜주신 거죠. 그래서 재경이 전형성을 탈피한 흔치않은 캐릭터가 될 수 있었어요.
Q. 그런가하면 소연 씨가 많이 울컥했다고 한 미숙과의 감정신은 애절했었죠. 마지막 신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 아름다운 장면이었어요.
김소연 : 생각해보면 미숙과의 신은 다섯 신 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여운이 많이 남았죠. 초반에 그만큼 잘 잡아주신 덕분이죠. 또 저는 민기 오빠와의 케미도 너무 좋았어요. 오빠와의 취조신은 제가 다시 돌려봐도 부끄럽지 않은 신 중 하나였어요. 새벽 3시에 찍었는데 NG 한 번 없이 간 신이기도 하고, 또 김혜옥 선생님과의 취조신도 짜릿하게 찍었고요.
Q. ‘투윅스’는 태산도 그렇고 인혜(박하선)도 그렇고, 또 재경도 그렇고 많은 이들의 상상도 못할 비극들이 얽혀 있었어요. 그 중에서 도 재경은 유일하게 비극을 만들어 낸 힘 있는 이들과 맞설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키워온 그런 인물이었죠. 그런 재경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뭐라고 생각했나요.
김소연 : 메시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감독님과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재경이 왜 이렇게 됐을까’라는. 감독님은 일본 만화 ‘몬스터’를 언급하시면서 ‘한 소년이 복수를 꿈꾸다 스스로가 괴물이 돼버린 상황’을 보면서 재경이 생각났다고 하시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머리에 번쩍 하면서 스치는 것이 있었어요. 순수한 양갈래 머리를 한 여학생이 일석(조민기)과 서희를 좇느라 자신의 삶을 다 포기해야만 했던 그런 상황에 설득력을 싣는 것이 제 목표였고 책임이 됐죠. 그러면서 재경이 안쓰럽기도 했어요. 눈물이 삐져나올 정도로.
Q. 재경이 화이트보드를 지우던 장면도 인상 깊었어요.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장면이었죠.
김소연 : 자신의 복수를 다 해낸 재경이 목표를 잃고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표를 채워넣겠다는 것을 말하는 신이었어요. 그러니 ‘투윅스’는 한 편으로는 재경이라는 검사의 성장기도 들어가있는 장면이었어요. 저는 지금도 가끔 상상을 해요. 재경의 미래를요. 원래 작품이 끝나고 나면 잘 빠져나오는 편인데, 이번에는 그러질 못하고 있어요.
Q. 김소연이라는 배우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죠. 20년의 세월을 배우라는 이름으로 살았는데 좋았던 점과 그렇지 못했던 점을 꼽아본다면요.
김소연 : 좋았던 점은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예요. 어린 시절 데뷔해 학창시절을 평범하게 보내지 못해서 아쉽다는 말이 사치일 정도로 저는 멋진 것을 선물받았어요. 얼떨결에 우왕좌왕하며 시작한 것이지만요. 이 일을 20년을 하고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앞으로도 그것을 지키고자 노력을 할 거예요.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세계잖아요. 그런 만큼 더 책임감을 갖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아쉬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늦게 데뷔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웃음). 그렇지만 역시 저는 데뷔 당시에 ‘어린 나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받았던 것들이 많았었죠.
Q. 혹시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는 누구인가요?
김소연 : 샤를리즈 테론이요! 그녀의 연기도 너무 좋고 행보도 좋고. 그녀가 레드카펫에서 보여주는 모습도 멋있고 평상시에 옷 입는 것도 좋아요. 우아하고 자신감 있는 애티튜드와 더불어 연기할 때 두려움이 없어보이는 그런, 제게는 꿈의 배우죠.
Q. 그러고보니 분위기가 닮아있는데요.
김소연 : 아! 정말요?(두 손을 꼭 쥐며)
배우 김소연
Q. 소연 씨는 많이 들었겠지만 차갑고 도회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선한 기운이 같이 감도는 그런 배우에요. 어쩌면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두 가지 기운이 함께 있는 그런.김소연 : 저는 제가 갖고 있는 좋은 점보다 늘 부족한 점을 먼저 생각하는 스타일이라, 스스로에게 불만도 많아요. 거울을 들여다보며 다름을 틀림으로 생각한 적도 있고요. 그러나 지금은 마음을 고쳐먹고 다름이라고 인식하는 중이예요. 말씀하신 그런 눈빛을 제가 가지고 있다면 저로선 너무나 좋아요. 저는 배우니까 여러 느낌들이 공존했으면 해요. 그래서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라죠. 연기에 있어 거슬림이 없는 그런 배우이고 싶어요.
Q.’투윅스’를 내려놓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은요?
김소연 : 얼른 또 다른 작품을 만나고 싶고, 그 전에는 제 미래를 위해 달라질 거예요. 새로운 것을 배우고 노력하고 싶어졌어요.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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