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짜리 남자아이가 커다란 화분 통에 담겨진 채 납치된다. 아이는 냉혹한 킬러 석태(김윤석), 운전을 전문으로 하는 말더듬이 기태(조진웅), 이성적이고 치밀한 설계자 진성(장현성), 칼을 잘 다루는 동범(김성균), 총기 전문 저격수 범수(박해준) 등 다섯 명의 범죄자 아빠 손에서 길러진다. 아이의 이름은 화이(여진구). 아빠들로부터 발차기, 칼 다루기, 총 쏘기, 운전, 자물쇠 따기 등 갖가지 범죄 기술을 배운 화이는 17살이 되던 어느 날, 숨겨진 자신의 과거와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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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우 -미친 사랑의 노래∥ 관람지수 7 /쾌감지수 7 /김윤석-여진구 궁합지수 8
이은아 -친절하게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관람지수 6 /쾌감지수 5 /김윤석-여진구 궁합 지수 6

정시우: 극장 문을 나서면 더 궁금해지는 영화들이 있다. ‘지구를 지켜라’가 그랬다. ‘화이’가 또 그러하다. 상징과 은유로 가득찬 ‘화이’는 음미할수록 풍부한 질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맹목적인 사랑을 그린다는 점에서 ‘마더’의 부성(父性) 버전으로도 읽히는 이 영화는 한마디로 ‘미친 사랑의 노래’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자양분을 얻고 태동했다. 친아버지의 존재를 모르고 비극적 운명에 빠져드는 ‘화이’ 역시 이 신화의 내러티브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철지난 노래’로 들릴 법한 이야기는 장준환이라는 작가가 부여한 심리적 깊이에 힘입어 그만의 기이한 분위기를 획득해낸다. 전형적이지만 빤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많은 이들이 ‘장준환스러움’에 대해 얘기한다. 장편영화 한편 밖에 만들지 않은 감독에게 특정한 색을 덧입히는 것은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다. 하지만 그의 단편 ‘2001이매진’(자신이 존 레넌의 환생이라고 믿는 남자의 이야기)과 차기작이 될 뻔 했다가 좌초된 ‘파트맨’(방귀냄새가 무기인 영웅이야기)까지 살펴본다면, ‘장준환스럽다’는 결코 불가능한 표현이 아니다. 날것, 황당무계한, 재기발랄한, 독특한 상상력 등으로 묶이는 장준환의 특징들이 분명 존재한다.거두절미하고 ‘화이’는 장준환의 소유격이라 할 만한 것들이 상업영화 문법들과 뒤엉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인상이다. ‘지구를 지켜라’와 같은 파격을 원하는 관객들에게 ‘화이’는 다소 안전해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다섯 아빠라는 흥미로운 카드의 쓰임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그들 각각의 외적 특기는 잘 드러나 있으나, 살인을 저지르도록 추동하는 동기와 심리 설명에는 소홀한 탓에 충분한 감정적 동요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 과하게 힘이 들어간 몇몇 대사와 상황설정이 극의 리듬감을 저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화이’는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뇌관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파괴력 강한 영화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묘사는 물론이거니와 선과 악이 교묘하게 한 배를 타고 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이로 인해 영화는 다양한 층위의 해석이 가능한 텍스트가 됐다. 가령 영화의 부재인 ‘괴물을 삼킨 아이’는 화이가 아니라, 어린 석태로도 읽힐 수 있다. 석태는 화이를 자신의 복제물로 만들고 싶어한다. 스스로가 괴물이 됨으로써 공포에서 벗어났다고 믿는 석태는 화이를 통해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화이가 자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자, 두려워한다. 그것은 석태 자신의 인생 전체를 배반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 아빠와 달라요” 라는 화이의 짧은 한마디에 석태의 눈빛이 그리도 심하게 흔들린 것은 그 때문이리라.

영화는 선과 악의 이분법에 대해 고민한다. 결과적으로 석태를 괴물로 만든 것은 누구나가 천사라 추앙하는 (화이의 친아버지)영택(이경영)의 ‘선의’였다. 호의로 시작된 영택의 선의는 오히려 어린 석태의 자격지심을 건드리고, 석태 안의 괴물을 깨우고 만다. 영화 말미, 해사한 얼굴을 머금고 길을 떠나는 화이를 두고도 관객은 난감해 질 수 있다. 손에 피를 묻힌 저 아이는 과연 순수한가. 저 아이를 괴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영화가 남기는 질문이 꽤나 묵직하다.이 작품에서 가장 뜨거운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극 초반 쉽사리 칼날을 내보이지 않던 김윤석은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불꽃을 내뿜는다. 9회 말 투 아웃에 등판해서 만루 홈런을 친다는 게 이런 것일까. 한기를 몰고 다니는 살인자의 극악무도함부터 아들에게 잘못된 사랑을 휘두르는 히스테리를 오가며 김윤석은 스스로가 왜 충무로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인가를 증명한다. 선한 인상의 여진구는 자신이 지닌 풋풋한 이미지를 십분 발휘하는 동시에 배반하는 방법으로 화이라는 캐릭터의 질감을 살려낸다. ‘지구를 지켜라’가 장준환의 차기작을 궁금하게 했다면, ‘화이’는 여진구의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



이은아: 영화 ‘지구를 지켜라’로 컬트적인 인기를 누렸던 장준환 감독이 돌아왔다. 잠깐의 일탈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화이’에 대한 기대가 클 것이다. 그러나 10년 만에 스크린 복귀라 긴장한 탓일까. 상업영화라고 하기엔 컬트영화적인 느낌이 크고, 컬트영화라고 하기엔 상업영화의 분위기가 짙다. 영화는 잔인하고 하드코어지만 여진구와 남지현의 풋풋한 사랑도 그린다. 문제는 이러한 요소들이 매끈하게 어우러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많은 걸 담으려는 노력보다 한 가지 색깔에 주력했다면 영화가 보다 굵직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을까 싶다.다섯 명의 아빠들과 화이 사이의 화학작용이 부족한 것도 아쉬운데, 아빠들의 강렬한 캐릭터를 여진구 혼자 상대하기에도 버거워 보인다. 여진구가 맞서야 할 결정적인 상대는 무려 김윤석. 아우라부터 남다른 김윤석은 눈빛 하나로 상대를 압도한다. 김윤석 앞에서 여진구는 다소 무기력해 보이는 인상이다.

‘화이’는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영화가 답을 제시해줄 거라 기대하면 실망감이 클 것이다. 관객이 영화를 끝까지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석태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아서다. 그중 가장 궁금한 질문은 왜 화이를 키웠느냐는 것이다. 화이가 드디어 석태와 대면했을 때, 석태는 충분한 설명보다 ‘아직도 더 설명이 필요해?’라며 소리친다. 그 순간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기자뿐일까. 석태의 과거 회상 씬을 통해 그가 어떻게 괴물로 변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만, 이 역시 충분한 이해를 돕기에는 부족한 감이 든다. 나머지 아빠들이 과거에 어떤 사람들이었고 왜 괴물이 됐는지에 대한 단서가 없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아쉽다. 영화는 여러 부분에서 관객이 알아서 궁금증을 해소하라고 등을 떠민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지를 남기는 영화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혼란스러울 수 있겠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이은아 domino@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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